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44)
944화. 최상급 표현
거래를 앞두고 정미연은 선물을 준비했다.
웬 선물이냐고?
사과를 받아주긴 했으나 나름의 미안함을 담은 선물이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거래를 할 때마다 그녀는 상대에게 소정의 선물을 전하곤 했다.
이번에는 특히나 더 신경 쓰긴 했지만.
톡.
직접 만든 비누.
그리고 여러 종류의 간식이었다.
“우와…… 소시지다!”
하얀이가 좋아하는 소시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대를 고려한 선물 선정이었다.
하얀이보다는 나이가 있겠지만, 상대 상점 주인은 어린 여자아이로 추정됐으니까.
‘안 맞게 된 옷들을 판다고 했고.’
그럼 이제 초등학생 정도가 아닐까.
적어도 그녀가 아는 선에서 초등학생 중에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하얀이도 마찬가지였고.
입맛을 다시는 하연이를 향해 말했다.
“하얀이 거는 요기 있지.”
“와아!”
그렇다.
연두와 하얀이는 공통점이 여러 개 있었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간다는 것부터, 간식 중에서도 유독 소시지를 좋아한다는 것까지.
비록 정미연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상점명을 보고 유추할 수 있지 않냐고?
[누렁이네 옷가게]누렁이는 흔한 이름이었다.
예전으로 치면 돌쇠 정도로 흔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지 그것만으로 상점 주인이 연두라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 밖에도 단서가 있긴 했다.
옷의 브랜드가 이든이라는 것과, 상점 주인의 나이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걸 가지고 연두인 걸 특정하려면 코난을 데려와야 했다.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추리를 하며 사는 경우는 없으니까.
“흐흥.. 기대되네.”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엄마! 옷 다 입었어!”
옷도 씩씩하게 스스로 입는 하얀이.
역시 영특했다.
한 가지 이슈가 있긴 했지만.
정미연이 쿡쿡 웃으며 하얀이를 향해 말했다.
“바지를 거꾸로 입었는데?”
“아!”
머쓱한 얼굴로 하얀이가 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럼 가 볼까?”
“응!”
그렇게 두 사람이 집을 나섰다.
선선한 공기.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맑아서 직거래하기 좋은 날이었다.
접선지는 공원 정자였다.
“여긴 또 처음 와 보네.”
산책을 자주 나가긴 했으나 이쪽 공원에 오는 건 또 처음이었다.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식물 때문인지 공기도 상쾌하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여기 좋아!”
하얀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럼 산책 좀 하다가 갈까?”
“응!”
일찍 나와서 아직 약속 시간까지 여유로웠다.
공원을 조금 거닐기로 했다.
그때였다.
두 아이가 옆을 스쳐 지나간 건.
“헉.. 헉..”
“힘내! 할 수 있어, 허예은!”
“흐으으…… 이럴 때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헥헥거리며 달리는 한 여자아이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여자아이.
그렇다.
예은이와 월이였다.
언젠가 공원에서 만났던 날을 기점으로 월이는 예은이와 함께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다소 일방적이긴 했지만.
예은이가 순순히 응하냐고? 그럴 리가 없다.
방식은 간단했다.
똑. 똑.
월이가 예은이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
보통 나오는 건 언니인 예솔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은이 친구 남궁월이에요. 예은이랑 같이 운동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럼 군말 없이 예솔이는 예은이를 내어주곤 했다.
한발 빠르게 알아차리고 숨어도 귀신같이 찾아서 월이 앞에 내어줬다.
‘.. 히익.’
어느새 예은이에게 있어서 월이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예솔이는 말했다.
‘항상 고마워. 이런 바보 동생이랑 놀아줘서.’
‘나는 바보가 아니야! 괴수 바보로돈은……’
의미 없는 외침이었다.
벌써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됐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예은이는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였다.
“이, 이러다 죽는단 말이다……”
그걸 지켜보는 정미연은 생각했다.
‘귀여운 아이들이네.’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얼굴을 자세히 볼 틈도 없이 멀어져 버렸다.
꿈에도 몰랐다.
두 아이가 곧 만날 상점 주인의 친구일 거라고는.
“슬슬 가 볼까, 하얀아?”
“응, 엄마!”
정자를 향해 발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먼저 도착하지는 않은 거 같았다.
“곧 오실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응.”
얼마나 지났을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당근이신가요?”
“아, 네!”
남자의 목소리였다.
“.. 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아니, 잘 아는 얼굴이었다.
“어어..?”
자연히 시선이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역시나 무척 잘 아는 얼굴을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정미연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녕하세요, 당근이싫어님! 저는 누렁이네 옷가게 상점주인 연두에요..!”
상점 주인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
생각보다 더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와 연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어머님 쪽이었다.
‘.. 많이 놀라셨는데?’
완전히 굳었다.
이건 땡 하고 쳐 줘도 쉽게 풀리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잠시 그대로 뒀다.
다행히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입을 뗐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긴 했지만.
“자, 잠시만요.. 왜 연두랑 초록님이 제 앞에 서 계신 거죠?”
역시 알고 있었구나.
나는 멋쩍은 얼굴로 얘기했다.
“그렇게 물어보시면 옷을 판매하러 왔다고밖에 말씀드리기 어려울 거 같은데요.”
“옷……”
순간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옷.. 이든.. 누렁이네 옷가게…… 아!”
실시간으로 퍼즐이 맞춰진 모양이다.
입이 벌어진 채로 우리를 바라보는 매너온도 99도의 손님.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 같았다.
“왜 그래, 엄마?”
그럼 엄마의 반응이 이상하게 느껴진 건지 아이가 입을 뗐다.
“예쁜 언니랑 멋진 아저씨. 엄마 알아?”
잠깐만.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예쁜 언니야 그렇다 쳐도 그 뒤에 나온 ‘멋진 아저씨’는 나를 가리키는 건가?
감격스러웠다.
항상 어딜 가도 아저씨라 불리며 서러운 시간을 견뎌왔는데 그 앞에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감격 어린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이름이 뭐니?”
“하얀이에요, 은하얀.”
세상에.
이름마저 연두랑 비슷했다.
슬쩍 연두를 보니 이미 하얀이를 보는 두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동시에 자그맣게 중얼거린다.
“하얀이……”
나는 어머님을 향해 말했다.
“정말 귀여운 따님을 두셨네요.”
“다른 분도 아니고 초록님한테 그런 얘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운데요……”
이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거 같지만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표정이다.
“안녕, 하얀아.. 언니 이름은 연두야……”
“연두?”
“응.”
“연두 언니! 나는 하얀이야!”
연두와 하얀의 만남.
가슴이 웅장해진다.
통성명도 했으니 이제 본 목적을 달성할 차례였다.
자, 거래를 시작해 보자.
“옷은 여기 있습니다.”
가져온 옷을 정자에 펼쳤다.
바로 입어보기 편하도록 비닐로 가볍게 포장한 옷들이었다.
그때였다.
어머님이 주위를 둘러본다.
“혹시 유투브 촬영인 건가요?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다거나, 아니면 당근마켓 콘텐츠라거나……”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정말 옷을 팔러 온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메라는 이거뿐이거든요.”
내가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나름 유투버인지라 어딜 가든 항상 들고 다니는 카메라였다.
물론 촬영 중은 아니었다.
동의 없이 촬영을 할 만큼 몰상식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촬영하셔도 돼요.”
“네?”
“아니, 다른 뜻은 아니고…… 제가 유튜브를 한다면 좋은 콘텐츠가 아닐까 해서요.”
곤란했다.
이렇게 나온다면 내 입장에서는 사양할 수가 없으니까.
이걸 사양하는 건 유투버가 아니다.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의사를 여쭤봤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연두튜브에 당근마켓이 등장하면 당근마켓 이용자도 훨씬 많아질 거 같기도 하구요.”
이게 99도의 사명감인가.
“그럼……”
본업을 개시했다.
착각인가?
영상을 보고 기뻐하는 편집자들이 벌써부터 눈에 보이는 거 같았다.
***
본격적으로 거래가 시작됐다.
공식적으로 상점 주인이 연두인 만큼 거래의 전반적인 과정은 연두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상대측에서도 꼬마공주님이 등장했다.
“어떤 옷을 먼저 입고 싶으신가요..?”
“빨강옷!”
손님은 변덕쟁이였다.
연두가 빨간 옷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에 마음을 바꿨다.
“아니! 이거부터 입어볼래요!”
떡볶이 코트였다.
연두는 미소를 띠며 노선을 바꿔 떡볶이 코트를 들어 올렸다.
순간 그려졌다.
나중에 커서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두의 모습이.
새삼스럽지만 엄청 잘할 거 같다.
“도와줄게요..!”
입은 옷 위에 겹쳐 입는 건 어려웠다.
서비스가 대단하다.
손님이 겉옷을 벗는 걸 도와주기까지 하는 누렁이네 옷가게의 사장 연두.
“추, 추워……”
“잠깐만요!”
그리고 옷까지 손수 입혀준다.
“이건 이렇게 입는 거에요! 여기 구멍에 떡볶이 모양 단추를 쏙 넣으면 돼요..”
“우와..”
“잘못 넣으면 처음부터 다시 입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떠올랐다.
내가 딱 저렇게 연두한테 떡볶이 코트 입는 법을 알려줬는데.
이제는 연두가 알려주고 있다.
‘.. 그게 뭐라고 이렇게 뭉클하냐.’
옷은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나와 같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던 정미연도 말을 얹었다.
“너무 예쁜데, 우리 딸?”
“.. 헷.”
신이 난 얼굴로 한 바퀴를 빙 도는 하얀이.
연두도 중얼거리듯 입 밖에 뱉었다.
“예쁘다……”
이건 순도 100% 진심이다.
연두가 이렇게 말하는 건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을 때니까.
하얀이도 옷이 마음에 드는 거 같았다.
힐링 그 자체였다.
연두가 아꼈던 옷들을 입는 하얀이의 모습을 보는 건.
‘당근마켓을 이용하길 잘했어.’
만약 집에 박아뒀다면 이런 뿌듯함은 느끼지 못했을 거다.
피팅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옷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왜일까.
‘빨강옷.’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빨간 옷을 아직까지 입어보지 않았다.
처음에 입으려다가 마음을 돌렸고.
결국 나는 물어봤다.
“저기, 손님.”
“네!”
“빨강옷은 안 입어보시나요?”
“빨강옷은 마지막에 입어볼 거에요! 제일제일 예쁘니까……”
아껴놓는 거였구나.
그 뒤에도 피팅이 이어지고 어느새 옷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대망의 빨간 옷이었다.
아키라를 연상케 하는 삐까뻔쩍한 빨간색 자켓.
“……”
눈빛부터 달랐다.
빨간 옷을 보는 하얀이의 눈이 별똥별처럼 반짝였다.
“후아아……”
생긋 웃으며 연두가 자켓을 집어 들었다.
“그럼.. 입어볼까요?”
“네에..”
홀린 듯 양팔을 들어 올리는 하얀이.
웃음이 나왔다.
마치 옷을 입혀주길 바라는 아기 병아리를 보는 기분이었으니까.
스윽.
연두 도움을 받아 조심스레 팔을 끼워 넣는다.
그 모습을 보니 옷을 거칠게 대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아껴줄 거 같다.
“.. 다 됐어요.”
한 걸음 물러서는 연두.
자켓을 입은 하얀이가 고개를 내려 왼쪽을 한 번, 오른쪽을 한 번 바라본다.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는 걸까.
이윽고 살며시 벌어지는 입.
“.. 예뻐요.”
연두가 말을 받았다.
“마음에 들어요?”
“네..”
“얼마큼요?”
“하늘만큼 땅만큼… 비툴즈 백 개보다도 더!”
잘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얀이가 할 수 있는 최상급 표현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