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9
109
“그러시죠.”
백한성이 허락했다.
아직도 김근화 감독을 대하는 기세가 서슬이 퍼렇지만, 나를 조력하는 일을 맡았기에 그는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곽춘식 감독님! 그리고 김근화 감독님! 백 팀장님께서는 제게 만조 냉장고 광고의 모델이 되는 조건으로 광고 제작을 맡을 감독님 결정도 제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해서 제가 선택한 감독님은 바로 곽춘식 감독님이셨고요. 김근화 감독님은 스펙도 화려하고 광고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지만 저는 곽춘식 감독님이 저희와 케미가 좋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김근화 감독님이 그런 결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셨기에 그것에 대한 대책으로 두 감독님께 내기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곽춘식 감독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미 광고를 맡을 감독이 결정된 상황인데 갑자기 김근화 감독과 내기라니 당황이 되었을 것이다.
“곽춘식 감독님께서 내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그렇다고 불이익을 받으실 일은 전혀 없습니다. 이미 곽춘식 감독님으로 결정된 상황이니까요. 어떻게, 내기를 거절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내 말에 얼른 김근화가 끼어들었다.
“이봐요, 곽 감독! 나도 곽 감독의 결정을 따를 테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세요.”
하지만 김근화는 말과는 달리 곽춘식이 내기를 거절할까 초조한 기색이다.
그때 곽춘식 머리 위에 뜬 단어가 보였다.
[믿음.]곽춘식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기서 피한다는 것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 판단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곽춘식이 내기를 받아들인 것에 김근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곽춘식을 슬쩍 바라보는 김근화의 머리 위에 떠오른 단어가 보였는데.
[병신.]김근화는 내기에 응한 곽춘식을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병신이라며 비웃고 있었다.
정말 오만불손한 인간이다.
그가 광고를 만드는 기술은 뛰어나도, 곽춘식처럼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광고를 만들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다시 두 감독을 향해 설명을 이어 갔다.
“내기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한 시간을 드리죠. 핸드폰으로 이곳에서 까미와 누리가 나오는 5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보세요. 영상을 찍고 나면 오늘 그걸 넙튜에 올려 사람들에게 공개할 겁니다. 영상 공개 기간은 이틀로 정하겠습니다. 대중에게 더 좋은 반응을 얻어낸 분이 승자가 될 것입니다. 패자가 된다면 승자에게 큰절을 해야 할 것이며,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넙튜에 공개토록 할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김근화는 이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안면근육을 실룩였다.
김근화는 내기에서 패자가 큰절을 하는 영상을 넙튜에 올리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광고주인 백한성에게 냉장고 광고를 차지할 욕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백 팀장님! 승자에 대한 보상이 너무 약한 거 아닐까요? 만일 제가 승자가 된다면 만조 냉장고 광고를 제가 맡게 해주시죠.”
하지만 김근화의 질문에 백한성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에 대해선 저희 만조에선 강산 씨의 뜻에 따를 생각입니다.”
“아! 그, 그렇군요!”
그제야 김근화 감독은 나를 무시하던 태도에서 조금은 경각심이 생긴 눈치였다.
이어 비굴한 태도로 김근화가 나를 향해 부탁하듯이 나왔다.
“강산 씨!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죠? 이렇게 내기까지 제안하여 저에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한 보답을 꼭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광고를 제게 맡겨 주시면 곽춘식 감독보다 더욱 멋진 광고를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사실 이건 미끼였다.
나는 김근화가 이리 나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패자가 넙튜에 큰절을 올리는 영상만 언급한 것이다.
‘이런 제안을 한 이유.’
첫째, 나는 오만불손한 김근화 감독을 광고계에서 영원히 매장할 생각이다.
나와 까미와 누리를 무시한 것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감히 냉장고 광고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겠다면서 대놓고 협박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곽춘식과 김근화 감독의 내기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대대적으로 키울 생각이다.
나는 만조 냉장고 광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광고를 매스컴에 선보기 전부터 뜨겁게 만들 계획이다. 오만한 김근화 감독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긴 셈이다.
셋째, 의 팬들을 만조 냉장고 고객으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다.
현재 의 시청률은 꽤 높은 편이다. 까미와 누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분명 두 감독이 찍은 영상에 호기심을 보일 테고, 그것은 결국은 나중에 만조 냉장고 광고의 판매 실적에도 제법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까미와 누리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팬들은 넙튜에 두 감독이 찍은 영상을 올린다면 훌륭한 심판 노릇을 해 줄 것이다.
물론 한 가지 우려는 있긴 하다.
김근화 감독에 비해 곽춘식의 명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중이 김근화를 지지할 수도 있고, 김근화의 성격상 분명 지인들에게 자신의 영상을 지지하라는 홍보를 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진심은 통할 것이다.
대중은 까미와 누리를 진심으로 귀여워하는 시선으로 찍은 박춘식의 영상과, 까미와 누리를 개무시하는 김근화가 광고를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찍은 영상을 분명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좋습니다. 제가 제안한 내기에서 승자가 된다면 만조 냉장고 광고를 김근화 감독님께 맡기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김근화 감독이 환하게 웃었다.
곽춘식을 우습게 여기는 김근화는 내기에서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반면 곽춘식 감독은 처음에는 살짝 눈빛이 흔들리긴 했지만, 내기에서 진다면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인지 이내 담담한 눈빛으로 변했다. 내게 뭐라고 한마디 따질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가 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스윽!
나는 김근화를 쳐다봤다.
내기를 제안한 숨은 목적이 있었기에.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고요?”
“만일 김근화 감독님이 패자가 된다면 큰절 영상을 넙튜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광고계에서 영원히 손을 떼셔야만 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뭐, 뭐라고요? 나보고 광고계를 떠나라는 말인가요?”
김근화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곽춘식 감독을 누를 자신은 있다.
하지만 만일 패할 경우, 광고계에서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것은 대미지가 너무 컸기에.
[갈등.]나는 김근화 감독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에 그를 도발하듯이 나왔다.
“자신 없으면 넙튜에 큰절을 하는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그치죠.”
“아, 아닙니다! 하겠어요! 이기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곳에는 만조의 백한성 팀장님이 함께 계신 자리입니다.”
나는 김근화를 도발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만조가 지닌 힘을 대놓고 과시하듯이 만조의 실세나 다름없는 백한성을 끼워 넣었다.
스윽!
그러자 내 말에 부담을 느낀 김근화가 슬쩍 곽춘식의 표정을 살피듯이 쳐다봤다.
“……!”
하지만 김근화의 시선에도 곽춘식은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였기에 그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곽춘식의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김근화는 자존심이 상했다.
“약속하겠습니다! 곽 감독에게 패한다면 광고계를 떠나겠습니다!”
김근화의 다짐에 백한성이 나섰다.
“김근화 감독님이 방금 한 말에 대해서 제가 책임지고 공증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아, 알겠습니다.”
이로써 김근화는 제대로 엮였다.
백한성이 있는 자리에 한 내기였다.
그가 패하면 약속을 꼭 지켜야만 할 것이다.
“까미. 누리. 지금부터 감독님들이 핸드폰으로 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너희 영상을 찍을 거야.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도 좋아.”
[재미있겠당.] [알겠다냥.]내가 두 감독에게 내기를 제안하는 동안 얌전히 듣고만 있었던 까미와 누리가 신난다고 실내를 뽈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두 감독을 향해 말했다.
“시작하시죠!”
* * *
까미와 누리의 촬영.
널따란 실내를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녀석들의 움직임을 쫓아서 곽춘식과 김근화 감독이 핸드폰을 들고 녀석들을 촬영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떤 연출도 없다.
그저 까미와 누리가 노는 장면을 찍어 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것이 감독들의 할 일이다.
김근화 감독.
미치고 팔딱 뛰는 심정이다.
이제까지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최상으로 갖춰진 광고 촬영 현장에서 사령탑 역할을 해 온 그였다. 광고계에서 꽤 알아주는 그의 명성이었기에 일류급 모델들도 그가 하라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하지만 까미와 누리는 달랐다.
김근화를 무시하듯이 멋대로 촬영 범위에서 벗어났다.
왕! 냐옹!
게다가 김근화 감독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까미와 누리를 상대하는 일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곽춘식 감독을 압도하겠다는 일념에 그는 눈에 불을 켜고 까미와 누리가 뛰어다니는 모든 장면을 촬영하기로 했다.
일단 모든 장면을 촬영해 놓고 나중에 5분 영상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곽춘식에 비해서 눈에 띄는 광고를 만드는 기술은 그가 훨씬 뛰어났기에.
정말 마음에는 안 드는 까미와 누리지만 얼마든지 그럴싸한 영상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반면, 곽춘식 감독.
그는 김근화 감독과는 달리 모든 장면을 찍지 않고 여유를 갖고 까미와 누리를 촬영하고 있다.
녀석들이 노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타나면 눈을 빛내며 핸드폰을 들이댔다.
때론 까미와 누리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굿’을 외치는 곽춘식 감독의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런 두 감독의 움직임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백한성과 근처의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셨습니다.”
“그런가요?”
백한성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웃으며 쳐다봤고, 나는 그의 시선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 * *
정한 시간이 지났다.
두 감독이 회의실로 돌아왔다.
까미와 누리는 여전히 똥꼬 발랄한 기색으로 실내를 쏘다니고 있었지만 놀라고 놔두었다.
두 감독의 표정은 대비가 되었다.
김근화 감독은 까미와 누리를 계속 쫓아다니며 영상을 찍느라 잔뜩 지친 기색이었지만, 곽춘식 감독은 오히려 녀석들에게 힐링을 느낀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찍은 영상은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저한테 넘겨주시면 됩니다. 넙튜에 올리는 것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럼 시작하시죠.”
김근화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촬영한 장면을 편집에 나선 분위기였지만, 곽춘식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조작하면서 찍은 영상을 감상하다가 짧은 시간 안에 편집을 끝내 내게 영상을 넘기게 되었다.
“곽춘식 감독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셨다가 이틀 후에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그러죠. 부족한 저를 위해 신경 써 주신 점 잊지 않겠습니다.”
곽춘식이 먼저 이곳을 떠난 것에 김근화는 자존심이 크게 상한 기색이다. 곽춘식에 비해 30분이 더 걸려서 그도 내게 영상을 넘겨주고 떠났다.
나는 두 개의 영상을 넙튜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