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9
169
“만도자! 선주님을 뵙습니다!”
먼저 낯이 익은 만도자가 나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춰 보였고, 이에 화족장으로 여겨지는 노인이 뒤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화족장! 선주님을 뵙습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다른 노인은 화족장이 맞았다.
만도자와 화족장은 선계에서 고위급 선인들이다. 둘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가 그윽하기 그지없었다.
예기치 못한 이들과의 만남에 나는 나직이 침음을 삼킨 채 그들을 쳐다봤다.
“흐음.”
선계의 거물급이라 볼 수 있는 두 노인이다.
하지만 선계에서 선주로 지냈던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나로선 이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것이 좋을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탓이다.
‘하여간 이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바로 적화 때문일 터.’
그러자 두 노인이 이곳에 나타난 순간 잔뜩 위축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던 적화는 이미 바닥에 납작 부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도 이곳에 부친인 화족장이 이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화족장의 가문이 멸문지화에 처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녀가 나를 향해 읍소하듯이 나왔다.
“제가 선주님께 저지른 짓은 단독으로 저 혼자 벌인 일입니다. 화족장이신 저희 아버지와 막내 동생 설화는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그러니 벌을 내리시려면 제게만 내려 주시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 생각합니다.”
적화로선 어떡하든지 가문이 멸문지화에 처하는 것은 막아야만 했기에 읍소를 했지만.
그런 적화의 읍소가 끝나자 이곳에 내려올 때 이미 단단히 각오를 한 듯이 눈을 부릅뜬 화족장이 얼른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적화가 선주님께 그런 무례한 일을 벌인 것은 모두 소신이 부덕한 탓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선주님께선 저희 화족장 가문에 내려 주신 능력들을 폐하시고 저를 비롯하여 화족장의 피를 물려받은 제 모든 여식들의 영혼을 소멸시키시는 것이 마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화족장의 말을 들은 적화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가 실감 나는지 고개를 숙인 상태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선주를 연모하는 마음에 비뚤어진 욕심을 부린 것이 결국 화근이 되어 이제 그녀 가문을 멸문지화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선주님.”
그러자 스스로 화족장 가문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화족장의 단호한 태도에 만도자가 나를 조심스레 눈치를 보듯이 불렀다.
그런 만도자를 나는 지그시 쳐다봤다.
야산을 내게 물려준 노인이 알고 보니 선계의 선인이었다.
뒷마당 창고에 숨겨진 지하 석실, 거기에 신비로운 야산까지…….
나를 위해 이곳 세상에 그런 것을 안배해 놓은 고마운 만도자이긴 했지만, 지금 나는 마령들을 소환하여 나를 해하려던 적화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못한 상태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내게서 다소 차가운 음성이 튀어나온 것에 만도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만도자로선 이곳에 화족장과 함께 내려온 의도가 있을 터.
필시 화족장의 가문이 멸하는 것은 막아 볼 목적으로 따라왔을 것이다.
“선계에 존재하고 계실 선주님을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만들고, 심지어 선주님의 기억을 잃게 만든 것을 비롯하여 하찮은 마령들로 하여금 선주님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 죄는 영혼을 소멸시켜 더는 환생의 강을 건너지 못하게 만들어도 마땅한 크나큰 중죄이긴 합니다. 하나 오랜 세월 화족장의 가문이 선계를 위해 해 온 일을 생각하면 선주님께서 죄를 지은 적화는 벌하되 화족장의 가문만큼은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하옵니다.”
하지만 만도자가 화족장의 가문을 비호하듯이 나선 것에도 화족장 노인은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만도자의 말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선주님! 저희 가문을 생각하는 만도자의 배려는 실로 감사하지만 이건 자비를 베풀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희 가문을 멸하시어 선계의 선인들에게 이번 일을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사려되옵니다.”
화족장은 이미 이곳에서 소멸될 것을 각오한 태도였다. 그러자 워낙 단호한 화족장의 분위기였기에 만도자도 더는 그를 비호를 하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런 고로 이제 적화와 화족장 가문의 처리 문제는 나의 결정에 따라 처리가 될 터.
하지만 영혼 소멸…… 말이 쉽지 영혼이 소멸되면 두 번 다시는 환생의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된다.
즉,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떻게 처리를 한다.’
적화가 저지른 짓을 떠올리면 이건 보통 죄가 아니긴 했다. 이건 선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라 볼 수 있다.
그랬기에 화족장 가문을 당장 멸해도 마땅했고, 화족장도 그걸 원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화족장 가문이 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화족장 가문의 혈육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멸했다간 엄청난 파동이 밀려올 것이 당연하다.’
화족장의 가문에서는 대대로 무릉도원의 관리를 맡아 왔다.
그랬기에 선계에서 화족장의 가문이 사라지면 당장 선인들의 신력을 축적하는 것과 밀접한 영향이 있는 무릉도원에 지장이 초래할 것이다.
물론 다른 화족장을 선발하여 무릉도원의 관리를 맡기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당장은 그 능력을 계속 이어 가기 어려울 터이니 선계의 기운을 더는 예전처럼 유지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런 죄 없는 화이. 언니가 저지른 짓을 눈치채고 나를 구하고자 인간 세상으로 따라 내려온 화이는 또 무슨 죄냐.’
솔직히 선계의 기억이 없는 지금 나의 상태로선 무릉도원이 어떻게 되는 일보다는 화이가 죽게 된다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내가 선주로서 기억을 되찾기까지 녀석은 내 곁에서 평생을 새끼 고양이가 되어 붙어 있을 작정이었을 거다. 그런 화이를 내 손으로 소멸시키는 일은 차마 상상하기 싫다.
그렇게 내가 적화와 화족장 가문의 처리를 놓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찰나.
“크으윽!”
갑자기 바닥에 부복하고 있던 적화에게서 고통에 겨운 신음이 쥐어짜듯이 새어 나왔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왠지 그녀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신음을 내지 않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
그러자 화족장은 적화의 쥐어짜는 신음에 얼른 바닥에 몸을 낮춰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그만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고 말았다.
미워도 자식이었다.
게다가 적화에게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챈 화족장의 목소리가 떨리듯이 흘러나왔다.
“설마…… 화독단을 삼킨 것이냐?”
화족장의 떨리는 시선에 적화가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간신히 아비의 얼굴을 쳐다봤다.
차마 화독단을 삼켰다는 말은 못하고 죄스러운 눈길로 아비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허어! 화독단을?”
그러자 화독단이 대체 무엇이기에 만도자의 표정도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화독단은 만도자의 장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만도자가 나를 향해 얼른 설명해 주었다.
“화독단은 선계에서도 금기시 되던 고약한 독단입니다. 화독단을 취할 경우 영혼이 소멸된다는 점도 있지만, 몸속의 장기를 모두 녹아내릴 때까지 그 고통을 감수해야만 영혼이 소멸될 수 있기에 선계에서도 최악의 독단으로 분류하여 금기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도자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화독단의 용도를 알게 되자 놀란 표정으로 바닥의 적화를 내려다봤다.
이곳에서 나를 처리할 생각이었던 적화는 만일의 경우 일을 실패할 경우 화독단을 취하고 자결할 목적으로 그걸 가져온 모양이다.
‘대체 화독단을 언제 삼킨 거야?’
내가 적화에 대한 처리를 결정하기 전에 이미 그녀 스스로 화독단을 삼켜 버린 상태였다.
몸속의 장기를 모두 녹아내리게 만든 후에 영혼이 소멸된다고 했으니 실로 지독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적화가 그런 화독단을 삼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적화는 자신의 잘못으로 가문을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벌을 달게 받겠다는 의미.’
쉽게 영혼이 소멸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최악의 고통을 겪는 것을 택했다.
그 저의에는 가족들은 선처해 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터.
“크으윽!”
적화는 쥐어짜는 신음을 조금씩 흘리고 있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기에 억지로 고통을 참고 있는 기색이다.
“서, 선주님…… 아버지와 동생을…… 살려 주세요. 제발…….”
몸속의 장기가 녹아내리는 고통은 겪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참기 힘든 고통일 것은 분명했다.
“…….”
그리고 화족장 속도 말이 아닐 터.
그도 적화가 화독단을 삼킨 이유를 눈치채고 있을 테니 그저 고통에 겨워하는 딸을 보고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
만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 역시 속수무책.
벌을 받아 마땅한 적화였고, 그녀가 화독단을 삼킨 것에 내심 화족장 가문에 더는 피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다.
‘빌어먹을!’
나는 씁쓸히 침음을 삼켰다.
나를 해하려던 적화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죽어 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유쾌한 기분만은 아니었기에.
스르륵-!
그렇게 적화는 한참 동안 몸속의 장기가 모두 녹아내리기까지 생지옥을 겪게 되었고, 결국은 영혼이 소멸되어 자취를 감춰 버렸다.
땡그렁!
바닥에 떨어진 묵빛 팔찌.
마령들을 부리는 도구였다.
“받으시지요.”
적화가 소멸되기까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참아 온 화족장이 팔찌를 주워 내게 건넸다.
그런 화족장의 동공은 핏발이 잔뜩 곤두섰고, 입술에는 피가 맺혔고, 팔찌를 건네는 손바닥도 피로 흥건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딸이 죽어가는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어찌 쉬웠겠는가.
어쩌면 죽어 가는 적화보다 살아 있는 화족장의 마음이 더욱 지옥이었을지도.
“이건 만도자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화족장에게 받은 묵빛 팔찌를 만도자에게 건넸다. 어차피 이곳 세상에 내려온 마령들은 모두 처리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선주님이 다시 선계로 올라오시는 그날까지 팔찌를 제가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만도자는 내가 건넨 묵빛 팔찌를 품안에 간직하고 나서 다시 나를 쳐다봤다.
화독단을 취하고 영혼이 소멸된 적화였지만 남은 화족장의 가문에 대한 처리가 남았기에.
“선주님, 화족장은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
나는 만도자의 질문에 적화가 사라졌던 그곳에 다시 부복한 화족장을 쳐다봤다.
‘화족장을 없애는 것보다는 살려 두는 것이 선계를 위해서 좋은 일일 터.’
적화의 영혼이 소멸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화족장이기에 그걸로 벌은 달게 받은 셈이라 여겼다.
아비로서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것이니 더한 벌도 없을 터.
그리고 충성심이 강한 화족장의 성격답게 적화가 소멸된 것에 내게 어떤 원망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에 나도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적화가 선주를 연모했다는 것.
선주는 적화의 감정에 관심이 없었을 테지만 그녀에게 뭔가 여지를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선의로 베푼 호의가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니.
“화족장! 적화의 영혼이 소멸된 것으로 화족장 가문에 대한 벌은 내리지 않을 생각이오. 대신 초토화된 야산과 요정의 샘물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세요.”
야산과 요정의 샘물.
그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으로 화족장 가문에 대한 벌을 대체하기로 했다.
수상한 야산을 사버렸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