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
너의 초식이 보여 1화
왕칠이 준 그것(1)
하운평(河雲坪).
큰 의미는 없었다.
글 좀 안다는 장님 노인에게 부탁했고, 내가 좋아하는 강과 구름과 들판, 이 세 가지를 붙였을 뿐이다.
나는 하운평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작년부터 하운평이란 이름을 쓰고 다녔고, 솔직히 장이, 장삼 같은 이름보다는 좋은 이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고아다.
부모가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고, 열 살인 지금은 거지 소굴에 살고 있었다.
따악.
“아악.”
“네가 처먹었지?”
“아닌데요.”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질이야?”
퍼어억.
왕칠은 발로 찼고, 나는 뒤로 철퍼덕 넘어갔다.
크으윽.
아프다.
건장한 성인 남자의 발길질을 맞았으니, 당연히 아팠다. 하지만 아픔보다 억울함이 더 컸다.
“난 정말 그 밥을 먹지 않았어요.”
“허어. 그래도 이놈이……. 저놈들이 봤다고 말을 하는데도 우기네.”
거짓말이다.
저 거지 새끼들은 어제 나에게 맞은 놈들이다. 어제 일을 복수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왕칠은 멍청하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이 새끼야. 그냥 순순히 밥 먹었다고 인정해. 그럼 한 끼 굶는 걸로 용서해 줄 테니까.”
“난 안 먹었다니까요.”
이젠 오기가 생겼다.
그래.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당장의 아픔보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중요했다.
“이 새끼가 정말!”
왕칠의 눈썹이 거꾸로 올라갔다.
그는 거짓말을 싫어했고, 눈을 부라리며 대드는 어린놈을 싫어했다. 무엇보다 다른 거지들도 보고 있으니, 입버릇처럼 말하는 일벌백계를 하려는 것 같았다.
퍼퍽. 퍽. 퍽.
과하게 손을 썼다.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고, 매타작은 평소보다 길어졌다. 나는 일각, 아니, 체감상 한 시진은 넘게 맞은 것 같았다.
“끄으으으.”
“허억. 헉. 이 새끼야. 잘못했지?”
“흐으으. 나, 난 아니야.”
으드득.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왕칠은 정말 지칠 때까지 때렸고, 나는 맞다가 정신을 잃어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죽어갔다.
* * *
하운평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왕칠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열 살짜리 어린 거지를 죽이려 했다.
주변에 있던 거지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겁이 났다.
사람을 죽여서 겁나는 것이 아니라 왕초 때문이다. 자신이 이 움막의 책임자로 있지만, 진짜 왕초는 따로 있었다.
그는 어린 거지들을 귀중한 수입원으로 생각한다. 때리거나 굶겨도 되지만, 죽는 건 절대 안 된다.
병으로 죽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렇게 때려죽였다? 그에게 맞아 죽거나 최소한 여기서 쫓겨날 것이다.
왕칠은 고민 끝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로 달려갔다.
여기서 이십여 장 떨어진 관제묘였고, 땅을 파서 작은 항아리를 꺼냈다.
왕칠이 그동안 모아놓은 보물들이었다.
여기에는 훔쳐 모은 동전도 있었고, 단검이나 골동품도 있었다. 왕칠은 그중에서 천에 둘둘 쌓인 것을 꺼냈다.
손가락 크기의 산삼이었다.
아니, 산삼이라고 짐작되는 뿌리 조각이었다.
왕칠은 의학적 지식이 없었다.
일 년 전 산속에 칡을 캐러 갔다가 우연히 이것을 발견했고, 산삼과 비슷하게 생겨서 숨겨두었을 뿐이다.
‘으음. 하지만 이걸 다 먹이기에는?’
아까웠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지만, 그는 욕심이 많았고, 다 줄 수는 없었다.
왕칠은 반의반만 뗐다.
그리고 다시 움막으로 돌아갔다.
그는 남은 밥찌꺼기를 모아서 죽을 만들고, 산삼 조각을 넣었다. 그걸 하운평에게 억지로 먹였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민간요법을 전부 시행했다.
타박상에 좋다는 온갖 풀을 찾아와서, 으깨어 아이의 몸에 발랐다. 또 따뜻한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하나밖에 없는 솜옷을 입혔고, 거적으로 둘둘 말았다.
마지막으로 움막의 제일 구석에 던져두었다.
밤이 되었다.
다른 거지들의 입단속을 시킨 뒤, 왕초에게는 그럴듯하게 변명했다.
“헤헷. 하운평 녀석이 병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쪽에 눕혀놓았습니다.”
다행히 왕초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한번 힐끔 보고는 돈만 가져갔다.
재미있는 건, 그 후였다.
하필이면 하운평을 움막에서 가장 추운 곳에 두었다.
지금 하운평의 몸은 땀이 날 정도로 더운데, 머리와 발은 입에서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추웠다.
그런 이상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렀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온몸이 아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픔을 넘어섰고, 차분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이 몽롱하게 변했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가 어두웠다.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온몸이 풀어졌다. 마치 물속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시간 개념도 없었다.
일각이 흐른 것 같기도 하고, 한 시진? 아니면 십 년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뿌연 안개가 점점 사라졌다. 어둠은 그대로지만,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나는 그 빛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날아갔다.
빛에 점점 다가갈수록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돌아가진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다가갔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아직은 참을 수 있다. 조금 더 갈 수 있다.
나를 독려하면서 마침내 빛에 도달한 순간, 아픔은 쾌감으로 변했다.
어떤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기묘한 감각만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때부터였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배고파.’
‘저 돼지 새끼는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살이 찌지?’
‘오늘은 또 어떻게 할당을 채우냐.’
‘으으. 왕칠 새끼. 정말 싫어.’
‘누워 있는 저 새끼는 좋겠다.’
너무나 시끄러웠다.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렸다.
시끄러워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괴로웠다.
눈을 떠. 뜨면 괜찮아질 거야.
누가 말했을까?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인지도 모른다.
나는 충고대로 눈을 떴다. 그러자 여러 목소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밝았었나?
갑자기 눈앞에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새벽 안개가 걷어진 아침처럼, 모든 것이 밝고 선명했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지니고 있던 생각들이 착착착 정리되었다. 갑자기 과거의 기억들, 심지어 두세 살 때의 기억도 떠오르면서 내가 어디 있고 무얼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았다. 마치 내가 몇 배나 똑똑해진 기분이 들었다.
으으윽.
놀란 것도 잠시, 이번에는 몸이 아팠다.
계속 아리고 욱신거렸고, 마치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 같…….
아아. 그래. 나는 왕칠에게 맞았었지.
기억도 되살아났다.
“왕칠 형님! 하운평 새끼 눈 떴어요.”
“뭣? 정말?”
왕칠이 달려왔다.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휴우. 다행이다. 송장 하나 치우는 것 아닌가 걱정했네.’
응?
입은 다물고 있는데, 왕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왕칠이 입을 열고 물었다.
“야. 괜찮냐?”
“아파요.”
“뜨거럴. 맞았으니 당연히 아프지.”
“그리고 배고파요. 밥 주세요. 안 먹으면 정말 송장이 될지 몰라요.”
“뭐? 어어, 그래. 잠시만…….”
왕칠은 송장이란 말에 깜짝 놀라 했다. 그리고 먹고 있던 죽을 말없이 가져다주었다.
내가 죽을 먹는 동안,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새끼, 귀신이 들렸나? 내가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지? 으음. 뭐, 우연이겠지. 그나저나 몸이 괜찮아 보이는데……. 그냥 오후부터 동냥질 시킬까?’
사악한 새끼. 저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깨어나자마자 동냥질 보낸다고?
나는 왕칠의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배를 잡으며 주저앉았다.
“아으으.”
“왜 그래?”
“바, 밥을 먹으니까 이상해요. 배가 너무 아파요.”
“니미, 썩을 놈이.”
“아이고. 배야.”
내가 바닥을 뒹굴자, 그제야 왕칠은 생각을 바꾸었다.
“야. 아직은 안 좋은 것 같으니까, 너는 저쪽에서 잠이나 더 자라. 그리고 다른 놈들이 빨리 나가. 나가서 할당량 채워! 빨리!!”
그리고 움막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그러면서도 의심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후. 거짓말 같기도 한데. 저 새끼를 믿어야 해? 말아야 해?’
결국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가 나가고, 다른 거지들도 전부 나갔다.
나는 잠시 후 일어서서 몸을 움직여 보았다. 고통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멀쩡했다.
으음. 그런데 신기하다.
방금 전 상황을 보니까, 다른 사람 생각이 들리는 것 같은데…….
내게 신통력이라도 생긴 걸까?
* * *
며칠 동안, 다른 거지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었다.
분명 다른 이의 생각이 들렸고, 부작용은 없었다. 목소리로 들리는 것과 비교해서 느낌만 조금 달랐다.
몸이 아플 때 겪었던 기묘한 느낌 때문일까?
어쨌든 뛸 듯이 기뻤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푸하하.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오는구나.’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이용하면, 거지 소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동네방네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거지 소굴에서 자랑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로 다 뺏기고 만다.
그걸 보면서 귀중한 것일수록 숨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직 힘이 없었고,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 누워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