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05
너의 초식이 보여 105화
현주황을 찾아라(4)
내가 옥사자상의 잔념에서 보았던 그 사람일까? 나는 시체를 만졌고, 순간 잔념이 들렸다.
[나, 백만석. 죽는 것은 상관없으나, 이 보고서들을 내 손으로 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구나. 부디 옥사자상이 맹주님에게 잘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하온, 부성. 보고 싶구나.]일종의 유언이었다.
그는 상자 속의 무언가를 무림맹주에게 전하려 했으나, 사정이 있어 직접 가지 못했다. 대신 이곳에 숨겨두고, 이곳을 찾을 수 있게 옥사자상을 무림맹주에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하온은 그의 부인이고, 부성은 그의 아들 같았다.
충성스러운 사람 같은데, 안타깝게 됐군.
이번에는 보물 상자를 열었다.
성인 남자도 들어갈 정도로 큰 상자였고,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하지만 너무 낡아서 자물쇠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살짝 치니, 툭 부러졌다.
나는 보물 상자를 열었다.
끼이이익.
안에는 딱 두 종류의 물건만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대부분이 비슷한 크기의 책들이었고, 상자 가득히 차 있었다. 대략 수백 권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책 위에는 작은 단검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날의 색이 흑색이라 특이했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팔이 떨렸다.
정확히는 팔찌에 붙어 있는 녹안석이 빛을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진음구법을 일으키며, 녹안석을 붙잡았다. 그리고 귀안으로 그 단검을 살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은은한 흑색 기운이 단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실타래 같았다.
나는 단검을 붙잡았다. 짧은 전율이 느꼈다.
분명 예전에 가졌던 미인검처럼 눈부시게 날카롭진 않았다. 외형은 녹이 슨 고철 덩어리로 보였는데, 어떤 힘이 느껴졌다.
난 이 단검을 갖고 싶었다.
“하 공자님. 괜찮으세요?”
공지운이 다가왔고, 나는 급히 귀안을 없앴다. 그리고 흑색 단검을 소매 사이로 넣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라서 숨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보물이 제 예상과는 달라서요.”
그녀도 다가와서 상자 안을 보았다. 우리는 책을 한 권씩 들어서 읽어보았고, 의문을 품었다.
책 안에는 몇 월 며칠 무엇을 했는지 적혀 있었다. 모든 책이 시간만 다를 뿐, 비슷했다.
조금 더 자세히 읽었고, 그리고 깨달았다. 이 물건들은 우리가 가질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림맹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 * *
우리는 먼저 부상을 입은 두 사람부터 동굴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 공지운과 같이 올라와서 내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무림맹에 정식으로 보고해야 할 것 같아.”
그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모두 무림맹에 넘겨야 하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특히 진무강은 강하게 반대했다.
“만약 이걸 무림맹에 보고하면, 여기 보물들은 전부 무림맹으로 뺏길 거야. 우리에게 남겨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하지만 애초에 옥사자상은 하운평 거잖아.”
경부수가 짧게 반박했다. 그러자 진무강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지만, 우리도 힘을 보탰잖아. 우리에게도 약간의 지분이 있다고 봐.”
“네 말이 맞아.”
나는 진무강에게 말했다.
“우리 다 같이 노력해서 여길 찾아냈어. 그러니 당연히 너희들의 몫도 있어야지.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는 보물들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무공 비급이나 영약 같은 것이 아니야. 안타깝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어.”
“뭐?”
“진짜?”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좋겠지. 내가 밧줄을 잡을 테니까, 너희들도 모두 내려가 봐.”
그러잖아도 궁금했던 터라, 세 사람은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침통한 얼굴로 위로 올라왔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운평.”
“보물상자 속에 있는 책들은…… 무림맹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너무 실망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하자. 내일이 마침 순휴잖아. 모두 관의촌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자. 맛있는 것 먹고, 푹 쉬고, 내가 선물도 하나씩 줄게.”
사실 나 혼자 흑검을 챙긴 것이 미안해서 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이 친구들을 회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말에 친구들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큰 실망을 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휴우.”
“어서 천학관으로 가자. 씻고 자고 싶다.”
벌써 굉장히 늦은 밤이었고, 모두 지쳐 있었다.
부상자들만 데리고 천학관으로 향했고, 내일 아침에 천학관의 교관한테 전부 알릴 생각이었다. 그전까지는 푹 쉬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우린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 생각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먼저 들것을 만들어 다친 두 명을 천학관까지 옮겼는데, 교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이 실종된 지 벌써 삼 일째라는 사태에 천학관의 교관들도 비상이 난 것이다. 심지어 천학관주까지 나왔고, 무림맹에까지 보고가 올라갔었다.
우리들은 모든 일이 잘 끝났다고,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교관들은 화가 난 시점이었고, 하나씩 걸고넘어졌다.
왜 처음부터 옥사자상을 무림맹에게 전달하지 않았는지부터, 실종된 학생들을 발견할 단서가 있으면 빨리 교관들에게 알려야지 너희들끼리 왜 그랬나? 등등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폭포 속 동굴에 대한 탐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교관들을 데리고 폭포로 가서 어떻게 입구를 발견하였고, 어떻게 들어갔는지, 몇 번이고 설명해야만 했다.
교관들도 상자 속 책들을 확인했고, 곧바로 무림맹에 보고했다.
상자 속 책들은 이백 년 전 마교를 관찰했던 무림맹 첩자의 기록서였다.
비록 이백 년이나 지났지만, 마교에 관한 것이기에 무림맹에 보고되었고, 무림맹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전서구를 보낸 지 한나절 만에 무림맹의 무사들이 천학관에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시 무림맹 무사들에게 설명을 해야만 했다. 다시 폭포 밑의 동굴까지 동행했고, 취조당하듯 만 하루 동안 잡혀 있었다.
그렇게 삼 일 동안 진절머리 날 정도로 고생했다. 모두가 지쳤고, 나조차도 힘들어서 욕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진짜 일은 삼 일째 밤에 벌어졌다.
씻고 자려고 침상에 누울 때였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을 느꼈고, 벌떡 일어났다. 다른 침상의 진무강을 보니, 그는 벌써 자고 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창가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바라봤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였다. 나이는 이제 이립이 넘었을 정도였는데, 그 눈빛과 분위기는 달랐다.
한눈에 사부님 정도의 고수라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도황 백수련 선배님을 뵙습니다.”
“듣던 대로 눈치가 빠른 아이구나.”
그녀가 바로 전대 무림맹주의 부인이자, 도에 관한 현 무림의 최고라는 도황 백수련이었다.
전대 무림맹주가 은퇴할 때 그녀도 같이 사라진 걸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에 왜 나타난 거지?
“네가 주축이 되어 옥사자상의 비밀을 풀었다고 들었다. 맞느냐?”
“네.”
“그 옥사자상은 어디서 난 것이냐?”
순간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였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을 읽고 난 후에는, 그냥 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예전에 제 사부님과 비잔신투라는 도둑의 비동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물건입니다. 당시 비잔신투가 아끼는 보물에는 간단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옥사자상에는 무림맹과 연관 있다는 짧은 글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설명은 없었지만, 급조해서 만들었다. 다행히 백수련은 믿는 것 같았다.
“그래. 비잔신투. 그가 훔친 거였구나.”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일단 너에게 감사해야겠구나. 옥사자장을 무림맹에 가져다 주었고, 비밀까지 풀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그리고 네가 비동 속 시체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고 들었다. 죽은 시체의 손에 작은 종이가 있었고, 그걸 읽어보다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고 했지?”
“맞습니다.”
무림맹에서 마교에 관한 보고서를 찾았다. 하지만 정작 이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시체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록이 안 남은 것이다.
나는 충성스럽게 죽은 남자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살짝 거짓말을 보탰다. 시체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된 것 같다. 읽다 보니까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이렇게 핑계를 대고 시체의 이름이 백만석이고, 무림맹주에게 옥사자상을 주려 했다. 등등의 사실을 전해주었다.
백수련은 그걸 얘기하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혹시, 그것 외에 적힌 내용은 없었느냐?”
나는 다시 그녀의 마음을 읽었고, 그녀가 뭘 원하는지 알아냈다.
“아,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구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온, 부성. 보고 싶다.’라고요.”
“아아. 역시.”
백수련은 격정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나는 기다려 주었고,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네 입장에서는 무척 당황스럽겠지. 짧게 설명해 주마. 이백 년 전 무림맹과 마교는 크게 싸운 직후였다. 각자 피해를 입고 휴전에 들어갔지만, 서로를 못 믿는 형국이었지. 그래서 간세를 심어서 서로를 감시하던 냉전 중이었다.”
당시 무림맹에서도 마교에 간세를 여럿 심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백만석이었다. 그리고 그는 도황 백수련의 고조할아버지였다.
그는 무림맹주의 명을 받들어 마교에 스며들었고, 몇 년 동안 마교에 있으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걸 무림맹에 전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그의 신분은 마교도였기에 무림맹에 직접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연락책들은 다 죽었고, 무림맹 근처를 맴돌다 우연히 폭포 속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 안에 기록서를 숨길 결심을 했고, 옥사자상을 만들어 무림맹주에게 보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무림맹 무사들에게 들켰고, 계속 도망 다니다 큰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동굴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옥사자상은 무림맹주에게 전달되었지만, 하필이면 비잔신투가 훔쳐가면서 무림맹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당시에 백만석의 정체는 무림맹주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연락이 없자 백만석이 무림맹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 백씨 집안은 누명을 썼었다. 그 누명을 이겨내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지만, 내 선조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기록은 지워지지 않았지.”
“억울하셨겠네요.”
“그래. 그리고 이번에 네 덕분에 그 기록이 지워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증조할아버님이 지하에서 기뻐하실 거야.”
그녀는 증조할아버지에게 무공을 익혔고, 그의 한탄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의 이름이 바로 백부성이었고, 언제나 아버지 백만석을 그리워했었다.
“고맙다. 네 덕분에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설마 말로만 고맙다고 하고, 끝낼 건 아니지? 나는 은근히 기대를 했다.
상대가 무려 도황 백수련이었으니까.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작고 하얀 동전을 나에게 던졌다.
휘익.
탁.
“백도전이다. 앞으로 대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한 번은 내가 도와주마.”
“어,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이건 너무 과한 선물인데? 자세히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는 금방 사라졌다.
물론 나는 백도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도황 백수련의 신물과도 같았다. 딱 열 개만 만들었고, 자신이 신세를 입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어떤 부탁을 하든, 대의에 어긋나지 않으면 무조건 도와주었다고 한다.
즉 도황을 공짜로 한 번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거 나만 너무 좋은 선물을 받는 것 같은데. 이번 순휴 때에 정말 친구들을 초대해야겠어.
나는 관의촌으로 보낼 편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몇 가지 선물들을 미리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