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37)
937화. 누렁이네 옷가게
흔들리는 눈동자.
“……”
이걸 어쩐다.
생각보다 더 충격이 큰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이 떡볶이 코트는 연두색 원피스와 더불어 연두가 가장 좋아하던 옷 중 하나였다.
‘그만큼 추억도 많지.’
물건에는 추억이 묻어나는 법이다.
나만 해도 그랬다.
이유 없이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연두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갔다.
털썩.
연두가 옷을 떨어트렸다.
그러고선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옷장 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휙. 휙.
말릴 새도 없었다.
하나같이 연두가 좋아하던 옷들이었다.
그리고 연두는 재차 현실에 부딪혔다.
이제 더 이상 그 시절의 옷들을 입을 수 없다는 걸 완전히 깨달아버린 거다.
털썩.
이번에는 옷이 아닌 연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만.
왜 이렇게 짠하지.
주저앉은 연두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맞지 않아요……”
그 뒤에 연두는 덧붙였다.
“.. 왜?”
그렇다.
현실은 파악했다.
그러나 아직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감이 오지 않는 듯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연두는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살 빼면.. 다시 입을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05시즌 연두가 말랐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연두가 살이 찐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몸무게다.
항상 야무지게 먹는데도 그런 건 체질 때문이겠지.
‘.. 살이 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연두는 귀여울 테니 말이다.
이런 주접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충격에 빠진 연두를 위로할 필요가 있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는 것.
슥.
살며시 연두 옆에 앉아서 눈높이를 맞췄다.
“연두야.”
“.. 네.”
“아끼던 옷들을 입을 수 없게 돼서 속상한 거지?”
울컥한 걸까.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연두야. 옷이 맞지 않게 된 건 연두가 살이 쪄서가 아니야.”
“.. 그럼요?”
“연두가 성장했기 때문이야.”
“성장?”
“응.”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연두는 못 느낄 수도 있고, 아빠 눈에도 연두는 처음 봤을 때랑 똑같이 작고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다섯 살 때랑 여덟 살 때는 다를 수밖에 없어. 사람은 누구나 성장이라는 걸 하니까. 몸도 마음도.”
“성장……”
“얼마 전에 연두 성장통도 겪었잖아.”
“아! 맞아요..”
“그러니까 옷이 맞지 않게 된 건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연두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
납득한 얼굴이다.
그러나 이내 연두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래도 이제.. 입을 수 없는 거죠..?”
이유를 납득한 것과 속상한 건 별개였다.
납득했다고 해서 이제는 그때의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결과가 변하지는 않으니까.
아직 연두는 옷들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 아빠.”
“응, 연두야.”
“성장해서 옷이 맞지 않게 되면.. 맞지 않게 된 옷은 어떻게 해요..?”
이어지는 짤막한 한마디.
“.. 버려야 해요?”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한 마디였다.
바로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옷을 보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두는 옷이 많은 편이었다.
나름 이든의 모델 아닌가.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관해 왔지만.’
앞으로 연두가 성장하면서 옷은 점점 불어날 거다.
장롱 속에 보관하는 것도 곧 한계를 맞이하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버려?’
아니, 그건 내가 싫었다.
어떤 옷이든 소중한 추억이 하나쯤은 묻어있었다.
게다가 옷의 상태는 대부분 최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연두는 옷을 깨끗하게 입는 편이니까.
“아니.”
역시 버릴 수는 없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며 연두가 물었다.
“.. 그럼요?”
그렇다고 계속 집에 보관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집 전체가 옷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럼 어떻게 하냐고?
“아빠한테 생각이 있는데 들어볼래?”
마침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상태였다.
***
나는 연두에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천천히 설명해줬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세하게.
“안 버릴 거야.”
일단 의사 표명을 확실히 했다.
“연두가 버리자고 해도 아빠가 안 버릴 거야.”
“.. 왜요?”
“소중한 추억이 묻어있으니까.”
“……”
그러자 연두가 옷을 꼭 움켜쥐며 말한다.
“연두도.. 연두도 버리고 싶지 않아요……”
당연했다.
버리고 싶을 리 없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 언제까지고 모든 옷들을 보관할 수는 없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맞아, 연두야.”
이제 본론이었다.
“그런데 옷을 버리지 않으면서 더 값지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집에 두는 것보다.”
“그게 뭔데요?”
“연두한테는 맞지 않게 됐지만 그 옷이 딱 맞는 아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 옷들이 꼭 필요할 수도 있고.”
말 그대로였다.
여기서 걱정되는 건 내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제 맞지 않게 된 옷을 보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줘 버린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니까.
아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빠는 알아. 연두가 그 옷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네..”
“그 옷들을 집에 두는 것도 좋겠지만, 그 옷이 꼭 필요한 누군가가 연두처럼 아끼고 예쁘게 입어준다면 그게 제일 좋은 일 아닐까?”
생각에 빠진 연두.
당연했다.
그렇게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까.
꽤나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뗐다.
“이 옷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하지. 이렇게나 예쁜 옷인데.”
다시금 연두가 옷들을 바라봤다.
결정을 내린 걸까.
순간, 연두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맞아요.”
“응?”
“예뻐해 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도 내 의도를 이해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 준 연두가 대견했다.
그러다 연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아빠.. 그런데 어떻게 찾아여?”
“뭐를?”
“옷이 꼭 필요한 사람..”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다 방법이 있지. 잠깐 와 볼래, 연두야?”
“네에.”
당근마켓이라는 게 있었다.
동네 사람끼리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장터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주는 거 아니었냐고?
‘그럴 수는 없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걸 떠나서 나는 그냥 무언가를 주는 행위 자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고?
물건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최소한의 가격은 책정해야 해.’
돈을 벌려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소중했던, 그리고 소중한 물건이라는 걸 알리는 최소한의 장치라 볼 수 있었다.
가격은 얼마로 책정할 생각이냐고?
‘그건 내가 아니라 연두 손에 달려 있지.’
연두에게 맡겨 볼 생각이었다.
이른바 조기교육이다.
그냥 나눔이 아니라 당근마켓을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다.
연두에게 어느 정도의 경제 관념을 가르쳐 주고 싶으니까.
그와 별개로 가장 최악의 경우는 소중한 추억이 묻어있는 옷이 함부로 대해지는 거였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하지.’
옷을 팔 사람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나도 처음이었다.
당근마켓을 실제로 이용해보는 건.
“이건 당근마켓이라는 거야, 연두야.”
“당근마켓이여..?”
“응. 이웃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 같은 거지.”
“아!”
닉네임을 정해야 했다.
“닉네임은 뭐로 하고 싶어, 연두야?”
“닉네임..”
“뭐든 괜찮아.”
그 말에 고민하던 연두는 얘기했다.
“.. 옷가게?”
“하하..”
생각보다 투박한 이름이다.
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누렁이네 옷가게 어때?”
연두를 붙이면 신상이 파악될 우려가 있다.
누렁이를 설마 우리 집 누렁이라고 생각하는 명탐정 코난은 없겠지.
마음에 든 걸까.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좋아여!”
그렇게 닉네임을 정했다.
지역까지 설정하고 나니 별도의 절차는 없었다.
프로필에 들어갔다.
“소개란이네. 뭐라고 적을까?”
“몸이 커져서 맞지 않게 된 옷들을 팔아요..”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건 장터 소개가 아니라 푸념에 비슷하지 않나.
그래도 괜찮았다.
이게 연두의 진심인 거니까.
“아빠랑 소중한 추억이 있는 옷들이에요..”
그래도 적었다.
“그러니까.. 소중하게 입어줬으면 좋겠어요.”
다 적고 나니 생각보다 그럴싸한 소개란이 완성됐다.
이제 끝이었다.
“그럼 어디.. 분류해 볼까?”
우선 옷을 분류해야 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모든 옷을 팔 생각도 없고 한 번에 다 팔 생각도 없었다.
처음에는 몇 개의 옷을 정해서 팔 생각이다.
슥.
“연두야.”
장난스레 연두색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아, 안 돼여!”
절대 팔 수 없는 옷도 있는 법이었다.
***
분류가 끝났다.
처음으로 판매할 옷들이 정해졌다.
“후후.”
꽤나 웅장해진다.
과연 이 옷들을 가져갈 우리의 첫 손님은 누가 될까.
“그럼 판매를 개시해 볼까.”
“네!”
아, 참.
여기서도 내 사진 실력은 빛을 발했다.
이든에서의 경험을 살려 기가 막히게 상품의 디테일샷을 찍어냈으니까.
이 정도면 누구라도 탐이 날 만하다.
“좋아.”
이제 가격을 매길 차례였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자, 연두야. 이 옷은 얼마로 하는 게 좋을까?”
자, 어디 볼까.
우리 연두의 경제 관념을.
이 정도 컨디션의 재킷이라면 꽤나 높은 가격의 책정이 예상된다.
이윽고 연두가 입을 뗐다.
“칠백 원..?”
“켁!”
물도 안 마셨는데 사레가 들렸다.
칠백 원이라니.
연두의 경제 관념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그보다 이유가 궁금했다.
700원.
가격을 떠나서 그렇게 디테일한 수치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했으니까.
“왜 하필 칠백 원이야, 연두야?”
그러자 연두가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대답한다.
“짜, 짜떡 컵떡볶이가 칠백 원이라서……”
그게 기준이었구나.
“연두야.”
“네.”
“그럼 이 옷이 조금 서운하지 않을까? 내가 칠백 원밖에 안 돼? 하고.”
웬만해서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칠백 원은 오버다.
그 정도면 사기인 줄 알 거다.
연두가 미안한 얼굴로 자켓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아빠는 얼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천 원은……”
아니, 뭐라는 거야.
지금 내 경제 관념도 이상해졌다.
머릿속에서 수치를 정정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만 원은 받아야지.”
연두 눈이 동그래진다.
“.. 만 원이요?”
“응.”
사실 만 원도 높은 가격이 아니었다.
3년이 지나긴 했지만 옷의 상태를 고려하면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무리가 없었다.
“만 원.. 우아……”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액수에 놀란 연두.
그 뒤에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천 원이요.”
“어허.”
양손을 들어 손가락 한 개와 다섯 개를 폈다.
“천오백 원..?”
“아니지. 만오천 원이지.”
또,
“이, 이천 원..?”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자, 질문. 이천 원에서 0을 하나 더 붙이면 뭘까?”
“.. 이만 원?”
“그래. 그게 이 옷의 가격이지.”
그리고 또,
“오천 원이요!”
눈을 질끈 감은 연두.
큰 마음먹고 지른 거 같지만 역시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칠천 원.”
점점 금액이 맞춰지고 연두도 어느샌가 통이 커져 있었다.
이제 마지막 옷이었다.
긴장감이 흐르고 연두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시, 십만 원..!”
“.. 연두야. 그건 좀……”
급발진을 한 연두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 말고 만 원이여……”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이게 올바른 교육인 건지.
어쨌거나 그렇게 옷들의 가격이 모두 정해졌다.
“올린다?”
“.. 네.”
이제 진짜 판매를 개시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