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24
너의 초식이 보여 124화
영웅문의 행사(2)
모용표는 조의찬에게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는 사이였다. 나와 사업을 같이 하고 싶다는 얘기부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조의찬에게 부탁했다.
“회주, 이번에 우리 영웅지회에 간부 자리가 하나 비잖아. 운평이를 후보로 올리면 어때?”
“하하. 표. 하 공자가 대단한 분인 건 맞지만, 간부 자리는 아직 곤란해. 최소한 일 년 이상 활동한 회원분께 드리기로 했잖아.”
“아, 그랬던가? 할 수 없지. 그래도 나와 함께할 친구니까. 간부 모임에는 초청할 수 있지? 이 친구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아. 말이 통하는 친구라고.”
“하하. 알겠어. 고려해 볼게.”
‘하아, 이 녀석, 또 귀찮게 하네. 그나저나 하운평이란 놈. 말재주가 제법인가 본데? 모용표가 바보 멍청이이긴 하지만, 제대로 홀렸어.’
조의찬은 모용표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다. 돈 많은 돈주머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 보면 볼수록 비호감이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니었다.
“표.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는 모용표를 데리고 가서 뭐라고 속삭였다. 전음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나는 마음속을 읽을 수 있으니,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이봐. 표. 조금은 냉정하게 생각해 봐.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항상 저렇게 다가오는 놈들은 네 돈을 노리고 왔었어. 저 친구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금 물러서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그, 그런가? 내가 너무 성급했나?”
“그래. 그리고 네가 사업을 한다고? 휴우. 나는 물론 너를 믿어. 분명 잘할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잘 생각해 보자. 내가 너희 아버지를 만난 적 있잖아.”
“그렇지.”
“너희 아버님은 꽤 완고한 분이시던데, 그분이 너에게 바라는 게 뭐겠어? 사업일까? 돈 벌어오는 거? 내가 볼 땐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아마도, 그렇겠지.”
모용표는 자신 없는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의찬은 더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너를 이곳에 보냈다는 건, 좋은 친구를 사귀고, 아무래도 무공을 더 익히라는 뜻 아니겠어?”
“하지만 나는 무공의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차라리 상단 쪽으로…….”
“아니야. 아니야. 표.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 그리고 모용란 고모님을 생각해. 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실망시켜드리면 안 되잖아.”
“으음.”
“내가 도와줄게. 다시 한번 무공을 제대로 익혀보자.”
“알겠어. 의찬아.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그렇지. 나야말로 진정한 네 친구잖아.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알겠지?”
“알았어.”
대충 이런 식이었다.
조의찬 저 녀석은 내 생각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그는 친한 척 다가가서, 사람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정하는 부류였다. 상대를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든 다음, 그 사람을 지배하였다. 또 그걸 즐기는 놈이다.
그리고 모용표는 이미 상당히 지배당한 상태였고, 당장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저대로 두는 건 곤란한데.
순간 조의찬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 너도 대단하다. 하지만 나도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내가 나서기 전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머, 우리 영웅지회 영웅들이 다 모였네요.”
꾀꼬리가 울리는 듯한 맑은 목소리, 사람들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눈앞이 화사해지는 것 같았다.
굉장히 아름다운 소녀였다.
입은 옷은 물론, 알록달록한 장신구도 화려했지만, 그녀 본인이 눈에 띄게 화려했다.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과 하얀 피부, 웃을 때마다 보이는 보조개마저 시선을 끌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전부 흠모의 눈빛으로 변했다. 여자들은 부러움과 질투로 자리를 피했다.
그만큼 굉장한 존재감이었고, 그녀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용표가 얼굴이 상기되어 그녀에게 인사했다.
“빙 매. 어서 와.”
“어머, 모용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의찬 오라버니도 잘 계셨죠?”
“그래. 빙 매는 얼마 전에 폐관에 들어갔었다면서?”
“네. 지겨워서 혼났어요. 호호호.”
그녀는 여기저기 지나다니면서,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을 읽어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녀의 이름은 빙백아.
이화궁의 소문주였고, 장차 천하제일미녀가 될 거라 예상되는 소녀 중 한 명이었다.
그녀에 대해 조사도 했었는데, 의외로 그녀는 약점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똑똑했고, 무공도 뛰어났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재력도 있었다. 때문에 보물이나 보석으로는 그녀의 시선을 끌기 힘들었다.
딱 하나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한 명의 여자였다.
마침 그녀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제갈 소저. 안녕하십니까?”
“제갈소미 소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제갈 소저. 고서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어렵게 구한 고서를 선물로 드리려고 하는데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길이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또 한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 역시 천하제일미의 당당한 후보였다.
빙백아가 화사한 색감의 장미라면, 이쪽은 이지적이고 청초한 수선화였다.
바로 제갈세가의 제갈소미였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사부님과 구운룡을 처음 만났던 그 산속, 그때 처음 보고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았었다. 그 후로 오 년 만에 봤는데, 지금은 더 예뻐져 있었다.
깨끗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 차분한 눈매와 하늘거리는 몸매.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녀의 나이는 올해 열여덟 살로 미모가 만개한 것 같았다.
제갈소미는 나를 못 알아봤고, 내 앞을 지나치려 했다. 나는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나서 중얼거렸다.
“여전히 돼지 통구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그러자 제갈소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라봤고, 나는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너는 돼지고기를 좋아할 만한 관상이거든.”
제갈 소미는 이것과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단 한 번이고 오래되었지만, 재미있는 기억이었다. 그리고 제갈 소미는 기억력이 좋았다.
“너어, 하운평이구나.”
“오랜만이야.”
제갈소미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향긋한 꽃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네 소식은 들었어. 올해 천학관으로 들어왔다면서?”
“나는 네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몇 달간 폐관 수련 중이었거든.”
“그랬구나. 아무튼 반갑다. 그런데 그때도 예뻤는데, 지금은 열 배는 더 예뻐진 것 같아.”
“넌 여전하구나. 솔직하고 직설적이야.”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건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예전에 제갈 세가에 의뢰한 일이 하나 있는데, 혹시 기억해?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물어보려 했었거든.”
비잔신투의 비동을 처음 봤을 때, 가장 골치 아픈 보물이 ‘사방천수도’였다. 그래서 그것의 해석을 제갈세가에 맡겼는데, 제갈쇠도 당시에 같이 있었다.
그녀는 내 말뜻을 알아차렸고, 전음으로 대답했다.
[아아. 미안해. 그러잖아도 숙부님이 네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깜박하고 있었어.]아까부터 그녀가 이상해 보이긴 했다.
뭔가 숨기고 있었고,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알아내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만약 너를 천학관에서 만나게 되면……. 숙부님이 이렇게 말해달라고 하셨어. ‘사방천수도’를 비밀리에 조사한다고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아직 진행 중에 있으며, 내년쯤에는 너와 권왕님을 초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숙부님은 남만에 계셔.] [호오. 남만이란 말이지? 그곳에 단서가 있는 거야?] [자세한 상황은 나도 몰라. 숙부님은 정말 철저하게 비밀로 조사하셨고, 제갈 세가 내부에도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그만큼 사방천수도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제갈 세가에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그런데, 예전에 너는 많이 웃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웃음기를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갈소미도 그걸 아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세월이 지났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아냐. 아무튼 이제 됐지?] [그래.]제갈소미는 급한 볼일이 있는지, 다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파장은 굉장했다.
남자에게 유독 차갑게 대하기로 소문난 그녀였다. 때문에 천학관 내에서 그녀와 말을 주고받는 남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제갈소미가 말을 걸고, 따로 전음까지 주고받았다? 자연히 나에게 관심이 쏠렸고, 특히 그중에서도 빙백아의 관심이 커졌다.
마침 모용표가 나에게 다가왔고, 내게 말을 걸기로 전에 그녀는 모용표에게 물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까 이쪽 분하고는 인사를 못 나눴네요. 모용 오라버니. 소개 좀 시켜주실래요?”
“아, 그럴까? 이쪽은 하운평이야. 들어봤지?”
“어머머. 들어봤죠. 그 무지막지한 철대만을 이기셨다고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소저는 이화궁의 가장 아름다운 꽃, 빙백아 님이시죠?”
“어머, 저를 아시나요?”
“모를 리가 없죠.”
“호호호.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말을 잘한다? 내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녀는 남자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처럼 마음속을 읽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색기를 뿌렸고, 말투에 애교가 묻어났다.
그런데 말을 할수록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녀는 의외로 욕심이 많았고, 조금은 과한 것 같았다.
특히 모용표가 내가 준 한빙옥에 대해 자랑할 때였다.
“이게 그 유명한 한빙옥 최상등급이야. 내공을 넣으면, 이런 빛이 나타나지.”
“우와아.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지. 이걸 운평이 나에게 줬어. 그냥 선물로 말이야.”
“어머. 굉장한 부자이신가 봐요.”
“하하. 이런 건 웬만한 부자라도 못하는 거야. 운평은 배포가 큰 거야.”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 소리가 들렸다.
‘흐음. 저 색깔, 너무 예뻐. 어쩌지? 너무 가지고 싶은데. 흐음. 어떡한다? 모용세가에서는 훔치기 힘든데…….’
훔친다?
그걸 듣고, 한 가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천학관을 조사하면서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다.
‘천학관 내부에 뛰어난 도둑이 있다. 그가 어찌나 뛰어난지, 값비싼 물건을 벌써 서른 번 이상 훔쳤는데, 아무런 단서도 못 찾고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내가 세운 삼 단계 계획을 위해서라면, 그 도둑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관의촌의 집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그 도둑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나타나지 않았는데, 지금껏 폐관 중이었다면 말이 된다.
그리고 만약 그 도둑이 빙백아라면?
완벽한 위장이 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빙백아가 도둑일 거라고 생각하진 못할 테니까. 그녀는 이화궁의 소문주였고, 부족한 점이 없는 부자에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사면 되니까.
아무래도 빙백아를 한번 떠봐야 할 것 같았다.
천학관에서 그 도둑을 뭐라고 부른다더라?
“천영신투.”
그 말을 듣자마자, 빙백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모용표도 깜짝 놀라 물었다.
“하운평. 그 도둑은 왜 언급하는 거야?”
“천학관에 실제로 있는 도둑이라며? 내가 준 한빙옥을 그놈한테 뺏기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었어.”
“조심해야지. 제길. 난 그 도둑놈한테 벌써 두 번이나 당했다고. 아니 세 번이나 당할 뻔했는데, 우리 모용성 대주님이 그놈을 물리쳤었지.”
“오오. 그럼 너도 그놈을 봤어?”
“아니. 난 못 봤고, 대신 대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체구가 작고 왜소하다고 말씀하셨어.”
“그렇군.”
그리고 빙백아도 그때의 생각하는 듯 보였다.
‘흥. 그래. 그 모용성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맞다. 그녀가 천영신투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