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3
153
블랙홀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요정의 들판이라는 이름답게 아름답다.
사람, 집, 차……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이곳.
알록달록한 향기로운 야생화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은 마치 한편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기도 했다.
왕! 냐옹-!
까미와 누리에게는 익숙한 정경이었다. 그럼에도 향기로운 야생화를 대하자 기분이 좋았는지 신난다고 들판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나는 품안에 안고 있던 새끼 고양이 화이의 머리를 한번 쓸어 주곤 녀석을 꽃밭에 내려놓았다.
냐아~!
그러자 화이는 내려놓은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잠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눈을 빛내며 한곳으로 뽈뽈뽈 움직였다.
그러더니 화이는 보라색 야생화가 피어난 곳에 이르러 꽃에 코를 갖다 대고는 고롱고롱 기분 좋은 골골송을 흘려 댔다.
‘그러고 보니 저 꽃은?’
화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야생화.
야산의 연못가에서 발견했던 자색 환상초가 분명했다. 그 꽃이 결계 안에도 피어있다는 것에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동안 왜 저걸 몰랐을까?’
물론 들판에 피어난 야생화의 종류는 무궁무진했고 색깔 또한 실로 다양하긴 했기에 자색 환상초를 몰라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요정의 들판에 뿌리를 내린 야생화들이 전과는 달리 보였다.
어쩌면 자색 환상초 못지않은 신비로운 꽃들이 얼마든지 더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동안 요정의 샘물만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야생화를 살펴볼 마음을 먹지 않긴 했지.’
게다가 까미와 누리는 이곳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저 신난다고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다.
왕! 냐옹-!
그리고 지금도 들판을 마구 쏘다니며 털에 알록달록한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로 즐겁게 뛰어 놀고 있는 까미와 누리의 모양새였다.
‘그걸 보면 똑같이 꽃을 좋아해도 화이의 태도는 뭔가 다르긴 하지.’
나는 화이를 웃으며 쳐다봤다.
까미와 누리에 비해 화이는 얌전히 자색 환상초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한곳에서 움직일 기색 없이 보라색 꽃밭에 엎드려 가릉거리며 골골송을 흘리고 있었다.
그사이에 자색 환상초 꽃을 뜯어먹었는지 화이의 주둥이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화이야, 다른 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을래?”
들판의 수많은 야생화 중에서 자색 환상초를 단번에 찾아낸 화이라면 또 다른 영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냐아~!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화이가 보라색 꽃밭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른하게 풀렸던 화이의 하늘색 눈동자도 본래의 기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화이가 들판의 한곳으로 뽈뽈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을 따라 움직였다.
두 번째로 화이에게 간택당한 야생화는 민들레와 생김새가 비슷하게 생긴 노란 야생화였다.
냐아~!
그곳에 화이가 엎드려 노란 꽃에 코를 가져다 대며 행복한 기색으로 가르릉거렸다.
‘이번에 화이가 선택한 꽃은 대체 무슨 꽃일까. 민들레와 흡사하게는 생겼지만 민들레는 아니다.’
화이가 엎드린 주변의 꽃들이 온통 노란 빛을 띠고 있는데, 특히 잎사귀의 끝부분에서 반짝반짝 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치 금가루가 묻은 것처럼 신기하게도 잎사귀 끝부분이 노란 펄로 뒤덮여 있다.
화이는 들판의 수많은 야생화 중에서 대체 저런 꽃을 어떻게 찾아냈나 싶기도 했지만, 확실히 예사로운 야생화는 아닌 듯싶다.
‘이곳에서도 식물 정보 창이 뜰까?’
식물 정보 창을 활용하면 야산에 자생하는 식물에 대한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야산에 속하긴 해도 블랙홀 결계 안에 형성된 특수 공간이란 점에 살짝 미심쩍은 마음은 있었지만.
‘오오! 뜬다!’
화이가 두 번째 선택한 노란 야생화에 대한 정보가 떴다.
-노란 달빛초는 선계의 허브과에 속하는 꽃의 일종으로 기억력 향상에 효과가 좋음.
-꽃보다는 금빛이 감도는 잎사귀 끝부분이 더 효과가 있음.
-말린 노란 달빛초 잎사귀를 말린 자색 환상초 꽃과 섞어서 환을 만들 경우 효과가 배로 증폭됨.
이게 사실이라면 아주 특별한 약초를 얻은 셈이었다.
기억력 향상이라니, 치매에도 도움이 될 터.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결계 밖을 벗어날 때 이곳에 속한 것을 가져가는 것에 한계가 있었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요정의 샘물을 노란 달빛초 잎사귀를 이용하여 떠가면 되겠다.’
나는 손뼉을 치며 흡족히 웃었다.
모처럼 요정의 들판에 들어왔는데 요정의 샘물을 그냥 두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요정의 샘물은 기이하게도 들판에 있는 것에 한해서만 떠갈 수 있었기에 나는 노란 달빛초의 잎사귀를 이용할 생각이다.
노란 달빛초는 들판에 뿌리를 내린 야생화이니 잎사귀를 이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화이야, 잠깐 실례 좀 할게.”
노란 꽃들 사이에 엎드려 가릉거리며 골골송을 흘려 내는 화이가 놀라지 않게 나는 조심해서 노란 달빛초 잎사귀를 여러 장 뜯어냈다.
그러고는 꽃밭에 주저앉아서 노란 달빛초 잎사귀를 가지고 이리저리 엮어 보기 시작했다.
샘물을 떠갈 도구.
집에 도착하기까지 샘물이 새어선 곤란했기에 잎사귀를 아주 촘촘히 엮어 줘야만 할 터.
“흐음, 이 정도면 요정의 샘물을 떠가는데 문제는 없겠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노란 달빛초 잎사귀를 여러 장 촘촘히 겹친 끝에 요정의 샘물을 떠갈 수 있는 작은 깔때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나는 가장 마음에 들게 만든 깔때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란 달빛초로 만든 깔때기는 요정의 샘물을 떠 가는 도구로 사용하긴 했지만 다른 용도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까미, 누리, 그만하고 요정의 샘물을 구경하러 가자.”
나는 노란 달빛초 잎사귀로 만든 작은 깔때기를 조심스레 손에 쥐고 화이를 품에 안았다.
그때 내가 부르는 소리에 까미와 누리가 주위로 달려왔다.
왕! 냐옹-!
녀석들은 들판에서 잔뜩 뛰어다녔을 테니 목이 마를 터. 요정의 샘물로 목을 축이도록 하는 것도 좋았다.
-우릴 요정의 샘물로 안내할 것.
요정의 들판에 들어서면 신기한 점 중의 하나는 거리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요정의 샘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을 명했다.
스르륵!
그러자 향기로운 야생화로 가득했던 너른 들판의 정경 대신에 바로 지척의 거리에 요정의 샘물이 마법처럼 떡하니 등장했다.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아 우린 금방 요정의 샘물에 이르렀다.
“화이, 요정의 샘물이야. 물맛을 보면 아주 마음에 들 거야.”
나는 품에 안은 화이를 샘물 주변의 바닥에 내려놓았다.
왕! 냐옹-!
까미와 누리는 요정의 샘물을 발견하자 신난다고 후다닥 샘물로 달려가 주둥이를 물속에 박고 물을 할짝할짝 핥아먹기 시작했다.
요정의 샘물은 신비로운 샘물답게 정화 기능도 포함되어 있어서 설령 지저분한 흙덩이를 물속에 집어던져도 금방 깨끗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기에 샘물이 오염될 일은 없었다.
“화이도 물 좀 마시지 그래?”
나는 웃으며 화이를 쳐다봤다.
그동안 화이가 보여 준 여러 가지 신기한 일을 겪다 보니 요정의 샘물에 대한 녀석의 반응이 궁금했다.
‘과연 화이가 요정의 샘물의 가치를 꿰뚫어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나는 기대를 갖고 화이를 지켜봤지만 의외로 녀석은 샘물을 마실 기색 없이 그저 샘물을 빤히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였다.
보글보글보글-!
샘물이 들끓듯 보글거렸다.
마치 뜨거운 물이 끓으며 나타난 현상처럼 샘물 안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왕! 냐옹-!
그러자 갑작스러운 변화에 요정의 샘물 안에 주둥이를 박고 물을 마시고 있던 까미와 누리가 화들짝 놀란 기색으로 얼른 샘물 뒤로 물러났다.
‘왜 이런 일이?’
나 역시 이제까지 이런 현상은 처음 봤기에 놀란 눈으로 샘물을 살펴보다가, 지금의 현상이 화이로 인해 벌어진 것임을 눈치챘다.
요정의 샘물에 처음 데려온 화이.
하지만 요정의 샘물이 화이에게 뭔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보글보글 기포를 흘리고 있는 샘물의 현상이 마치 샘물이 화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샘물을 바라보는 화이의 표정이 심각하기도 했고 어딘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요정의 샘물이 내게는 보이지 않던 반응을 화이에게 보여 주다니?’
선계의 선주였던 나다.
비록 그곳의 일에 대해선 기억을 못하고 있지만. 그런 나에게도 보이지 않던 요정의 샘물이 화이에게 저리 말을 걸듯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뭔가 묘했다.
게다가 화이를 저대로 두면 왠지 녀석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화이야.”
나는 화이를 불렀다.
녀석의 시선을 내게로 돌리면 샘물의 변화가 잠잠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화이가 나를 쳐다보자 보글보글 들끓던 요정의 샘물이 다시 잠잠하게 변했다.
냐아~!
화이가 낮게 울음소릴 흘렸다.
그러고는 뒤를 이어 녀석의 의문이 깃든 음성이 들렸다.
[요정의 샘물이 왜 이곳에 있다냥? 이상하다냥.]화이의 의문에 나 역시 의문이 일었다. 요정의 샘물이 왜 이곳에 있다니?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전에 난데없이 블랙홀 결계가 야산에 형성되었는데 그 안에 요정의 샘물이 등장했다.
그리고 요정의 샘물을 이용하여 나를 해하려던 마령 3호를 소멸시킨 후로 이곳은 이제 나의 차지가 되었다.
[쑥쑥 비료 요정의 샘물과 연관이 있다냥.]나는 화이의 말에 크게 놀랐다.
텃밭의 작물들을 미친 성장 속도를 보여 주고 맛도 기가 막히게 좋게 해 주는 쑥쑥 비료.
그것이 바로 요정의 샘물과 연관이 있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쑥쑥 비료의 재료가 설마 요정의 샘물이 원천?’
화이가 다시 샘물로 고갤 돌렸다.
다행히 좀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샘물이 잠잠했다.
냐아~!
요정의 샘물을 바라보는 화이의 하늘색 눈동자에 그리움이 만연했다. 마치 그리운 고향을 대하는 것처럼.
‘왜 저런 표정을?’
그때 화이가 샘물에 주둥이를 박고 분홍색 혀를 할짝거리며 물을 맛보고 나더니.
냐아~!
화이가 행복한 듯이 웃었다.
하늘색 눈알이 반달로 휘어졌다.
[요정의 샘물 지켜 줘서 고맙다냥.]화이가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요정의 샘물을 지켜 줘서 고맙다고?’
왜 화이에게 이런 인사를 받아야 하는지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튼 오늘 처음 화이를 이곳에 데려왔음에도 요정의 샘물에 대한 화이의 반응도 그렇고, 들판의 야생화에 대해서도 까미와 누리보다 더욱 훤히 알고 있는 화이의 모습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의문은 차차 생각하고. 지금은 요정의 샘물이나 떠 가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노란 달빛초로 만든 깔때기에 샘물을 담았다.
잎사귀를 여러 장으로 촘촘히 엮은 깔때기라 그런지 역시 물은 새지 않았다.
샘물을 뜨고 나자 으레 그렇듯이 지척의 거리에 결계의 입구가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만 가자. 나중에 또 들어오면 될 테니까.”
냐아~!
화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화이를 품에 안고 까미와 누리를 웃으며 쳐다봤다. 까미와 누리도 실컷 들판에서 뛰어다녀서 그런지 만족한 표정이다.
나는 요정의 샘물을 담은 노란 달빛초 잎사귀로 엮어서 만든 깔때기를 들고 녀석들과 함께 결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수상한 야산을 사버렸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