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서걱
“다 팔렸습니다!!”
굳이 주어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 상황에 뭐가 팔린 건지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옷이겠지.’
정확히 말하면 ‘이든’의 옷이 팔린 게 분명했다.
사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조금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닐까 하고.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아니, 이건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라고 봐야겠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오준석의 말이 이어졌다.
“믿을 수가 없네요. 옷들이 전부 매진돼 버렸습니다..”
이제 보니 전화를 받았을 때 목소리가 떨린 건 놀라서였던 모양이다.
지금도 목소리에서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적자가 날 정도로 안 팔리던 옷이, 단 두 시간 만에 전부 팔렸다는 거니까.
그런 상황에 감정이 벅차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소개영상을 올리면 쇼핑몰에 관심이 쏠릴 건 예상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효과가 바로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옷이 얼마나 팔릴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
예쁜 옷을 판매하는 쇼핑몰인데도 빛을 못 보는 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 전부 주원 씨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좋은 쇼핑몰을 구독자들에게 소개한 것뿐인데요. 가장 중요한 옷이 예쁘지 않았다면 안 팔렸을 겁니다.”
빈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한 건 ‘이든’의 소개영상을 올린 것뿐이니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사이트 리모델링에 참여하긴 했구나.
그렇다고 해도 쇼핑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옷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소개하기 전부터.’
이든의 원피스는 구독자들 사이에 계속 예쁘다고 언급되고 있었다.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묻는 댓글도 엄청나게 많았고.
즉,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떡상할 쇼핑몰이었다는 뜻이다.
결국은 오준석이 만드는 옷이 예뻤기에 결실을 맺은 셈이었다.
‘어?’
그런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놀란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오준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아버님. 옷이 다 매진됐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이거 괜찮은 건가?
아직 소개영상을 올린 지 두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상황인데.
그럼 시간이 흐를수록 ‘이든’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질 테고.
‘그런데 벌써 매진됐다는 건.’
당장 사람들에게 팔 옷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간단히 말하면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옷을 사지 못하는 불만은 자연히 연두튜브 댓글창에 쏟아질 테고.
해결책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해당 사안을 오준석에게 이야기했다.
“허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이 되는데 걱정하지 말라니.
이 말을 들은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답답함이 올라왔다.
오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흥분해서 그런지 제가 헷갈리게 말했나 보네요. 옷이 전부 팔린 건 아닙니다.”
“네? 분명히 전부 매진됐다고……”
“그게.. 연두가 입은 옷들이 전부 매진됐다는 말이었습니다.”
“아!”
이 아저씨. 옷 앞에 수식어를 떼어놓고 말한 거였구나.
오늘 영상을 제외하고 연두튜브에 나온 옷이라면 총 세 개의 옷이었다.
하얀 셔츠와 청색 멜빵 치마. 그리고 연두색 원피스.
‘그 옷들이 매진됐다는 거였어.’
착각했다는 걸 깨닫고 나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까지 모든 옷이 매진됐다고 생각하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연두튜브의 파급력을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고.
그나마 그걸 티 내지는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행이네요. 제가 착각을 했군요.”
“아뇨, 저라도 헷갈렸을 거 같으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네?”
“이제 한여름인데 봄 원피스가 다 나가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거든요.”
“봄 원피스라면 연두색 원피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하긴, 7월에 봄 원피스가 다 팔렸다는 사실이 재미있긴 했다.
이건 진짜 연두 파워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네.
오준석과 나는 한참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재고가 쌓여있던 게 다행이었어.’
얘기를 들으니 매진된 옷들 말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거 같았다.
그나마 쌓여있는 재고가 많아서 버티고 있긴 하지만.
통화가 끝나갈 즈음, 나는 넌지시 말했다.
“당분간 엄청 바쁘시겠네요.”
“허허, 그럴 거 같네요.”
“그럼 앞으로도 예쁜 옷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연두도 입을 옷인데 당연히 예쁘게 만들어야죠.”
작업실에서 오준석이 한 말이 있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옷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실제로 그는 적자일 때도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반대로 엄청나게 잘 되더라도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예쁜 옷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이든’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옷들이.
***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엄청난 수의 옷이 팔렸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더 궁금해진 상태였다.
소개영상에 대한 구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와, 연두 세젤예다 진짜..
-연두는 진짜 어떤 옷을 입어도 이쁘네 ㅋㅋㅋ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오늘 연두튜브 처음 봤다.. 지금까지 몰랐던 나 자신이 미치도록 원망스럽다…
-님들아. 나 어떡함? 보는 내내 입꼬리가 안 내려가더니 다 본 지금도 안 내려감… ㅠ
-연두 진짜 러블리 그 자체네… 연블리… ♥
연두를 예뻐하는 댓글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척 많았다.
하긴, 소개영상이라고는 해도 연두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영상이니까.
나는 씩 웃으며 또 다른 댓글을 확인했다.
-거울보면서 웃는 연두 ㄹㅇ 심쿵이다…
└옷도 너무 예뿌다. 저번 영상에서 입고 나온 레전드 코디자나!!
└그건 맛보기였음. 이번에는 세상 예쁜 옷 다 입고 나오네 ㅋㅋㅋ
└큰일이다.. 연두성분 과다충전 때문에 심장에 무리간다…
-아니, 근데 입는 옷마다 왤케 예쁨? 연두가 입어서 예뻐 보이는 건가?
└ㄴㄴ 옷 자체도 느낌 ㅈ나있음. 참고로 나 패디과.
└진짜 군더더기없이 예쁜 듯. 깔끔하면서 적당한 포인트.
└어린 딸 있는 부모님들 좋으시겠네요 ㅎㅎ 저도 딸 있었으면 바로 샀을 텐데.
└다섯 살 아들 하나 있는 엄마는 웁니다 ㅠㅠㅠ
안타깝게도 ‘이든’에서는 여자아이의 옷밖에 팔지 않았다.
아들뿐이라 옷을 못 산다니. 괜히 내가 다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댓글이 있었다.
-사이트 들어가 봤는데 엄청 예쁘네요. 근데 아쉬운 거 딱 하나 있음. 모델이 없다는 거.
└연두가 모델하면 안 되나? 옷 하나하나 연두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
└ㄹㅇ 모델이 연두면 구매욕구 오지게 상승할 듯.
└진짜 역대급 키즈모델일 거 같은데 ㅋㅋㅋㅋ
└사이트랑도 잘 어울림. 연두 하면 연두색 아니냐?
└쌉인정. 모델 절대연두해!
연두가 이든의 모델이 되길 바라는 댓글이 상당히 많았다.
확실히 대부분의 키즈쇼핑몰은 모델이 존재했다.
모델이 있고 없고는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니까.
‘뭐,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
그건 내가 아니라 오준석이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소개영상을 올린 걸로 내 할 일은 다 한 셈이니까.
나중에 오준석이 모델을 필요로 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연두라면.
그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소개영상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
그 사실에 만족할 생각이었다.
***
“연두야.”
“네!”
“냉장고에서 당근 좀 가져다줄래? 아, 감자도!”
내 부탁에 연두는 바로 냉장고로 달려갔다.
그리고선 주황색 당근과 노란색 감자를 꺼내왔다.
오늘따라 야채들이 더 탐스러워 보인다.
“여기 이써여, 아빠!”
“고마워, 연두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손이 젖어있어서 불가능했다.
그야, 나는 지금 요리를 하고 있으니까.
어떤 요리냐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카레를 만들고 있었다.
즉석카레가 아닌 카레분말로 만드는 진짜 카레를.
‘사실 요즘 만드는 요리들은 다 처음이긴 하지만.’
카레든 뭐든. 원래의 나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메뉴들이었다.
심지어 연두가 꺼내온 당근이나 감자도 산 적이 없었지.
냉장고에는 계란과 김치 정도가 전부에, 서랍에는 라면을 잔뜩 쌓아뒀었고.
‘그랬던 나였는데.’
연두와 살게 된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늘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있었으니까.
레시피를 보고 천천히 하면 거의 망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연두를 보면 무척 뿌듯했고.
탁. 탁.
전혀 못하던 칼질도 이제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유투브에서 ‘최고의 한 끼’를 본 게 상당히 도움이 됐다.
감자나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다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연두는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괜히 어깨가 으쓱 올라간 나는 입을 열었다.
“왜, 연두야? 아빠 칼질하는 게 그렇게 멋있어?”
결국 또 나르시시즘 환자 같은 한마디가 튀어 나갔다.
딸한테 인정받고 싶은 아빠의 유치한 마음일까.
이상하게 요즘은 이런 말들이 종종 입 밖으로 나오곤 했다.
연두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머시써요! 구리고..”
“그리고?”
“연두는 감자가 조아요…”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손질 중인 야채가 감자였다.
“왜 감자가 좋은데?”
“할모니 집에 가쓸 때 생각나서…”
“아.”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녀석이 있었다.
개구리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여섯 살 남자아이.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선동.’
연두를 좋아하는 티를 풀풀 냈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사과의 의미로 약수터 앞에서 준 게 감자였다.
연두가 처음으로 먹은 감자이기도 하고.
‘엄청 맛있게 먹었지.’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감자를 보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빠가 감자 많이 넣어서 진짜 맛있는 카레 만들어줄게.”
“네! 구런데 아빠..”
“응.”
“카레는 매어요..?”
“아니, 이건 순한맛이라 하나도 안 매워.”
“휴우우…”
연두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는 갔다. 조금이라도 매우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연두니까.
그래도 일부러 순한맛으로 샀으니 괜찮을 거다.
빨리 야채 손질을 마치고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야, 연두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은 언제 봐도 즐거우니 말이다.
서걱.
‘어?’
그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건 감자나 양파를 손질할 때 나는 사운드가 아니었다.
“아, 아빠…”
왜인지 나를 바라보는 연두의 표정이 잔뜩 질려 있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노란색 도마가 빨갛게 물든 걸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한 건지.
‘.. 일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