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
처음 보는 중년사내였다.
단정한 실버톤의 정장을 걸치고 손에는 서류 가방을 소지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호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차림새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도 대기업 이사급 정도는 될 법한 높은 존재처럼 여겨졌기에 호기심이 느껴졌다.
‘누구인데 여길 찾아온 걸까.’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중년사내가 평상으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백한성 변호사라고 합니다. 전에 이곳에 사시던 왕충식 어르신께서 강산 씨에게 전달을 부탁한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백한성의 입에서 왕충식 노인이 언급된 순간 나는 그가 만도자와 관련된 인물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백한성이라고?’
난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백한성은 만도자 장부에 기록된 인물로 만도자가 선계에서 부리던 수족인 셈이다.
공식적인 직함은 변호사.
하지만 그동안 만도자가 이곳 세상에서 지낼 때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서 처리해온 다재다능한 존재라고 보면 된다.
만도자가 다시 선계로 올라갈 때 백한성을 데려가지 않고 일부러 이곳에 남긴 이유는 나를 돕도록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타이밍이 절묘하군.’
어제 우연치 않게 호텔에서 기택을 만난 것에 나도 슬슬 앞날에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알아서 백한성이 찾아왔으니 이것 또한 만도자의 배려인가 싶기도 했다.
“감자가 아주 맛있어 보이네요.”
백한성은 소개가 끝나자 쟁반에 담긴 포슬포슬하게 삶긴 감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먹는 것을 그리 밝히는 인상은 아닌 듯싶은데 감자를 보고 저런 것을 보면 확실히 이곳의 감자에 사람을 홀리는 뭔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백한성이 나의 아군이라 생각하자 경계를 거두고 웃는 얼굴로 그에게 감자를 함께 먹기를 권했다.
“이리 오셔서 함께 드세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백한성이 아주 기쁜 듯 웃었다.
그러다 이곳에 먼저 와서 감자를 먹고 있던 이장 박동수를 의식한 듯이 슬쩍 이장을 향해 합석을 해도 좋겠냐는 의미로 쳐다봤다.
이장 역시 눈치가 빠른 자였다.
감자도 충분히 먹었고 손님도 찾아왔으니 그만 일어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장이 평상에서 엉덩이를 떼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흠흠. 손님도 오셨으니 나는 그만 가봐야겠네.”
“오늘 감자 수확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려. 나중에 보세나.”
“트렉터 있는 곳까지 배웅해드릴게요. 가시죠.”
이장을 트렉터가 세워진 곳까지 배웅을 하고 다시 앞마당으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백한성은 감자를 먹지 않고 평상에 얌전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백한성의 우측으로 까미가 몸을 곧추세워 선홍색 눈알로 빤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좌측에는 누리가 평상에 엎드린 자세로 초록색 눈알을 빛내고 있었다.
‘녀석들.’
까미와 누리가 너무 귀여웠다.
내가 백한성을 평상에 앉도록 했으니 주인이 허락한 자는 분명했지만 처음 보는 자였기에 내가 올 때까지 그가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단단히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녀석들이 처음 보는 사람이라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이쪽 잘생긴 까만 녀석은 까미. 그쪽 우아한 노란 고양이는 누리라고 합니다.”
내가 까미와 누리를 소개하자 백한성이 까미에 부쩍 관심을 나타냈다. 하긴 그는 만도자의 수족이었으니 흑랑의 새끼인 까미가 이곳에 있는 것이 신기하긴 할 터.
“신수 흑랑의 새끼를 이렇게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감개무량입니다. 아직 새끼라 그런지 귀여운 맛이 있네요.”
산속의 연못가에서 처음 까미를 발견할 당시만 해도 눈도 채 뜨지 못하던 꼬물이 상태였지만 지금은 제법 형아처럼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백한성 입장에선 선계에서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흑랑을 봤을 테니 이곳의 까미가 귀엽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왕!
하지만 까미가 백한성 말에 반발하듯이 나왔다.
내가 귀엽다고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백한성이 자신을 귀엽다고 하는 말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우리 까미. 아주 똘똘하고 산도 잘 오르고 볼일도 잘 가리죠.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른 녀석이죠.”
나로선 그런 까미의 존심을 세워줄 필요가 있었기에 한바탕 녀석의 칭찬을 늘어놓다.
살랑살랑-
그제야 녀석이 백한성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곤 나를 향해 신난다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푸훕! 아! 죄, 죄송합니다! 뭔가 모르게 까미와 강산 씨가 매우 잘 어울려서 말이죠.”
백한성으로선 지금의 상황이 뭔가 재미가 있었던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간, 급히 나를 의식하여 손사래를 치며 사과를 해댔다.
“아닙니다. 감자나 드시죠.”
“넵! 잘 먹겠습니다!”
백한성이 활짝 웃고는 감자를 하나 집어 들고는 천천히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고양이 누리는 백한성이 까미에게만 관심을 보인 것에 슬쩍 기분이 상했는지 백한성에게 꾹꾹이도 해주지 않고 엎드려만 있었다. 그런 누리를 달래듯이 내가 털을 쓸어주자 그제야 기분이 풀린 듯이 녀석이 골골거렸다.
그제야 백한성도 누리에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눈치채곤 서둘러 칭찬을 입에 올렸다.
“고양이가 준영물급은 되겠군요. 털도 윤기가 감돌고 생긴 모습도 전혀 길고양이 같지 않습니다.”
역시 만도자 수족답게 백한성은 고양이 누리를 단번에 파악했다. 누리는 자신을 알아봐준 백한성을 용서하겠다는 의미인지 표정이 다소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잠시 후. 삶은 감자 하나를 후딱 해치운 백한성이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듯이 말했다.
“정말 이곳의 감자 맛은 특별합니다. 실은 왕충식 어르신이 이곳에 계실 때도 지금 철이면 찾아와서 삶은 감자를 먹고 가곤 했거든요.”
백한성이 만도자 수족임을 다시 한 번 의미하는 말에 나는 이제 돌려 말할 필요가 없기에 본론을 꺼냈다.
“백한성 씨! 선계로 올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이유가 제 조력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인가요?”
백한성도 솔직하게 나왔다.
“맞습니다. 만당 어르신께서 강산 씨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써서 잘 모시라는 당부를 하고 가셨습니다.”
선계에서 만도자 직급은 만당.
선주를 보필 하는 수장이란 의미.
하여간 선계와 연관된 인물을 이렇게 이곳 세상에서 만나는 일은 처음이긴 했지만 백한성을 대하는 것이 그리 불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충신 만도자가 남긴 인물이라 그런지 어딘지 편했다.
그러던 바로 그 순간.
이건 또 무슨 현상인 걸까?
나를 바라보는 백한성 얼굴이 살짝 상기된 듯도 싶었는데 그의 머리 위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
이제까지 처음 겪는 현상이긴 했는데, 이건 마치 백한성이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시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혹시 까미와 누리도?’
나는 감자 속살을 조금 떼어서 먼저 까미의 입에 넣어 주면서 녀석의 반응을 살펴봤다.
[좋음. 행복함. 편안함.]까미에게서도 단어가 나타났다.
선기가 스며든 감자를 먹어서 좋기도 하고 지금 분위기가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이번엔 누리도 볼까.’
나는 누리에게도 감자 속살을 조금 떼어서 녀석의 입에 넣어주고는 슬쩍 머리 위를 지켜봤다.
[좋음. 행복함. 나른함.]까미에게 나타난 반응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의 단어가 누리의 머리 위에도 떠올랐다.
‘갑자기 왜?’
짚이는 것은 한 가지.
아무래도 영약으로 담근 술을 마시고 안마 침상에서 극락을 맛보면서 의도치 않게 신력을 갖게 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선계의 존재를 만났다.
그것도 만도자가 나를 위해 이곳 세상에 남긴 조력자. 백한성을 이렇게 만난 것에 내 속에 내재된 선주로서의 능력을 일깨운 것일 수도 있다.
‘이것도 선주로서의 능력인 건가?’
하여간 새로운 능력을 하나 얻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지닌 감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테니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본격적인 얘기는 집으로 들어가서 들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류에 사인을 하실 일도 있고요.”
“그러시죠.”
나는 까미와 누리를 앞마당에서 놀도록 하고 백한성과 집으로 들어와 거실에 자리했다.
“일단 호칭부터 정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칭이라고요?”
“앞으로 제가 섬길 분이신데 계속 이름을 부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산 씨를 앞으로 보스로 호칭해도 되겠습니까?”
“보, 보스요?”
보스라고 하니 괜히 깡패소굴의 조폭보스내지 마피아 두목이 떠올랐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곳에서 선주님이라 호칭할 수는 없으니 정 불편하시면 대표님이란 호칭도 괜찮고요.”
“흐음. 대표라는 호칭이 더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저에 대한 호칭은 편하게 실장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만당 어르신께서도 그렇게 부르셨고요. 사실 제가 맡은 역할이 여러 가지를 총괄하는 일이니 비서실장에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죠.”
백한성은 일 얘기가 나오자 감자를 먹을 때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확실히 전문가의 분위기가 여실히 풍겼다.
“지금부터 제가 대표님께 말씀드릴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보시면 될 겁니다. 첫 번째는 만당 어르신이 이곳 세상에 남기신 재산을 대표님께서 상속 받게 되실 일. 두 번째는 대표님과 연관된 장기택에 관한 일로 보고를 드릴 겁니다.”
뜻밖의 내용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백한성을 쳐다봤다.
만도자가 남긴 재산?
그리고 기택에 관한 것도?
“그럼 첫 번째 내용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서류를 준비했으니 그걸 확인하신 후에 사인을 해주시면 만당 어르신의 재산이 그대로 대표님께 상속이 될 겁니다.”
백한성이 건넨 서류를 살펴봤다.
입이 떡 벌어질 내용들이 아닐 수 없었다. 국내에서 현금부자로 통하던 만조금융의 실세가 바로 만도자였다니?
“대표님께서 만조금융에 대해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국내의 금융권 중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곳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또한 외국의 여러 투자사와 협업을 통해 수많은 이익을 거둬들인 덕분에 외국에선 만조금융을 일컬어 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만조금융 외에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재산과 국내와 외국에 다수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도 앞으로 대표님의 차지가 될 겁니다. 그럼 서류 확인 끝나셨으면 하단에 사인을 해주시면 됩니다.”
만조금융의 상호인 만조.
설마 만조를 목표로 세운 회사?
너무 엄청난 상속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수습한 끝에 겨우 서류에 사인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두 번째 얘기를 꺼내기 전에, 일단 녹음 파일을 먼저 들어보고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한성이 서류 가방에서 USB를 꺼내 그의 핸드폰에 연결했다.
귀에 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바로 기택 그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백한성이 씩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치워버릴 놈은 빨리 정리하는 것이 답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