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2
너의 초식이 보여 12화
뭘 주실 건데요(1)
무림 영웅비록에는 권왕 파해천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외모 : 오척이 조금 넘는 단신에 눈이 작고, 코가 큼.두 팔이 삼척에 가까울 정도로 길며, 특히 주먹이 굉장히 크다. 흡사 원숭이와 비슷한 외모 (본인은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성격 :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았는지,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상당하다. 잘생긴 사람은 싫어하며, 사람 많은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공은 좋아하지만, 무림인을 싫어한다.
누구에게나 항상 못되게 말하는 편이며, 그 때문에 적이 많다. 반면 일반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하는 이상한 성격.
권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다른 무공은 배척한다.
애주가이며, 특히 죽엽청을 유독 좋아한다.
가족 : 혼인하지 않았고, 형이 한 명 있음. 형은 현 팔극진문의 문주.
무공 : 팔극진문의 십칠대 제자였고, 팔극신권을 극성으로 익혔음. 나중에 사문에서 스스로 나와 본인이 무적문을 개파. (현재 무적문의 제자나 문파는 없다.)
본인이 청강진기와 천왕신공. 진천팔권, 천번박투술. 소천포 등의 극상승 무공을 창안.
엄청난 무재임 – 과거 검성 초화일이 언급한 일화가 유명함 (천하에서 본인을 능가하는 무재는 단 두 명이라고 했고, 그 둘은 권왕 파해천과 도황 백수련.)
십년 전 화경에 올라섰으며, 그의 주먹 한 방에 강남칠형제가 몰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열두존자에 등극.
그의 외모를 놀렸다고 녹림의 파사채를 일각 만에 몰살시킨 사건도 유명함, 그리고…….]
대충 읽어봐도 권왕은 대단한 무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별로인 사람이다.
무림비록에는 그렇게 언급되어 있었고, 만나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다.
열두존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이런 사람의 비위를 맞춰주긴 싫었다.
다행히 나는 표정 관리에 능숙했고, 전혀 모른 척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권왕이시군요.”
파해천은 내 표정을 보더니, 화가 내며 물었다.
“야아. 너, 권왕 못 들어봤어?”
“모르는데요.”
“이 빌어먹을 놈이……. 너 무공 어디서 배웠어? 초식은 개판이지만, 내공은 쓸 만하던데. 그래, 아까 능파미보를 사용했잖아. 청성파냐?”
그는 한눈에 모든 걸 꿰뚫어 봤고, 폭포수같이 말을 쏟아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청성파는 아니고요. 몇 개월 전에 거지들한테 맞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내공과 보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리고 권법은 열흘 전에 책을 보고 배웠고요.”
“겨우 열흘? 그럼 진짜 배운 게 없는 녀석이네.”
“괜찮아요. 내일 무당파에 입문할 생각이니까요.”
“흥. 저놈들이 너를 받아준다든?”
“노력은 해봐야죠.”
“어린놈이 꼬박꼬박 말대꾸는……. 끄응. 관두자.”
그는 화를 참으려 했고, 그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니까, 내 이름도 몰랐던 거야. 검성이나, 창신 노광 같은 놈들도 모를 테지.’
권왕은 두 사람을 굉장히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듣고 장난기가 발동했다.
좋아. 시원하게 한번 긁어주지.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아, 생각해 보니까, 무림에서 유명한 사람들 몇 명은 알고 있어요. 검성 초화일 님이나, 창신 노광, 도황 백수련 등요.”
파해천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뜨리며 버럭 화를 냈다.
“쳐죽일 놈아. 도저히 못 참겠다. 검성이나 도황 나부랭이는 알면서, 나 권왕을 몰라? 미쳤냐?”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권왕님 이름을 못 들은 것도 죄가 됩니까? 권왕님 인지도가 낮은 탓이죠.”
파해천은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이……. 겨우 삼류무공이나 익히는 꼬마 놈이 나를 능멸하네.”
“저야 배운 것이 삼류 무공뿐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저와 말싸움 하고 싶습니까?”
우드득.
파해천이 이를 갈더니,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나무가 흔들리고, 낙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나도 날아갈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일양신공을 일으켰다. 비록 밤톨만 한 내단이지만, 바닥에 엎드리니 버틸 수 있었다.
권왕은 왼쪽으로 주먹을 뻗었다.
쿠쿠쿠쿠. 콰앙. 콰쾅.
푸른 빛이 번쩍였고, 굉음과 함께 한쪽 숲이 사라져 버렸다.
제대로 자세를 잡은 것도 아니었고, 단지 한쪽 팔을 뻗은 것뿐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숲속에 십여 장이 넘는 길이 생겨났다.
나도 모르게 멍하게 바라봤고, 권왕의 무공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내가 봤던 천독귀검 같은 무인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권왕은 한바탕 소란을 떨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휴우. 내가 꼬마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
그리고 나를 힐끔 보더니, 한 손을 뒤로 뻗었다.
휘이익.
저 멀리서 뭔가 날아왔고, 커다란 멧돼지인 걸 깨달았다.
그가 의도했는지, 과시용인지 모르지만, 뻗은 주먹에 멧돼지가 죽었고, 그걸 내 앞으로 던졌다.
“네 토끼고기가 날아가 버렸으니, 이걸로 같이 먹자.”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영향으로 불은 꺼지고, 토끼고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파해천은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끝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다투기 싫었고, 그의 성향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다.
흠흠.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불부터 피워야겠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는 낙엽을 다시 모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미인검을 꺼내 멧돼지 가죽을 벗겨냈다.
멧돼지는 처음 손질해 보지만, 검이 워낙 좋아서 크게 어렵진 않았다.
한참 열심히 자르고 있는데, 권왕이 미인검을 유심히 보는 게 느껴졌다.
“왜요?”
“흐흠. 꼬마야. 그 검, 네 것이냐?”
“네. 집안 가보인데요.”
“아까는 고아라고 했잖아.”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머리를 굴리며 말을 지어냈다.
“네. 지금 고아인 거죠. 어머니는 나 태어날 때 돌아가셨고요. 아버지와 가족은 작년에 물난리로 돌아가셨습니다. 문제 있나요?”
“으음. 혹시……. 아니다. 됐다.”
파해천은 모른 척했다. 그의 마음속을 읽어보니, 검을 빌리려는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어차피 남강수의 검을 빌릴 건데, 굳이 아이한테 말할 필요 없지.’
하여간 무뚝뚝하고, 자존심만 센 사람이었다.
무공 때문에 외모는 젊을지 몰라도,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칠십 대 노인이었다.
그는 고기가 익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우린 말없이 멧돼지 고기를 나눠 먹었다.
그때였다.
“무량수불. 선배님, 저도 끼어도 되겠습니까?”
밝은 목소리가 들리면서 옅은 녹삼을 입은 사십 대 도사가 나타났다.
그의 신법은 표홀했고, 나무 위에서 내 옆으로 떨어질 때도 굉장히 부드러웠다.
파해천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기 고기 많은 거 안 보이나? 마음대로 먹어.”
“하하. 감사합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소형제. 나는 남강수라 한다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하운평이라고 합니다.”
“하운평. 좋은 이름이군. 그럼 하운평 소협. 고기 좀 나눠주겠나?”
“당연히 드려야죠.”
그래.
정상인이라면,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야지.
나는 남강수가 마음에 들었고, 특히 맛있는 부위를 잘라주었다.
그게 못마땅해 보였는지, 파해천은 남강수가 고기를 먹기도 전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전음이었다.
남강수는 이런 일에 익숙한지, 잠시 고기를 내려놓고 전음으로 답했다.
[남강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다.] [그렇잖아도 선배님이 저를 찾는단 말을 듣고 계속 궁금했었습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너의 독문무기, 배화검을 빌려다오.]자신의 무기를 남한테 빌려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파해천은 그걸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고,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남강수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선배님. 배화검은 지금 제 수중에 없습니다.] [네 것이잖아.] [정확히 말하면, 제 가문의 검이죠. 이 년 전부터 배화검을 저의 가문에 두고 있습니다.] [끄응. 너의 가문은 어디에 있는데?] [광동성입니다.]여기서 천 리나 떨어진 곳이었다.
남강수가 다시 말했다.
[만약 정말 필요하시면, 제가 서신을 한 장 써드리겠습니다. 그걸 가지고 저희 가문으로 가시면…….] [아니야. 됐어. 너무 오래 걸려.]동시에 파해천은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속셈을 직감했다. 저 사람한테 검을 못 빌리니, 내 것을 빌리려는 속셈 같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읽힌다.
‘쩝. 그놈의 철문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그런데 이놈한테는 뭐라고 부탁하지?’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가만히 기다렸다.
파해천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불쑥 물었다.
“야, 꼬마야.”
“꼬마가 아니라, 하운평인데요.”
“그래. 하운평아.”
“네.”
“흠흠. 그……. 검 좀 빌리자.”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 되물었다.
“제 검을요?”
“그래.”
“우리 집 가보인데요?”
“알아. 그래서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거잖아.”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속은 간절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 물었다.
“대신 뭘 주실 건데요?”
“이놈아. 어린놈이 벌써부터 장사질하면 못 써?”
“그럼 공짜로 빌리시려고요?”
“그건…… 아니지만, 인마. 어린놈은 어린놈답게 순진한 맛이 있어야지.”
“알았어요. 순진한 척하고 안 빌려 줄래요.”
내 말에 파해천의 얼굴은 다시 살짝 붉어졌다.
그는 한숨을 쉬고, 남강수는 물었다.
“자네. 저놈의 검 좀 살펴봐 줘. 진짜 좋은 검인지, 잘 잘리는지.”
파해천은 쇠붙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주먹만 믿는 사람이었고, 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반면에 남강수는 어릴 적부터 검을 좋아했다.
어릴 때는 검을 배울지, 대장간에 검을 만들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남강수는 나에게 물었다.
“운평아. 네 검을 잠깐 볼 수 있을까?”
“네.”
사실 나도 미인검이 얼마나 좋은 검인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미인검을 기꺼이 내주었다.
스르릉.
검을 뽑자마자 남강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천천히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혈조나 곡률 없이, 단순하게 만들었군요. 기교는 없지만, 기본에 아주 충실합니다. 날이 곧게 뻗고……. 가볍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검의 균형이 아주 훌륭…….”
“야. 남강수. 쉽게 말해. 그래서 얼마나 좋다는 거야?”
“충분히 명검이라 불릴 만합니다. 그런데 선배님이 어디에 사용하실지 알려주면 조금 더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파해천은 잠시 망설이더니, 한마디 했다.
“만년한철로 짐작되는 물건이 있다. 그걸 잘라낼 생각이야.”
“호오. 만년한철요.”
“이 검이면 가능성 있겠냐?”
“흐음.”
남강수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절삭력만 따지면, 배화검 만큼이나 좋습니다. 그런데 만년한철이라면……. 잘 모르겠군요. 검을 사용하는 분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으음. 그래?”
권왕 과해천은 다시 나를 보면서 물었다.
“야. 꼬마야. 그 검, 네 것이 분명하지?”
“당연하죠.”
“좋다. 그럼 네 검을 빌리자. 빌리는 대가로, 내가 너의 무공을 손봐주마.”
내 무공? 설마 구배권법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무공 전수가 아니라 무공을 손봐주겠다니…….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