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10
110
곽춘식 감독이 찍은 영상.
영상 제목은 였다.
널따란 실내에 배치된 가구들을 이용하여 술래잡기를 하는 녀석들의 움직임을 제법 잘 포착한 셈이라 볼 수 있었고, 제목에 걸맞게 영상의 분위기도 훌륭했다.
‘처음에는 누리가 술래인 모양이군.’
고양이 누리가 장식장 위로 점프를 하자, 까미가 소파 아래쪽 공간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시커먼 덩치를 억지로 밀어 넣는 장면에선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까미의 꼬리가 소파 밖으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누리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번엔 누리가 숨을 차례겠군.’
술래가 까미로 바뀌었다.
누리가 숨을 장소로 커튼을 선택했다.
커튼 뒤에 숨어 기척을 숨긴 누리의 행동도 상당히 귀엽긴 했지만, 그걸 눈치채고 살살 커튼으로 접근하는 까미의 동작도 꽤 우스꽝스러웠다.
결국 들킨 누리가 ‘허걱’ 하는 표정을 짓고 말았는데 웃음이 터졌다. 평소 워낙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고양이 누리였기에 반전의 표정이 아닐 수 없었기에 말이다.
‘녀석들 매력을 잘 잡아냈다.’
반면 김근화 감독이 찍은 영상.
영상 제목은 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는 김근화답게 자극적인 제목의 분위기였다.
‘과연 어떤 식으로 편집을 한 건지 궁금하네.’
사실 까미와 누리는 이곳에서 촬영하는 동안 사이좋게 실내에서 노는 모습만 보였다. 그걸 가지고 어떤 식으로 배틀로 편집하려는 지 궁금하긴 했다.
김근화 감독의 영상을 확인했다.
왕!
까미가 똥꼬 발랄한 기세로 신나게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더니, 이어 고양이 누리가 장식장 위로 풀쩍 점프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곳에서 아래를 조심스레 살펴보는 누리의 모습으로 인해 마치 겁을 집어먹고 까미를 피해 장식장에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 장면은 곽춘식 감독이 술래가 된 누리가 숨은 까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 장면이었는데, 소파 아래에 숨은 까미의 모습은 나오지 않다 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연출된 셈이기도 했다.
‘이 장면을 이렇게 이용했다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건 사실과는 무관한 편집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편법을 전혀 선호하지 않지만 김근화 감독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극적인 편집을 선택한 모양이다.
아직 김근화 감독의 5분 영상이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나머지 영상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 김근화 감독도 커튼에서 노는 장면을 넣었네?’
우연치고는 묘한 일이나 김근화 감독의 영상에도 곽춘식 감독이 집어넣은 커튼 장면이 들어갔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고양이 누리를 찾는 장면이 술래잡기가 아니라 마치 까미가 누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처럼 연출된 셈이었다.
‘허걱’ 하고 놀란 누리의 표정이 마치 까미의 공격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
후다닥 실내로 움직이는 고양이 누리의 뒷모습을 영상의 마지막으로 남김으로써 배틀에서 까미를 승자로 표현하고 누리를 패자로 표현한 셈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의 영상이면 제법 잘 뽑아낸 셈이긴 했지만, 까미와 누리의 매력을 보여 주기보다는 왠지 연출실력을 뽐내기 위해 자극적인 면만 강조된 기분도 없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식이면 말이 배틀이지, 자칫 녀석들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까미가 누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하지만 두 감독이 찍은 영상을 어떤 식으로 편집을 하든지 그건 감독들의 자유였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김근화 감독의 영상을 선호할 테지만, 팬들이라면 까미와 누리의 매력이 드러난 곽춘식 감독의 영상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흐음.”
두 감독의 영상을 확인한 백한성.
그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표정이 그리 좋지가 못했다.
“5분짜리 영상을 두 감독 모두 성공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다르군요. 물론 저는 곽 감독의 술래잡기가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요.”
“그건 저도 그래요. 까미가 누리를 괴롭히는 이미지로 만든 김 감독의 영상, 솔직히 불쾌하네요.”
하지만 이미 넙튜에 올린 두 감독의 영상이었고, 이번 내기를 위해 이틀 동안 영상을 올리기로 했기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김근화 감독의 영상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린 내 모습에 백한성이 조용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대중도 안목이 있을 테니 한번 기다려 보시죠.”
“그러죠.”
나는 인상을 풀고 백한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어제 백한성이 메일로 보내 주었던 두 감독의 이력서 사진에는 특이 현상이 비롯되었지만 이번에 넙튜에 올린 이번 두 감독의 영상에는 아무런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
하지만 곽춘식 감독의 사진에서 푸른빛을 감지했다는 것에 기대를 갖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넙튜에 영상을 올린 지 하루.
역시 짐작대로 두 감독이 까미와 누리를 찍은 영상은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초반에는 곽춘식 감독의 영상보다 김근화 감독의 영상에 ‘좋아요’ 숫자가 더 많은 편이었다.
“저 김근화입니다. 넙튜에 올라온 영상 보셨죠? 좋아요 좀 눌러 주시고요, 주변 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 주세요. 하하! 네, 네, 이번 일 끝나면 나중에 술자리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김근화 감독은 광고계에서 다져 온 인맥과 댓글 알바까지 풀어 열심히 홍보에 나섰다.
이번 내기에 그의 광고 인생이 걸린 셈이었기에 반드시 곽춘식 감독을 압도해야만 했다.
김근화도 곽춘식의 영상을 봤다.
에 초점을 맞춘 영상으로, 까미와 누리의 매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영상이긴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보다 더 완벽한 영상을 뽑아냈다는 것에 김근화는 곽춘식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자존심상 곽춘식을 절대 인정하기 싫었다.
반면 곽춘식 쪽은 잠잠했다.
판단을 대중에 맡긴다는 태도였다.
* * *
넙튜에 영상을 올린 지 이틀.
아침이 되면서 곽춘식 영상의 ‘좋아요’ 수가 대폭 늘어났다.
팬들 덕분이다.
전국으로 방영되는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넙튜에 올라온 까미 누리 영상 봤나요? 안 봤다면 당장 보셈! 곽 모 감독과 김 모 감독이 찍은 5분짜리 영상인데 완전 대박임다!
└곽 모 영상이 최고!
└술래잡기 완전 귀욤 뿜뿜!ㅎㅎ
└영상 꺼져! 울 귀요미 까미를 깡패로 만들어 놨음ㄷㄷ
└저도 충격 받았음! 그동안 통해 까미와 누리가 보여 준 것이 있는디…… 어찌 그런 만행을! 가서 패 주고 싶음!
곽춘식 감독이 찍은 영상에 대한 대중의 호의적인 반응에 발악하듯이 김근화 감독의 영상을 지지하는 반응도 있긴 했다.
-광고계에서 알아주는 김 모 감독답게 영상이 센스가 넘치네~ 고양이가 까만 개에게 처발리는 장면에 스트레스 다 날아갔네여ㅋㅋㅋㅋ
└역시 광고계 대부 김 모 감독임다!
└편집 실력 개인정! 멋짐다!
└ㅇㅈ 김 모 감독 영상 좋아요!
└좋기는 개뿔! 늬들 다들 김 모 감독 지인들이지?
└김 모 감독 지인들 보소! 곽 모 감독의 영상 보고도 그딴 소리를 해 댄 거면 니들 눈깔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기다~
└ㅇㅈ 졸라 귀여운 까미를 깡패로 만들어 놨음ㅠㅠ
└고양이 누리 ‘허걱’장면 졸라 잼있는데…… 분위기 싸하게 만듬!
└사실을 곡해하는 악마의 편집임!
└김 모 감독 나빠요! 까미와 누리가 사이가 얼매나 좋은디…ㅠㅠ
└김 모 감독 호승심에 제 발등 찍었구먼ㅋㅋ
두 감독의 영상에 대한 세간의 분위기는 갈수록 곽춘식 감독에게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화력을 보태듯이 대중에게 핵인싸 넙튜버로 알려진 인물이 나서서 두 영상에 대한 평가를 직접 넙튜로 방송해 버린 것이다.
└ㅇㅈㅇㅈ
└ㅇㅈㅇㅈ
└ㅇㅈㅇㅈ
핵인싸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그가 직접 넙튜에 올린 개인적인 감평에 대중도 깊은 공감을 느낀 모양이다.
사실 광고계에서 명성을 날리던 김근화 감독답게 그가 만든 광고들 중에서 히트를 친 광고가 많다 보니 김근화를 아는 대중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넙튜에 올라온 영상은 오히려 대중을 크게 실망시키고 말았다.
대세는 곽춘식으로 기울어졌다.
대중도 보는 눈이 있기에 더 좋은 영상을 알아본 것임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듯이 만조의 기획홍보팀에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보고자 나섰다.
[에 나온 까미와 누리가 올 하반기 만조 냉장고 광고를 찍는다는 소식입니다! 만조에 확인을 받은 정보이니 이건 확실한 정보임을 증명합니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ㅎ
└까미와 누리 광고! 정말 기대됩니다! 파이팅!
└혹시 MC도 광고 찍나욤?
└까미 누리 아빠라죠?ㅎㅎ 함께 광고 찍으면 그림 좋을 듯~
└만조 냉장고 광고! 이번에 대박 광고가 되겠다~
└곽 모 감독이 냉장고 광고 맡으면 잘 어울릴 듯싶죠? 김 모 감독은 스펙은 화려하나 까미와 누리와 케미가 똥일 듯ㅋㅋㅋㅋ
* * *
내기는 끝났다.
넙튜에 올렸던 두 감독의 영상을 삭제했다.
승자와 패자.
확실하게 가려진 셈이다.
김근화 감독에 비해 곽춘식 감독의 영상에 달린 ‘좋아요’가 무려 열 배나 많았다.
두 감독을 만조 본사 77층으로 불러들였고, 약속대로 김근화 감독은 곽춘식 감독에게 큰절을 올리는 일을 영상으로 찍게 되었다.
그렇게 찍은 영상은 곧바로 넙튜에 올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패자가 되어 버린 김근화 감독에게 받아 낼 약속이 하나 더 있었다.
“제가 오만했습니다. 저는 광고 일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발…… 큰절 영상을 넙튜에 올리는 것만으로 봐주면 안 되겠습니까?”
김근화 감독은 광고계에서 영원히 떠나야만 하는 것이 싫었기에 애걸하듯이 매달렸지만 나는 차갑게 외면하듯이 나왔다.
“약속을 지키세요. 김근화 감독님은 오늘부터 광고 일에 손을 떼셔야만 할 겁니다. 만일 약속을 어기겠다면 백 팀장님을 상대하셔야 할 테니까요.”
내 말에 김근화 안색이 창백해졌다.
만조의 실세로 알려진 백한성.
그를 상대했다가는 더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결국 김근화는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