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3
너의 초식이 보여 13화
뭘 주실 건데요(2)
잘 모르는 물건을 살 때, 나만의 규칙이 있었다, 그 물건의 진위를 확인하려면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판매자의 생각 그리고 더 확실한 건, 주변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래. 내가 인심 한번 썼다.’
파해천은 진심으로 본인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강수의 생각을 읽었다.
‘선배께서 신경을 쓰시는군. 다른 이의 무공을 손봐주는 일이 쉽지는 아닐 텐데. 그나저나 열두존자의 심득까지 더해진 무공이라……. 저 아이가 살짝 부러워지는걸.’
두 사람의 생각으로 미뤄봤을 때, 상당히 좋은 조건 같았다.
단 남강수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인데, 지금 약조를 받는다고 나중에 지킬 수 있을까?
그렇지. 나중이란 없어. 이런 건 빨리 받아내야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검을 빌려 드릴게요. 대신 무공을 지금 고쳐주세요.”
내 말에 파해천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멍청한 녀석아. 무공이 비급만 보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아?”
“권왕이시잖아요. 그리고 아까도 한 번 보고 제 무공이 안 좋다고 말하셨으면서!”
“그건 별개의 문제지. 좋은 무공을 만들려면 시전자의 몸에 맞게, 그리고 너의 내공과 어우러지게 고쳐야지. 최소한 삼 일은 걸리는 작업이야. 인마. 내가 시정잡배처럼 대충 만들어줄 줄 알았어? 내 이름을 걸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검을 나한테 넘겨라. 삼십 일 내로 돌려줄 테니까. 그리고 그때 와서 네 몸뚱이를 보면서 멋진 무공으로 바꿔줄게.”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요.”
“뭐, 싫어? 내가 권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니까.”
“권왕 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무림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잖아요? 검이야 다른 사람 편으로 보내면 된다지만, 본인이 직접 못 오면, 제 무공은 어떡합니까?”
“그럴 일 없다. 무조건 온다니까.”
“저는 ‘무조건’이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막말로 권왕 님도 검을 빌리러 다니실 거라 예상하셨습니까?”
파해천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잠깐 생각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 빌어먹을 꼬마야.”
그리고는 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어엇. 왜 이러세요?”
“네가 못 믿으니 어쩔 수 없지. 나랑 같이 간다.”
“저, 저는 무당파에 가야 하는데요.”
“무당파가 도망이라도 간다든? 대략 삼십 일이면 되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라.”
그는 진심이었고,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았다.
“자, 잠깐만요. 제 짐! 제 짐을 가져가야죠.”
“귀찮게 하기는…….”
파해천이 손을 흔들었고, 내 짐이 공중으로 떠올라서 품안으로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허공섭물이었다.
“나 간다. 남강수. 잘 있어라.”
“네. 선배님. 건녕하십시오. 다음에 오시면 무당파에서 차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난 무당파는 싫다. 빌어먹을 해검지 때문에.”
무기도 없으면서 해검지가 왜 싫은 걸까?
남강수는 궁금했지만, 따지지 않았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또 만나죠. 그리고 하운평. 무당파는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너라.”
역시 남강수는 무당파 도인이었구나.
나중에 내 스승이 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다음에,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남강수 대협님.”
나는 나름대로 의젓하게 남강수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파해천은 그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투덜거리며 위로 솟구쳤다.
“지랄하고 있네.”
휘이이익.
“으아아악.”
생각보다 너무 빠른 속도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렇게 권왕 파해천을 따라갔다.
* * *
솔직히 나는 권왕을 무시했었다.
말도 조리 있게 못하고, 사회성도 떨어지고, 성격은 더러운 데다 본인의 무공만 대단한 줄 아는 노인네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그는 잘난 척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쉬우우우.
으으으.
파해천이 나를 붙잡고 경공으로 달려가는 순간, 부끄럽지만 바지가 조금 젖었다.
어찌나 빠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날카로운 바람은 살갗을 베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를 휘익 휘익 날아다니는데,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나중에는 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그리고 절벽에서 그냥 뛰어내리고, 한동안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신선처럼 구름 속을 노닐다가 아래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열심히 익히던 보법이 발바닥의 때만도 못했구나. 그때 본 천독귀검의 무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파해천의 경공은 정말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고, 무공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꼭 감았는데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말에 한숨을 겨우 눈을 떴다.
똑바로 설 수도 없었다. 다리는 경직되었고, 너무 꽉 잡고 있어서 손도 얼얼했다.
그 와중에 권왕의 생각이 들렸다.
‘쩝. 급한 나머지 너무 빨리 달려왔구나. 그래도 어린아이인데, 좀 미안하네.’
분명 양심은 있었다. 그런데 말투는 역시 다르다.
“사내 녀석이, 뭘 이 정도에 빌빌거려? 인마. 다리에 힘줘.”
그러면서 양쪽 팔다리를 한 번씩 꾹 움켜쥐었다.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경직된 부분이 따뜻해지면서 풀어졌다.
나도 모르게 고맙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권왕은 민망한지, 먼저 걸어가고 없었다.
쯧쯧.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겉과 속이 너무 달라.
그래도 점점 권왕을 대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벌써 날이 밝아왔다.
우린 새벽녘에 도착했고, 이곳도 깊은 산속이었다. 울창한 숲이 사방에 있었고, 그 사이로 높은 산봉우리도 보였다.
대체 여긴 어디지?
곧 사람들도 나타났다.
새벽인데도 수십 명이 돌아다녔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수십 개의 천막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에워싼 커다란 울타리도 있었다.
아무나 못 들어오게 막는 것 같았다.
파해천이 다가가자,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표정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크, 왕재수 권왕이다.’
‘언제 왔지? 한동안 안 보여서 좋았는데.’
‘이번에도 천막에만 있어 주면 좋겠다.’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하긴 권왕의 겉모습만 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반면 파해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부 무시하면서 오직 한 곳으로만 걸어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를 반기는 사람을 만났다.
“오오. 숙부님. 드디어 오셨군요. 다행입니다. 딱 맞춰오셨네요.”
살집이 있는 중년 남자였다. 파해천도 그에게는 반응을 보였다.
“조금 늦었다. 그런데 왜 새벽부터 난리법석이냐? 설마 검성 놈이 벌써 왔냐?”
“아닙니다. 검성 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요. 가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그는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나를 보았고, 조용히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군가요?”
“으음. 그러니까 이 아이는…….”
권왕의 성격에 미주알고주알 다 말할 리 없었다. 그는 간단히 말할 방법을 찾았고, 설명이 늦어졌다. 결국 내가 먼저 나섰다.
“안녕하세요. 하운평이라고 합니다.”
“어어, 그래. 나는 장하진이다.”
“저는, 하씨 세가의 장손으로 이번에 저희 가보의 검을 빌려 드리려 왔습니다.”
“아아, 검.”
장하진도 파해천이 명검을 찾으러 간 건, 알고 있었다.
“반갑구나. 나는 권왕님의 질부이자, 장한표국의 국주 장하진이다. 그런데, 하씨 세가면 어디에 있는지…….”
물론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얕잡아 보이기 싫어서 방금 만들어냈으니까.
“광동성 끝에 있어서 잘 모르실 겁니다. 이번에 무당파에 입관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권왕님과 만났습니다.”
“아, 그렇구나. 반갑다.”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딱 필요한 말만 해주면 장하진 같은 사람은 알아서 이해할 것이다.
과연 생각을 읽어보니, 그는 내가 무당파에 입관이 확정된 아이로 판단했고, 하씨 세가가 규모가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파해천은 내 말을 듣고,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는 걸 읽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는 장하진에게 물었다.
“그것보다 문제가 생겼다고?”
“아, 네. 사실, 관에서 찾아왔었습니다. 이곳 화흠산에서 도굴한다는 정보를 받았다면서, 당장 멈추고 산을 내려가라고 경고하더군요.”
“뭐? 도굴? 어떤 미친놈이 그래?”
“아마 근처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신고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서요. 도굴이 아니라고 설명해야 하는데, 그럼 소문이 퍼질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저희끼리 의논했고, 돈을 주고 무마시키지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뇌물을 주자고?”
“네. 조용히 해달라고, 몇몇 관리만 구워삶으면 될 것 같습니다.”
권왕은 인상을 썼다.
“쯧쯧. 이놈이나, 저놈이나 돈 욕심만……. 아무튼 그럼 해결됐네.”
“그게, 돈을 준비해야 하는데요. 각 파에서 나누어 내기로 했거든요.”
“뭐? 그럼 우리도 돈을 내야 한다고?”
“네에. 그런데 저희는……. 아시다시피 돈이 없어서.”
“끄응.”
권왕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야. 인마. 그 돈을 왜 우리까지 내야 하는데? 화산파 놈들이 비용이나 땅문제, 구경꾼들을 처리하기로 하고, 이번 판에 끼어든 거잖아.”
“저희도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화산파에서는 이건 별개의 문제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또 관인들은 욕심이 많잖습니까? 요구하는 금액도 많을 거고, 혼자 처리하기에는 부담스럽다고 주장해서……. 이게 또 완전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좋은 말로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 화산파에서 찍어 누르고 장하진은 맞춰주고 있었다. 겁먹은 것이다.
“그, 그리고 제갈 세가에서도 동의를 했습니다. 각자 조금씩 도와주기로요.”
“그놈들이야 돈이 많으니까 상관없겠지. 끄응. 이것들이 진짜 우리 엿 먹이려고 작정했나. 또 배당금 얘기 나왔지?”
장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네. 저들이 또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돈을 못 준다면, 우리 배당금을 또 줄일 수밖에 없다고요.”
“이 개같은 놈들이!! 결국 자기네들끼리 다 헤쳐 먹겠다는 얘기잖아.”
“숙부님. 어떡하죠?”
“이이익.”
파해천은 잠깐 힘으로 다 엎어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찮았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와 사대검파 중 하나인 화산파는 열두존자이라도 만만찮은 곳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장하진에게 물었다.
“얼마나 주면 되는데?”
“그게, 화산파가 금 오십 냥, 제갈 세가는 금 삼십 냥, 저희는 금 이십 냥 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유통할 수 있는 돈이 겨우 금 열 냥 밖에…….”
“휴우. 금 열 냥도 없냐?”
“이것도 겨우 구한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이번 일을 하기 위해 전답은 물론 저희 집까지 담보로 맡겼습니다. 더는 빌리기가 힘들어요. 저어, 그래서 말인데, 혹시 숙부님께서는 금 열 냥이 없으신지…….”
파해천은 조금 당황했다
그는 재물을 경시하는 사람이었다. 무림인이 무공만 수련해야지, 딴짓거리를 왜 하냐고 호통치며 다녔었다.
당연히 돈 같은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