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49)
949화. 선물공세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연두의 외침은 선화초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주위 아이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멀리 서 있던 담임 김수희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그녀로서는 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시은이 아빠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으니까.
순식간이었다.
연두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든 건.
“나쁜 사람이다아!!”
연두를 구하기 위해 모두가 뛰어들었다.
친구들부터 언니 오빠들, 그리고 주위에 있던 학부모까지도.
민우도 엄마를 내팽개치고 행렬에 동참했다.
“……”
피디 김성목은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촬영하던 조연출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연두를 설득하는 장면을 담으러 왔는데, 단번에 유괴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으니까.
‘저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려다가 가까스로 삼켰다.
눈앞의 유괴범(?)이 자신의 상사라는 걸 깨닫고.
아니, 애초에 유괴범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유괴범같이 행동해서 조연출인 그조차 혼동이 왔을 뿐이지.
“누구시죠?”
“연두한테 뭐 하려고 하신 거예요?”
“나쁜 아저씨다아!!”
난리가 났다.
차라리 카메라를 잔뜩 대동해서 나타났으면 의심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왜냐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답시고 조연출 하나만 데려왔으니까.
그야말로 뇌정지가 와 버렸다.
조연출과 피디로 일하며 수없이 많은 돌발상황에 처했지만, 30년이 넘는 일생 동안에 유괴범으로 몰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아, 아니.. 저는……”
제정신이 아닌 상황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언가가 집혔다.
슥.
그의 손에 딸려 나온 물건을 보고 조연출 최시경은 경악했다.
‘아니, 저걸 지금 왜……’
자연히 떠올랐다.
연두를 만나러 가기 전에 피디님이 했던 말이.
‘최피디. 이게 뭔 줄 알아?’
소시지를 흔들며 피디님은 말했다.
‘천하대장 소시지야.’
‘그렇군요. 그런데 갑자기 소시지는 왜요?’
‘이게 연두가 제일 좋아하는 거거든. 연두한테 좋은 첫인상을 남기려면 필수인 거지. 으하하.’
‘아!’
그걸 보고 감탄했다.
소소한 선물도 적절히 활용하면 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취소다.
지금 건 피디님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내려갈 정도로 커다란 실책이었다.
왜냐고?
‘유괴범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야.’
그런 상황 속에서 연두가 가장 좋아하는 소시지를 꺼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가.
간식을 꺼내며 아이들을 유혹하는 건 악질 유괴범의 전형적인 면모였다.
의심이 대폭 커지는 요소라는 뜻이다.
스윽.
최시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소시지를 바라보다가 뒤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피디님의 얼굴을 보고.
아니, 왜 저를 보세요?
이건 같이 죽자는 거 아니냐고요.
“소시지? 그건 왜 가져온 거죠?”
“뒤에는 카메라로 뭘 찍으시는 거예요?”
“뭐라고 얘기 좀 해 보시죠.”
“나쁜 아저씨다아!!”
시선은 더 날카로워졌다.
우스운 건 그런 와중에도 조연출은 자신의 몫을 다했다는 거다.
한순간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이 떨리긴 했지만.
“뭐,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제 말 좀 들어보시죠.”
뒤에서 조연출이 속삭였다.
“피디님. 소시지는 좀 집어놓고 말씀하세요……”
정말이지 끝까지 발목을 잡는 소시지였다.
***
다시 주머니에 소시지를 넣고서 김성목은 말했다.
“제가 누군지 먼저 소개해야 할 거 같네요.”
“…… 나쁜 아저씨.”
민우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하, 아저씨는 나쁜 아저씨가 아니란다.”
다시 김성목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다행히 이번에 나온 건 소시지가 아닌 명함이었다.
김성목은 그 명함을 바로 앞에 있는 어른에게 건넸다.
5반 담임 김수희였다.
조심스레 받아든 그녀가 명함을 바라봤다.
“예능국 피디 김성목……”
조금 놀란 듯 김수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피디님이시라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제 행동이 연두한테 오해를 산 모양입니다. 연두가 참 잘 배웠네요. 하하하!”
“……”
호탕하게 웃어 보인 김성목은 앞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고.
여전히 여기저기서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 아!”
그제야 떠올렸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잠깐만요.”
그는 그 자리에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주원이었다.
통화연결음이 반복될수록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연두가 흠칫했다.
한마디만 들어도 아빠 목소리는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아이고, 연두 아버님! 저 김성목 피디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피디님!”
주원은 반갑게 인사하며 말했다.
“연두는 만나셨나요?”
이번에는 사람들이 모두 움찔했다.
“네,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이슈가 있어서요.”
“이슈요?”
“아니, 저기.. 그러니까……”
막상 상황을 설명하려니 헛웃음이 나왔다.
“제가 연두를 데려가려는 나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어서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초록님한테 전화를 드렸습니다.”
차마 유괴범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타협한 게 민우가 계속 외쳤던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요? 헉..”
주원도 적잖게 놀란 거 같았다.
바로 그때 사람들 사이로 연두가 걸어 나왔다.
“아빠……”
“연두야!”
“연두 잘못했어여? 처음 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해서……”
울먹이는 목소리.
그럴 만도 했다. 연두 입장에서는 정말 나쁜 아저씨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소리쳤던 거니까.
아빠 목소리를 듣고 긴장이 풀린 거다.
핸드폰에는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야, 연두야! 잘한 거야!”
김성목도 말을 더했다.
“맞아, 연두야! 아저씨 잘못이야!”
“제송해여……”
“죄송은 무슨. 나쁜 사람같이 생긴 아저씨 잘못이지.”
그 말에 연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쁜 사람처럼 안 생겼어여!”
“그럼?”
“나쁜 사람 같았어요.. 아빠랑 아는 사이라고.. 저쪽으로 같이 가자고……”
“.. 켁.”
이렇게 들으니 진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따로 없다.
어쩌자고 그런 멘트를 한 번도 아니고 연속으로 뱉은 거지.
뒤이어 김수희가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님.”
“제가 선생님께라도 먼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제야 오해가 풀린 건지 사람들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진짜 피디님이셨구나.”
“중간에 소시지 꺼낼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촬영하러 오신 건가 봐요. 궁금하다……”
“나쁜 아저씨 아니었다!!”
주원은 연두에게도 따로 말했다.
“연두야.”
“네에.”
“정말 잘했어. 다음에도 꼭 오늘처럼 해야 해. 그런데 그 아저씨는 착한 피디님이라 따라가도 돼.”
“그럼.. 아빠는요?”
“아빠는 연두가 그 아저씨랑 얘기하고 나면 바로 데리러 갈게. 알겠지?”
“알겠어요……”
오해가 풀렸다.
그제야 조연출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쇠고랑 차는 줄 알았네.
“그럼 갈까, 연두야?”
“.. 네!”
여정의 시작이었다.
***
연두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 안에도 카메라가 있었지만 일상이다 보니 연두는 딱히 어색해하지 않았다.
“어디 가는 거에여?”
“아직은 비밀입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
“네에..”
로봇같은 말투를 구사하면서도 조연출은 생각했다.
정말 예쁘구나 하고.
한편 동료들은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 잘하고 있겠지.’
김성목 피디 나름의 작전이었다.
한 명 한 명 설득하기보다는 연시레지유월 여섯 명을 한 자리에 모은다.
그리고 얘기하는 거다.
아이들 상대로 너무한다 싶을 수도 있지만 집단심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혼자라면 망설여질지 몰라도 친구들이 출연을 결심하면 따라가게 되는 법이니까.
‘몇 가지 장치도 있지.’
설득을 도울 몇 가지 장치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까는 살짝 계획에서 어긋나긴 했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완벽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 내릴까요?”
연두가 차에서 내렸다.
김성목 피디는 준비한 장소로 연두를 데려갔다.
“우아……”
이번에는 연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방에 카메라와 사람들이 잔뜩 있고,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도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감출 수 없는 미소였다.
“자, 연두양.”
“네.”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연두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톡.
들려오는 인기척.
고개를 돌린 연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시은아!”
“여, 연두야!”
서로 예상 못 한 얼굴이었다.
그렇다.
시은이도 연두와 비슷한 상황을 거쳐서 이 장소로 온 거다.
하굣길이었다.
엄마와 손을 잡고 가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시은씨를 데려가도 될까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세연은 싱긋 미소를 띠며 순순히 시은이를 내어줬다.
“다녀와, 시은아.”
“어, 엄마?”
“나쁜 분들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구.”
그때부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쁜 사람이라면 엄마가 이렇게 자신을 보낼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탐정노트에 한 줄을 적긴 했지만.
-이 사람들은 누굴까?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설마 그렇게 온 자리에 연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다음으로 온 건 월이였다.
역시 엄마와 함께 하교하는 중이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위험합니다.’
준비해 온 그 한 마디에 월이는 바로 차에 탑승했다.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레나씨.’
‘.. 네?’
‘혹시 꿀떡 중에서도 엄청 맛있는 꿀떡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레나는 엄마 손을 놓았다.
월이와 레나의 섭외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개안나! 어디 안 다쳤나!”
“얘, 얘들아. 왜 여기 잇서?”
두리번거리더니 레나는 말했다.
“.. 꿀떡은?”
이제 네 명이 됐다.
멤버를 본 시은이는 생각했다. 어딘가 익숙한 멤버 조합이라고.
그렇다면……
‘.. 지우랑 유리?’
부산 여행 때 멤버라면 두 명이 더 와야 했다.
시은이 예상은 들어맞았다.
‘지우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우도 역시 엄마와 함께 있었다.
‘저, 저는……’
당연히 보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도 그렇지만 오늘 해야 할 숙제까지 남아있었으니까.
‘다녀오렴.’
‘으, 응?’
‘숙제는 다녀와서 해도 되니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마지막은 유리였다.
‘왜 제가 따라가야 하는데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리.
그러나 유리를 호락호락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있었다.
‘유리씨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유리씨 없는 단비음악대를 단비음악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리가 차에 탑승했다.
마지막으로 유리가 들어오며 커다란 방 안에는 여섯 명이 모였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나마 이 상황 자체에 대해 의심하는 건 시은이와 지우 정도였다.
-왜 우리를 모은 걸까?
추가되는 탐정노트.
지우도 소심하게나마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출제자의 의도에 대해.
어떤 문제든 ‘x’, 아니 콧구멍이 숨어있으니까.
지능을 담당하는 두 아이의 의심을 거두게 만드는 게 피디 김성목의 최대 과제였다.
“안녕하세요. 다들 저랑은 초면이죠?”
“네.”
최대한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김성목 피디라고 합니다.”
“피디요?”
“네. 여러분이 TV에서 보는 예능을 만드는 사람이죠.”
명함까지 건네며 신빙성을 높였다.
여덟 살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거치고는 주도면밀한 편이었다.
“제가 여섯 분을 한 자리에 모은 이유가 궁금하실 텐데요. 그 전에 처음 보는 만큼, 여러분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여섯 개의 상자를 연시레지유월 각자에게 건넸다.
가장 먼저 상자를 열어본 건 시은이였다.
“……!”
내용물을 본 시은이가 얼어붙었다.
“이건……”
시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소설.
셜록 홈즈 완전판과, 홈즈가 쓰는 것과 같은 디자인의 탐정노트,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각종 피규어가 들어있었다.
놀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선물이었다.
“.. 훗.”
씩 올라가는 김성목 피디의 입꼬리.
그렇다.
아이들의 설득을 위해 첫 번째로 그가 마련한 장치는 무지성 맞춤 선물 공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