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0
너의 초식이 보여 140화
무림비동(2)
세로 한 자, 가로 반 자, 그리고 높이는 손가락 굵기만큼 얇은 상자였다.
색상이 이상했다. 흑색인데,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진청색 같기도 했다.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잔념도 요상했다.
‘배고파.’
단 한 가지 단어만 계속 들리는데, 이렇게 강한 잔념은 처음이었다.
나는 상자를 들어서 자세히 살폈다.
어떤 문양이나 문구는 없었다. 흑색으로 일관되었고, 측면에 작은 구멍 하나만 있었다.
마치 열쇠 구멍처럼 생겼는데, 일반것보다 크고 넓은 것이 마치 검의 날처럼…… 엇!!
팔찌가 흔들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녹안석이 빛을 내며 움직였다.
이와 같은 반응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래. 그 단검이 있었지.
검은색 단검이 생각났다.
옥사자상의 비밀을 풀고, 폭포 아래에서 찾은 보물 상자.
그 속에서 마교에 관한 보고서와 단검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단검의 날이 흑색이었고, 흑색 기운이 실타래처럼 뿜어져 나왔었다.
이 상자와 색상이 같았고, 이것 역시 녹안석이 반응을 보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단검이 이 상자의 열쇠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재미있는 건, 상자가 있던 공간에 다른 잔념들도 있었다.
세 가지 잔념이 추가로 있었는데, 각기 다른 날에 다른 사람이 말한 것들이었다.
{이건 단순한 영단(靈丹)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마교 대전을 거치는 동안, 열쇠를 잃어버렸다고요? 흐음. 차라리 잘됐습니다. 우리가 이걸 보관하고, 마교에서 열쇠를 보관하면 되죠. 그럼 이 상자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테니까, 잘된 겁니다.}
{만약 우리가 마교에 질 경우를 대비하여 이 힘을 개봉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교에서 열쇠를 찾아오세요.}
첫 번째 목소리에서는 놀라움, 두 번째 목소리에서는 두려움, 세 번째는 다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 상자의 이름이나 설명을 보려고 둘러보았다.
하지만 유독 이것에만 어떤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도대체 상자 안에 뭐가 들은 거지?
뭔지 모르지만, 일단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살짝 걱정되지만, 안 가져가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그래. 일단 가져가서 생각해 보자.
나는 그것을 허리 뒤춤에 끼우고, 빙백아를 찾았다. 이곳에 충분히 있었으니, 나갈 차례였다.
“빙백아. 이제 나갈 방법을 찾아보자.”
“알았어.”
그녀는 대답했지만, 계속 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그녀를 두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혼자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일단 동상을 둘러보고, 저 벽에도 뭔가 적혀 있던 것 같은데, 한 번 가서…….
그때, 갑자기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누구냐.]묵직하다 못해 몽둥이로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그래도 내공이 진탕되었다. 이 정도 무공이라면…… 급하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며 소리쳤다.
“말학 후배가 검노께 인사드립니다.”
이 정도로 강한 내공이면 열두존자 수준일 테고,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 잔념에서 검노가 언급되었다.
그래서 유추한 것인데, 정말 검노인가?
더 이상 내공을 실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몸, 완전히 삭아버린 옷으로 간신히 하의만 가리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은 몇 년 동안 한 번도 깎지 않은 것 같았고,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는 검붉게 녹이 슨, 낡은 철검이 달려 있었다. 그 검의 끝이 바닥에 긁었고, 걸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르릉. 즈르릉.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검노 지광도.
그는 스스로 검의 노예라 불렀다. 그리고 검의 끝을 보기 위해 모든 걸 버린 남자였다.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스승을 죽였고, 가족이 수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죽였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또 홀로 마교로 들어가서 당대 천마와 싸운 일화는 무척이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특이한 부분이 많았다. 검의 노예라 자처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검은 낡아빠진 철검이었다. 길거리에서 일 문에 팔던 물건이었고, 그것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은 괴상함을 넘어섰고, 한 번 검을 뽑으면 다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바로 열두존자 중 일인으로 불리는 검노였다.
그리고 그는 벌써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검노는 실제로 약 삼십 년 전부터 출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림비동의 지하에 있을 줄이야.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저런 모습을 보니, 삼십 년 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궁금한 것투성이지만, 일단 위험한 사람이었다.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그의 마음속을 계속 살폈다.
“저는 하운평, 이쪽은 빙백아라고 합니다. 저희는 천학관 학생들로, 호기심에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호기심?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림비동의 각종 함정을 뚫었다는 거냐?”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물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았다.
엇. 불안한데.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걸 말하진 않았다.
“흠흠. 사실, 저희는 우연하게 도둑의 신법을 익혔습니다. 각자 다른 종류의 신법을 익혔는데, 누가 더 나은지 말다툼하다가 내기까지 한 겁니다. 침입하기 어려운 곳을 찾다 보니까, 무림비동을 선택하게 되었고요. 죄송합니다.”
공지운과 경공 시합한 것이 생각나서 비슷하게 지어냈다.
확실히 검노 지벽도는 두 사람에게서 도둑의 발걸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점투성이었고,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이곳까지 온 이상, 너희들의 목숨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는 우리를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실력으로는 그의 일초지적도 될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그런데, 검노 어르신은 어쩌다가 이런 곳에 계신 겁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 그의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검해지벽만 아니었어도…….’
검해지벽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이곳에 이십팔 년간 머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소리쳤다.
“검해지벽을 해석하시는 거라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검노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가, 슬그머니 놓았다.
“네가……. 검해지벽을 어찌 아느냐?”
“제 사부님이 권왕이시고, 검왕께 사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분들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검해지벽’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검노는 검해지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검해지벽에 관한 정보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검해지벽은 사백 년 전 검의 조종이라 불리던, 고검 황성 대협이 남긴 마지막 절학이잖습니까?”
“으음.”
“소문으로만 무성했는데, 설마 이곳에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검노께서는 그것 때문에 여기 계셨던 건가요?”
“……그래.”
그는 이제 내 말을 믿기 시작했다.
빙백아는 나와 검노 사이에서 눈치를 살폈고, 그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얼른 소리쳤다.
“저에게 검해지벽을 보여주시면, 해석에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저와 이 친구는 각종 도해는 물론 암호나 기관에 능숙하니까요. 아무래도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두 명보다는 세 명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검노는 속으로 우리를 비웃었다.
‘흥. 나도 이십 년이 넘게 못 풀고 있는데, 네까짓 게 도와준다고?’
“저희를 죽이시더라도, 한 번 보여주고 죽이시지요.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나는 재차 부탁했고, 그는 잠시 후, 몸을 돌렸다. 이곳의 반대쪽으로 걸어갔고, 무언의 승낙이었다.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를 쫓아갔다.
* * *
아아. 이런 것이 검해지벽이구나.
좌우 이십 장이 넘는 절벽에 검이 지나간 흔적들이 가득 차 있었다.
크고, 굵은 것부터, 얇고 가는 것까지 수천 개가 넘는 자국들이 새겨져 있었다. 멀리서 보니 하나의 장관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걸 보고, 해석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빙백아를 보니 그녀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믿는 건 하나밖에 없어.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절벽을 만졌다.
서서히 움직이면서 잔념을 살폈고, 검의 흔적을 만지는 순간, 여러 개의 잔념들이 느껴졌다. 하나같이 뚜렷한 잔념들이었고, 연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것들이 이어지면서, 마치 내가 그 공간에 있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주변의 모습들이 바뀌었고, 검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듯, 천천히 검을 휘둘렀고, 아주 생생히 느껴졌다.
가만히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 중 한 명을 따랐는데, 서서히 빠져들었다.
무아지경.
오랜만에 이 상태에 빠졌다.
여기가 어딘지, 얼마나 지났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 하다 보니 검법도 재미가 있었다.
그의 검법에 흠뻑 젖어 들었고, 검술이 내 안에 각인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했던 것 같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단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여전히 검해지벽의 앞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빙백아는 한쪽 구석에 쪼그려 자고 있었다. 그리고 검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침 눈을 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물었다.
“이제 끝났느냐?”
“네에. 죄송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사흘.”
그러더니 갑자기 검을 휘둘렀다.
쏴아아악.
콰앙.
나도 모르게 단검을 들어 그의 검을 막았다. 잔념에 봤던 검술을 내가 사용하고 있었다.
검노는 더 이상 공격하진 않았고, 대신 허탈한 듯 웃었다.
“크크큭. 보물의 주인은 따로 있다더니……. 수십 년간, 겨우 조금 얻었는데, 너는 이곳에 온 지 사흘도 안 되어 다 가져가 버렸구나.”
허탈감과 함께 은은한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읽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데 감히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검해지벽의 주인 고검 대협의 무공이 대단하지만, 검노 선배님의 무공도 그에 못지않잖습니까? 왜 이것에 고집하시는 것인지요?”
검노의 실력이면, 굳이 검해지벽에 목매달 필요가 없었다. 참조만 해도 충분했다.
검노는 보기 드물게 말을 많이 했다.
“그래. 나도 처음에는 검해지벽을 만든 고검의 수준이 나와 비슷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을 계속 보다가 깨달았어. 그는 나보다 뛰어난 검사다. 그가 남긴 난제를 풀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를 뛰어넘을 수 없어.”
“난제요?”
나는 다시 검해지벽을 바라봤다.
잔념으로 무공을 배운 후에 바라보니,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데, 검노가 풀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어떤 부분이 난제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만약 처음 보는 놈이 그렇게 물어본다면, 단숨에 머리통을 부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검해지벽의 무공을 한 번 보고 따라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는 검의 흔적을 보고,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단 말이냐? 일례로 양 끝쪽에 똑같은 흔적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 한 사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고검이 해낸 것이다. 분신술을 익히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한 일을…….”
“저건 두 사람이 만들어낸 흔적입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검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여기에 새겨진 흔적은 모두 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딱 봐도 내공이 동일하고, 똑같은 검을 사용했으며, 버릇이나 검법의 익힘도 똑같다. 두 사람이 한 흔적이 아니야.”
신기하게도 검노는 검이 파인 흔적을 보고 그걸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 더했다.
“또 허종원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말했었다. 한 사람이 만든 흔적이라고 분명하다고.”
허종원?
은조도백 허종원을 말하는 건가?
분명 그는 전대 무림맹의 맹주로, 평생 무림맹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또 도황의 남편이었고, 언제나 사실만 말했으며, 정직하기로 유명했다.
하나 이번만은 그가 거짓을 말했다.
나는 잔념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