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41
141
“화이, 약속대로 이제부터 너는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거야.”
나는 화이를 향해 몸을 낮추었다.
이제 그녀는 평생 새끼 고양이의 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과거에 대한 기억들도 대부분 사라진 채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곁에 머물게 된 것인지.
하지만 이건 그녀의 결정이었고, 나는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까미, 누리, 앞으로는 화이와 사이좋게 지냈으면 싶구나. 이제 화이도 우리 식구가 되었거든.”
내 말에 까미와 누리가 새끼 고양이 화이의 곁으로 다가와 탐색하듯이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이좋게 지내겠당.] [미워하지 않겠다냥.]역시 까미와 누리가 화이를 거부했던 원인이 흑사령 팔찌임이 밝혀졌다. 팔찌가 사라지자 까미와 누리도 더는 화이를 경계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바로 그때였다.
타악!
대기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백한성이 들어왔다.
평소 당황하는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던 백한성이었지만 지금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꽤 다급한 분위기였다.
방송이 끝나기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던 백한성이 이렇게 뒤늦게 나를 찾아온 것은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터.
“대표님! 괜찮으신 건가요?”
대기실 안을 빠르게 눈으로 훑어본 백한성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쪼그리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며 대꾸를 흘렸다.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했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죠?”
“그게…….”
내게 대답을 하려던 백한성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이어 까미와 누리와 나란히 있던 새끼 고양이 화이를 발견한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화이가 왜 이곳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백한성의 눈이 새끼 고양이 화이를 탐색하듯이 훑어보더니 다시 내게로 고갤 돌리며 물었다.
“흑사령 팔찌가 사라진 겁니까?”
“맞아요.”
“대체 어찌된 일이죠?”
백한성의 의문이 깃든 시선에 나 역시 그가 이곳에 늦게 도착한 연유가 궁금하던 차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그러시죠.”
나는 새끼 고양이 화이를 품에 안고, 목줄을 채운 까미와 누리는 백한성에게 맡겼다.
방송국 주차장에 내려오자 백한성은 내 차로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백한성이 몰고 온 차는 부리던 직원이 알아서 필요한 장소로 옮겨 놓을 것이기에 신경을 껐다.
“먼저 늦게 온 이유부터 듣고 싶네요.”
내 말에 조수석에 자리한 백한성이 침음을 삼키다가 대꾸했다.
“흑사령 팔찌에 서린 기운을 무력화시키는 구슬을 찾아내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표님께 미리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지만…… 대표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해서 제 임의대로 움직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대기실로 다급히 들어왔던 백한성의 모습을 떠올린 나는 그가 말한 구슬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슬은 찾아내신 건가요?”
“다행이 찾아내긴 했지만…… 쓸모가 없게 되었네요.”
백한성이 멋쩍게 웃었다.
그의 품안에 간직한 구슬.
그는 그걸 찾기 위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것을 굳이 밝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제가 이곳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분이 바로 백 팀장님이십니다. 백 팀장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겁니다.”
비록 만도자가 나를 위한 조력자로 붙여 준 백한성이긴 했지만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까미와 누리처럼 그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기에 그가 곁에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대표님께 솔직하게 모두 말씀드리고 움직이겠습니다.”
“제가 반대를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흐음, 그렇게 되면 대표님을 설득하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백한성의 말에 조용히 웃고 말았다.
나의 생사에 관여된 문제라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나를 위해서 움직일 존재였다.
“구슬을 찾아온 장소에 대해선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결계 안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계 안? 그렇군요.”
그래서 백한성과 통화하기가 어려웠던 것인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남아있긴 했다.
하긴 선계의 해결사였던 그다.
그도 나름대로 숨겨야 할 비밀이 있을 테니 이쯤해서 구슬을 찾아온 장소를 캐묻는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흑사령 팔찌는 어떻게 사라지게 된 겁니까?”
이번엔 백한성이 내게 물었다.
그에게 대답하기 전에.
스윽!
나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자리한 새끼 고양이 화이를 살피듯 한번 쳐다봤다.
고양이로 변신한 이상 화이는 이제 엘리나의 기억을 더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내가 엘리나와 했던 딜에 대해서도 잊어버렸을 지도.
“엘리나와 딜을 했어요.”
“딜을요?”
“엘리나와 방송 중에 협주곡 연주를 하고 나서 팔찌의 기운이 달라진 것을 눈치채게 되었죠. 비상계단에서 엘리나에게 협박을 당할 때만 해도 제게 살벌한 살기를 쏟아 냈던 팔찌의 기운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우리의 연주가 끝난 후에는 아주 온순한 기운으로 바뀌어 버린 셈이죠.”
내 말을 들은 백한성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그의 생각을 밝혔다.
“어쩌면 대표님께서 연주를 하실 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셨겠지만 위기를 감지한 본능이 연주에 선공을 가미했던 것이 아닐까 싶군요. 어차피 흑사령 팔찌는 선계의 악한 선인들을 징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니 신성한 기운에 노출되자 그만 대표님을 향한 살기를 거둬들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백한성 말이 일리는 있긴 했다.
사실 엘리나와 협주곡을 연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때 무아지경에 빠진 나였다.
그때 백한성 말대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위기에서 빠져나가고자 선계에서 지녔던 나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냈을 수도 있다.
“한데 그렇다고 해도 대표님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엘리나가 저렇게 새끼 고양이로 변해서 대표님 곁에 머물게 된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군요.”
“그건 저도 그래요. 아무튼 그녀가 흑사령 팔찌를 파괴하고 새끼 고양이의 삶을 선택한 이상 저는 그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화이를 거두게 된 것이 잘 된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녀가 진심으로 대표님 곁에 있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요.”
백한성의 말에 나는 룸미러에 비춘 새끼 고양이 화이를 쳐다봤다. 까미와 누리와 함께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화이의 분위기. 그저 귀여운 고양이 새끼에 불과했기에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화이가 전에 이틀 동안 대표님 집에서 지낸 경험이 있으니 적응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군요.”
“그건 그렇죠. 이제 까미와 누리도 화이를 받아들인 분위기이니 사이좋게 잘 지낼 거라고 봐요.”
백한성이 슬쩍 뒷좌석을 돌아다보더니 나란히 잠든 세 녀석들의 모습을 확인하곤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머금어 보이며 말했다.
“자는 모습들이 아주 귀엽군요.”
“그렇죠? 그건 그렇고 오늘은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지 그래요.”
“아닙니다. 방송에 출연하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저는 그냥 가다가 중간에서 내려 주시죠.”
“그러세요. 백 팀장님도 오늘 고생 많으셨으니 저희 집보다는 혼자 푹 쉬는 것이 좋겠네요.”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백한성이 부리던 경호원이 모는 차가 뒤따라오고 있었기에 백한성은 그 차를 타고 돌아가면 될 터.
“이걸 받으시죠.”
백한성이 품에서 구슬을 꺼냈다.
겉으로 보기엔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유리구슬처럼 보였지만 구슬에 담긴 기운은 흑사령 팔찌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었다.
“제가 가져도 되는 건가요?”
“다시 결계 안에 갖다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버리기도 그러하니 대표님께서 갖고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죠.”
나는 백한성이 건넨 구슬을 받아서 한번 살펴보고는 품 안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 *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까미와 누리를 침대에 함께 데리고 잤는데 새끼 고양이 화이가 한 마리 늘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화이가 엘리나의 모습일 때를 봐서인지 앞으로 화이를 대하는 것에 고민도 없지 않았다.
“화이.”
[왜 부르냥?]“잠잘 때 어디서 자고 싶어?”
[모르겠다냥.]새끼 고양이 화이는 엘리나에 대한 기억을 거의 잊긴 했지만 다행히 까미와 누리처럼 나와의 대화가 가능했기에 그 점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까미, 누리, 너희는 화이를 침대에서 함께 재우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
전에 새끼 고양이 화이가 이곳에 머물렀을 때 까미와 누리는 화이와 함께 침대에서 자는 것을 심하게 거부했기에 이번에는 어떨지 녀석들 의견을 물어보게 되었다.
[다함께 자면 좋겠당.] [화이도 침대에서 재우라냥.]확실히 화이를 대하는 까미와 누리의 태도가 달라졌다. 화이에게 더는 날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화이도 이제 우리와 한식구가 되었으니 아빠랑 함께 침대에서 자자.”
[좋다냥.]화이가 흡족히 고갤 끄덕였다.
침대는 넓은 편이었기에 세 녀석을 데리고 자도 문제가 없긴 했다. 그렇다면 이제 잠자리 위치를 정하는 문제가 남았다. 이건 내가 정해 주기로 했다.
“까미가 셋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편이니 침대 우측을 혼자 차지하도록 하고, 화이는 누리와 침대 좌측에 함께 자리를 정하는 것이 좋겠어.”
[알겠당.] [좋다냥.] [좋다냥.]녀석들이 모두 내 말을 따랐다.
내가 침대에 눕자 나의 좌우로 세 마리 동물들이 자리를 잡고 눕게 되었다. 우측에는 까미가, 좌측에는 누리와 화이가 엎드렸다.
잠들기 전에 으레 행하던 습관대로 녀석들과의 교감을 위해 나는 우측과 좌측에 엎드린 녀석들의 털을 번갈아 가면서 쓸어 주었다.
녀석들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좋고 녀석들에게서 풍기는 향기도 좋았다.
새끼 고양이 화이도 신기하게도 까미와 누리 못지않게 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 * *
새끼 고양이 화이.
침대에 누운 화이는 자신을 쓸어 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눈을 뜨자.
꼬끼요오오오오!
뒷마당에 있는 수탉들의 모닝콜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전에 이곳에서 이틀 동안 지낼 때 들어 본 적이 있었기에 화이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아주 행복한 꿈을 꾼 것 같다.
꿈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뭔가 행복했다.
“화이, 잘 잤어?”
그가 화이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화이의 털을 쓸어 주는데 이상하게 행복해서 눈물이 나온다.
왕! 냐옹-!
화이보다 먼저 눈을 뜬 까미와 누리가 화이를 쳐다봤다.
[볼일 보러 가겠당.] [화이도 따라오라냥.]까미와 누리가 이제는 화이를 한 식구로 받아 주었다. 까미와 누리를 따라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온 화이는 뽀르르 화장실로 향했다.
까미. 누리. 화이.
차례대로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주방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럼 아침 준비를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