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ought a suspicious wild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7
다음날.
KJ케이블 예능국.
나성찬 국장을 찾아온 박서나.
박서나의 미모는 방송국에서도 유명했다.
하지만 꾸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동안 털털하게 차려 입고 다녔다.
오늘은 사표를 내러 왔다.
마지막 날이란 것에 신경을 썼다.
잘 손질 된 헤어 스타일에 세련된 투 피스 정장을 걸친 그녀는 탑급 연예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꽤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성찬은 국장실로 들어선 박서나를 처음에는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박 피디. 연예인인 줄 알았어. 평소에도 그렇게 좀 입지 그랬어.”
박서나는 나성찬과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사표를 내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방송 일을 그만두겠어요. 제 마음이 바뀔 일은 절대 없으니까 오늘부로 빨리 사표 처리해주세요.”
박서나의 단호한 태도에 그제야 나성찬도 그녀를 버리는 카드로 생각했기에 이기적으로 나왔다.
“좋아. 그럼 그만두더라도 하반기 개편 프로 기획까지는 제대로 잡아 놓고 떠나. 그리고 박 피디가 책임지고 강아지랑 고양이 나오는 영상 주인을 잘 설득해서 구 피디에게 넘기도록 하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박서나는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뇨. 못하겠는데요. 하반기 개편 프로를 왜 제가 도와야 하죠? 잘난 구 피디 있잖아요. 그 사람에게 시키세요.”
박서나의 까칠한 반응에 나성찬 국장의 얼굴이 붉게 변해버렸다.
“너 정말 이딴 식으로 나오면 더는 방송 일로 밥 벌어 먹기 힘들 수 있어.”
“협박인가요?”
“협박이라면 어쩔 텐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두 번 다시는 이쪽 계통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 수 있어. 그러니 까불지 말고 순순히 내 말대로 따라.”
박서나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는 나성찬 국장의 모습에 그녀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한편으론 그동안 방송국에서 유일하게 믿고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인성의 바닥을 보게 되자 현타마저 밀려왔다.
‘이런 사람을 믿고 내가 이곳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박서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성찬 국장의 강요로 진행했던 서바이벌 게임이 결국은 시청률 저조로 조기 종결을 하게 되었다. 실패의 책임 전가를 모두 박서나의 능력 부족으로 떠넘기고자 나성찬이 하반기 개편 프로를 구한말 피디에게 몰아준 것을 그녀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성찬의 인성이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성찬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이곳을 떠나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을 터. 이제 더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협박까지 해 대는 나성찬의 비열한 태도에 오기가 일었다.
“국장님! 제 앞길을 막을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 해보세요. 그럼 볼일 끝났으니 이만 가볼게요.”
“뭐, 뭐라고? 야! 박서나! 거기 안서! 이이익!”
얼굴이 벌겋게 변해버린 나성찬의 고함 소리에도 박서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국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복도로 나오자 박서나가 나성찬 국장을 만나고 있다는 말에 부랴부랴 이곳으로 달려온 구한말 피디. 박서나의 아름다운 자태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는 이내 비열한 눈빛을 번쩍거렸다.
“박 피디. 정말 사표 낸 거야? 후회하지 말고 당장 들어가서 국장님께 사과드리지 그래.”
“사과는 개뿔!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힘들게 짜 놓은 기획안 훔쳐간 일. 스텝들 네놈 마음대로 데려가서 나 엿 먹인 일. 촬영 장소 펑크 내게 가게 주인에게 수작 부린 일.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건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능력이 안 되면 방송 일 때려치우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부끄럽니? 제발 적당히 좀 해라.”
“빌어먹을!”
박서나는 주변에 몰려든 스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당당한 태도로 복도를 빠져나왔다.
“와! 완전 대박!”
“진짜 미모 쩐다!”
“박 피디님 사표를 냈다면서?”
“다른 곳에 스카우트 된 건가?”
“능력은 뛰어난 사람이니.”
“이제 예능국도 예전 같지 않지?”
“그나마 박 피디님 때문에 명맥 유지했는데.”
웅성웅성! 술렁술렁-
그러자 구한말 피디는 수군거리는 스텝들 분위기에 창피한 것은 아는지 얼른 국장실로 이동했다. 눈엣가시 같은 박서나가 방송국을 그만둔 것은 그가 원하던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전혀 기죽은 태도가 아니란 것에 뭔가 찜찜했다.
“국장님. 방금 복도에서 박 피디랑 만났는데 사표를 냈다면서요?”
“뭔가 느낌이 묘해. 방송 일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박 피디가 아닐 텐데.”
“혹시 다른 방송국으로 떠날 생각인 거 아닐까요?”
“흐음. 그렇다면 이쪽 계통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방해 공작을 펼쳐야겠군.”
그러자 나성찬을 부채질하듯이 구한말이 영상에 관련한 얘기를 다시 입에 올렸다.
“어제 영상 주인과 통화를 해봤는데 박 피디만 고집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영상을 건네받기는 어림도 없는 일 같고. 그렇다면 하반기 개편 프로에 동물들을 출연 시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흐음. 포기하기엔 좀 아깝지.”
나성찬 국장은 박서나가 기획했던 동물들을 방송에 출연 시키는 기획에 여전히 미련을 갖고 있는 눈치였기에, 구한말로서도 결단이 필요했다.
“국장님 생각이 정 그러시다면 개편 프로를 박 피디가 기획한 것과 비슷하게 동물들을 출연 시키는 방향으로 가죠.”
“박 피디가 보여준 영상에 나오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좀 특별 나던데. 그런 동물들을 구할 수 있을까?”
“얼마나 특별하기에 그러시죠?”
“구 피디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고구마 모종 심는 거 봤나?”
“강아지와 고양이가 고구마 모종을 심는다고요?”
“그래. 완전 기가 막혔지. 그런 강아지와 고양이를 대체할만한 동물들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구한말은 나성찬과는 달리 영상에 나오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지 못한 상태였기에 솔직히 나성찬이 오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롱을 잘 부리는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을 보고 나성찬이 그런 거라고 착각했기에. 그리고 나성찬 분위기로 보아 이미 동물 프로에 필이 꽂힌 상태였다.
‘젠장. 나 국장이 이리 나온다면 골치가 아픈데.’
구한말은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나성찬이 끝까지 박서나 기획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하반기 개편 프로에 박서나 대신 그를 꽂아준 것을 생각하여 감정을 죽이고 비위를 맞춰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박서나 고것도 그래. 떠나는 마당까지 잘난 척이라니. 이익!’
구한말은 아까 복도에서 스텝들이 잔뜩 모인 상황에서 박서나가 자신을 깐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안 좋은 쪽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인물이다 보니 박서나를 엿 먹일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리 프로에선 연예인들이 기르는 애완동물에 컨셉을 맞추면 어떨까요?”
“연예인들이 기르는 애완동물에?”
“매주 돌아가면서 연예인만이 아니라 인기 있는 셀럽들을 섭외해서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해도 재미있을 듯싶고요. 동물들은 말을 못하니까 주인이 대신 방송에서 썰을 풀게 한다면 충분히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호오? 그것도 괜찮은 기획이긴 하겠군.”
나성찬은 박서나가 보여준 영상에 나오는 까만 강아지와 누런 고양이에 여전히 미련이 남긴 했지만 영상 주인도 반대를 하고 박서나까지 방송국을 그만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지금으로선 동물 프로를 진행하려면 구한말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 그나마 대안이긴 했다.
그리고 구한말의 제안이 생각보다 제법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물들만이 아니라 동물들 주인도 함께 방송에 출연 시켜 토크쇼 형식으로 잡아가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질 테니 말이다.
*
한편, 집으로 돌아온 박서나.
KJ케이블에서 박서나와 비교적 친하게 지내고 있던 선배 피디가 그녀가 사표를 낸 것을 뒤늦게 알고는 연락을 했다. 예능국 피디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동생처럼 아껴주던 인물이었다.
-나 국장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참 비열하네. 이렇게 되면 믿었던 박 피디만 바보된 거 아냐.
“차라리 잘 되었어요. 그런 인간인줄도 모르고 그동안 충성한 제가 어리석었죠.”
-근데 박 피디. 재미있는 얘기가 들리던데. 구 피디가 맡게 된 하반기에 개편할 프로에 동물들을 출연시킬 거라는 말이 있던데. 혹시 알고 있는 일이야?
“동물들을 출연시킨다고요?”
-듣자 하니 시청률을 올리고자 연예인들과 셀럽들이 키우는 동물들 위주로 섭외해서 출연 시킬 모양이더라고. 근데 동물들을 방송에 출연 시킬 기획은 박 피디가 먼저 기획한 거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나 국장에게 동물 영상도 보여준 거로 알고 있고. 내 말 맞지?
“네. 맞아요.”
-그럼 구 피디 이 인간 이번에도 또 박 피디가 짜 놓은 기획안을 훔친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훔친 거는 아니지만 기분은 좀 엿 같네요. 아무래도 나 국장의 지시에 구 피디도 동물로 컨셉을 잡은 모양이고요.”
-그래봤자 구 피디 그놈 실력에 제대로 소화를 하겠어? 남의 것 훔치는 거나 잘하지. 박 피디. 차라리 이번 기회에 다른 방송사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겠어. 박 피디 능력 있으니 기다려보면 금방 다른 방송사에서 연락 올 테니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봐.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그래. 힘내고 파이팅!
박서나는 이미 SB케이블과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했지만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여 선배 피디에게 말하지 않았다. 믿었던 국장에게 배신을 당한 후였기에 매사에 더 조심을 하기로 했다.
‘구 피디 그 인간이 하반기 개편 프로에 동물들을 출연 시키겠다고?’
박서나는 입술을 꽉 물었다.
KJ케이블에서 있을 때도 구한말이 해온 짓거리를 생각하면 치가 떨렸는데, 이제는 그곳을 떠난 상황에도 계속 그녀를 엿 먹이려는 구한말의 수작이었다.
‘끝까지 비열하게 나오는군.’
박서나가 기획한 프로는 귀엽고 영리한 까미와 누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힐링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구한말은 동물들을 방송에 출연은 시키겠지만 유명인들인 주인에 초점을 맞추어 토크쇼 형식의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까미와 누리를 믿고 있었지만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강산 씨의 비주얼 정도면 연예인들을 압살하고도 남을 텐데.’
사실 까미와 누리만 나오는 것보다는 그가 함께 나오는 것이 분위기도 좋고 그림도 다양하게 연출 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방송에는 까미와 누리만 나오는 것으로 선을 그은 그였기에 박서나는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기회를 준 것도 감사한데 여기서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 여겼다.
‘저쪽에서 무슨 짓을 하든 흔들리지 말고 초심을 잃지 말자. 나는 그저 까미와 누리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는 거야.’
박서나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