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
너의 초식이 보여 14화
이것들이 선을 넘네
사실 권왕은 모난 성격 때문에 돈을 빌릴 친구도 없었다.
물론 명성이 있으니 전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성격상 쪽팔린 짓은 하기 싫었다.
“으음, 잠시만 생각해 보자.”
“사실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숙부님 올 때까지만 대답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지금 회의장에 가시면 답을 줘야 합니다.”
어느새 커다란 천막 앞까지 도착했고, 권왕과 장하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도 한숨이 나왔다.
쯧쯧.
권왕 씩이나 돼가지고 금 열 냥 때문에 고민하는 꼴이라니.
조금 안돼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빌려주긴 싫었고, 좋은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무공은 어차피 손봐 주기로 했으니, 그쪽은 넘어가고.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만 알면, 투자 목적으로 생각해 보겠지만…….
그때 두 사람이 천막에서 나왔다.
매화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화산파 사람들이고, 그중에서 이십사수라는 걸 장하진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화산파 무인들은 얼굴 보고 뽑나?
두 사람은 키가 크고, 훤칠했다. 이목구비도 뚜렷한 것이 정형적으로 잘생긴 사내들이었다.
권왕이 옆에 있으니, 여러모로 비교되는 외모였다. 그래도 그들은 파해천을 보자마자, 얼른 허리를 숙였다.
“권왕 선배님. 드디어 오셨군요.”
“오셨습니까? 선배님.”
아주 공손했다. 누가 봐도 명문정파의 예의 바른 태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영감탱이. 언제 봐도 정말 못생겼단 말이야.’
‘저런 자가 권왕이라니.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니까.’
권왕을 무시하고 깔보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악의마저 느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권왕이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친한 척 계속 물었다.
“선배님. 정말로 무당파에서 검을 빌려오셨나요?”
“당연히 빌려오셨겠지. 열두존자의 명성이 있으신데.”
권왕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배화검은 못 빌렸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명검은 빌렸어.”
“아아. 다행입니다.”
“배화검이 아니라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저희 사숙조께서도 지금 오고 있다고 합니다. 내일쯤 도착하신다고 하니, 내일 같이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하하. 사실 저희 사숙조님의 실력이면 나뭇가지만 들어도 가능하시겠지만, 그래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그렇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희들끼리 말하는데, 말투가 은근히 재수 없었다.
더구나 권왕은 사숙조라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눈썹이 꿈틀거렸고, 영웅비록에서 봤던 내용이 기억났다.
아, 그렇지. 검성 초화일이 화산파 출신이었지.
권왕의 반응을 보더니, 화산파 무인들은 속으로 더욱 웃었다.
‘푸하하. 열등감 덩어리. 우리 사백님한테 신경 쓰는 걸 보면 진짜 웃기다니까.’
‘진짜 권왕, 권왕 하니까 대단한 줄 알았다.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 병신이 어떻게 권왕이 되었지?’
이 새끼들 진짜, 선을 넘네.
하지만 두 사람은 겉으로는 완벽한 웃음을 보이며,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갈 세가에서도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권왕님도 들으셨죠? 관인들이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래 저희가 처리해야 하나, 사실 저희 화산파도 예전 같지 않아서요. 본의 아니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화산파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할 예정이고, 팔극진문과 장한상단에서는 금 스무 냥만 내시면 됩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간단하잖아요.”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말발이 조금 있는 놈들이었다.
사람을 제법 만나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권왕은 애초에 말을 못 하는 사람이고, 장하진은 기가 약해서 무림인들을 상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는 저들이 원하는 대로 질질 끌려다닐 것이 뻔했다.
어휴. 내가 웬만하면 가만 있으려 했는데.
“그렇게 간단하면, 그냥 화산파에서 내어주면 되겠네요.”
내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화산 이십사수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꼬마야. 어른들 말씀하시잖니?”
“권왕님. 이 아이는 누군가요? 여기 회의장에는 다른 사람은 데리고 오면 안 됩니다.”
“흐음. 그게 이 아이는…….”
권왕이 또 설명을 못 해 우물쭈물했다.
역시 내가 나섰다.
“저는 하씨 세가 장손인 하운평이라고 합니다. 무당파에서 권왕님을 만났고, 저희 집 가보인 검을 빌려 드리려고 함께 왔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반갑습니다. 화산파의 그 유명한 이십사수를 만나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어어, 그래. 반갑다.”
“그래도 여긴 제삼자가 참석할 수 없는…….”
그들이 말을 끝내기 전에, 내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대화산파에서는 금 스무 냥이 없어서, 중소문파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건가요? 요즘 화산파가 정말로 그렇게 어렵나요?”
“으응?”
“흠흠. 그게 아니라…….”
갑작스러운 반격에 두 사람은 말문이 살짝 막혔다. 그러다 한 명이 급히 대답했다.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 금 스무 냥이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란다. 집 열 채는 살 수 있는 큰돈이야.”
“맞습니다. 금 스무 냥이 적은 돈은 아니죠. 하지만 규모가 있는 문파라면 그 정도는 쉽게 융통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저도 그 정도 금액은 항상 지니고 다니거든요.”
나는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품속에서 금 주머니를 꺼내 금 스무 냥을 꺼냈다.
차르르르.
눈앞에 금을 번쩍이니, 사람들은 놀라서 나를 다시 봤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빌려 드릴 수도 있어요. 하아. 그런데 정말 참담하네요. 제가 그렇게 우상으로 여기던 대화산파가 이정도로 몰락했을 줄이야. 겨우 금 스무 냥이 없어서 중소문파에게 손을 벌리다니……. 강호의 무인들도 통탄할 겁니다.”
이러다간 자칫 무림에 이상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그걸 느낀 화산파 무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금 스무 냥 정도는 얼마든지 화산파에서 처리할 수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말썽거리가 생겼으니 다 같이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그래. 같이 해결하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는 거지.”
“아아, 역시 그렇죠? 그럼 이번 일로 잘 알아주시면 되겠네요. 저도 조금 전에 들었는데, 현재 장한상단에서는 여유자금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 스무 냥도 부담스러우니까, 금 다섯 냥만 받는 걸로 하시죠. 나머지는 대화산파에서 해결해 주시는 걸로 하고요.”
“그건…….”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꾸나.”
나는 자연스럽게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하면서 못을 박았다.
“사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사파 무리들이 중소문파에게 갑질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어떡하든지 본인들의 이익만 더 챙기려고 애쓰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죠. 정파에서는 그런 일이 없겠죠? 특히 화산파와 제갈 세가는 정파의 선두에 계시잖아요. 그런 양아치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그렇지.”
이렇게 첫 단추를 잘 끼웠다.
그 후로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화산파에서는 내 눈치를 보면서 돈을 더 달라고 강요하진 못했다.
그래도 권왕에게는 함부로 말하는 경우는 있었다.
“권왕님. 실례지만, 관인을 너무 모르시는 것 같네요. 요즘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어요.”
물론 권왕이 말재주가 없지만, 화산파의 까마득한 후배가 선배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화산파의 위세가 대단하다 이거지?
나는 기회를 봐서 옆에 있는 장하진에게 속삭였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권왕 대협님은 열두존자이시잖아요.”
“그렇지.”
“검성 초화일 대협님도 열두존자이시죠? 화산파에 계시고요?”
“맞아.”
“그럼 권왕님께 함부로 말하는 건, 검성님께 함부로 말하는 것과 같지 않나요?”
“그런…… 셈이지.”
“그럼 이상하네요. 아까부터 화산파 분들은 말투에 예의가 없으신 것 같은데……. 그럼 검성님한테 함부로 하는 것 아닌가? 나중에 검성 님 만나면 물어봐야겠어요.”
몰래 귓속말로 물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뛰어난 무림인이고, 내 말을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내가 말한 직후에 화산파 무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후로도 권왕에게 한결 깍듯이 대했고, 회의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 * *
화산파에 한 방 먹이고, 돈도 해결해서 기쁘다면서 장하진이 술자리를 마련했다.
회의를 듣고, 이곳에 있으면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먼저 이들은 여기 있는 이유는, 한 장의 ‘장보도’ 때문이다.
과연 어떤 보물이 묻혀 있기에 제갈 세가와 화산파에서 침을 흘리는 걸까?
‘비잔신투의 장보도’였다.
비잔신투.
그는 백 년 전에 활동했던, 당시에 가장 뛰어난 도둑이었다고 한다.
사십 년 동안 활동하면서 천만금을 훔쳤다고 전해지며, 각종 보물과 신병이기, 무공비급까지 끌어모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장보도가 장한상단, 정확히 말하면 상단이 보유한 장한표국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장하진이 장한표국의 주인이었다.
“푸하하. 그렇지. 내가 바로 장보도를 발견한 장본인이야.”
그는 술에 취해서 본인의 무용담을 술술 털어놓았다.
“내가 장한상단의 둘째 아들이라고 말했었나? 그런데 성과를 낸 적이 없거든 만년 적자인 장한표국을 살려서 인정받으려 한 거야. 일단 오래된 유실물들을 정리해서 자금을 마련한 후에……. 아아. 유실물이 뭔지 알지? 표국에 짐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 말이야.”
“알죠. 그럼 거기서 장보도를 찾은 거네요.”
“그렇지. 오래된 그림이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감정을 맡겼는데, 비잔신투의 것이라는 거야. 이건 돈이 된다는 걸 직감했지.”
“그럼 장한 상단 혼자 찾으시면 되잖아요.”
“휴우. 그러고 싶었지.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장하진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작은 표국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장한상단은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져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장보도를 완벽하게 해석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자칫 소문이라도 퍼지면, 작은 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결국 평소 친분이 있는 팔극진문에 도움을 청했고, 장보도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 제갈 세가를 끌어들였다.
“그럼 화산파는요?”
“재수가 없었어. 장보도가 가리키는 지점이 이곳 화흠산이었거든. 화흠산은 화산파의 영역이고, 그들 몰래 일을 진행하기 불가능했던 거야.”
그래서 화산파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권왕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권왕님은요?”
“어, 몰랐어? 권왕님의 친형님이 팔극진문 장문인이시잖아요. 장문인의 따님이 내 부인이고.”
“아아. 그래서 권왕님을 숙부님이라 부르시는군요.”
“그렇지. 만약 권왕 숙부님이 없으셨다면, 우린 화산파와 제갈세가 사이에 끼여서 심부름만 하다 끝났을 거야.”
하긴, 화흠산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봐도, 화산파의 인원들이 제일 많았다.
장한상단 사람들도 간혹 보이지만, 팔극진문과 세력을 합쳐도 화산파의 삼 할도 안 되는 숫자였다.
“정말 고생하셨겠네요.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는데, 결과는요. 보물을 찾으셨습니까?”
“올해 초부터 화흠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는데, 장보도에 있는 동굴은 찾았다. 지하 이십여 장까지 내려갔지. 그런데 이상한 철문 때문에 막힌 상태야.”
“이상한 철문이라뇨? 아아. 설마 만년한철?”
“그렇지. 만년한철로 의심되는 철문이 입구를 막고 있는 거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나는 권왕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방금 궁금한 것이 생각났는데, 땅속에 박힌 철문이라면 주변의 땅을 파내고 뜯어낼 수 있지 않나요? 아니면 권왕님이 주먹으로 부수거나.”
“제갈 세가 놈들이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권왕 파해천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그리고 장하진이 웃으면서 설명했다.
“푸흐흐. 제갈 세가에서는 말릴 수밖에 없었어. 문 주위의 흙속에서 진천뢰를 발견했거든.”
“진천뢰요? 그게 뭔데요?”
“폭약이야.”
철문 주위에 대량의 진천뢰가 매설되어 있었고, 함부로 충격을 준다면 터질 가능성이 높았다. 보물은 물론이고, 지하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죽을 수 있었다.
말릴 만 했네.
그 후로 지금까지 제갈 세가에서는 철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안 될 경우를 대비하여 권왕은 만년한철을 자를 수 있는 명검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화산파에서는 검성을 데리러 간 것이 지금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