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45)
945화. 비툴즈 토크
거래는 무사히 성사됐다.
“엄마!”
“응, 하얀아.”
“이거 입고 갈래! 입고 가고 싶어!”
엄청 좋아하네.
하얀이가 입고 있는 옷은 빨간색 자켓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하다.
연두가 입었던 옷을 입고서 저렇게 좋아하는 하얀이의 모습을 보니.
“흐흥, 그래.”
“아싸!”
기뻐서 폴짝폴짝 뛰는 하얀이.
옷에 대한 값을 지불하며 정미연은 작은 상자를 함께 건넸다.
물론 대상은 연두였다.
“이건 작은 선물이에요.”
“서, 선물이요?”
“네. 예쁜 옷을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줘서 감사의 의미로 주는 선물?”
망설이는 연두.
이걸 받아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서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저렴한 건 맞지만 그건 우리가 정한 가격이니까.
‘선물을 줄 이유는 없지.’
상대측에서 선물을 건넬 이유는 없었다.
즉, 순전한 호의라는 거다.
그때였다.
슥.
국보급 인터셉트였다.
기뻐서 요리조리 뛰어다니던 하얀이가 엄마 손에서 상자를 가로챈 거다.
“하, 하얀아!”
정미연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상자를 가져간 하얀이는 싱긋 웃더니 연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언니 선물!”
연두의 손바닥에 올려놨다.
“하얀아..”
“받아도 돼! 연두 언니는 예쁘고 좋은 사람이니까!”
아이 눈은 정확하다고 했던가.
연두도 아이긴 하지만 하얀이는 그보다 더 어린아이였다.
그러니 정확하겠지.
더 이상 연두도 사양하지 않았다.
“고마워, 하얀아..!”
뒤이어 연두가 물었다.
“상자 열어봐도 돼?”
“응!”
“그럼……”
연두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을 보고서 자그맣게 벌어지는 입.
뭐가 들어있길래 그러지?
툭.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탐이 나서는 아니었다.
연두 반응을 보니 혹여나 받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선물은 아닐지 염려가 돼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들어오는 상자 내부.
“.. 흣.”
절로 웃음이 나왔다.
상자 속에는 각종 간식거리가 들어있었다.
사탕, 젤리, 비툴즈……
비툴즈 하니까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비툴즈 백 개보다도 더!’
하얀이가 입 밖에 뱉었던 최상급 표현.
그만큼 비툴즈를 좋아한다는 거겠지.
아마 하얀이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커다란 선물일 거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었다.
‘소시지가 있잖아.’
그냥 소시지도 아니고 천하대장 소시지였다.
알다시피 연두의 최애 간식이다.
05시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연두가 가장 좋아하는 천하대장 소시지.
어떻게 알고 이걸 넣으신 거지.
그런 의문이 떠오르자마자 정미연이 미소와 함께 입을 뗐다.
“원래 저는 당근마켓에서 거래하는 분들한테 간소한 선물을 드리거든요.”
그렇구나.
우리만 특별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렇겠지.
‘전혀 몰랐던 표정이었고.’
처음 봤을 때 우리를 조금도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여기 있을 게 아니라 할리우드에 진출해야 한다.
설사 알았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가 뭐라고 거래항목 외에 선물을 준비한단 말인가.
“하얀이랑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보고 알았거든요. 누렁이네 옷가게의 상점 주인은 하얀이보다 조금 더 언니일 거라고.”
“아.”
납득이 갔다.
대화 내용과 상점 소개글을 보면 그 정도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우리 하얀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넣었어요. 소시지를 마지막으로 넣었는데……”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넣길 정말 잘했네요.”
연두가 소시지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의문이 풀렸다.
그나저나 맞춤 선물이었구나.
‘.. 이건가.’
어쩌면 매너온도 99도의 비결은 이런 섬세함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선물을 준비하더라도 상대의 특징을 파악해서 내용물을 선정하는데 어떻게 감동을 안 받겠는가.
지금 연두 표정이 그 실례였다.
“.. 고맙습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잔뜩 감동받은 표정이다.
단지 소시지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았다.
방금 들은 이야기가 꽤나 심금을 울린 게 아닐까.
“다행이네요.”
훈훈한 분위기.
그런 와중에 머뭇거리며 연두 옆을 서성이는 하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레 입을 뗀다.
“여, 연두 언니..”
“응, 하얀아!”
꼴깍.
침을 한 번 삼키더니 말한다.
“나 비툴즈 한 개만 주면 안 돼? 당근맛 말고 노란색으로……”
“푸흣!”
역시 애기는 애기였다.
***
하얀이의 부탁에 연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비툴즈를 개봉했다.
쿨함 그 자체였다.
귀여운 동생 앞에서 연두는 간식을 아끼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정미연이 말했다.
“하얀아. 언니 주려고 가져온 건데 네가 먹으면 어떡해.”
“많이 안 먹을 거야! 레몬맛 하나만 먹을 거야!”
“으휴..”
아까 말한 노란색이 레몬맛인 모양이다.
생긋 웃으며 연두는 말했다.
“괜찮아여!”
그러고서 손바닥에 비툴즈를 탈탈 떨어트린다.
비툴즈 좀 먹어본 솜씨였다.
“여기, 하얀아.”
깜짝 놀란 하얀이.
연두가 건넨 건 노란색 하나가 아니었다.
그 뒤에 연두를 보는 하얀이의 눈이 한층 더 반짝인다.
호감도가 급상승한 모양이다.
“언니. 언니는 무슨 맛 제일 좋아해?”
연두도 비툴즈 한 개를 입 안에 넣었다.
“언니는.. 연두색!”
“언니 이름이 연두라서?”
“응! 그리고 맛있기도 하고……”
“맞아! 연두색은 사과맛이야!”
“하얀이는 노란색이 제일 좋아?”
“응, 레몬맛! 하얀이는 당근맛 빼고 다 좋아해! 사과맛도, 포도맛도.”
그와 동시에 하얀이가 비툴즈 껍질을 가리킨다.
꽤나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여기 오렌지맛이라 그러는데 뻥이야!”
“뻥이라구?”
“응! 당근맛이야.. 그런데 당근 먹게 하려고 오렌지맛이라구 뻥 치는 거야.”
순도 100% 하얀이 피셜이니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주황색 좋아한다.
그리고 오렌지맛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하얀이는 자신의 생각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고 있는 거 같았다.
연두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가 당근 먹게 하려고 당근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거랑 똑같아..”
미안한데 다 들려, 하얀아.
그나저나 신기하다.
비툴즈 맛 하나로 저렇게나 토크를 이어갈 수 있다니.
얼마나 비툴즈에 진심인 걸까.
길었던 비툴즈 토크가 끝나자 이번에는 연두가 말한다.
“언니는.. 소시지를 제일 좋아해……”
“진짜?”
“응. 슬픈 마음이 들 때도 소시지를 입에 넣으면 슬픈 기분이 사라져. 신기하지!”
“비툴즈 레몬맛 같은 거구나..”
“.. 응!”
이 두 아이.
공감대 형성이 대단하다.
이번에는 연두가 귓속말을 시전한다.
“그런데 아빠는 하루에 두 개밖에 못 먹게 해.”
“에게. 두 개?”
“응.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구.. 네 개는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잠깐만.
갑자기 이렇게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고, 연두야?
이윽고 나를 바라보는 하얀이.
“……”
마치 그런 표정이다.
‘이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하는 눈빛.
마음이 아프다.
‘항상 이런 거 같네.’
시은이도 유리도 그렇고.
어쩌면 나는 첫인상에 한해서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운명이 아닐까.
괜히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도 입을 열었다.
“저희도 대화 좀 나눌까요? 사실 궁금한 게 있었거든요.”
대상은 하얀이 어머니 정미연이었다.
“어머, 저한테요?”
“네.”
나는 세상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티가 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랑 연두는 이번이 당근마켓 첫 거래거든요.”
“네, 많이 티 났어요.”
“……”
잠깐만.
그 정도로 아마추어 같았나?
나름 첫 거래 치고는 선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내 표정을 본 정미연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흐흣, 장난이에요. 당연히 알 수밖에 없죠. 거래 내역은 하나도 없고 매너온도도 36.5도인데.”
“아.”
맞아, 그랬지.
내가 상대방 상점을 볼 수 있듯이 상대도 우리 상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잠깐 잊고 있었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네요. 아무튼 제가 궁금한 점은……”
아주 짧게 서론을 깔았다.
“이번에 당근마켓 상점을 만들면서 연두랑 목표를 정했거든요.”
“호오, 어떤 목표인가요?”
“모두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훌륭한 상점으로 거듭나자.”
귀여운 후배 정도로 보인 걸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멋진 목표네요.”
“그래서 말인데 매너온도가 99도시잖아요. 혹시 그 비결이 있을까요?”
“비결이라……”
고민하는 표정.
아차 싶어서 입을 뗐다.
“혹시 곤란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이런 걸 그냥 알려달라는 것도 염치없는……”
그도 그럴 게 0.01%다.
그 비결을 알려달라는 건 속된 말로 날먹심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고민한 건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조금 곤란해서예요.”
“곤란하다구요?”
“네. 왜냐하면.. 비결이랄 게 없거든요.”
표정을 보니 정말인 거 같았다.
비결이 없다니.
“상품이 좋아야 된다, 같은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구요. 게다가 이미 ‘누렁이네 옷가게’의 상품 퀄리티는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최상이라는 걸.”
괜히 뿌듯해지네.
아니, 잠깐만. 지금 뿌듯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만의 비결을 굳이 말하라면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는 건데, 그건 사실 필수도 아닐뿐더러 비결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왜죠?”
“매너온도를 올리려고 준비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처음 상점을 개설했을 때는 매너온도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그 뒤에도 꽤 오랫동안 몰랐구요.”
그렇다.
매너온도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한 게 아니니 비결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얘기했다.
“그러니까 비결이라기보다 첨언을 드리자면…… 지금처럼만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지금처럼요?”
“네. 제가 보기에 누렁이네 옷가게는 지금도 너무 멋진 상점이거든요. 그러니까 훌륭한 상점으로 거듭나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거래에 임하는 거죠. 이번에 진상손님 대처법도 멋지게 보여주셨고요.”
“진상손님…… 아.”
나도 모르게 하얀이를 향해 눈이 돌아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행히 하얀이는 연두와 꿀잼 토크 중이었다.
“방금 제가 눈이 돌아간 건 하얀이가 진상손님이라 생각해서는 절대 아니구요.”
구차한 변명이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히 알 거 같았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해도 된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하자.
꼭 연두에게도 전해줘야겠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판매항목을 좀 더 늘려보셔도 좋은 거 같아요.”
“판매항목을요?”
“네. 생각보다 당근마켓에 사고팔 물건은 무궁무진하거든요. 조금만 찾아보면 엄청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실질적인 조언이었다.
역시 괜히 매너온도 99도의 선배님이 아니다.
“감사합니다.”
뒤이어 우리는 연락처도 교환했다.
연두와 하얀이의 인연을 이어가는 측면에서.
슬슬 헤어질 시간이었다.
“연두 언니..”
그 사이 많이 친해진 건지 하얀이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하얀아……”
“또 만나. 그때는 같이 놀자.”
“응!”
기분이 좋다.
귀여운 연두에게 귀여운 동생이 생긴 거 같아서.
그런데……
탓. 타닷.
발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에 자연스레 입 밖에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 엥?”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두 명의 아이가 시간 차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갔으니까.
이어지는 거친 숨소리.
“힘내! 할 수 있어!”
“헥.. 헤엑……”
월이와 예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