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00
너의 초식이 보여 100화
철대만을 이기는 법
이틀이 지났다.
오전에는 체력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늦게까지 술법을 익히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다.
누군가 서신을 남기고 도망갔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생활관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진무강이 다가왔다. 그는 서신을 보지도 않고 글의 내용을 짐작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해도 교관님께 말할 수는 있어.”
“괜찮아.”
“철대만은……. 진짜 강하다.”
나는 대답 대신 한번 웃어주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왕진범과 백리묵을 만났던 골목으로 향했다.
예상대로였다.
그때 그놈들은 물론, 골목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고, 복장을 보니 팔급 학생들 같았다.
백리묵은 그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고, 왕진범이 그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것 같았고, 풍기는 기도로 보아 최소 십급 이상의 기도를 풍겼다.
외모로는 막사평만큼이나 커다란 체구에 몸이 단단하게 근육이 잘 잡혀 있었다.
어깨가 넓고, 몸의 균형이 좋아서 곰 같은 인상보다, 호랑이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가 누군지 굳이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었다. 외모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철혈문의 인주철탑 철대만이었다.
철대만이 입을 열었다.
“하운평. 네가 내 사제의 팔을 부러뜨리고 협박까지 했다면서? 사실이냐?”
나직이 말하는 것 같은데, 워낙 목소리가 커서 우렁차게 들렸다.
“그리고 재미있는 말도 했다던데. 뭐라더라? 비무를 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불구도 될 수 있다는…….”
“네가 철대만이지?”
나는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는 기분이 나쁜 듯, 무섭게 노려봤다.
“너어, 나보다 나이가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 짧구나.”
“넌 반대로 덩치도 큰놈이 말이 왜 그렇게 많아?”
콰직.
철대만은 앉아 있던 의자를 부서뜨리며 일어섰다. 나는 앞으로 다가가면서 물었다.
“우린 서로 누군지 알고 있고, 상반되는 의견을 가졌다. 그럼 빨리 덤벼야지, 왜 말을 빙빙 돌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였다.
휘이익.
마침 내 몸이 어디까지 회복했는지 시험하기 좋은 기회였다.
파파팡.
경공으로 달려가서 진천팔권 이초식, 호전투서를 펼쳤다. 일양신공을 움직여 강한 기류를 동반했고, 묵직한 주먹으로 가격했다.
퍼억.
하지만 철대만은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주먹을 받아냈다.
나도 주먹이 큰 편이라 생각했는데, 철대만은 거의 내 손의 두 배였다. 그는 내 손을 놓아주며 물었다.
“겨우 이 정도로 잘난 척 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철혈문의 특기는 도 아니었나? 너야말로 무기 없이 괜찮겠어?”
“도법도 좋지만, 난 권법을 더 선호한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철대만은 철혈문주의 세 번째 직전제자로 도법보다 권법이 적성에 맞고, 좋아했다. 또 잘했다.
“그럼 어디 권왕의 무공을 구경해 볼까?”
이번에는 그가 움직였다.
큰 덩치에 맞지 않게 표홀히 날았다. 그리고 몇 가지 초식을 순식간에 구사했다.
파파팟.
부웅. 붕붕. 콰앙.
마치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팔 길이는 거의 사기나 다름없이 길었고, 좌우로 흔들어대니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또 큰 주먹 역시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콰직. 콰쾅.
양손이 수레바퀴처럼 계속 밀려 들어왔다. 조금 무식해 보이지만, 한번 휘말리니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더구나 이 녀석의 권은 무겁다. 받아내기 힘들고, 조금만 스쳐도 충격이 컸다. 무엇보다 본인이 그런 장점을 잘 알고, 잘 활용하고 있었다.
큰 몸집을 이용해서 어깨로 밀어붙이고, 도망가는 찰나에 주먹을 다시 밀어 넣었다.
파팟.
살짝 흘렸는데, 손끝이 얼얼하다.
이놈은 진짜네.
내가 모은 정보와 비교해 봤을 때,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정말 구운룡만큼 강한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분위기를 띄워볼까?
부웅.
파팟. 파파팟.
나는 상대에 맞게 실력을 끌어올렸다. 피하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초식을 짧게 끊어 쳤다.
내 주먹이 그의 것보다는 작을지 몰라도 단단함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빨랐고, 결정적으로 경험이 풍부했다.
무림 최고의 권법 고수와 거의 매일 대련을 했으며, 권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알고 있었다.
지금 내 몸 상태가 아쉽기는 하지만, 저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스스슥.
휘익. 휙.
게다가 하얀 궤적이 나를 도와주었다. 정확히 한발 앞서서 그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그의 주먹은 내 옷자락만 스칠 뿐이고, 반대로 내 주먹은 정확히 그의 급소를 찔렀다.
퍼퍼퍽. 퍼억.
하지만 철대만은 방어가 단단하고, 육체도 튼튼했다.
웬만해서는 충격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가자 승부는 점점 과열되었다.
철대만은 헛손질을 계속하자, 열 받았는지 내공의 사용량을 점점 늘렸다. 파괴력이 있는 큰 초식을 사용하면서 그 여파가 주변으로 번졌다.
콰앙. 우수수수.
쾅. 쾅.
땅이 갈라지고, 급기야 생활관까지 부서졌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모조리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구경꾼이 많아지고, 시끄러워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철대만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뭐야! 하운평? 왜 물러나지? 이제 와서 그만두자고?”
“내 생각이 틀렸다. 넌 내 생각보다 강하고, 승부는 쉽게 나지 않겠어.”
“그래서?”
“비무를 다음으로 미루자. 조금 있으면 교관들이 몰려올 거야.”
“난 상관없다. 덤벼라. 하운평. 시작을 했으니 끝을 내야지.”
“정말 상관없어? 내가 알기론, 경고를 꽤 받았다고 들었는데. 졸업하기 싫은가 보지?”
철대만은 그 소리에 움찔거렸다. 그리고 차분히 머리를 식혔다.
그는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허락받지 않은 비무를 수십 번이나 했었고, 교관의 경고를 아홉 번이나 받았다.
이제 한 번만 더 경고를 받으면 퇴학으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것만은 안 되지. 후우우우.’
철대만은 숨을 크게 쉬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좋아. 하운평. 시간과 장소를 다시 정하자.”
“그런데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게 있는데……. 천포지전이 몇 달 남지 않았잖아. 나와 싸우면 이기든 지든 크게 다칠 텐데. 괜찮겠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간단하게 생각하자는 거야. 천포지전에서 우리 승부를 겨루는 건 어때?”
“천포지전은 추첨으로 상대를 결정한다. 우리가 못 만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지.”
“그럼 천포지전이 끝난 후에 승부를 내야지. 그때는 다쳐도 상관없잖아.”
철대만은 곰곰이 따졌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도 이번 천포지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졸업도 해야 한다. 그래야 철혈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좋다.”
그는 크게 소리치고 자리를 옮기려 했다.
교관들이 오기 전에 떠나려 했고, 그의 사제와 친구들도 그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앞을 막았다.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무리가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철대만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짓이지? 방금 네 입으로 천포지전에서 끝장을 보기로 했잖아?”
“그래. 너와의 비무는 그렇게 하기로 했지. 하지만 네 사제와 친구 놈들은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 대가를 치러야지.”
나는 백리묵을 괴롭혔던 놈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살짝 긴장하며 철대만을 바라봤고, 철대만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하지. 난 이쪽을 대표하고, 넌 백리묵을 대표한다. 네가 말했듯, 우리는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건 웃기지 않나?”
“오호. 그러니까 철대만, 너는 백리묵을 재미로 괴롭히는 인간 이하의 족속들을 대표한다는 거지?”
철대만은 자신의 사제 왕진범을 바라봤다.
약자를 괴롭히는 방식은 그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아닌 자신의 사제였다. 그를 돌볼 책임이 있었다.
“그래. 내가 책임을 진다.”
“좋아.”
나는 어깨를 풀면서 다시 내공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은 잊어버려라. 지금 당장 결판을 내자.”
말을 갑자기 바꾸자, 모두가 놀랐다. 특히 철대만은 짜증 섞인 얼굴로 물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 말을 바꾸는 거지?”
“너희들은 모두 바보, 멍청이들인가?”
“뭐?”
“내가 한 제안들은, 모두 너를 위한 것이었다. 철대만.”
“…….”
그는 짧게 생각했고, 내 말이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며칠 전에 입관했고, 교관에게 들켜도 상관없었다. 첫 번째 경고를 받을 뿐이다.
“너도 천포지전을 생각해야 할 텐데.”
“천포지전? 나는 우승까지 갈 필요 없어.”
내공을 점점 끌어올리면서 짧게 대답했다.
나는 진지했다. 내가 가진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고, 땅이 조금씩 움직였다.
쿠쿠쿠쿠.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라. 철대만. 지금까지 보여줬던 무공으로 생각하면……. 너는 죽는다.”
무공이란 상대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만큼 상대방의 수준이 보이는 법이다.
여기 있는 사람은 전부 일류고수 수준이었고, 지금 내 무공이 절정을 넘나드는 건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나의 살기는 진심이었다. 철대만은 죽일 생각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철대만 역시 그걸 깨달았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나처럼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마음 한쪽에는 내가 심어놓은 걱정이 싹트고 있었다. 교관의 마지막 경고, 퇴학, 천포지전의 포기 등, 싸움이 벌어진 이후의 사태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대로는 백전백패였다.
정말 어이가 없지만, 이제는 철대만이 불리한 입장에 놓인 셈이다.
철대만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똑똑한 편에 속했다. 그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나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쿠쿠쿠쿠.
나는 마음껏 내공을 뿜어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철대만은 진천팔권의 초식에 사정없이 밀려났고, 소천포의 위력에 팔급 생활관이 일부분 무너졌다.
콰쾅.
우르르르.
구경하든 학생들은 뒤로 물러나고, 반대로 저 멀리서 교관들이 달려오는 소리도 들렸다.
철대만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만. 내가 졌다.”
그래.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 당장은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쿠웅.
우르르르.
나는 마지막 초식을 생활관의 벽에 뿌렸다. 삼장을 넘기던 벽이 일제히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패배를 인정한다고?”
“그래. 이번 승부는 네가 이겼다.”
그는 유난히 ‘이번’이란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물었다.
“원하는 걸 말해?”
“앞으로 백리묵을 건들지 마라. 말도 걸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 마.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괴롭힌 보답으로 은 이백 냥을 지불해.”
“말도 안 됩니다.”
왕진범이 소리쳤다. 하지만 철대만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나에게 말했다.
“백리묵 일은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돈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좋아. 그것까지는 내가 봐주지. 그리고 이곳을 정리하는 일도 너에게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있는 팔급 학생들에게도 경고했다.
“너희들도 기억해라. 앞으로 백리묵을 건들면, 내가 쫓아간다. 그리고 몇 배로 갚아 줄 테니까. 명심해.”
며칠 전과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철대만을 이긴 직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고, 진심으로 납득했다.
그리고 나는 백리묵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났다.
“너희들은 뭐냐! 왜 여기 모여 있는 거지?”
결국 교관이 두세 명 나타났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별것 아닙니다. 무공연습을 하다가 벽을 조금 무너뜨렸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