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53
평창동 본가를 방문했다.
까미와 누리도 데려왔다.
닭들과 병아리도 소중하긴 했지만 닭들은 계란을 얻을 목적으로 키우게 된 것이라 아무래도 까미와 누리에 대한 마음만큼은 아니었다. 까미와 누리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 곁에 있는 자체로 행복했기에 말이다.
“까미. 누리. 차에서 내리자.”
왕! 냐옹-
나는 저택 차고에 몰고 온 벤츠 SUV를 세워 놓고, 까미와 누리를 데리고 양쪽 손에 박스와 바구니를 들고 정원으로 움직였다.
‘이곳이 내 본가라?’
평창동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했다.
대기업 회장 저택 치고 단출한 느낌이다.
2층 짜리 본관 하나와 아담한 별관 하나가 전부다.
다만 건물 뒤로 북한산이 자리하고 있어 경치는 좋긴 했다.
“어서 오너라!”
정원 중간 정도에 장흥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온화한 장흥수의 얼굴을 보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간 평안하셨어요, 아버지?”
내가 장흥수와 인사를 나누자 까미와 누리도 뽀르르 장흥수 곁으로 다가가 반갑다는 기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왕! 냐옹!
녀석들은 우리 집을 찾아왔던 장흥수를 나의 특별한 손님으로 여긴 탓인지 꽤 친화적인 모습으로 재롱을 보여주었다.
“허허허! 그래. 너희도 왔구나. 우리 까미랑 누리. 그 사이에 더 멋져 졌는데?”
장흥수는 녀석들의 재롱이 싫지 않은지 몸을 굽혀 빙그레 웃는 얼굴로 까미와 누리의 등을 몇 번 쓸어주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내 손에 들린 물건을 쳐다보기에 내가 말했다.
“텃밭에서 수확한 자두와 복숭아를 맛 좀 보라고 가져왔어요. 그리고 송로버섯도요.”
“고맙구나. 무거울 텐 데 하나는 이리 다오.”
“그럼 이게 좋겠네요.”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장흥수가 도와주고 싶어하는 시선에 송로버섯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그에게 넘겼다. 자두와 복숭아가 담긴 박스보다는 훨씬 가벼웠기에.
왕! 냐옹-
까미와 누리는 처음 와보는 곳임에도 여기서 아는 얼굴을 만난 것이 기분이 좋은지 저만치 앞서 달려 나갔다.
나는 장흥수와 걸으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기현이 형님은 언제 와요?”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실은 내가 천천히 오라고 했다.”
장흥수는 본가에서 나와 단둘이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흥수 시선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실은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긴 했다.
“이곳에서 제가 태어난 건가요?”
“그래. 한데 네가 태어날 무렵에는 여기 정원은 없는 상태였지. 후원과 본가만 달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야. 그러다 나중에 기현이를 입양하면서 별관도 짓게 되고 앞쪽에 있던 땅도 사들여서 정원으로 꾸몄지.”
“그랬군요. 저는 이곳에서 살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흠흠. 어릴 때 기억이라 그럴 거다.”
장흥수 음성이 살짝 가라앉았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 탓일 것이라 생각했다.
분위기 환기가 필요했기에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후원에 고구마를 심을 거라고 하셨는데 넓은 편인가요?”
“정원보다는 좀 넓긴 하지.”
“어떻게 고구마 모종은 준비해 놓으셨어요?”
“물론이다. 고구마 심는 도구까지 준비를 해 놨으니 염려 마라.”
“고구마를 얼마나 심으실 생각인데요?”
“그냥 조금 손맛을 보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잘 생각하셨어요. 나중에 저희 텃밭의 고구마도 맛을 보셔야 할 테니까요.”
“허허허! 그렇구나.”
장흥수와 얘기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본관의 현관에 이르게 되었다.
집사로 보이는 중년 사내와 가사 도우미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현관 앞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산아. 이곳에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는 노 집사와 현 실장이다. 나와는 가족 같은 사이지. 인사들 하게나. 이쪽은 내 아들이라네.”
“처음 뵙겠습니다. 강산입니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가워요, 도련님!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준수하게 생기셨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장흥수의 소개로 이곳의 집안일을 돕고 있는 노 집사와 현 실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장흥수와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라 그런지 둘 다 인성도 좋아 보이고 나를 대하는 눈빛에 온기가 감돌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내 이름을 ‘장’ 씨가 아니라 ‘강’ 씨로 소개를 했음에도 의문을 갖지 않는 걸로 보아 사전에 이들에게 장흥수가 나에 대해 뭔가 얘기를 해준 모양이다.
“흐음. 여기 강아지와 고양이는 우리 아들이 키우는 녀석들이라네. 워낙 영특한 녀석들이라 손이 가지 않을 테지만 가는 동안까지 신경을 써주도록 하게나.”
“네. 그러겠습니다.”
노 집사와 현 실장은 까미와 누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듯이 빤히 쳐다보다가 뒤로 물러나는 행동을 취했기에 말이다.
“그리고 이건 자두와 복숭아일세. 우리 아들이 재배한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이니 이따가 꼭 후식으로 내놓도록 하게나.”
“네에. 회장님.”
“그리고 이건 서재에 가져다 놓도록 하게나. 중요한 것이니 조심해서 갖다 놓게.”
“네에. 그러겠습니다.”
장흥수는 말끝마다 ‘우리 아들’을 강조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노 집사와 현 실장이 내가 가져온 물건을 들고 사라지자 장흥수가 나를 웃으며 쳐다봤다.
“기현이가 올 때까지 들어가서 차나 마시자꾸나.”
“그럼 아버지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녀석들을 후원에 데려다 놓고 갈게요. 집안보다는 밖에서 노는 것이 녀석들에게 좋을 테니까요.”
“아니다. 함께 가자꾸나.”
“그러시던가요.”
나는 까미와 누리를 데리고 장흥수를 따라 후원으로 향했다.
‘아주 좋은데?’
앞의 정원과는 달리 이곳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운치 있는 연못도 있고 정자도 있긴 했지만 후원에는 해바라기, 코스모스, 접시꽃까지 시골에서 볼법한 그런 정겨운 꽃들이 다양하게 피어있어 한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후원 뒤로는 북한산 자락이 푸르게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아주 보기가 좋았다. 오래 전부터 있던 후원. 어쩌면 이곳은 장흥수에게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왕! 냐옹!
까미와 누리도 후원의 분위기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이곳저곳 구경할 것도 많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놀기도 안성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저기가 텃밭?’
후원의 가장자리에 서너 고랑 정도를 장흥수가 고구마를 심을 텃밭으로 땅을 일궈놓은 상태였다.
그곳에 고구마 모종이며 농기구까지 갖다 놓은 것이 보였다.
“저기에 고구마를 심으려고요?”
“그래. 맞다.”
“농기구는 어떻게 구했대요?”
“노 집사에게 설명을 해주었더니 시장에서 사온 모양이다. 어떠냐? 이곳도 봐줄만 하지?”
“네. 아주 좋네요.”
“여기 와서 살라 하면 살 거냐?”
장흥수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나 마음 한구석에는 나를 데리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저런 질문을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야산을 떠나면 안 되는 이유가 있기에 웃으며 받아 넘겼다.
“아뇨. 여긴 산을 오를 수가 없잖아요. 우리 까미랑 누리가 산을 오르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허허허! 알았다. 그럼 그만 집으로 들어가자꾸나.”
“네. 그래요.”
까미와 누리는 이미 신나게 후원을 뛰어다니며 탐사에 나선 상황이었기에 녀석들에게 잘 놀고 있으라고 손을 흔들어주고는 장흥수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대기업 회장이 사는 집이니만큼 나름대로 잘 꾸며진 가구들과 인테리어였지만, 뭔가 모르게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안주인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터.
그렇게 집안 구경이 끝나자 장흥수와 서재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가 내게 액자에 넣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그녀가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꽤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이나 손때가 잔뜩 묻은 사진의 상태임을 익히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만으로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큰 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특히 아내에 대한 마음.
백한성에게 듣기로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금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장기현을 입양한 채 혼자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이다.
“이 분이 어머니시군요.”
사진 속의 여자 얼굴.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묘하게 여자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과거에 죽어가는 아이 몸에 빙의를 한 나.
그것의 영향일까.
아님 다른 이유라도?
뭔가 기억이 떠오를 듯싶으면서도 나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는 그런 기분도 없지 않다.
“참 고운 분이네요.”
내 말에 장흥수가 어떤 장단도 맞추지 않고 그저 조용히 웃었다. 눈빛이 아련해 보인다. 어머니를 매우 사랑한 장흥수였기에 사진을 보자 마음이 저릿한 모양이다.
난 액자를 내려놓고는 화제를 전환하듯이 나왔다.
“아버지. 송로버섯 바구니 안에 제가 준비한 다른 한 가지가 더 들어있어요.”
“다른 것이?”
“그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리긴 뭣하지만, 만일 그걸 송로 향수에 첨가한다면 특별한 향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문제는 한 사장과 상의를 해봐야겠구나.”
“한 사장님과는 제가 통화하기 그러하니 아버지가 나서주세요.”
“그렇게 하마.”
그때 내 오감에 주변에서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스윽!
고개를 들어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쳐다봤더니 아는 얼굴이 그곳에 서있었다.
‘한 사장님 아냐?’
명성화장품 사장 한성식이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던지 그가 크게 놀란 기색으로 나를 쳐다봤다.
전에 명성화장품을 방문했을 때 나를 명성의 직원으로 소개를 했는데, 내가 떡하니 장흥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 사장! 연락도 없이 웬 일인가?”
장흥수의 당황한 표정을 보아 한성식이 이곳에 온 것은 예정에 없던 방문으로 여겨졌다.
‘차라리 잘 되었다.’
언젠가 한성식도 나에 대해 알게 될 터.
송로 향수에 병아리 똥을 첨가할 생각이었기에, 한성식에게 직접 설명을 해주는 것도 좋았다. 탐구욕이 강한 인물이니 분명 반길 것이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화장품 공장에서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허어! 자네가 장 회장이 과거에 잃어 버렸던 아들이라 이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정말 잘 되었네!”
한성식이 내 어깨를 힘차게 두드려주었다.
눈가가 붉어진 한성식의 모습으로 보아 진심으로 감격한 기색이다.
감정이 정리되자 우린 소파에 앉았다.
“응?”
한성식이 테이블에 있는 송로버섯이 담긴 바구니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천으로 바구니를 묶어서 가져온 상태이나 송로 특유의 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성식의 예민한 후각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혹시 바구니에 들어있는 것이 송로버섯인가?”
“네. 맞습니다. 실은 송로 향수에 관련하여 한 사장님께 제안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설마… 송로버섯 공급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자네인가?”
나는 대답 대신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