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33)
933화. 조별 과제
진격의 아이들.
그 행렬은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본 5반 담임 김수희의 눈에도 들어왔다.
“……?”
휘둥그레지는 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두와 시은이를 필두로 아이들과 학부모가 무리 지어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시위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 무슨 일이지?”
딱히 무슨 일은 없었다.
하나의 물결이 겹치고 겹쳐 커다란 파도를 만들었을 뿐.
그 파도는 운동장을 다 지나고 나서야 흩어졌다.
“재밌다!”
“응!”
“사람들이 우리 엄청 멋지게 쳐다봤어!”
아이들도 신이 난 상태였다.
실상은 ‘저게 뭐고’하고 보는 시선이 더 많긴 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다음에 또 학교 같이 가자!”
“안뇽!”
“잘 가, 얘들아!”
그리고 다시 연두와 시은이가 남았다.
“아빠!”
뒤를 돌아본 연두가 폴짝 뛰며 아빠를 부른다.
주원은 괜스레 말했다.
“이제는 아빠가 데려다 줄 필요 없겠는데?”
“.. 왜여?”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씩씩하게 잘 가던데? 친구들이랑 언니오빠들이랑.”
물론 빈말이었다.
연두는 괜찮을지 몰라도 주원은 전혀 괜찮지 않았으니까.
아마 혼자 등교하게 한다면 걱정돼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거다.
즉, 삐진 티를 내는 중이었다.
“아, 아빠……”
심각해진 연두의 표정.
그런 연두를 향해 주원은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장난이야.”
“.. 으응?”
“보기 좋던데? 연두가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어가는 모습 보니까.”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럼.. 앞으로도 데려다 줄 거에요..?”
“글쎄. 연두가 하는 거 봐서?”
괜히 한 번 튕기자 연두가 말한다.
“어떤 거 하면 되는데요?”
“.. 켁.”
생각지 못한 반응에 사레가 들린 주원이 헛기침을 뱉었다.
실소가 나왔다.
정확히 뭘 하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밀어붙여서 기회를 잡기로 했다.
무슨 기회냐고?
톡.
볼을 두드리며 주원이 고개를 낮췄다.
“볼뽀뽀 한 번? 그 정도면 데려다주고 싶어질 것도 같은데.”
“.. 으응?”
의문사를 뱉는 연두.
조금 당황한 얼굴로 주원은 말했다.
“왜? 볼뽀뽀 싫어?”
너무 갔나?
아니면 말속에 숨어 있는 부조리를 느낀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두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여..”
“그럼?”
“.. 너무 쉬워서.”
그 말과 동시에 볼에 느껴지는 감촉.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세연이 질세라 입을 열었다.
“시은이도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잘 가더라?”
너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표정과 멘트였다.
대놓고 ‘엄마 삐졌어’였으니까.
“엄마.”
“응?”
“삐지는 게 너무 늦었어.”
그런 뻔한 연기가 시은이한테 통할 리 없었다.
하지만……
쪽.
놀란 세연의 표정.
“.. 뭐야, 시은아?”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 맞지?”
“응?”
“너 엄마 딸 시은이 맞지? 다른 사람 아니지?”
시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옆에서 그 꿀잼 모멘트를 놓치지 않고 관람 중인 초록연두 부녀.
시은이가 입을 뗐다.
“이제 들어가야 돼.”
“잠깐만!”
시은이가 불길함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벗어나지 못하게 엄마한테 붙잡힌 상태였으니까.
“일루 와, 우리 시은이!”
정확히 13번의 뽀뽀가 이어졌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의 실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체념한 표정의 시은이.
입을 헤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연두가 중얼거리듯 입 밖에 뱉었다.
“…… 부럽다.”
그렇다.
연두는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주원의 예민한 청각이 그 중얼거림을 놓칠 리 없었다.
왜인지 심각한 표정이 떠오른다.
“.. 연두야.”
“네에.”
“방금 한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어?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인데.”
아리송한 표정이긴 했지만 연두는 대답했다.
“책임질 수 있어여..”
그 말이 화근이었다.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연두는 총 서른세 번의 볼뽀뽀를 받아야 했다.
***
국어 시간.
수업 시작과 동시에 김수희가 말했다.
“자, 여러분.”
“네!”
“책상 모아서 조별로 앉아 볼까요?”
조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책상 끄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별수업 대형이 완성됐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연두는 시은이와 형준이, 연호와 한 조였다.
“얘들아, 안녕..!”
연두의 밝은 인사를 시작으로 시은이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 주형준, 송연호.”
“아, 안녕..”
형준이는 여전히 소심했다.
학기 초에 시은이와 처음으로 짝꿍을 했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였다.
김수희가 말했다.
“조별로 앉았나요?”
“네, 선생님!”
“좋아요. 그럼 모두 국어책 178페이지를 펴 볼까요?”
책 넘기는 소리.
“거기 도전과제.. 우리 현우가 한 번 읽어볼까?”
“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현우가 씩씩하게 말한다.
“아래의 여러 주제 중 두 개를 골라서 시를 써 보아요! 시 옆에는 예쁜 그림을 그려 네모 안을 멋지게 꾸며보아요!”
조별 과제였다.
그래서일지 상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나이스!”
그 목소리가 상당히 컸던 탓에 김수희가 말했다.
“응? 왜 그러니, 연호?”
“좋아서요.”
“뭐가?”
“연시은 글 엄청 잘 쓰잖아요. 서연두랑 주형준은 그림 엄청 잘 그리고.”
“그, 그렇구나……”
벌써 됐다는 표정.
이른 나이부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연호였다.
어떤 이치냐고?
동료를 잘 만나면 편하게 목적지까지 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우……”
“치사하다, 송연호!”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석호와 재호 듀오는 야유를 보냈다.
둘을 중재한 김수희는 연호를 향해 얘기했다.
“그래도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거 알죠?”
“네, 선생님!”
“완성하고 나면 조별로 발표도 할 거니까 다들 열심히 하는 거예요.”
힘차게 대답하는 아이들.
“자, 그럼 시작!”
그렇게 조별 과제가 시작됐다.
도전과제.
1학년인 걸 감안하면 난도가 상당한 편이었다.
나열되어 있는 여러 키워드 중 두 개를 활용해서 시를 지어야 한다.
키워드를 고르는 게 과제의 시작이었다.
그래야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까.
“의견이 있으면 말해줘.”
그 말에 키워드를 바라보는 연호의 눈이 핑핑 돌았다.
앞서 ‘나이스!’를 외치긴 했으나 그냥 얹혀가려는 건 아니었다.
열심히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능력 부족이 연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무 어려워……”
키워드가 너무 많으니 더 헷갈렸다.
햇살, 산소, 공부, 라면……
하나면 몰라도 두 개를 어떻게 고른단 말인가.
결국 연호는 말했다.
“시는 네가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시은이를 향한 말이었다.
“같이 고민해야 돼. 나도 시는 한 번도 제대로 안 써 봤으니까.”
그렇다.
아직 시 쓰기에 도전해 본 적은 없는 시은이였다.
소설이나 탐정 노트는 써 봤어도.
그래도 시집을 본 적은 있기에 어느 정도 형식은 파악하고 있었다.
국어 시간에도 많이 배웠고.
“아! 그런 건 어떨까?”
연호가 의견을 냈다.
“어떤 거?”
“라면을 먹고 자서 얼굴이 탱탱 부은 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가 말하는 거지. 어머! 우리 아들은 어디 가고 석호가 있어?”
그러고선 낄낄 웃는 연호.
옆에서 들은 석호가 발끈하며 소리친다.
“야! 나 얼굴 안 크거든! 머리를 이렇게 잘라서 그런 거라고!”
“크흡.”
“웃지 말라고!”
요즘 머리를 자르고 나서 대두 프레임이 생겨버린 석호였다.
한편 시은이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의외로 센스가 넘치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좋은 의견이야. 근데 단어가 라면 하나밖에 안 들어있어.”
“.. 그, 그러네.”
역시 키워드가 걸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과제.
그때 키워드를 바라보던 연두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무지개.. 친구……”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 듯이 시은이가 흠칫 몸을 들썩였다.
“무지개…… 친구?”
어쩌면 전혀 관계성이 없어보이는 두 단어가 시은이 머릿속에서 결합됐다.
방향성이 정해졌다.
“써 볼게.”
“어?”
“한 번 써 볼게. 그러니까 무지개를 예쁘게 그려줘.”
“아, 알겠어..”
그렇게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의도치 않게 연두가 제공한 키워드로 시은이가 시를 쓰고, 나머지 세 명이 배경을 예쁘게 꾸미는 거다.
그림은 형준이의 소심한 리드하에 이루어졌다.
“여기는 시를 써야 하니까.. 무지개는 이쪽에 그리는 게 좋을 거 같아……”
“.. 응!”
연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형준아! 그럼 여기에 구름도 그릴까? 무지개는 구름에 뜨니까..!”
“응, 좋아..”
한번 시작하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 됐다.”
시은이의 첫 자작시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이제 조별 과제는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먼저 1조의 발표가 시작됐다.
발표자는 석호였다.
척!
냅다 그림을 보여준다.
물과 물속에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지면이 있었고.
“우리는 산소와 물을 선택했습니다! 시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귀를 열고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낄낄 웃으며 귀를 막는 청개구리 재호.
석호가 시를 읽어 내려갔다.
“제목. 산소가 필요해!”
일단 흥미가 가는 제목이었다.
왜 산소가 필요하다는 건지 궁금해지니까.
본격적으로 석호가 시를 한 줄 한 줄 낭독하기 시작했다.
-산소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어요
-물속에 풍덩!
-어푸어푸.
-아, 참! 물속에는 산소가 없잖아?
-아이고, 나 죽네!
-꼴까닥.
여섯줄로 이루어진 시였다.
실감나는 낭독에 아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 흐흣.”
연두도 꺄르르 웃었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내용이었다.
물속에도 산소가 존재하니까.
애초에 물의 화학식은 ‘H2O’로서 여기서 ‘O’는 산소의 화학식……
…… 집어치우고,
짝. 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담임교사 김수희도 뿌듯한 얼굴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1조 잘했어요! 산소랑 물을 잘 활용해서 재미있는 시를 지었네요.”
“훗.”
비록 배드엔딩이긴 했지만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한 멋진 시였다.
이과생이 보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다음은 2조 발표해볼까요?”
“네!”
질세라 발표자로 재호가 걸어 나왔다.
“우리가 고른 건 공부랑 꿈입니다!”
이어지는 제목.
“제목, 공부하기 싫다.”
“와아!!”
제목만으로는 아까보다 훨씬 큰 호응을 얻었다.
씩 웃는 재호.
함성을 즐기다가 시 낭독을 시작한다.
-공부하기 싫다.
-너무 싫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학교를 가지 않고 놀면 안 되는 걸까?
-놀고 싶다!
-내 꿈은 공부하지 않는 거예요!
이번에도 여섯 줄이었다.
그런데 방금과는 달리 다소 싸늘한 분위기였다.
왜일까.
조건도 맞췄고 공감대도 얻는 주제인데.
멋쩍은 표정을 짓는 재호를 향해 누군가가 외쳤다.
“야, 정재호! 너는 원래 공부 안 하잖아!”
“……”
그렇다.
발표자 선정이 잘못됐다.
애당초 공부를 안 하는 재호가 ‘공부하기 싫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공감대가 형성될 리 없었으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재호가 자리로 돌아갔다.
김수희가 말했다.
“2조도 잘했어요. 공부랑 꿈을 활용해서 시를 완성했네요.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는 거 알죠?”
“.. 네.”
“다음은.. 3조죠?”
대망의 3조였다.
연두와 시은이, 형준이, 그리고 연호가 속해 있는 3조.
“3조 발표해볼까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3조의 발표자.
다름 아닌 시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