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02
너의 초식이 보여 102화
현주황을 찾아라(1)
다음날 하운평은 생각난 김에 진무강에게 물었다.
“문헌유물연구회 말이야. 한번 가 보고 싶은데,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아, 그렇지. 그러잖아도 회주가 너를 보고 싶어 했었어. 늦게 말해 미안하다.”
“오늘 가 보는 건 어때?”
“으음. 그럼 저녁에 회주한테 가 볼래? 마침 네가 맡긴 옥사자상도 회주가 연구한다고 가지고 있거든.”
“좋아.”
그런데 진무강은 물론이고, 하운평도 놀랄 일이 벌어졌다. 막상 저녁에 회주를 찾아가니, 그는 방에 없었다.
“현주황 회주가 사라졌다고?”
“응. 삼 일 전부터 숙소로 안 들어오고 있어.”
현주황과 방을 같이 쓰는 학생의 대답이었다. 그와 안면이 있는지라, 진무강은 꼬치꼬치 상세히 물었다.
“교관님한테는 말했어?”
“어제 말했어.”
“삼 일 전부터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왜 어제 말한 거야?”
“현주황이 어떤 녀석인지 알잖아? 삼 일 전 밤에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갔는데, 하루 이틀 들어오지 않더라도 교관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잖아. 덕분에 나만 교관님한테 혼났지.”
그는 작게 투덜거렸다.
“하루 이틀 들어오지 않아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진무강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주황은 유물이나 고서에서 단서를 발견하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단서를 찾으려고 움직였고, 천학관을 나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런 말을 했었다.
진무강은 한숨을 쉬며, 하운평에게 말했다.
“휴우. 아무래도 회주가 뭔가를 발견하고 찾으러 간 것 같아.”
“옥사자에 관한 것일까?”
“아마도 그럴 거야. 하나에 꽂히면, 빠져드는 성격이라서.”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주황의 방을 둘러보았다. 진무강은 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 현주황 회주가 그렇게 개념 없는 사람은 아닌데. 네 허락도 없이 물건을 가지고 나갈 줄이야.”
“난 괜찮아. 그나저나 우리도 그를 찾아볼까?”
“우리가?”
“삼 일이나 돌아오지 않았다면 일이 생긴 거야. 그리고 마침 오늘부터 내일까지 쉬는 날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천학관에서도 쉬는 날이 있었다.
순휴(旬休)라 하여 열흘에 하루씩, 모든 교육과 수업을 금했다. 개인의 자유 시간을 주었고, 대부분 관의촌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진무강은 이날도 쉬지 않았다. 혼자 연무장에서 무공을 익히거나 수련을 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어찌 됐든 옥사자를 현주황에게 맡긴 것 진무강이었다. 현주황이 걱정되기도 하고, 옥사자가 없어진 것에 대한 책임감도 느꼈다.
“좋아. 그를 찾아보자. 혹시 같이 갈 수 있는 회원들이 있는지 알아볼게.”
“그래. 그럼 나는 여기서 단서를 찾아보고 있을게.”
하운평은 방안으로 돌아다니면서 현주황의 소지품을 살폈다.
진무강은 문헌유물연구회의 회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일각 후에 두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친구인 경부수와 진영이라는 학생이었다. 다른 회원들은 이미 관의촌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진영은 여자치고는 키가 키고 덩치도 있는 편이었다. 진무강은 하운평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름은 진영이고, 칠급, 아미파에서 왔어. 천학관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은 학생일걸.”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우리 회원 중에 현주황 회주를 제외하고, 문헌이나 글자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될 거야.”
마침 하운평도 현주황의 소지품을 다 둘러본 직후였다. 뭔가를 적고 있었는데, 진영을 보자마자 물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글자를 본 적 있으세요?”
그가 내민 종이에는 낯선 단어가 몇 개 적혀 있었다. 옥사자상 밑에 적혀 있던 문장의 단어들인데, 하운평도 처음 볼 정도로 낯선 글자였다.
경부수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진영은 글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청해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전통문자예요.”
“해석하실 수 있나요?”
“이 단어는 물이라는 글자고, 이건 하늘이라는 글자……. 으음. 나머지는 찾아봐야겠는데요.”
하운평은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만약에 이 문자로 된 문장이 있다면요?”
“청해의 단어사전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사전 없이는요?”
“안 되죠.”
“만약 현주황 회주라면요?”
“아무리 회주라도 사전 없이는 안 될 걸요.”
“그럼 회주도 사전을 빌렸겠군요.”
그러자 진무강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그래. 회주도 청해의 단어사전을 빌렸을 거야. 천서관으로 가 보자.”
이것이 첫 번째 단서였다.
하운평은 회주의 방에서는 잔념을 읽지 못했다. 대신 옥사자상 아래의 문구를 생각하다가 천서관을 생각했었다. 네 사람은 곧바로 천서관으로 향했다.
전대 무림맹주는 천학관 학생들이 무공뿐 아니라, 지식도 풍부하길 원했었다. 그래서 사비를 들여 오 층짜리 전각을 만들고, 온갖 종류의 책으로 채웠다.
그곳이 바로 천서관이고, 천학관 학생이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다.
책을 빌릴 때는 이름을 기록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때문에 누가 무슨 책을 빌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네 사람은 천서관에 도착했다.
삼, 사, 오 층에는 책이 있고, 일, 이 층에서는 책을 볼 수 있는 자리와 필사할 수 있는 도구가 있었다.
그중 천서관을 관리하는 서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서기 중 한 명에게 부탁했다.
“책을 빌려 간 이력을 볼 수 있을까요?”
깐깐해 보이는 오십 대 중년인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단다.”
“중요한 겁니다. 친구 중 한 명이 실종됐는데, 단서가 될 수 있어요.”
“으음.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니까, 안 돼. 만약 꼭 확인하고 싶으면, 교관님께 부탁해서 정식으로 천서관주님의 승인을 받거라.”
진무강은 일순 답답함을 느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구나 내일은 순휴였다. 학생뿐 아니라 교관들도 쉬는 날이고, 천학관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하운평이 다른 서기들을 한 번씩 보더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리고 진무강의 어깨를 살짝 쳤다.
“어쩔 수 없네.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래. 아무래도 교관님을 찾아가는 게 낫겠다.”
그런데 천서관을 나온 직후였다.
하운평은 생활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천서관 앞에 섰다. 그리고 창으로 통해 안쪽으로 들여다봤다.
다른 학생들은 의아했고, 진무강이 대표로 물었다.
“안 갈 거야?”
“잠시만.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는 계속 안쪽을 봤고, 갑자기 움직였다. 천서관 벽을 따라 이동했고, 천서관의 뒷문 쪽으로 향했다.
덜컥.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나왔다.
조금 전 서기실에 앉아 있던 서기들 중, 한 명이었다. 오십 대의 중년 여인으로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녀는 하운평에게 급히 물었다.
“정말이니? 정말 현주황 학생이 실종됐었어?”
“네. 벌써 삼 일째 천학관 숙소에 안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쩐지. 어쩐지. 내가 불안하다 했어. 결국 사달이 났구나.”
그녀는 불안해하면서 중얼거렸다.
조금 전, 하운평은 서기 중의 마음을 읽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현주황을 알고 있는 걸 알았고, 그녀에게 현주황이 실종되었다고 전음을 보냈다.
책의 대여 이력만 보여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녀가 뒷문에서 만나기를 청했다.
그녀가 말했다.
“사실 나흘 전에 현주황 학생이 천서관에 왔었단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빌리려 온 줄 알았는데, 나에게 따로 부탁을 하더구나. 청해 문자를 해독해야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청해 문자를 잘 아시나요?”
“내가 청해에서 태어났거든. 다른 문자는 몰라도, 청해 문자는 내가 잘 알고 있지.”
하운평이 중요한 걸 물었다.
“해석을 도와주셨나요?”
“해줬지.”
“혹시, 해석한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더 좋은 걸 가지고 왔단다.”
그녀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해석을 한 내용을 필사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한어로 시편이 적혀 있었다.
선무인(仙無人) 강수위갈(江水爲竭)
수뢰진진(水雷震震) 수우빙(水雨氷)
수지합(水地合) 내감여군절(乃敢與君絶)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읽었다. 그리고 진영이 중얼거렸다.
“이건 강소성 지역의 민요 같은데.”
진무강이 그녀에게 물었다.
“진영아. 이 시편을 알겠어?”
“한나라 때부터 알려진 지역 민요야. 작가는 미상이고, 그런데…….”
“왜?”
“내가 알던 민요랑 단어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네가 알고 있는 민요는 어떤 내용이야?”
이번에는 하운평이 물었다. 진영은 두리번거리다, 바닥의 흙에 시편을 적었다.
상야(上邪) 아욕여군상지(我欲與君相知)
장명무절쇠(長命無絶衰)
산무릉(山無陵) 강수위갈(江水爲竭)
동뢰진진(冬雷震震) 하우설(夏雨雪)
천지합(天地合) 내감여군절(乃敢與君絶)
나는 님과 서로 깊이 알아
오래도록 끊어지고 쇠약하지 않고
산에 언덕이 없어지고, 강물이 마르고
겨울에 우뢰가 울리고, 여름에 눈이 내리고
천지가 하나가 되어도 어찌 님과 헤어지겠습니까
“보다시피, 사랑에 빠진 여인의 마음을 노래하는 내용이야.”
하운평이 글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만약 그 대상이 주군이라면? 충정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
“으음. 그럴 수도 있겠지. 님의 숨겨진 뜻이 주군이라면,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니까.”
사실 하운평은 비잔신투에서 옥사자상을 발견했을 때, 하나의 잔념을 읽었었다.
어떤 남자가 옥사자상을 만지며 ‘부디 이 물건이 무림맹으로 잘 전달되길 바라며……. 주군, 부디 뜻을 이루십시오.’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경부수가 두 글을 비교하면서 말했다.
“뜻은 둘째 치고, 일단 달라진 글자부터 살펴보자. 정확히 어떤 글자가 바뀐 거야?”
옥사자 밑에 있는 문장과 흙바닥에 적힌 시편과 비교하면서 달라진 글자를 찾았다.
총 여섯 글자였다.
산무릉(山無陵)의 산이 선으로, 또 릉이 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동뢰진진(冬雷震震)에서 동(冬)이 수(水)로 바꿨다.
“또 하우설(夏雨雪)에서도 두 글자가 바꿨어. 수우빙(水雨氷)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지합(天地合)은 수지합(水地合)이야. 수(水)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물이 많은 장소를 의미하는 걸까?”
“글쎄. 사람 이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지.”
“글자만 봐서는 모르겠는데. 문장으로 봐야 할 것 같아.”
‘산무릉(山無陵) 강수위갈(江水爲竭)’은 산에 언덕이 없어지고, 강의 물이 말라 버린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선무인(仙無人)으로 바꿔버리면 뜻이 맞지 않는다.
선(仙)은 신선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없는 신선을 뜻하는지, 신선이 된 인간이 없어진다는 뜻인지, 의미가 불분명했다.
“첫 문장부터 해석이 힘들다.”
“선(仙)이 신선 외에도 선가(仙家), 선도(仙道)의 줄인 말이 될 수도 있잖아. 선한 인간이 없다? 이런 뜻은 어때?”
“악인을 말하는 건가?”
“차라리 지역명으로 찾아보면, 어떨까? 선무인이라는 곳을 찾으면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전국지도를 가져와서 찾아보자.”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하운평이 중얼거렸다.
“현주황은 방을 같이 쓰는 친구에게만 말하고 혼자 떠났어. 멀리 가지 않았단 뜻이야.”
“그래. 하룻밤 안에 갔다 올 수 있는, 가까운 곳. 그럼 전국지도까지는 필요 없겠네.”
“그럼 이 지역의 지도만 가져올까?”
“산공 폭포야.”
하운평이 단언하듯 말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고, 하운평은 글자를 보면서 설명했다.
“첫 번째 문장은 뜻을 해석하는 게 아니었어. 글자를 하나하나 따로 생각하면 돼. 선무인(仙無人)은 선(仙)에서 인(人)을 없애는 거야(무無). 그럼 무슨 글자가 되지?”
“산(山)이 되지.”
“맞아. 그리고 강수위갈(江水爲竭)도 비슷해. 강(江)에서 수(水)를 말려 버리면(위갈爲竭) 공(工)이 되지.”
“산과 공을 합하면, 산공……?”
“맞아. 그리고 근처에 산공폭포가 있어. 여기서 반 시진 거리야.”
하운평은 낚시를 하러 다니면서 주변을 돌아다녔었다. 그때 산공폭포에 간 적이 있었다.
경부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문구에 수(水)가 많이 있잖아. 폭포에 뜻하는 단서일 수도 있지.”
이번에는 진무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수뢰진진을 잘 봐. 물에서 천둥이 친다는 뜻이잖아.”
“아아, 그렇구나. 물에서 천둥같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은 폭포밖에 없지. 그래서 산공폭포를 말했던 거구나.”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