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4
너의 초식이 보여 144화
천포지전(2)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일각? 이각?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정도 흐른 것 같았다.
정신없이 찾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운평 학생. 없습니까? 다섯 셀 동안 비무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실격처리 됩니다. 하운평 학생!!”
심판의 목소리였고, 벌써 내 차례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여기 갑니다. 잠시만요.”
비무대로 달려갔다. 몸이 불편해 보이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면서 심판이 물었다.
“학생. 그 몸으로 비무 할 수 있겠어?”
“아. 네. 괜찮습니다.”
상대를 힐끔 보면서 대답했다.
그는 산동성의 어느 무가의 자제라고 들었다. 무공은 십급이고, 이제 막 절정 언저리에 있는 고수였다.
그래. 이 정도는 괜찮다.
비록 내가 지금 한쪽 팔이 부러지고, 내공을 전부 사용할 수 없지만, 충분했다.
하얀 궤적을 보면서 그의 무공을 피했고, 빈 곳을 찾아 멀쩡한 왼쪽 주먹을 찔렀다. 그리고 그는 내 공격이 통하는 상대였다.
퍼억.
크흑.
상대는 컥컥대다가 주저앉았고, 그렇게 십 초식 안에 내가 이겼다.
“역시 하운평이야.”
“그래. 첫 상대가 너무 나빴던 거야.”
“다음 경기도 무난하겠는데.”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지. 구운룡이잖아.”
그들의 말이 맞았다.
세 번째 경기도 걱정 없지만, 네 번제 경기 상대가 구운룡이었다. 그가 문제였다. 그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지금 사람을 찾고 있었다.
백선회는 지금까지 천포지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무림비동을 습격하고, 무림비동의 호위무사를 협박하여 뇌운검의 행방을 찾았다. 그리고 뇌운검이 병지동을 확인했으니, 다음 수순은 뇌운검을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럼 천포지전에서 준결승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과연 누가 그 일을 맡을까?
그들은 이미 손월영을 비롯하여 십일급 학생들을 잃었다. 십급 이하의 실력으로는 준결승까지 가기 힘들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 보니 두 가지 답이 나왔다.
첫째, 우승 후보들 구운룡, 철대만, 조의찬들을 섭외하는 방법. 하지만 구운룡이나 철대만의 마음속을 살펴보니, 백선회와는 연관이 없었다.
남은 건 조의찬인데, 이상하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기만 빨리 끝내고 어디론가 달려간다고 했다. 그가 수상했다.
두 번째 방법은 대진표 조작이다.
만약 조의찬이 백선회이더라도, 그 하나만 믿고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힘과 여건이 충분하다면, 가장 간단하고 쉬한 방법이 있었다.
다른 우승 후보들을 한 조에 몰아놓고, 자신들의 수하들은 쉬운 조에 넣는다.
그럼 우승 후보들은 자기들끼리 싸워서 자멸할 것이고, 수하들은 쉽게 준결승까지 갈 수 있다.
바로 대진표 조작이었고, 지금의 상황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대진표를 조작한 사람이 있을 거라 확신했고, 지금 그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천포지전을 준비한 관계자들 위주로 살폈고, 특히 표정이 불안하거나 낯빛이 안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을 읽었다.
그래도 찾지 못했다.
끄응.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다시 내 차례가 다가오고 말았다.
“하운평 학생. 또 없나요? 이번에도 다섯 셀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실격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비무대에 늦게 올라갔다.
퍼억.
퍼퍽.
상대는 광동성의 누구라고 하던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를 가볍게 이겼고, 이제 우리 조에는 네 명만 남았다. 앞으로 한 번 만 더 이기면 내일 있을 본선에 참가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다음 상대가 구운룡이고, 불과 세 경기 후에 나와 붙게 된다.
나는 뛰어다니면서 생각했다.
와아. 이거 어쩌면 안 될 수도 있겠는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 * *
정확히 반 시진 후, 나는 비무대로 돌아왔다.
다행히 운이 조금 따랐다.
바로 전에 비무했던 녀석들이 의도치 않게 시간을 끌어 준 것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신중했고, 서로 공격하지 않았다. 눈치만 보다가 심판의 경고를 먹고, 관중들의 야유도 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관중석 중에 앉아 있는 천학관주를 계속 보고 있는데, 태도가 여유로웠다. 아직 그 소식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나는 갑자기 팔을 부여잡고, 아프다는 듯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심판에게 부탁했다.
“팔이 너무 아픈데, 의원한테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붕대와 부목을 다시 덧대고 싶습니다.”
이제 곧 싸울 텐데, 붕대와 부목을 다시 덧댄다고?
이해할 수 없는 듯 바라봤지만, 심판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천포지전의 규정상 비무자들이 원하면 약간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비무대 옆에 있는 의원을 만났다. 최대한 천천히 감아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겨우 일각에 불과했다. 심판은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었다.
에휴. 할 수 없지.
나는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구운룡 역시 비무대 위로 올라와 있었다.
“와아아아. 구운룡!!”
“하운평. 힘내라.”
“멋진 승부 부탁한다.”
관중석은 열광했고,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들아. 딱 보면 모르겠니? 나는 지금 다쳤잖아.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멋진 승부를 할 수 있겠어?
“마침내, 이 날이 왔구나. 하운평.”
게다가 구운룡은 아주 진지했다. 지금까지 비무에서 기수식도 취하지 않던 놈이 갑자기 검을 뽑았다. 그리고 화산파의 기수식을 취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나 지금 다쳤잖아. 우리 적당히 하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정당당하게 꺾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정정당당. 그래야 너도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너도 팔 하나만 사용하는 건 어때?”
“헛수고 마라. 하운평. 네 말장난에 놀아날 생각은 없으니까.”
이제 이 녀석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딱 잘라 거절했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럼 정정당당은?”
“다음 기회가 있겠지.”
재미없는 녀석.
그만큼 날 꺾고 싶다는 거지? 오랫동안 벼룬 모양인데…… 미안하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
나는 천학관주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천학관의 교관 한 명이 급히 그에게 달려갔고, 뭔가 속삭였다. 천학관주는 굉장히 놀라면서 일어섰고,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우리 쪽 심판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막 ‘비무 개시’를 외치려던 심판은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람과 진중한 대화를 나누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죄송하지만, 이후의 비무는 내일 진행하겠습니다.”
관중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
“갑자기 무슨 소리냐?”
“미룰 거면, 이번 비무가 끝나고 미뤄야지!”
하지만 심판은 냉정했다. 그는 중단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비무의 대진표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사태의 진위를 파악하고, 재선정을 해야 하니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경기는 내일 속행하겠습니다.”
대진표의 부정행위?
재선정?
관중들은 웅성거렸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비무대를 내려갔다.
구운룡이 급히 뒤따라오면서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그런 미소를 짓고 있으니, 의심할 수밖에.”
“너도 들었잖아.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내일 보자.”
나는 대충 대답하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그 사람을 못 찾았으면 기권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놈을 찾아냈다.
천학관의 상급교관 중 한 명이었고, 돈으로 매수당한 상태였다. 그래도 양심에 찔렸었는지, 조금만 건드리니 술술 불었다.
그는 나를 포함하여, 십여 명의 순서를 바꾸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곧장 천학관주에게 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하겠다고 약속했고, 적절한 시간에 약속을 지킨 것이다.
천학관주의 성격상, 이대로 진행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천포지전으로 중지시킬 수도 없고, 최선의 방법은 미루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오늘 저녁에 정황을 파악하고, 내일 다시 대진표를 작성하여 경기를 속행하겠지.
이제 각 조에서 남은 사람들은 작게는 네 명, 많은 조는 여섯 명이었다. 이들에게 백선회에 관련하여 강도 높은 조사를 할 테고, 몇 명은 탈락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강도 높은 조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백선회를 쫓고 있었고, 지금 내 상태를 보면 조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일 몇 명이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제발 조의찬도 백선회의 인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학관을 떠났다.
끝까지 남아서 조의찬의 속셈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다음 약속이 있었다. 검노와 도황이 관의촌의 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 * *
본래 비무자는 천학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천포진전의 규정이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다쳤다는 핑계를 대면서 관의촌의 집까지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물론 교관 한 명이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그는 마조일이란 이름을 가진, 비교적 젊은 교관이었다. 이곳에 온 지 삼 년째였고, 삼급을 가르쳤다. 꽤 열정적이라 들었다.
길을 걸으면서, 그가 물었다.
“꼭 관의촌의 집까지 가서 치료해야 하니?”
그는 나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프면 천약당에 있으면 되지, 왜 굳이 관의촌까지 가야 할까? 좋은 약이 있다는 핑계는 믿지 않았다. 그것보다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의심했다.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그래 주면 좋겠구나.”
“사실, 오늘 관의촌의 집에 중요한 손님들이 오기로 했습니다.”
“손님?”
그는 더더욱 이해 못 했다.
“지금은 천포지전이란 중요한 비무를 하는 중이잖아. 그 손님들한테 양해를 구해도 될 것 같은데.”
“안 됩니다. 너무 중요하고 감당하기 힘든 손님들이거든요. 그리고 심각한 일로 오시기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해요.”
“으음.”
그는 좋은 교관답게, 자신이 직접 한마디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한마디 더했다.
“생각과 달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요. 비밀은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손님인지 모르지만, 나는 천학관주님께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밀은 장담할 수 없구나.”
“그건……. 나중에 직접 보시고 판단하세요.”
교관은 점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우리는 관의촌에 도착했다.
내가 부탁한 대로 하인, 하녀들은 피신시켰고, 청아도 초 총관과 진소연을 데리고 모용세가에 가 있었다.
이 넓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횅한 느낌마저 들었고, 우리 둘은 연무장을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다.
교관은 그 손님이 언제쯤 오는지 물어볼 때쯤, 나는 한 곳을 가리켰다.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연무장 한가운데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노 지벽도였다.
다행히 낡은 무복을 구해서 몸은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산발이었고, 철검은 허리춤에 매달려 바닥을 끌었다.
마조일 교관은 검노를 보고도, 그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다. 귀신 같은 신법에 대단한 고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검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공손히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도황은?”
“저도 방금 도착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니 조금 더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조일 교관은 도황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무려 도황을 도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가, 허리춤의 철검을 보고 검노를 떠올렸다.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거, 검노 대협을 뵙습니다.”
“……누구냐?”
그는 떨면서 대답했다.
“처, 천학관의 교관입니다.”
“대협이라 부르지 마라.”
“알겠습니다. 검노…… 선배님.”
마조일 교관은 내 뒤에 바싹 붙어서 전음을 보냈다.
[오늘 오시기로 한 손님이 도황 대협과 검노 선배님이냐?] [네. 그런데 전음은 보내지 마세요. 검노 선배님은 다 들으시거든요.] [아, 알았다. 그리고 천학관주님께는 비밀로 하마.]그 후로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