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55)
955화. 트레일러
“왜.. 왜 나물이 맛있지?”
예은이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만도 했다.
왜냐고?
지금까지 한 번도 급식이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
고기반찬도 억지로 먹는 수준이었다.
오물. 오물.
착각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나물을 집어 먹어 봤지만 역시나 맛있었다.
혀를 타고 깊숙이 느껴지는 감칠맛.
그게 들기름 향이라는 걸 알지는 못했지만, 예은이는 처음으로 나물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었다.
이 나물이 특별한 걸까.
콕.
옆에 있는 떡갈비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서 먹어봤다.
사실상 오늘 급식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메뉴였다.
다시 한번 예은이가 얼어붙었다.
“……!”
너무 맛있었다.
홀린 듯이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완전히 밥도둑이었다.
후릅.
미역국을 떠먹고 나서는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다.
나물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오늘 나온 모든 메뉴가 특별했다.
나물부터 시작해서 떡갈비, 미역국, 그리고 평소라면 손도 안 대는 김치까지.
그런데 귓가에 들어왔다.
“우엑.. 맛없어……”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나물을 입에 넣고 질색하고 있는 승아였다.
승아는 편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편식쟁이였다.
5반에서는 예은이로 인해 둘째에 머무르긴 했지만.
‘.. 맛이, 없어?’
예은이는 혼동을 느꼈다.
오늘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승아는 늘 그렇듯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으니까.
그렇다.
사실 오늘 급식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급식이 아니라 예은이였다.
비록 그 사실을 예은이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 왜 맛있지?’
그 의문은 잠시 제쳐두고 예은이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은이는 먹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단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뿐이다.
식욕을 관장하는 가장 커다란 부분은 신체활동이다.
일례로 마른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몸이 불어나는 경우가 있다.
부작용으로는 건돼(건강한 돼지)가 되는 거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식욕이 운동량을 앞서가며 생기는 부작용이다.
그런 부작용을 제외하면 긍정적인 요소였다.
대체로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식사로 채워야 하는 영양소가 부족한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
예은이의 경우도 그랬다.
‘좀 더 먹어, 예은아. 응?’
예은이 어머니는 늘 걱정했다.
또래에 비해 마른 체중인 것도, 한두 숟가락 뜨고 식사를 그만두는 것도.
하지만 몰랐다.
그게 신체활동의 부재 때문이라는 사실을.
“배불러……”
예은이는 처음으로 느꼈다.
급식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다는 감각을.
평소의 두 배에 해당하는 양이었지만 예은이의 급식판은 텅 비어있었다.
그걸 발견한 건 연두였다.
“예, 예은아. 급식 다 먹은 거야..?”
놀란 연두의 표정.
그럴 만도 했다.
짝꿍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그 장면은 김수희의 눈에도 들어왔다.
“어머!”
말끔히 비운 급식판을 바라보며 김수희가 말했다.
“예은이가 다 먹은 거니?”
막상 예은이는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너무 좋은데? 이제야 우리 예은이가 식욕이 좀 오르나 보네.”
“식욕이요?”
“응. 식욕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구야. 밥이 맛있게 느껴지고 그런 거지.”
옆에서 연두가 입을 뗐다.
“선생님.”
“응, 연두야.”
“식욕은 왜 오르는 거에요..?”
이번에도 질문왕 연두의 면모가 발동했다.
예은이도 귀를 기울였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미뤄두긴 했으나 나물을 먹을 때부터 들었던 의문이니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 그런데 보통 식욕이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잠깐 생각한 김수희는 정석에 가까운 답변을 건넸다.
“몸이 건강해질 때 식욕이 오르지.”
“몸이 건강해질 때요..?”
“응. 반대로 몸이 엄청 아플 때를 생각해보렴. 그럴 때는 식욕이 뚝 떨어져서 아무것도 먹기 싫어지지. 그런 적 있지 않니?”
아팠던 때를 떠올리고서 연두가 말했다.
“맞아여.. 소시지도 먹기 싫었어요……”
“흐흥, 맞아. 그러니까 보통 운동을 열심히 하면 식욕이 오르지. 몸이 건강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이니까.”
예은이의 어깨가 들썩였다.
김수희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예은이 요즘 운동했니?”
연두가 대신 대답했다.
“맞아여! 예은이 월이랑 나가서 달리기 많이 해요..!”
“역시 그랬구나!”
답을 알았다.
그럼에도 예은이는 혼란스러웠다.
밥이 맛있게 느껴진 이유가 월이와 함께 한 운동 때문이었다니.
그런 이유라면……
‘운동을 안 하면.. 다시 맛이 없어진다는 거잖아……’
그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제 절대 운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먹는 즐거움을.
문제는 단칼에 포기하기에는 앞선 식사가 너무 행복했다는 거다.
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엄청난 갈등.
“윽. 으으윽……!”
“괘, 괜찮니, 예은아?”
밥이 맛있어져서 곤란한 예은이였다.
***
“촬영 스케줄 픽스됐습니다, 피디님!”
연시레지유월.
방송국 내부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촬영 스케줄은 간단하다.
시작 지점만 정하고 나면 끝이었다.
‘주말 전부니까.’
오도이촌.
오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이틀은 시골에서 힐링한다.
촬영일이 바로 그 이틀이었다.
그러니 최소 몇 주간의 주말 전체가 ‘연시레지유월’의 촬영일이었다.
“고생 많았어.”
“넵. 그리고 촬영지가 될 집 후보도 전부 추렸습니다. 물론 조건에 맞는 집으로요.”
“오, 정말?”
“네. 직접 보러 가실 거죠?”
“당연하지!”
메인 피디가 촬영지를 보러 가지 않는 게 말이 되겠는가.
이동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서는 안 되니 너무 먼 곳은 후보에서 배제했다.
그렇게 남은 후보는 몇 군데였다.
“언제 보러 갈 수 있어?”
“아무 때나 보러 가셔도 됩니다.”
“그럼 지금 당장 가자고!”
“지, 지금 당장이요?”
“그래. 미룰 거 뭐 있어.”
넘치는 열정.
그렇게 김성목은 곧장 시골행 차량에 올랐다.
연시레지유월 하우스의 후보가 될 집을 차례로 들러서 관찰했다.
“흠..”
“아니야, 아니야.”
“이 느낌이 아닌데……”
조금씩 아쉬운 집.
이제 남은 집은 마지막 하나였다.
언덕 구조로 된 길을 지나서 들어가면 나오는 집이었다.
“여기도 허탕이면 어쩌지……”
깊이 들어갈수록 마음은 초조해졌다.
여기마저 생각한 느낌이 아니라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막혀버리고 마니까.
집이 주 촬영지이자 핵심이다 보니 장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 쌓이면 장난 아니겠는데.”
산골이라 그런지 경관이 무척 예뻤다.
흠뻑 빠져서 창밖을 바라보며 달리는데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도착입니다.”
“잠깐만!”
김성목이 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자.”
“아, 네.”
영문은 모르겠지만 조연출은 곧이곧대로 따랐다.
뜻이 있겠지 하고.
그렇게 행군이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건 컨테이너 박스였다.
“여기는 뭐야?”
“컨테이너 박스인데 아무도 안 쓰는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오.. 주위에는 또 뭐가 있는지 알아?”
“주민들이 있죠. 여기도 나름 거주공간이니까요. 물론 집 사이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어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을 거예요.”
정보 조사 하나만큼은 확실한 조연출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김성목이 발을 옮겼다.
그때였다.
“왈!”
“으억!”
놀라서 자빠질 뻔했다.
옆을 보니 울타리 안에 있는 개가 미친 듯이 짖고 있었다.
“와왈! 왈! 왈왈!”
옆에서 조연출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 주민분들이 개를 많이 키우는 거로 알고 있어요.”
“호오……”
왜일까.
그 말을 들은 김성목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오케이, 가자.”
얼마나 지났을까.
조연출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입니다!”
“오오……”
절로 나오는 감탄사.
뾰족지붕과 굴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집이었다.
창문도 커다랗게 나 있다.
무엇보다도 외벽이 온통 새하얀 게 특징이었다.
“역시 눈 오면 장난이 아니겠어..”
감탄 섞인 표정으로 김성목이 걸어갔다.
“문 열어도 되는 거지?”
“네, 지금 완전히 비어있거든요.”
그 말에 김성목이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눈에 들어오는 내부.
그대로 멈춰선 김성목이 목소리를 냈다.
“.. 여기야.”
“네?”
“여기야.. 여기라고! 으하하! 으하하하!”
실성한 듯이 웃는 김성목.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조연출의 눈에는 다소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 정도 돼야 프로그램 맡는 건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정해졌다.
메인 촬영지가 될 연시레지유월 하우스가.
***
피디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꽤나 통화가 길긴 했지만 핵심이 되는 내용은 하나였다.
촬영 스케줄이 정해졌다는 거다.
그런데 그 촬영 스케줄이라는 게 생각보다 모호했다.
‘눈이 쌓인 주말에 촬영을 시작할 겁니다.’
일시를 딱 정해두는 게 아니라 눈이 쌓인 주말이라니.
원래 이렇게 러프하게 잡나 싶을 정도였다.
뭐, 곧 겨울이니 조만간일 거 같긴 하지만.
‘눈이 안 오면 어떡하죠?’
‘그런 변수는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만, 반드시 눈이 와야 합니다. 반드시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피디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괴짜인 게 분명하다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까 하는 마음이었다.
‘존중해 줘야지.’
그게 내 모토였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전문가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최소 나보다는 훨씬 더 오랜 시간 그 일에 몸담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피디님에게 내가 훈수를 두는 건, 이은경에게 피아노로 훈수를 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눈이 쌓이는 주말이라……’
낭만적이긴 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명확했다.
창밖을 봤는데 소복하게 눈이 내리면, 그때가 촬영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테니.
아, 참.
그리고 핵심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초록님.’
‘네, 피디님.’
‘통화가 끝나면 제가 영상을 하나 보내드릴 텐데요. 10분이 좀 안 되는 짧은 영상입니다.’
그는 덧붙였다.
‘굳이 말하면 트레일러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트레일러 말인가요.’
‘네.’
잘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예고편과 비슷하다.
짧은 동영상 클립으로 본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간략하게나마 스토리를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트레이너는 총 두 편으로 제작 예정입니다. 지금은 1편이 완성된 상태고요. 이 영상은 우선 저희 방송국의 공식 채널과 유투브 채널에 올라갈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혹시 영상을 보고 난 뒤에 괜찮으시다면 연두튜브에서 영상을 올려주실 수 있나요?’
납득이 가는 부탁이었다.
연시레지유월이 등장하는 예능인 만큼 충분히 연두튜브의 콘텐츠도 될 수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난 뒤에 통화가 끝났다.
바로 나는 피디님이 보내온 영상을 재생했다.
“이건……”
아이들을 섭외하는 영상이었다.
“푸핫!”
전혀 몰랐다.
아이들의 섭외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을 거라고는.
특히나 마지막에 연두가 나왔을 때는 웃느라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누구 딸인지 모르겠지만 교육을 아주 야무지게 잘 시켰다.
사실은 안다.
그래, 내 딸이다.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
의문이 다 풀렸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하겠냐고.
그와 별개로 ‘트레일러’로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연시레지유월 각각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면서, 재미까지 완벽하게 충족했으니까.
“후우……”
간신히 웃음을 멈춘 뒤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영상을 올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말해줘야지.’
아무래도 우리 두 편집자에게 첫 휴가를 줄 때가 온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