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2
너의 초식이 보여 142화
무림비동(4)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따뜻한 물과 음식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됐다.”
검노는 짧게 대답했다.
그의 지론은 ‘몸이 편하면, 검이 무뎌진다.’였다. 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나는 나흘 후에 올 테니, 그런 줄 알아라.”
말을 끝내고 검노는 근처 야산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불친절한 사람인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날아가는 도중에 우릴 던져 버렸다.
정확히 우리 집 위였지만, 무려 삼십 장이나 높은 곳이다.
귀에서는 바람 소리가 휘몰아치고, 무사히 착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나와 빙백아는 검노를 향해 온갖 욕을 쏟아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빙백아가 소리쳤다.
“나에게 생각이 있어.”
그녀는 어깨에 메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길게 풀어서 끝부분을 자신의 팔뚝에 감고, 반대쪽 끝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밧줄의 끝을 내 손목에 감았다. 그리고 내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 상태에서 우린 서로에게 벽공장을 날렸다.
파팡.
나는 더 빨리 떨어졌지만, 빙백아는 떨어지는 속도가 줄일 수 있었다. 그때 몸을 돌리면서 밧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동시에 나는 아래쪽으로 벽공장을 날리면서 몸을 가볍게 만들었고, 그녀가 당기는 힘에 의해, 그녀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그녀가 아래쪽에 있었고, 우린 다시 서로에게 벽공장을 날렸다.
파팡.
파팡.
이런 식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줄여나갔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속도를 완전히 줄이지는 못했고, 수풀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떨어지기 직전에, 땅으로 벽공장을 날렸다.
파팡.
“꺄아아악.”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쿠우웅.
쿠웅.
“크으으으.”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등이 뻐근했다.
대신 빙백아는 내 위로 떨어졌고, 내 덕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잘 떨어져서 다행이다.”
“흥. 다시는 만나기 싫은 영감탱이야.”
그녀는 검노를 욕했고,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하려 했다.
“그리고, 흠흠. 도와줘서 고마…….”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야? 혹시 운평이니?”
청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가 나타났다.
“야. 너, 뭐하다 사흘 만에 돌아온 거야? 얼마나 걱정……. 어라, 그 여자는 누구니? 또 너희들의 자세는 왜 그래?”
청아는 당황했고, 그녀는 혼자 있지 않았다.
공지운과 같이 있었다. 그녀도 놀란 눈으로 나와 빙백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지금 우리 둘의 자세가 이상했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고, 빙백아가 내 위에 올라간 모습이었다. 나는 빙백아를 밀면서 황급히 일어섰다.
“아, 잠깐만, 설마 이상한 오해를 하는 건 아니지?”
그런데 빙백아는 밀침을 당하자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분위기를 보더니, 갑자기 두 팔로 내 목을 감쌌다.
“어머. 이상한 오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당황해서 그녀를 밀쳤다.
“야. 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이거 놔.”
“우와. 하운평. 정말 이러기야? 이제 와서 모른 척하겠다고?”
“뭘 모른 척해?”
“우리 둘이 함께한 밤을 잊었어? 그렇게 큰일을 치러놓고, 이제 와서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거니?”
말투도 그렇고, 내용도 이상하게 끌고 갔다. 그리고 어찌나 뻔뻔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내가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도대로 청아와 공지운은 제대로 오해했다.
“정말 실망이다. 하운평. 여자관계가 이렇게 문란할 줄이야.”
“청아. 오해라니까.”
“흥. 됐어. 지운아. 넌 괜찮아?”
“무, 무슨 소리야. 나는 당연히 괜찮지. 어차피 나와 하운평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잖아. 흠흠.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까. 됐어. 난 그만 돌아갈게.”
그리고 내 느낌 탓인지 모르겠는데, 나를 살짝 노려보는 것 같았다.
공지운은 그대로 경공을 사용해서 뛰어갔다. 그녀를 잡을 시간도, 변명할 시간도 없었다.
청아도 코웃음을 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실망이야. 하운평.”
마지막으로 빙백아는 얄밉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호호.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다들 이상하게 오해하네. 아무튼 난 약속을 지켰다. 하운평. 너도 약속을 지켜. 내 비밀과 이향선. 알지? 꼭 돌려줘야 해.”
그리고 그녀도 사라졌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사라진 빙백아 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돌려줄게. 하지만 정확히 언제 준다는 말은 안 했으니까. 기대해라.”
그리고 일어섰다. 상황을 정리하기 전에, 일단 몸부터 씻고 싶었다.
* * *
그런데 공지운은 왜 우리 집에 있었던 거지?
그 이유를 생각하면서, 따뜻한 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옷을 벗으려다 등에 무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림비동 경지동에서 발견한 검은 상자였다. 검노 때문에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나는 생각난 김에 그걸 들고 서재로 갔다. 그리고 검은 열쇠도 가져와서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두었다.
고민에 빠졌다.
지금 이걸 열어봐야 하나? 아니면 일단 가지고만 있을까? 그렇게 잠깐 생각하는 중이었다.
놀라운 걸 목격했다.
책과 열쇠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서로를 향해 스멀스멀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열쇠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찰칵.
상자가 열렸다.
“이게 무슨……. 아아.”
상자 안에는 동그란 무언가 들어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였고, 꿈틀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금강석처럼 반짝였고, 무지개처럼 다채로웠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것은 놀랄 틈도 없이 나에게 날아왔다. 깜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내 가슴에 부딪치려 했다.
“허엇.”
나는 충격에 대비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호신기공을 가볍게 통과했다.
그리고 가슴에 부딪쳤다.
푸스스.
하지만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또 어떤 흔적이나 아픔도 없었다. 단순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 뭐지, 이건?”
나는 옷을 벗고, 가슴을 만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검은 상자는 눈앞에 있었고, 분명히 열려 있었다.
상자를 들어서 안쪽을 살폈다. 하지만 어떤 특이점도 찾지 못했다.
내 몸에는 상처가 없고, 혹시나 싶어 소주천을 돌렸지만, 내공도 멀쩡했다.
그럼 도대체 그건 뭐였지?
나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초류한이었다.
“하 공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네에. 들어오세요.”
그는 문을 열었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귀찮은 것 같았고, 문 앞에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휴우. 청아 님이 무슨 일 때문인지 잔뜩 화가 났네요. 지금 수련한답시고, 수련용 나무들을 다 부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요. 잠을 못 자겠어요.”
“아, 그런가요?”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라니.
나는 다시 옷을 입었다.
“같이 가시죠. 오해부터 풀고, 같이 준비도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청아를 찾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근래에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무림비동에 몰래 들어간 일과 검노를 만난 일, 그리고 정확히 나흘 후, 도황과 검노가 찾아올 거란 말까지 했다.
무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청아는 그러려니 수긍했다. 오히려 빙백아와의 관계를 듣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초류한은 달랐다.
무림인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다. 무림비동이 어떤 곳인지, 검노, 도황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다.
“무림비동을 털었다고요? 아니, 그런 짓을 왜 하셨습니까? 그리고 검노와 도황이 이쪽으로 온다고요? 말을 들어보니까, 당장 싸울 것 같은데요.”
“아마도요.”
“휴우우. 이미 다 결정 났지만, 그래도 묻고 싶네요.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무림비동의 물건을 훔쳐볼 생각을 하시다니……. 하 공자님 능력이면, 우승도 가능하시잖아요.”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무척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치지 않고,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조용히 나올 수 있었어요.”
“으음.”
“그리고 제가 우승하면 뭐합니까? 천음신공이 어느 비동에 있는지 모른다면요. 그 넓은 곳을 다 찾을 수는 없잖아요.”
“우승하면 무림맹에서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아니요. 역대 천포지전 우승자 기록을 찾아봤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 찾지 못해서 당황했다는 거였습니다.”
“휴우. 무림맹을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그냥 시원하게 알려주면 될 것을…….”
하지만 무림맹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이유가 있었다.
“십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한 무림 단체에서 무림비동에 있는 목록을 보고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당시 천포지전의 우승자를 협박했다고 합니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요.”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사건 사고가 많이 있었고, 그때부터 무림맹은 비급, 보물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나도 얼마 전에 알았고, 초류한도 결국 납득했다.
“아무튼 나흘 후에는 정말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인, 하녀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근처의 누구도 오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청아도 초 총관과 진소연 누님을 데리고 다른 집에 가 있어.”
“알았어.”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공지운은 우리 집에 왜 있었던 거야?”
“덕이를 찾으러 왔었어. 네가 덕이를 데리고 나갔는데, 닷새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걱정되었던 거지.”
“아아, 청해금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검노 따라 날아간다고, 청해금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본래 계획은 진천소뢰의 폭발이 있은 후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나는 그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둘러 준비했다. 그리고 집을 나서려는데, 저 멀리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야아. 하운평!! 이 거짓말쟁이. 사기꾼 새끼야!! 내가 너 잡아서 팔다리 부러뜨리고, 모가지 칠 줄 알아!}
청해금서의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살아는 있었네. 다행이다.
그런데 저놈을 어떻게 달래주지?
* * *
청해금서는 한동안 길길이 날뛰었다.
이번에는 청아가 와도 말리지 못했고, 한동안 진땀을 빼야 했다.
수화불침이라고 자랑하던 털도 일부분 탔고, 어떻게 기른 털인 줄 아느냐고 잔소리도 들었다. 또 약속 장소에서 이틀 이상 기다렸다고 온갖 욕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 그에게 이백 일간 생닭다리살을 약속하면서,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밤이 늦었지만, 청해금서와 같이 공지운에게 같이 갔다.
더 이상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 알려줄 수는 없었다. 필요한 사실만 알려줬는데, 그녀는 묘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 오해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우리 둘 사이에 작은 벽 하나가 세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그녀의 마음을 읽고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뭔가를 숨기고 있어.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지?’
그녀는 놀라운 직감으로 내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녀는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 모든 비밀을 알려주기에는……. 그래. 아직은 친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결국, 그렇게 돌아섰고, 그때부터 공지운과 조금씩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천포지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