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38
138
‘설마?’
함정에 빠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화이의 본체인 엘리나.
나도 미처 몰랐지만 그녀와 협주곡 연주를 한 것이 문제를 야기한 모양이다.
‘근데 혼이 잡아먹힌다고?’
나는 하늘색 엘리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이 이상하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치 백지를 대하듯이 그것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은 전혀 없다는 것.
“강산 씨! 괜찮아요?”
그러자 다음 리허설을 진행해야 하는데 내가 무대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의 사령탑인 박서나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듯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 입에서가 아니라 곁에 있던 엘리나에게서 흘러나왔다.
“박 PD님! 강산 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오랜만에 바이올린 연주를 해서 그런지 잘 적응이 안 된다고 하네요. 조금 쉬고 나면 금방 회복될 거예요.”
“흐음,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저도 강산 씨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잘 적응이 안 되긴 했지만요.”
박서나는 엘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명성호텔에서의 피아노 연주 공연에 이어 이번에는 바이올린 연주까지.
내가 두 가지 악기를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연주 실력을 보여 준 것에 그녀는 지금 속으로 크게 놀라워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오늘 방송에 두 사람의 협주곡 연주만 내보내도 시청률은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방송을 사랑하는 방송인답게 자신이 기획한 프로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강산 씨, 엘리나 씨 말대로 다음 리허설 들어가기까지 좀 쉬었다가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러죠.”
나는 일단 무대에서 내려왔다.
엘리나가 조금 전에 내게 했던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녀와 함께 방송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녹화본도 아니고 생방이다.
게다가 오늘 방송의 게스트는 첫 방송이고 해서 특별히 섭외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방송을 못하겠다고 떠난다면 방송을 망칠 것은 뻔했다.
‘서나 씨의 후속작 첫 방송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까미와 누리의 옆에 앉았다.
녀석들은 무대에서 내가 엘리나와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지금 자리한 곳과 무대와 그리 떨어진 거리도 아니었고, 청력이 예민한 녀석들인데 이건 뭔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리고 그 점은 MC들도 마찬가지였다. MC들은 우리와 함께 무대에 있던 상황이라 엘리나가 내게 한 말을 모두 들었을 텐데도 두 사람의 표정은 아주 양호했다.
‘MC들이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설마 엘리나가 내게 했던 말은 내 귀에만 들렸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럴 확률도 높았다.
아니면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혼이 잡아먹힌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리가 없었다.
‘하긴 새끼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신한 상태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나가 앉아있는 의자로 다가섰다.
이런 상태로 방송에 출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정확한 속셈을 알아볼 작정이었다.
“엘리나 씨,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죠.”
“그러죠.”
엘리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와 함께 스튜디오 밖으로 나온 나는 조용히 얘기를 나눌 장소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적당한 비상계단을 택했다.
비상계단에 이르자 복도로 연결된 문을 닫고 그녀를 차갑게 노려봤다.
“대체 무슨 수작이지?”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화이의 본체라고 여기고 있던 데다가 아까 들은 말로 이미 나에 대한 적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었기에.
“당신을 파멸시키고 싶어요.”
내 말에 엘리나도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적의로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나를 파멸시키겠다고? 대체 내가 그쪽에게 뭘 잘못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내 말에 엘리나는 치솟는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건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거 아시죠? 이미 당신은 내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그걸로 인해 우리 게임은 시작되었어요. 우리 중의 하나가 소멸되기까지 이번 게임은 절대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게임이라니?”
“게임에 대해선 설명해 줄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당신은 이곳 세상에서 소멸될 것이니까.”
“소멸? 너는 내가 소멸되기를 원하고 있는 건가?”
내 말에 그녀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나를 향한 적의의 감정은 여전히 강렬했다.
“이익! 저는 당신이 소멸되기를 원해요!”
“아까 무대에서 했던 말도 그래서 한 건가?”
“맞아요. 오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 것도 모두 당신을 노리고 한 일이죠. 당신이 얻은 재능의 반지, 그것도 모두 제가 계획한 일이죠.”
“재능의 반지를 내가 차지하게 된 것이 너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그래요. 그것도 모르고 당신은 신난다고 재능의 반지를 이용하여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의 재능을 복사하게 되었죠.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저와 함께 협주곡 연주를 하게 되었고요. 당신은 그것들이 모두 제가 파 놓은 함정임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요.”
머리가 격하게 어지러웠다.
만도자가 나를 위해 배려한 신비로운 야산.
그걸 소유하게 되면서 승승장구했던 나의 삶이다.
그랬는데 지금 눈앞의 존재로 인하여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을 정도로,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 상황임을 눈치챌 수 있었기에.
“너는 대체 누구지?”
“그건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엘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전혀 기억에 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엘리나라는 이름도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당신은 저를 기억해야만 할 거예요. 방송이 끝날 때까지 저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아까 말했던 대로 당신의 혼은 이곳에 잡아먹힐 거라고요.”
엘리나가 왼손에 착용한 검은색 팔찌를 내게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동작에 팔찌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일렁 흘러나왔다.
그런 현상에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음습하게 느껴지면서 소름이 오싹 끼쳤다.
“내가 방송을 하지 않고 떠난다면 어쩌려고?”
“당신은 그러지 못할 거예요. 아까 저와 연주를 시작한 이상 흑사령이 당신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저로선 손해 볼 것은 없어요. 끝까지 당신을 추적할 테니까요.”
흑사령이란 것은 엘리나의 팔찌에 스민 불쾌한 기운을 의미하는 듯싶긴 했다.
내가 대꾸가 없자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당신이 저와 방송을 하지 않고 떠나게 되면, 대신 박서나 PD의 영혼이 흑사령 팔찌에 잡아먹히게 될 테니까요.”
“뭐라고? 서나 씨의 영혼이 잡아먹히게 된다고?”
“네, 맞아요. 박서나 PD에 대해선 기억하고 있으면서 왜 저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인지에 대해선 당신이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설마 너…….”
선계와 연관된 존재가 분명했다.
지금까지 엘리나가 했던 말을 종합해 보면 선계에서 지낼 당시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것에 원한을 품은 그녀가 복수를 하고자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네요.”
“……!”
엘리나는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노려보다가 이내 주먹을 꽉 거머쥐고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쿠웅!
그녀가 비상계단을 빠져나가고,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하여간 결론은 나왔다.
지금 떠날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방송이 끝나기까지 엘리나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 영혼이 그녀의 팔찌에 잡아먹히게 된다는 것.
백한성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일이시죠? 지금 한창 리허설 중일 텐데요.
“문제가 생겼어요.”
-어떤 문제입니까?
“오늘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 알고 보니 함정이었네요.”
-함정이라고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오늘 저 말고 게스트로 섭외된 여자가 바로 아트홀 CCTV에서 봤던 그 여자였어요.”
-게스트로 화이의 본체가 출연하게 되었다고요?
“네, 이름이 엘리나라고 하는데. 그녀는 제가 마령 4호를 처리하고 얻은 재능의 반지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더군요. 그리고 반지를 통해 복사한 재능이 결국은 그녀가 쳐 놓은 함정이었고요.”
-그렇다면 방송 펑크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그곳에서 빠져나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여길 떠나면 서나 씨가 그 여자에게 당할 테니까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방송이 끝나기까지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소지한 팔찌에 제 영혼이 잡아먹힐 거라고 하네요.”
그때 백한성의 음성이 살짝 긴장한 듯 떨렸다.
-혹시 흑사령 팔찌인가요?
“그녀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군요. 근데 흑사령 팔찌가 정말 제 영혼을 잡아먹을 수 있는 건가요?”
-흑사령 팔찌는 선계의 물건입니다. 선계에서 범죄를 저지른 선인들의 영혼을 소멸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던 팔찌입니다. 그것이 이곳 세상에서 발견되다니 뭔가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만, 대표님의 지금 신력으로는 흑사령 팔찌에 서린 기운을 감당하시기 어려울 겁니다.
흑사령 팔찌.
그것에 백한성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하여간 그 여자가 말한 것이 흑사령 팔찌가 틀림없다면 위기 상황임은 분명하네요. 제가 지금 당장 그곳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백 팀장님이 여길 오시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나요?”
-……!
나의 질문에 잠시 침묵을 유지했던 백한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선계에서 제 신분은 해결사였습니다. 이곳 세상에서 형사들이 범인을 잡을 때 수갑을 소지하듯이 선계에서 저는 흑사령의 기운이 깃든 팔찌를 소지하고 다녔죠. 물론 이곳 세상에 내려올 때는 팔찌를 반납하고 왔지만요.
나는 백한성 얘기를 통해 흑사령 팔찌가 그런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흑사령 팔찌를 이곳 세상에 갖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봐서 그 여자의 뒷배에 고위급 선인이 버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위급 선인이라고요?”
고위급 선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 기억이 떠오를 듯싶으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화이를 안았을 때 풍겼던 향기가 코끝에 느껴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어 흘러나온 백한성의 음성에 멍해 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장담은 못하지만 흑사령 팔찌에 대해선 제가 잘 아는 물건이란 점입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대표님께선 그 여자를 잡아 놓고 계십시오. 적어도 방송이 끝나기까지는 그곳에 당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알겠어요.”
백한성과 통화가 끝났다.
엘리나가 소지한 흑사령 팔찌.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은 이곳 세상에 백한성이 유일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