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1
171
왕! 냐옹! 냐아~!
야산을 내려오자 까미, 누리, 화이가 보였다.
요정의 샘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있었다.
더구나 초토화되었던 야산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에 텃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녀석들을 나를 발견하자 반색하여 달려왔다.
와락!
나는 팔을 벌려 세 녀석을 품 안에 안고 잠시간 부비부비를 해 주었다. 내가 만일 요정의 들판을 벗어나지 못했더라면 녀석들은 평생토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 돌아왔당. 이제 괜찮당.]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냥.] [걱정했다냥. 기다리고 있었다냥.]녀석들의 흥분한 분위기였다.
나의 말 때문에 차마 야산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텃밭에서 잔뜩 불안한 마음으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녀석들을 안심시켜 주고자 번갈아 가면서 녀석들 몸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이제 모두 괜찮아졌어. 요정의 샘물도, 야산도…….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히 이곳에서 일어난 변화는 마을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다.
텃밭과 집 주변의 경관은 야산에 일어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기에 이곳에서 좀 더 떨어진 마을은 더 문제가 없을 터.
[야산 올라가겠당.] [살펴보고 오겠다냥.] [나도 따라가겠다냥.]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망진창으로 초토화되었던 야산이 거짓말처럼 멀쩡해진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녀석들이 야산을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 가 보고 싶으면 가 봐.”
이제는 녀석들이 야산에 올라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왕! 냐옹! 냐아~!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녀석들이 신난다고 야산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 화이.
녀석들 중에서 가장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적화가 소멸된 것을 화이에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화이는 새끼 고양이의 상태로 내 곁에서 지내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이라 어쩌면 언니 적화의 얘기를 꺼내도 화이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소신의 둘째 여식 설화가 선주님을 따라 이곳 세상에 내려온 것은 선주님을 돕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신의 욕심이라 생각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적화에 대한 소식은 설화가 알지 못하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설화가 이곳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선주님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입니다.]화족장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둘째 여식 설화를 위해 내게 간곡히 당부한 내용이다.
나는 화족장의 당부도 있고 지금 당장 화이에게 적화에 대한 일을 알려도 좋을 것이 없다 판단했기에 적화가 내게 저지른 죄에 대해선 선계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비밀로 부치기로 했다.
꼬꼬꼬! 꼬꼬!
까미, 누리, 화이가 텃밭에서 사라지자 이번엔 주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던 닭들이 나의 주위로 몰려들어 난리였다.
처음부터 텃밭에 있던 닭들은 안전한 상태이긴 했지만 야산이 초토화되면서 주변의 기운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불안정하게 변했을 것이니 닭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을 것이다.
“다들 신경 써 줘서 고맙다. 이제 야산을 모두 고쳤으니 마음 놓고 먹이 활동을 해도 좋을 거야.”
닭들과 한바탕 인사를 나누고 나자 마침 주위로 다가오는 차 한 대가 내 눈에 보였다.
끼이이익!
차에서 내린 중년 사내.
백한성이 이곳을 찾아왔다.
초토화되었던 야산이 복원이 되는 과정을 백한성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가 부리던 하수인이 동네에 상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네 주민들에게는 야산이 초토화되는 과정이 아주 미약한 지진이 일어나는 정도로 그쳤을 것이나 하수인은 야산에서 일어난 변고를 금방 눈치챘을 것이라 여겼다.
‘백 팀장님이 저리 놀란 표정으로 이곳을 달려오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
평소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양반이건만 지금은 넥타이도 풀어헤친 채 잔뜩 창백해진 안색이다.
그는 하수인에게 보고를 받자 차를 몰고 왔을 터였다.
아마 오는 동안 신호 위반을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른다.
‘반갑군.’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곳의 동물들 못지않게 내게는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였다.
요정의 들판에서 만일 마령들과의 싸움에서 패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나는 없을 터.
괜히 반가운 마음에 아까 동물들에게도 그러했듯이 다가오는 백한성을 덥석 끌어안고 말았다.
어버버거리면서도 내게 벗어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의 심장박동이 쿵쿵 울려 대는 게 느껴졌다.
나를 크게 걱정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백한성을 품에서 떼어 놓자 그가 멋쩍고도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마다요.”
“옷이…….”
나의 머리카락은 잔뜩 헝클어지고 몸에 걸친 의복은 마령들과의 전투로 인해 여기저기가 마령들 피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상태였지만 몸은 아주 건재한 편이었다.
“흐음. 음.”
백한성은 나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듯 훑어보더니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걱정했습니다.”
야산이 위치한 일대에 상주하고 있던 백한성이 부리는 하수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선계에서 그가 부리던 수족.
야산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기에 일부러 수족을 야산 일대의 동네에 상주시킨 상황이다.
그랬는데 오늘 갑자기 야산의 수상한 진동을 눈치챈 수족이 그에게 즉각 연락을 했다.
이제까지 이런 기현상은 처음이었기에 수족의 보고를 듣자 눈앞이 아찔했는데……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웃으며 백한성을 쳐다봤다.
그가 이곳까지 어떤 마음으로 달려왔을지 알고 있기에.
“이제 모두 정리가 되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혹시 마령들이 나타나기라도 한 것입니까?”
“그건 차차 말씀드릴 테니 일단 백 팀장님에게 줄 것이 있어요.”
“줄 것이라고요?”
“잠시만요.”
나는 품 안에 간직하고 있던 작은 목갑을 꺼내 백한성에게 내밀며 말했다.
“받으세요.”
“그게 무엇입니까?”
“열어 보면 알 것이라 하더군요.”
내게서 묵빛이 감도는 작은 목갑을 건네받은 백한성은 안 그래도 목갑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향기를 감지하자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
백한성은 목갑을 열어 보지 않아도 안에 들어 있는 물체를 익히 짐작했는지 그의 떨리던 눈빛이 차차 득도한 고승처럼 한없이 깊어 보였다.
[백가 놈에게 이걸 전해 주십시오. 선주님을 이곳 세상에서 계속 안전하게 보필하려면 이것이 필요할 겁니다.]화족장이 이곳을 떠날 때 화이에 대한 당부를 한 것처럼, 만도자는 이곳에 남긴 백한성을 염려하여 떠날 때 내게 목갑을 건네주고 갔다.
사실 정보창이 뜨지 않는 목갑의 상태였기에 목갑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내 물건이 아니라 여겼기에 열지 않았다.
그런데 백한성의 표정으로 보아 그는 목갑에 들어 있는 물건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는 기색이었다.
딸칵-!
백한성이 목갑을 열었다.
그러자 주위로 천하에 다시없는 귀한 영약에서나 느껴질 법한 신비롭고 청아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흐음, 이 정도의 향기라면 엄청난 영약일 것이 분명하군.’
그때 백한성이 목갑 안에 들어 있던 물체를 조심스레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걸 가만히 주시했다.
물체의 크기는 새끼손톱만 한 정도였는데 흑요석처럼 까맣고 반짝반짝 빛을 뿜어냈다.
“묵단…….”
백한성이 나직이 읊조렸다.
선계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았던 그가 신력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했던 묵단.
그걸 이곳 세상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것에 묘한 기분을 느낀 탓인지 잠시 할 말을 잊었던 그가 다시 내 얼굴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혹시 만당 어르신께서 이곳을 다녀가신 겁니까?”
“맞아요. 만도자가 백 팀장님께 전해 달라고 제게 주고 간 것인데 환단 명칭이 묵단인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대답을 흘린 백한성의 눈빛에는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선계에 있을 만도자가 이곳까지 내려왔다는 말인가.
“자세한 얘기는 집에 돌아가서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 보다시피 제 몰골이 이런 모양이라.”
“……알겠습니다.”
***
집으로 들어왔다.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벗은 옷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기에 죄다 쓰레기봉투에 넣고 곧장 묶어 버렸다.
자색 환상초 차를 두 잔 준비해서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백한성과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찻잔의 보라색 찻물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잠자코 질문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만 있던 백한성의 눈빛에 서서히 인내심이 고갈되는 기색을 느끼자 나는 피식 웃고는 야산과 요정의 들판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야산이 초토화되자 저는 블랙홀 결계를 통해 요정의 들판으로 들어서게 되었죠. 선계와 끈이 이어진 야산의 연못이 더는 기능을 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났죠. 그래서 요정의 샘물까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곳으로 들어갔는데…….”
잠시간 얘기가 이어졌다.
나는 요정의 들판에서 마령 6호와 마령 7호를 소멸시킨 일을 비롯하여 그곳에서 적화를 만나게 된 것과 그리고 화족장과 만도자가 나타난 일도 털어놓았다.
그렇게 내 얘기를 모두 들은 백한성은 적화가 그동안 내게 벌인 짓거리를 알게 되자 크게 분노하는 태도를 보였다.
“선주님이 이곳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 화족장의 여식인 적화가 꾸민 짓거리였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하면 화족장의 가문은 어찌 처리하신 겁니까?”
백한성은 경악스러운 얘기를 들은 탓인지 잔뜩 감정이 격양된 기색이다.
그의 감정이 이해는 되었지만 나는 화족장 가문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얘기를 들은 백한성은 나의 처사에 불만이 이는 기색으로 주먹을 부르르 떨어 댔다.
“그러니까 화족장의 여식이 저지른 엄청난 죄를 고작 요정의 들판과 야산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으로 퉁 치시겠다는 말입니까?”
“선계에서 화족장의 가문이 맡은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적화가 제게 한 짓을 생각하면 쉽게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나 화족장 가문을 멸하면 무릉도원을 이용하는 선인들이 많이 곤란해질 겁니다. 그리고 적화는 스스로 화독단을 삼키고 최악의 고통을 겪은 후에 영혼 소멸 과정을 거쳤어요.”
백한성도 화독단을 알고 있는지 표정이 짐짓 굳어졌지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이십니다. 화족장 가문을 멸하여 일벌백계하심이 옳으신 처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돕고자 이곳 세상에 따라 내려온 죄 없는 화이를 소멸시켜야만 해요.”
“…….”
“저는 화이를 죽일 수 없어요. 과거의 기억을 포기하고 그저 내 곁에 있겠다는 일념으로 새끼 고양이의 삶을 택한 화이입니다. 그런 화이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어요. 그러니 백 팀장님께서도 화족장 가문에 대한 처리가 성에 차지 않더라도 더는 언급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로선 많이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내가 강하게 나오자 백한성은 더는 토를 달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건 참고하셨으면 해서 하는 말이지만 화이에게는 적화의 일에 대해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선계로 올라갈 때까지는 저도 그렇고 화이도 이곳의 삶을 충분히 즐기다가 갔으면 하거든요. 그리고 그건 백 팀장님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백한성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만도자가 그에게 묵단을 넘긴 것, 이곳 세상에서 나를 잘 보필하라는 뇌물일 터.
수상한 야산을 사버렸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