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8
168
푸아악!
샘물 위로 끌려 나온 존재.
역시 짐작했던 대로 샘물 안에 누가 숨어 있었다.
‘여자?’
붉은색 머리칼을 한 존재.
내 손에 머리채를 한 움큼 휘어 잡힌 상태로 샘물 밖으로 강제로 얼굴을 드러내게 된 존재는 뜻밖에도 여성체였다.
이 여자가 고위급 선인이란 말인가.
“어, 어떻게 나를?”
여자도 나만큼이나 당황한 기색이다.
물론 그녀는 내가 느끼는 당황스러움과는 달리 샘물에 은신한 자신을 내가 용케 찾아낸 것이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신력을 온전히 되찾지 못한 나의 능력으로 그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생각일 뿐.
의외로 샘물에 손을 넣자 이질감이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고, 그걸 느낌과 동시에 실타래처럼 풀어헤친 그녀의 머리채를 손아귀에 단단히 휘어감은 것임을.
“넌 누구지?”
나는 여자를 싸늘히 노려봤다.
추측컨대 여자는 선계의 고위급 선인이 분명할 테지만 정확하게 그녀의 입을 통해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왜 죽이려고 하는 건지도 알아내야만 했다.
‘이제 도주로는 막힌 이상 이곳을 벗어나려면 강제로 결계를 부숴야만 빠져나갈 수 있을 터.’
마지막 남은 결계의 출구.
마령들을 상대하느라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유일한 출구가 파괴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그랬기에 이곳을 벗어나려면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억하심정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여자를 놔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진기가 고갈되어 소멸될 터.
‘하지만 만만치 않은 여자이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선계의 고위급 선인답게 만도자가 나를 위해 안배한 야산을 초토화시키고 요정의 샘물이 있는 이곳으로 나를 끌어들여 마령들로 하여금 내 목숨을 노린 여자였다.
만일 내가 마령들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곳에 나는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끌어내서 털어 봐야겠다.’
현재 여자는 상체의 윗부분까지만 샘물 밖으로 드러난 상태였기에 나는 그녀의 움켜쥔 머리칼에 힘을 가했다.
“이이익!”
머리털이 뽑혀 나가는 통증이 일 테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 나는 여자의 거머잡은 머리채에 힘을 가해 그녀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리게 되었고, 그 상태로 여자를 바닥에 거칠게 팽개치듯이 던져 버렸다.
쿠당탕! 털푸덕!
나를 해하려던 여자였기에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허윽!”
그렇게 여자를 샘물 밖으로 빼낸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끙끙거리며 신음을 흘리는 여자의 주위로 움직였다.
여자는 머리칼이 한 움큼 뽑힌 고통에 갖은 인상을 쓰며 양손으로 머리통을 감싸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녀의 고통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손에 들린 한 움큼의 붉은색 머리칼을 바닥의 한곳에 아무렇게 휙 던져 버린 나는 여자를 차가운 눈으로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엔 서양 여자와 흡사한 모습이다.’
여자가 걸친 복식은 특이했다.
머리칼과 같은 붉은색 의복을 걸쳤는데 발목까지 내려오는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소재가 얇은 천이라 그런지 물에 젖어 그녀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지만 지금 나는 나를 죽이고자 했던 여자를 눈앞에 대한 상황이라 흥분 따위를 할 리 만무했다.
“으윽!”
그러자 여자를 차갑게 훑어보는 나의 시선에 그녀가 수치심을 느꼈는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주위로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젖은 머리칼과 의복을 건조시켜 주었다.
그것만 봐도 확실히 보통 여자가 아님을 간파할 수 있었다.
스윽!
여자는 젖은 머리칼과 입은 옷이 마르자 그제야 널브러졌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거의 나와 맞먹을 정도로 장신의 키였고, 이목구비는 서양 인형처럼 꽤 화려한 편이었다.
만일 여자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면 서양 배우로 봐 줘도 충분한 비주얼이긴 했다.
“선계에서 내려온 건가?”
“그렇다.”
“신분은 고위급 선인이겠지?”
“그렇다.”
“이름은?”
“……!”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나를 뜨겁게 노려봤다. 이름을 묻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저런 시선인 건지.
물끄러미 주시하는 나의 시선에 여자가 결국 신분을 밝혔다.
“나는 화족장의 장녀 적화다.”
“네가 화족장의 장녀라고?”
“그렇다.”
나는 그녀가 화족장의 장녀라는 말에 그만 할 말을 잊었다.
새끼 고양이 화이.
화이는 화족장의 막내 여식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여자는 화이의 언니라는 것인데…….
왜 화이의 언니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 당최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자 생각에 잠긴 나를 향해 적화라는 여자가 분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신력을 온전히 되찾지 못한 상태일 텐데…… 어떻게 마령들을 소멸시킬 수 있었던 거지?”
사실 오늘은 일은 그녀 나름대로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도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속에서 끌어 오르는 뜨거운 분노로 그녀는 지금 미칠 것만 같았다.
“적화라고 했던가? 너는 내가 선계에서 선주를 지낸 것을 잊은 건가? 선계에서 마령들을 관리하는 일은 선주의 소관. 그런 마령들의 약점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런 마령들을 이용하여 나를 처리하려 했다니 실로 어리석은 계획이었다.”
“이이익!”
적화는 내 말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는지 이를 악물고 거머쥔 주먹을 부르르 떨어 댔다.
‘저건?’
그런 그녀의 손목에 찬 묵색 팔찌가 보였다.
척 보기에도 보통 팔찌가 아님을 의미하듯이 팔찌에서 신비로운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기운처럼 여겨졌다.
‘마령들을 다스리는 팔찌.’
어찌 내가 팔찌의 용도를 기억하는지 몰라도 지금 순간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리고 팔찌의 기운을 감당하려면 고위급 선인에 해당하는 신력을 지니지 않고선 팔찌를 함부로 착용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났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적화의 손목에 찬 팔찌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신력이 고위급 선인으로 봐주기엔 약간 역부족이라는 뜻이리라.
상급 선인보다는 높지만 고위급 선인으로 봐주기에는 신력이 좀 떨어진다는 것.
그런 상태에서 만도자의 안배로 내게 건네진 야산을 초토화시키고 요정의 샘물까지 망쳐 버리고, 거기에 팔찌를 이용하여 마령들을 이곳에 소환까지 했으니 지금 말은 안 해도 그녀의 기혈이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겨우 상급 선인에 준하는 나의 신력을 감당하지 못해 샘물 밖으로 이리 머리채를 휘어 잡혀 끌려 나오게 된 것임을.
“선계에서 화족장은 무릉도원을 관리하는 가문으로 알고 있다. 그런 네가 감히 선주의 팔찌를 훔쳐 나를 해하려는 죄는 영혼이 소멸되어도 마땅한 죄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뭐라?”
적화는 이미 자신이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죽음을 받아들인 분위기였다.
눈앞의 존재는 선계의 선주.
그런 상대를 해하려한 일은 영혼이 소멸되어도 마땅했다. 그리고 이 일로 선계의 화족장에게도 피해가 갈 터. 그리고 이곳 세상에 몰래 선주를 따라 내려온 동생에게도 안 좋은 피해가 끼칠 것임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선계의 선주를 사랑했다.”
“뭐, 뭐라고?”
“하지만 선주는 나를 무시했다. 내가 선주의 화원을 맡고자 했지만 선주는 나대신 막내 설화를 택했다. 내가 선주를 사랑하는 감정을 알고 일부러 나를 조롱하듯이 설화를 택한 것을 알고 있다.”
“그게 무슨…….”
기억나지도 않는 선계의 일.
하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기에는 그녀의 말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까 네 말인즉슨 선주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다는 나의 눈빛에 적화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주 오랜 세월을 그대만을 지켜봤다. 그대의 짝이 되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였다. 그저 그대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는데…… 큰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건만…… 그대는 내가 아니라 설화를 택했다.”
“흐음, 선계에서의 일은 기억나지 않기에 뭐라 정확한 답변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하여간 설화를 선택한 것은 내가 아니라 화족장의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보다는 설화가 지닌 기운이 화원을 맡은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이곳에선 새끼 고양이 화이는 선계에서는 화족장의 막내여식인 설화라는 존재였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과 같은 그녀는 자연과 친화적인 성향이었기에 화원 관리에 매우 잘 어울렸지만, 지금 눈앞의 적화는 화족장의 여식답지 않게 나무와 풀과 꽃을 매만지는 일보다는 전투에 특화된 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설화를 그대에게 보낸 것이 그대의 결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택이었다고?”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설화가 지닌 기운과 적화 네가 지닌 기운을 생각한다면, 만일 내가 화족장이라고 할지라도 너 보다는 설화를 화원 관리의 적임자로 정했을 터.”
“하아!”
적화의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여동생에 대한 질투. 사랑했던 선주에 대한 미련.
그런 것들이 쌓여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그녀는 마령을 부리는 팔찌를 손에 넣게 되자 선주를 골탕 먹일 생각에 이곳 세상에 선주 몰래 마령을 풀어 버리게 되었다.
뒤늦게 마령옥에서 마령이 탈출한 것을 눈치챈 선주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다급히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적화는 선주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기 직전에 선주가 마신 차에 기억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성분을 집어넣고 말았다.
화족장 가문에서만 재배하는 특별한 영초로 그걸 첨가한 차를 마신 존재는 오랜 기간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살게 된다.
적화가 그런 짓을 한 이유.
그녀는 선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선주와의 사랑을 인간 세상에서 이룰 생각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선주가 선계를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고자 했지만, 선주가 마신 차를 눈치챈 막내 설화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인간 세상으로 뛰어든 것이다.
화족장의 여식으로 두 명이나 선계를 비울 수가 없다는 것에 그녀는 통탄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녀로선 영혼 소멸을 감수하면서 인간 세상에서 선주와 달콤한 사랑을 나누겠다는 욕심에 저지른 짓이 설화가 선주를 구하겠다고 끼어들게 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선계로 돌아온 만도자가 선주와 마령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일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은 궁지에 몰리게 된 적화는 사건을 은폐하고자 할 수 없이 선주를 죽일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랬는데 모든 것이 나의 오해로 비롯된 일이었다니…….”
감히 성스러운 선계의 선주의 기억을 빼앗고 이곳 세상에 있어서 안 되는 마령들을 인간 세상에 풀어 버리고, 심지어 마령을 부리는 팔찌를 이용하여 선주를 죽이려 한 죄는 영혼이 소멸되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적화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이 되던 찰나.
스르륵! 스륵!
하얀 도포자락을 펄럭이는 신선풍의 두 명의 인물이 이곳에 나타났다.
눈에 익숙한 하나는 만도자였고, 옆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물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신선한 수목의 냄새에 대충 그가 누군지 짐작이 가긴 했다.
‘설마 화족장?’
수상한 야산을 사버렸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