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53
너의 초식이 보여 153화
십천간편(5)
구진만은 하운평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보는 믿었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운도사를 찾았습니다. 지금 당장 잡으러 갈 수도 있습니다만, 대신 제 질문에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솔직하게요.”
하운평의 말에 구진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악필이라는 사람이 동교의 아버지, 동삼오에게 물건을 맡겼다고 합니다. 들어본 적 있습니까?”
“처음 듣는다.”
“그럼 혹시 동교가 특별한 물건을 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책이나 상자,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당시 동교는 어떤 물건도 들고 있지 않았다.”
역시 동교는 십천간편을 모르고 있는 걸까? 하운평은 혹시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아이에게 이상한 능력이 생겨나진 않았나요?”
지금까지 곧바로 대답하던 구진만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침묵했고, 그것만으로 대답이 되었다.
‘역시 동교와 십천간편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어.’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구진만은 잠깐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건…… 동교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힘이었다.”
그는 일 년 전 있었던 일을 천천히 설명했다.
* * *
동교는 거리낌이 없는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갔고, 쉽게 말을 걸었다. 밝은 아이라서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다.
구진만에게도 그렇게 다가왔다.
사실 그는 서성 고을에서 은둔자처럼 생활했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더 이상 살생이 싫어 사냥도 하지 않았고, 나무도 바닥에 떨어진 것이나 썩은 것만 골라 베었다. 그렇게 겨우 목숨만 연명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그리고 고민했다.
그냥 죽어버릴까? 어떻게 죽을까?
그러던 중 동교를 만났다.
도끼날을 교체하러 대장간에 갔던 날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한 아이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저씨……. 눈이 참 슬퍼 보여요.”
구진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아이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슬퍼 보인다? 내 눈이?
그래. 다른 사람 눈에 내가 슬퍼 보이기는 하는구나.
그 말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 동교는 구진만의 집을 자주 찾았다. 예쁜 토끼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저씨가 걱정되어서 왔다고.
그 말을 들자, 갑자기 울컥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를 꾹 악물었다. 그때 동교가 말했다.
“아저씨. 울고 싶으면 우세요. 우리 엄마가 울음을 참으면 병난다고 했어요.”
“아, 아니야. 울면 안 돼. 난 울 자격도 없는 놈이야.”
구진만이 부들부들 떨면서 계속 참았다. 그러자 동교가 갑자기 팔을 활짝 벌렸다.
“내가 안아줄까요? 그럼 울기 쉬운데?”
그러자 죽은 아이의 얼굴과 동교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마치 딸이 안아달라고 떼를 쓰는 것 같았고, 구진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으흐흐흑. 흑흑흑.”
그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다. 거의 온종일 울었던 것 같다.
대신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다음 날, 동교는 작은 조각칼을 가져왔다.
“예전에 공 씨 할아버지가 그러셨는데요. 슬픈 일이 있을 때, 나무로 조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대요. 아저씨도 해보세요. 이 조각칼, 빌려줄게요.”
동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각칼을 내밀었다. 그리고 구진만은 아무 말 없이 받았다.
그날 저녁부터 구진만은 무언가를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팔다 남은 나무토막을 깎아서 토끼를 만들고, 사슴을 만들었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죽은 아내와 딸의 얼굴도 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동교와 친해졌고, 그의 가족과도 인사할 사이가 되었다. 구진만은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 언젠가는 나도 마음의 평화로울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때에 일이 벌어졌다.
구진만이 나무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동교의 아버지, 동삼오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구진만에게 소리쳤다.
“구, 구 형. 우리 동교가 이상합니다. 와서 좀 도와주십시오.”
구진만은 메고 있던 짐을 벗어 던지고, 그와 함께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한눈에 봐도 동교의 상태가 이상했다.
몸이 뜨거울 정도로 열이 나고,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무공 구결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창고에서 놀고 있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어요.”
“의원을 불렀습니까?”
“제일 먼저 갔었죠. 하지만 마침 출타 중이라 자리에 안 계셨어요. 구 형. 무공을 익힌 무인 맞죠? 제발 좀 도와주시오. 우리 동교 좀 살려주십시오.”
동삼오는 구진만이 무림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원이 없자, 도움을 청한 것이다.
구진만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사람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동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진맥을 살펴보려는 순간, 동교가 눈을 번쩍 떴다.
“너 따위가 감히 나를 잡으려고 하느냐? 어림없다!”
아이는 이상한 소릴 하더니, 갑자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고 공간이 갈라지면서 뭔가 툭 튀어나왔다.
과정은 간단했지만, 결과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 갈라진 공간에서 나온 존재는 키가 일장이 넘는 커다란 요괴였다.
호랑이처럼 생겼고, 길고 큰 이빨로 부르짖었다.
“크르르릉. 쿠아앙”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휘둘렀고, 구진만은 간신히 피했다. 그러는 사이, 요괴는 삼 장이 넘는 높이를 풀쩍 뛰어 달아났다.
그것 외에도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요괴들이 튀어나왔고, 대장간을 부수고, 동교의 가족들을 공격했다.
단 한 번의 소란이 벌어졌을 뿐인데, 상황은 참담했다.
대장간은 크게 부서졌고, 동교의 가족들은 전부 죽었다.
동교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안 돼! 전부 돌아가!!”
그러자 다시 공간이 열렸고, 이번에는 반대로 그 요괴들을 빨아드리기 시작했다.
“끼웨웨액.”
그 후로 동교는 실신했고,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요괴들은 돌아갔지만, 호랑이처럼 생긴 요괴는 달아난 상태였다.
멀리서 보니, 그놈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구진만은 혼자 남은 동교를 안전한 장소로 데려갔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도끼를 움켜쥐었다.
‘이대로 두면, 마을 사람들은 전멸이다. 그리고 동교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는 동교를 위해 호랑이 요괴를 쫓아갔다. 그리고 끝내는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동교는 깨어나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아이는 펑펑 울었다.
“으아앙. 전부 나 때문이에요. 아버지 말씀대로 창고에만 안 들어갔어도……. 그래서 이상한 상자를 열지 않았으면 되는데. 엉엉. 엄마 아빠. 정말 미안해요. 엉엉엉.”
아이는 한참을 울었고, 구진만은 말없이 그녀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동교의 이상한 능력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크고 작은 공간이 갈라지면서 일어나면서 이상한 요괴들이 나타났고,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동교는 겁을 먹었다.
“아저씨. 나, 어떡해요? 나는 괴물이 된 건가요?”
“당연히 아니지.”
구진만은 말재주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했다.
“내가 도와주마.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무서워요. 아저씨는 절대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요.”
“그래.”
“꼭 약속하세요.”
동교는 그때부터 구진만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옆에 있어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구진만은 모산파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술법과 연관 있는 것 같아 방법을 찾으려 했었다.
그때 모산파 합비성 책임자였던 사람이 반운도사였다. 그를 만나면서 일이 더 꼬였다.
그는 동교를 만난 직후에 말했다.
“확실히 몸 안에 이상한 기운이 있군요. 매우 수상한 기운이라 특별한 장소에서 봐야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반운도사는 두 사람을 모산파의 지하실로 안내했고, 다른 도사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반운도사도 처음에는 굉장히 잘해주었다.
동교에게도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했고, 밤낮없이 애를 썼다. 그 모습에 정말로 도와주려는 줄 알았다.
그래도 구진만은 성격상,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무조건 동교 옆에 있으면서 반운도사를 감시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고, 그사이 동교의 능력으로 튀어나온 요괴들은 다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놈이 도망치고 말았다. 초어(문어)처럼 생긴 놈이었는데, 하늘을 날아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반운도사는 소리쳤고, 구진만은 그것을 없애기 위해 삼십여 장을 쫓아갔다. 꼭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동교를 위해서 잡고 싶었었다. 강하지는 않은 놈이라 검기를 이용해서 상처를 입혔지만, 끝내 요괴는 강 속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더 이상 쫓아갈 수는 없었고, 결국 모산파 지하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구진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과 이 각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반운도사와 동교가 사라진 것이다.
‘그놈이 일부러 놓친 거였구나.’
반운도사가 계획을 세웠고, 자신을 속인 걸 깨달았다.
그 후로 구진만은 동교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돌아다녔었다. 그렇게 벌써 구십칠 일이나 지났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보가 물었다.
“자네 정도의 고수가 그렇게 쫓아다녔는데도 못 찾았단 말인가?”
구진만은 무공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이십 년이 넘게 무림의 해결사라 불리던, 뛰어난 사파인이었다. 사람을 찾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딱 한 번 반운도사, 그놈을 만난 적 있었네. 하지만 잡지 못했어. 놈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더군.”
“어떤 놈들이었나?”
“모르겠네. 십여 명과 붙었는데, 정파의 무공을 사용하는 놈도 있고, 사파의 것도 있었어. 그래서 혼자는 힘들 것 같아 자네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하긴, 누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 사라지기란 쉽지 않지.”
하운평은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동교가 십천간편의 힘을 흡수한 것 같구나.’
일단 아이가 십천간편을 가지고 있으니 동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구진만의 말대로면 반운도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호 세력이 있었고, 혼자서는 무리였다.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침 구진만이 하운평에게 물었다.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했다. 이제 네가 말할 차례다. 반운도사, 그놈은 어디 있느냐?”
“저를 따라오십시오.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운평은 청아를 포함하여 세 사람을 데리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북쪽에서 큰 강에 도착했다. 초어괴, 고루투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수상한 자들을 만났다.
강을 바라보는 언덕에는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즐비했는데, 그중 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집을 지키는 단순한 호위무사인 줄 알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구진만을 알고 있었다. 일부로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했는데, 하운평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하운평은 그에게 다가가서 기습적으로 물었다.
“동교는 어디 있지?”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네 사람은 검을 뽑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는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고, 순식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각자의 실력이 파악된다.
누가 뭐래도 청아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혈천강시의 신체 능력에 무공까지 더해졌고, 절정고수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다.
자연스레 그녀가 제일 앞장섰고, 구진만과 남궁보는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특별한 외공을 익혔다고 생각했지 설마 강시인 줄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운평은 뒤에서 따라갔다. 무공 수준만 봤을 때는 그의 실력이 제일 낮기 때문이었다.
하운평은 싸우는 것보다 상대의 마음을 읽었다. 그렇게 동교의 위치를 찾았고, 청아에게 전음을 보냈다.
[좌측에 보이는 녹색 간판 건물, 그곳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야 해.]청아는 대답 대신 몸으로 움직였다.
곧바로 녹색 간판의 건물로 들어가서 기를 끌어올려 바닥을 내려쳤다.
콰앙. 쾅.
바닥이 크게 부서지면서 큰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네 사람은 아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