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5
너의 초식이 보여 15화
하나 더 가르쳐 볼까(1)
술자리는 일찍 파했다.
장하진은 완전히 취해서 뻗어버렸고, 하운평도 일찍 나갔다.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투정부리니, 작은 천막을 배정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술자리에는 권왕 파해천만 남았다.
그는 죽엽청이 가득 담긴 술병을 쭉 들이켰다.
꿀꺽꿀꺽.
시원했다. 그리고 입안에 맴도는 씁쓸함을 즐겼다.
“후우. 좋군.”
술도 좋지만,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다 같이 술을 마시는 자리는 정말 오랜만이다.
과거에는 일부러 피한 적도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변하는 모양이다.
‘크큭.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굉장히 짜증 났었는데…….’
짜증뿐이겠는가? 사실 요즘 들어 삶이 우울해졌다.
과거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못생겼다고 놀림 받았어도, 무공에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무공에만 열중했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다.
노력은 보답을 했고, 마침내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었다. ‘열두존자’라 불리면서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쁨은 아주 잠깐이고, 지루함, 허탈감이 찾아왔다.
‘현경’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이다. 무공은 더 이상 늘지 않았고,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었다. 무공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친구도 없고, 제자도 없고, 가족도 없었다. 재물이나 세력도 없었다.
술김에 무적문이란 문파도 만들고, 제자도 받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버티지 못해서, 실패했다.
유일한 가족인 형의 부탁이 있어서 여기에 왔지만, 짜증만 늘었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신을 싫어했다.
‘그런데 그 꼬맹이가 나타난 거지.’
하운평이란 꼬마는 정말 이상했다.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너무나 쉽게 해결한다.
처음에는 짜증 나는 녀석이,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문득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귀여워? 그 녀석이? 크크큭.’
쨍그랑.
파해천은 마시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짧은 운공으로 술기운을 전부 날려 버린 뒤, 기지개를 켰다.
“끄으응. 귀엽기는 개뿔. 빚이나 빨리 갚아야지.”
권왕 파해천은 천막을 나와 하운평의 숙소로 향했다.
아해의 무공을 손볼 시간이다.
* * *
“하아암.”
하운평은 본인의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침상에 드러누웠다.
사실 어젯밤부터 너무 힘들었다.
밤새도록 권왕에게 매달려서 하늘을 날았고, 도착하자마자 회의에 참석했으니까.
거기에 술까지 마시고, 온몸이 노곤했다.
‘내일은 완전히 늦잠 잘 거야. 누가 깨워도 절대 안 일어날…….’
그렇게 잠이 들려는 순간에 갑자기 천막이 펄럭였다.
“야. 하운평. 일어나라.”
권왕 파해천이었고, 그는 딱딱한 얼굴로 하운평을 깨웠다.
하운평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가 파해천인 걸 알고는 다시 누웠다.
“싫어요. 이제부터 잘 거예요.”
안타깝게도 권왕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하운평의 팔을 꽉 잡았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고통이 엄습했다.
“아아악.”
하운평은 불에 덴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맴돌았다.
“으허헉.”
“정신이 번쩍 들지?”
술기운과 피곤함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기분이 나빴다.
하운평은 권왕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흠흠. 그러니까…….”
‘빚을 갚기 위해 무공을 봐주러 왔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말이 다르고 나왔다.
“그러니까, 너 고아라면서? 그런데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생겨난 거냐?”
“고아라고 했지. 돈이 없다고는 안 했는데요.”
하운평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화산파에는 황금 일곱 냥만 내는 걸로 마무리했지만, 장하진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운평은 하씨 세가의 이름으로 금 스무 냥을 빌려주었고, 권왕은 지금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휴우. 부모님 돌아가시고, 유산을 전부 정리했습니다. 무당파에 입문하려고요. 아,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 공짜로 빌려 드린 것 아닙니다.”
“우리도 공짜로 빌릴 생각은 없었다. 대가로 무얼 원하느냐? 다른 무공을 알려줄까? 물론 제자로 받을 생각은 없다.”
“아니요. 저도 무공은 됐고, 대신 여기서 벌이는 사업에 끼고 싶습니다.”
“사업이라니?”
“보물을 찾는다면서요? 만약 성공하면 저에게도 배당금을 나눠 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권왕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당돌한 꼬맹이…….’
까불지 말라고 호통치고 싶지만, 이미 돈을 빌린 상황이었다.
“그 문제는, 형님하고 의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이번 일이 성공해도 팔극진문이 받아가는 지분은 매우 적다. 아마 그 조건은 들어주기 힘들…….”
“권왕님의 배당금을 나눠주시면 되죠.”
“뭐?”
“이번 일에 권왕님도 일조하시잖아요. 지분 있으시고, 배당금도 받으실 거죠? 그렇죠?”
파해천은 몇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형이 처음 이 일을 부탁할 때, 전체 금액의 삼 푼 정도는 챙겨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겨우 삼 푼밖에 안 되냐고 웃은 적은 있지만, 솔직히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하운평은 파해천을 가만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에휴. 그럼 안 돼요. 나중에 돌려주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돈을 받아야죠. 가족 관계라도 돈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합니다.”
“누가 안 받는다고 하더냐? 당연히 받을 생각이다.”
“정말요? 같은 가족인데 받으시려고요? 그 유명한 권왕님이 돈을 받는다면, 사람들이 욕하지 않을까요?”
“그, 그런가?”
파해천은 잠깐 머뭇거렸고, 하운평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된다니까요. 권왕님 형님이 아니라 권왕님 할아버지가 부탁해도 받을 건 받아야죠. 안 되겠네. 그냥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받게 해드릴 테니까, 대신 돈을 받으면, 돈의 절반을 저를 주시는 겁니다. 어때요?”
뭔가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파해천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돈 문제는 너에게 일임하마.”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무공 문제는 나에게 맡겨라.”
“네? 무슨 뜻인지…….”
“무공을 익힐 때는 어떠한 의문도 없이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하운평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권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거절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흐음, 좋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무공수련을…….”
“안 돼. 검성이 도착하면, 우린 곧바로 지하로 내려갈 거야. 시간 없다.”
“그러면요. 설마 지금 한다고요?”
“그래. 나도 빚지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는 대뜸 하운평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움직이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마라. 네 몸 상태를 보는 거다.”
파해천이 언변은 부족하고, 사회성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무공은 진심이었다.
그는 천하에서 손꼽이는 천재였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의 내기를 하운평의 몸속으로 흘려보내면서, 하운평의 상태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혈맥이나 혈도, 근골, 근육까지 샅샅이 훑었고, 내공의 역사까지 읽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영약을 먹은 적이 있구나. 그런데 내공을 딴 놈한테 뺏겼네.”
굉장히 정확했다.
하운평은 자세하지 않지만, 사실대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내공을 가르쳐 준 사람이 제 내공을 뺏어갔었죠. 문제가 될까요?”
“아니야. 오히려 잘됐어.”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파해천은 자세히 설명했다.
“영약도 결국은 불순물이다.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종국에는 내공이 어울리지 않고, 겉돌게 되지. 절정 고수만 되어도 금방 알 수 있어. 그러니 영약으로는 혈맥을 넓히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 정도가 딱 좋아. 내가 다듬어 주기만 하면, 아주 좋은 몸 상태로 만들 수 있겠다. 그리고 네 혈맥과 근골은…….”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생각보다 굵고 튼튼해. 권법에도 어울리겠어. 그리고 몸 전체가 부드러운 편이니, 기회가 되면 면검 종류도 배워봐라. 비도술도 괜찮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공은 형편없었는데, 내공 쪽은 상당히 괜찮네. 그런데 조금 이상해. 혹시 비급은 가지고 있냐?”
“없는데요.”
“그럼 구결이라도 읊어 봐. 그리고 소주천도 해보고.”
하운평은 일양신공 구결을 한 번 불러주었다. 그리고 천독귀검이 알려준 대로 소주천을 운공했다.
그러자 파해천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어쩐지 내공의 흐름이 이상하더라니……. 너에게 구결을 알려준 놈도 비급 보고 배운 거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쯧쯧. 그놈이 구결을 잘못 해석했다. 아마도 사파 놈이 어설프게 끼워 맞춘 것 같은데, 내력이 엉뚱하게 흐르고 있어. 이래서는 대성은커녕, 평생을 수련해도 육성도 못 넘길 거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뭘 어떡해? 고치면 되지. 잠깐 기다려 봐.”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종이를 가져와서 뭔가를 적었다.
일각 정도 고민했고, 곧바로 손을 털면서 내공의 흐름을 확인했다.
“됐다. 워낙 잘 짜여진 기공이라 고칠 것도 없어. 내가 불러주는 혈도 순으로 내공을 움직여 봐.”
“저어, 저는 혈도를 모르는데요.”
“끄응. 너 배워야 할 게 많구나.”
그는 잠깐 고민 끝에 다시 하운평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오늘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제대로 도와주겠다. 대주천, 소주천 몇 번 돌 테니까, 잘 외워라.”
“네.”
파해천은 본인의 내공을 전력으로 일으켰다.
그리고 하운평의 몸속에 천천히 집어넣으면서 그의 내공을 이끌었다.
“크으음.”
하운평은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천독귀검이 도와줬을 때와는 너무 달랐다.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파해천의 내공이 하운평의 혈맥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엄청난 힘으로 밀어버리면서 남아 있는 불순물을 청소했다.
우두두둑.
이윽고 하운평의 몸이 조금씩 변하더니, 온몸에서 시커먼 뭔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겼고, 반대로 신체는 개운해졌다.
파해천은 간단히 말했지만, 그는 지금 하운평의 몸을 벌모세수(伐毛洗髓) 해주고 있었다.
절정 고수 스무 명이나, 절대고수가 온 힘을 다해야 할 수 있는 대법으로 대문파나 오대세가의 장손들만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몸을 아기의 그것처럼 깨끗이 바꾸기 때문에 내공을 익히기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덕분에 하운평의 몸은 무공을 익히기 가장 좋은 체질로 바뀌었다.
그리고 하운평의 능력도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단순히 파해천이 안내해 주는 길만 따라서 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었다. 파해천이 일양신공의 구결을 읽고 이해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마음을 통해 흡수했기 때문에 파해천이 이해했던 수준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덕분에 단숨에 일양신공을 오성까지 터득했다.
우우우웅.
빠르게 내공이 차오르면서 밤톨만 한 크기가 사람 주먹 크기만큼 커졌다.
소주천은 천독귀검이 가르쳐 준 것보다 열 배는 빨랐고, 대주천을 할 때에는 온몸이 기로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하운평을 지켜보던 파해천은 크게 놀랐다.
‘허어. 이 녀석……. 대체 뭐야!’
오늘 가르친 것 중에서 반이라도 이해하면 칭찬하려 했다.
그런데 하운평은 자신이 가르친 것 이상으로 받아들였고, 그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운공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본인이 가르치면 언제나 이해 안 된다는 놈들뿐이었다.
‘이놈 봐라. 하나 더 가르쳐 볼까?’
권왕은 살짝 재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