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제의
‘최고의 한 끼’에서 셰프들이 잊을 만하면 하는 얘기가 있었다.
어떤 요리를 하든 칼질을 할 때에는 항상 집중해야 한다고.
절대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 일 났네.’
지금 나는 그 말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그야, 방금까지 노랗던 도마가 빨갛게 물들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물들고 있는 게 도마뿐만이 아니란 점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연두의 눈이, 도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들고 있었다.
“아, 아빠아…”
큰일이다. 진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거 같은 표정인데.
우선은 흐르는 피를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 피가 나는 걸 보면 연두도 더더욱 놀랄 테니까.
뚝. 뚝.
정확히는 감이 안 오지만, 출혈량을 보면 생각보다 깊게 팬 거 같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면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무의식 중에 감자와 손가락을 겹쳐서 썰어버린 거 같은데.
감자가 굵어서 손이 덜 썰린 모양이다. 그나저나 썰렸다고 하니 되게 섬뜩하네.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솨아아!
그리고 흐르는 물에 피를 흘려보냈다.
결국 연두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훌쩍이기 시작했다.
연두의 눈동자가 길을 잃은 듯 마구 흔들렸다.
“흑, 아빠 피… 피 마니 나요… 흐윽. 안 대는데…”
“괜찮아, 연두야. 아빠가 조금 실수한 건데 곧 그칠 거야. 심하게 다친 거 아니야.”
“피 나면 아파요.. 흐윽. 아빠 엄청 아파여… 어떠케…”
너무 놀라서인지 연두는 울며 어쩔 줄 몰라했다.
젠장. 그렇게 안 울리려고 다짐했는데 이런 식으로 울리게 될 줄이야.
연두의 말과 달리 손의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나를 걱정하는 연두의 표정을 보는 게 더 심장이 아렸다.
피를 씻어내는 사이에 나는 말로 연두를 달래는 데 주력했다.
많이 다친 게 아니라고. 그리고 피도 금방 멎을 거라고.
다행히 연두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어, 어리니집에서 배워써여..”
“응?”
“다처서 피 나면 물로 씨서야 대요, 흑.”
“맞아. 그래서 아빠가 지금 씻어내고 있어.”
“구리고 약도 발라야 해요! 흐윽.”
이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엄청 귀엽다.
다쳤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 말하면서 훌쩍이는 모습이.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를 안심시켰다.
“울음 그쳐도 돼, 연두야. 아빠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여, 연두도 그치고 시픈데…”
“그런데?”
“흑, 계속 눈무리 나와여…”
울지 않으려 하는데 눈물이 나온다니.
얼마나 나를 걱정하는지가 느껴져 짠한 마음이 들었다.
연두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약 바른 다음에 대일밴드도 부처야 해요..!”
“그럼 연두야.”
“네, 아빠..”
“서랍에서 약통 좀 가져다줄래? 거기에 약이랑 대일밴드 있거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두는 서랍으로 달려갔다.
한편 나는 다친 손을 슬쩍 옆으로 빼서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계속 물에 흘려보내서인지 출혈량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으으…’
내키지는 않지만 얼마나 다친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상처 부위를 벌렸다.
‘.. 다행이야.’
상처가 얕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출혈량을 보고 예상했던 것보다 깊지는 않았다.
어쩌면 약과 대일밴드만으로도 회복이 가능할 거 같았다.
“.. 아빠!”
나는 재빨리 손을 흐르는 물로 원위치시켰다.
출혈량이 줄어들긴 했어도 지혈이 끝난 게 아니었다.
흐르는 피를 보면 연두가 걱정할 게 분명했다.
그런 연두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여기! 약통 가져와써요..!”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연두야. 아빠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흑, 연두 때무니에요..”
“.. 그게 무슨 소리야?”
“연두랑 얘기하다가 아빠 다처써요.. 연두 때무네…”
생각지도 못했다. 연두가 자책하고 있을 거라고는.
이건 100% 내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 아니야, 연두야.”
“…”
“연두 때문에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알겠지?”
“네에…”
바로잡을 건 제대로 바로잡고 넘어가고 싶었다.
내 실수로 인해 연두가 자책하는 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한편, 연두는 한껏 힘을 줘서 약통 뚜껑을 열었다.
“으읏..!”
덜컥.
내용물이 거의 없긴 했지만, 지금 필요한 건 전부 들어 있었다.
만능 상처치료제 로시딘과 대일밴드.
어떻게 알았는지, 연두는 두 개를 정확히 꺼냈다.
“하하, 우리 연두 똑똑하네. 그거 아빠한테 줄래?”
내 말에 연두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뭐지? 연두가 지금 상황에 저걸 안 줄 이유가 없는데.
이어지는 연두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두가 발라줄 꺼에요..!”
약을 직접 발라주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지만 조금 곤란했다.
벌어진 상처부위를 연두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연두야.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나는 도중에 말을 멈췄다.
다름아닌 연두의 표정 때문이었다.
거의 그쳤던 울음이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표정.
엄청나게 서러워 보이는 표정이다.
“여, 연두가 발라주고 시퍼요.. 아빠 아푸니까……”
반칙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안 된다고 대답하겠는가.
걱정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럼 부탁할게, 연두야.”
수도꼭지를 끄고 바닥에 앉았다.
다행히 이제 피는 거의 흐르지 않았다.
이 순간, 뼈저리게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다치면 안 되겠어.’
앞으로는 절대 다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쳤을 때의 고통보다도 아파하는 연두의 표정을 보는 게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연두랑 같이 살게 됐을 때.’
그때 내가 가장 아팠던 것도 연두의 상처를 볼 때였으니까.
정말이지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연두가 나를 보며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쭈욱.
연두는 자그마한 손가락에 콩알만큼 로시딘을 짜냈다.
딱 적당하게 느껴지는 용량이었다.
이것도 어린이집에서 배운 모양인데, 거기 보내길 참 잘한 거 같다.
“바, 바를게여, 아빠…”
“응.”
스윽.
연두는 내 표정을 살펴 가며 조심스레 상처 부위를 문질렀다.
조금 따갑긴 했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한참을 문지르던 연두가 손을 뗐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일밴드도 부탁해도 될까요, 선생님?”
그제야 연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
“돼써요..!”
“하하, 고마워. 아구. 예쁘게 잘 붙였네?”
“안 아파여, 아빠…?”
“응. 연두가 붙여줘서 하나도 안 아픈데? 약도 발라주고.”
실은 거짓말이었다.
처음에는 안 아팠는데, 대일밴드까지 붙이고 나니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면서도 욱신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약이 스며드는 과정인 거겠지.
“이제 진짜 조심할게, 연두야.”
내 말에 연두는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또 칼 할 꺼에요..?”
칼질을 또 할 거냐고 묻는 거 같은데.
이미 카레 가루까지 물에 풀어서 준비해 둔 상황이었다.
손질하다가 만 야채도 도마 위에 그대로 있고.
다치긴 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연두랑 같이 요리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카메라도 설치해 뒀는데.
내가 다치는 장면이 전부 찍혀버렸겠네. 아무래도 이번 영상은 나가리일 듯하다.
연두튜브에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을 올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먹을 건 맛있게 해서 먹어야지.
“걱정하지 마, 연두야. 이제는 다치는 일 없을 거야.”
한참을 안심시킨 후에야 나는 다시 칼을 들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칼질을 하며 한눈을 팔지 않았다.
옆에서 연두가 마음을 졸이며 보고 있는데, 또 위험하게 칼질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행히 도마 위의 야채에는 피가 거의 묻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야채 손질을 완료했다.
‘이제 야채를 먼저 넣어서 볶고.’
어느 정도 익었다 싶을 즈음, 소고기를 투하했다.
소고기가 야채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좋아.’
슬슬 메인인 카레를 넣을 차례였다.
정확히 말하면 물에 섞어 풀어둔 순한맛 카레지만.
그야, 연두는 매운 건 입에도 못 대니까 말이다.
사라락.
“우아…”
칼을 내려놓아서인지 연두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감탄사까지 내뱉는 모습을 보니 나도 안심이 됐다.
나는 불을 줄이고 냄비 속 카레에 집중했다.
지금만큼은 ‘최고의 한 끼’의 이호연 셰프 못지않은 집중도였다.
울려버린 만큼, 음식은 정말 맛있게 만들어주고 싶었으니까.
카레가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저어줘야 했다.
그리고 꿀과 소금까지 넣어 간을 맞추고.
부글부글.
시간을 들여 뭉근하게 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레가 완성됐다.
절로 군침이 도는 먹음직스러운 자태였다.
“먹어볼까, 연두야?”
“네에..”
잔뜩 부은 눈으로 카레를 바라보는데 괜히 안쓰러웠다.
처진 기분을 푸는 건 맛있는 음식이 직빵인데.
비주얼만큼 맛도 훌륭했으면 좋겠다. 연두 기분 좋아지게.
나는 널찍한 그릇 두 개를 들고, 전기밥솥을 열었다.
“많이 먹을 수 있지, 연두야?”
연두는 눈을 비벼 물기를 닦아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그릇 위에 퍼 줬다.
‘이제 카레만 올리면 되겠어.’
그릇 위에 내 밥까지 올린 후, 냄비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국자로 카레를 떠서 올리려는데.
위이이잉.
결정적인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나는 국자를 내려놓고 발신인을 확인했다.
발신인 : 윤수아
윤수아는 풀잎컴퍼니의 대표였다.
친구 녀석이었으면 안 받으려 했는데, 일단 받아야 할 거 같았다.
연두튜브와 관련된 연락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연두야. 아빠 전화 한 통만 받고 먹을까?”
“네.”
전화 한 통에 카레가 식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수신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윤수아인데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가능합니다.”
통화가 괜찮다는 말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 드린 건 아니고요.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
저번에는 편집자 문제에 관해 연락을 했던 그녀였다.
편집자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에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안건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떤 제안이죠?”
“그게.. 최근에 연두튜브 구독자가 50만을 넘겼잖아요?”
“네, 그랬죠.”
“이야기하기에 앞서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댓글을 보면 굉장히 많더라구요. 50만 이벤트 안 하냐고 하는 얘기들이.”
그녀의 말대로 요즘 이벤트에 관한 댓글이 엄청 많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른 채널만 보더라도 정기적으로 구독자 이벤트를 하곤 했으니까.
‘심지어 1만이나 5만을 넘길 때도.’
기념으로 구독자 이벤트를 하는 채널이 많았다.
아쉽게도 연두튜브는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구독자 이벤트를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빠르게 성장해버려서.
‘하지만.’
50만과 5만이라는 숫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면 구독자들이 서운해할 건 불 보듯 뻔했다.
윤수아가 연락한 이유도 그런 반응이 우려돼서일 테고.
“저도 최근 들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윤수아는 다행이라는 듯 대답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제가 유투브에 관해 잘 몰라서요. 보통은 어떤 구독자 관련 이벤트를 하는지.”
“음.. 사실 엄청 다양해서 전부 말씀드리긴 힘든데요.”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연두튜브의 50만 이벤트에 관해서는 제가 생각한 게 있거든요.”
“아, 그런가요?”
“네. 그런데 초록 님이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나로서는 연락해 준 사실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다.
연두튜브의 댓글 여론까지 생각해서 걸어온 연락이었으니까.
‘윤수아가 생각한 게 뭘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게 정 부담된다면 다른 이벤트를 생각해 보면 되는 문제였다.
우선 들어봐서 나쁠 건 조금도 없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연두튜브의 팬미팅을 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