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60
너의 초식이 보여 160화
무적표국과 황보세가(2)
결국 두 시진이 더 지났지만,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그래서 황보세가는 가능한 여러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무림맹에 연락하고, 주변의 문파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무적문의 사람들과 만나서 표물을 찾는 것도 하기로 했다.
그 일은 문주인 황보주가 두 아들들을 데리고 직접 나서기로 선언했다.
무적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큰아들인 황보자룡이 있어야 하고, 둘째인 황보자벽은 절정 고수로 싸울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혹시 일이 잘못되면, 본인은 죽더라도 두 아들만은 살릴 생각이었다.
* * *
다시 열흘하고도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녹림이 뺏어간 표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찾아냈다. 그들은 훔친 표물을 주평산에 있는 주평채에 숨겨놨었다.
그래서 황보세가는 주평산 옆에 있는 인정산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무적문과 만나기로 정했다.
황보세가 사람들은 인정산의 중턱에 있는 사냥꾼의 집을 임시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아들인 황보자룡은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가주인 황보주가 혼자 될 때를 기다렸고, 마침 그가 오두막을 나와 혼자 걷고 있을 때였다.
황보자룡은 그에게 다가갔다.
“가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
황보자룡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제 실책이 매우 큽니다. 만약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세가의 다른 어르신들의 말처럼 소가주의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하겠습니다.”
“허허. 그것이 네가 내린 판단이냐?”
“네에.”
황보주는 가만히 바라보더니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자룡아.”
“네에. 아버님.”
“내가 가주로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십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 형제는 다섯이 있었지.”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열 살이 넘었으니까요.”
당시 황보주는 다섯 명 중 셋째였고, 무공이 가장 강했었다.
“당시의 가주님은, 그러니까 내 아버님은 내가 무공이 강하다는 이유로 나를 소가주를 결정했다. 나는 냉큼 좋다고 받아들였고……. 하지만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에 가장 뛰어난 문주감은 내가 아니라 내 아래의 넷째였어. 똑똑하고, 전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녔었지.”
그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자룡아. 너는 그 넷째를 닮았다. 그리고 둘째인 자벽은 나를 닮았어. 이번에도 무공이 높다는 이유로 황보세가의 소가주를 고른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거야. 황보세가는 더욱 내리막길을 걷겠지. 그렇게는 안 된다.”
“외람된 말이지만, 아버님은 지금 잘하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허허허. 내 나이 지천명(知天命)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때까지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네 동생도 시간이 지나면 통찰력이 생기겠지.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
황보주는 황보자룡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너는 통찰력이 있어. 네 나이가……. 작년에 이립이 넘었지?”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우리 세가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바로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끼리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았어. 하남성의 무적문이 뛰어나다는 걸 발견했고, 그들과의 일을 추진했지. 본래 무적문이 우리보다 북구검문과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계셨군요.”
사실 무적문은 산동성의 상대자로 북구검문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북구검문은 심드렁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강한 문파였고, 굳이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황보자룡은 그때 무적문을 처음 봤지만, 그들의 새로운 운송방식에 감탄했다. 따로 조사하였고, 무적문이 뛰어난 수완을 지녔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래서 역으로 무적문에 제안하여 계약을 따낸 것이다. 설마 가주가 여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황보주는 계속 말했다.
“그때 나는 마음을 굳혔다. 다음 황보세가의 가주는 무공 순이 아니라고, 무조건 너라고.”
“하지만 아버님. 저는 이번에 큰 실수를…….”
“자책하지 마라. 이번 일은 너의 실수가 아니다. 어느 누구고 녹림이 끼어들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싸우다가 표물을 남기고 후퇴한 것도 잘한 선택이다. 표물은 다시 되찾으면 되지만,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죽으면 찾을 수 없으니까. 네 판단이 맞았어.”
사실 이번에 녹림이 습격했을 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반이 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황보자룡은 표물을 두고 후퇴를 명했다. 끝까지 싸우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들의 말을 무시했었다.
그 일을 두고, 황보세가 사람들은 황보자룡을 겁쟁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가주인 황보주가 잘했다고 말해주니, 황보자룡은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버님.”
“너는 잘하고 있다. 그러니 너의 소신을 꺾지 말거라. 지금은 장로와 다른 어르신들 눈치를 본다고, 내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앞으로 일 년……. 아니,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내가 너를 적극 지지하겠다.”
놀라운 말이었다.
황보주는 무뚝뚝했고, 주변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휴우. 이 작은 문파에도 알력 싸움은 있다. 그리고 지금은 힘을 분산하기보다는 모아야 할 때라 판단했어. 그래서 나는 중립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네에.”
“아무튼 너는 딴생각하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만 하거라. 무엇보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돼.”
“알겠습니다. 아버님.”
황보자룡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는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축 처져 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걸음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황보주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오른쪽 숲을 살짝 보았다. 그리고 본인은 오두막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바라봤던 오른쪽 숲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둘째 아들인 황보자벽이었다.
사실 그가 먼저 산책을 하고 있었고, 가주와 황보자룡를 보고 몸을 숨겼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말았다.
황보자벽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올해 이립이었고, 부단한 노력 끝에 절정고수가 되었다. 모두가 자신을 무공의 천재라고 치켜세웠고, 반드시 가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정작 가주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야. 아버님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무공에 뜻을 두고 있는 무림세가에서 가주가 문파에서 당연히 강해야 하는 거잖아.’
그는 무척이나 답답했다. 아버님이 크게 잘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정찰을 나갔던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산적들을 감시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고, 황보자벽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아. 둘째 공자님. 미묘한 상황이 벌어져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미묘한 상황?”
“네. 산적들이 표물의 일부분을 가지고 산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표물의 삼 할에 해당되는 상당한 양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겨우 옮기는 숫자가 서른 명에 불과했고, 서둘러 옮기는 모습이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으음. 도대체 무슨 때문에? 가만……. 이건 기회다.’
산적 서른 명이라면 혼자 가도 이길 수 있는 숫자였다.
저들의 전력을 줄이고, 표물을 삼 할이나 되찾을 좋은 기회였다. 그럼 가주님도 생각을 달리하겠지.
‘그래. 문주가 될 사람은 허약한 형이 아니라 바로 나야. 무공이 뛰어난 나, 황보자벽.’
그는 생각을 굳히고, 바쁘게 움직였다.
이곳까지 달려온 남자에게는 자신이 가주님께 말할 테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수하 십여 명만 데리고 인정산을 내려갔다.
곧장 산적들이 있는 주평산으로 향했고, 물건을 옮기고 있는 산적들을 찾아냈다.
정찰했던 무인의 말대로 불과 서른 명에 불과했다. 또 황보자벽이 볼 때는 일류 이상의 고수들은 겨우 열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이삼류에 불과했다.
하나같이 아무거나 대충 걸친 복장에 무기도 각양각색이었다. 자신에 맞는 것이 아니라 아무거나 손에 쥔 것 같았고, 심지어 녹이 슨 것도 있었다.
‘저런 산적들에게 기습을 당하고, 무서워서 도망까지 쳤다고? 하아. 우리 형이지만, 너무 한심해.’
그는 형인 황보자룡을 무시하면서 습격할 준비를 했다.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들은 나 혼자 습격하겠다. 너희들은 주변에 포진하여 도망가는 산적들이나 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둘째 공자님.]‘흥. 그놈의 둘째 공자.’
황보자벽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그 둘째 공자라는 소리도 지겹다. 소가주로 불려야 해.
그는 결심을 굳히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곳은 산속이었다.
길이 좁고,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표물들을 작은 달구지에 실어서 옮겼고, 나머지는 산적들이 직접 짐을 메고 날랐다.
황보자벽은 맨 뒤에 있는 산적부터 처리했다.
스스슥.
조용히 나타나서 한 명씩 점혈시키고, 바닥에 눕혔다. 그렇게 하나하나 처리했고, 십여 명을 쓰러뜨렸다. 순조로워서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을 받았다.
달구지 바로 뒤에 다가갔을 때였고, 황보자벽은 황급히 몸을 젖혔다.
쉬익.
바로 눈앞에 검이 지나갔다. 황보자벽의 가슴에 생채기가 날 정도로 빨랐고, 황보자벽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둘러보았다.
어느새 달구지의 짐을 덮고 있던 두꺼운 천이 갈라졌고, 달구지 안에서 세 명이 걸어 나왔다.
황보자벽은 그들을 보고 안색이 굳어졌다.
저들은 자신과 비슷한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뒤에는 산적들이 퇴로를 막았다.
방금 황보자벽에게 검을 날렸던 산적이 입을 열었다.
“크흐흐. 다 자란 성견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 설익은 개새끼가 나타났군.”
“형님. 보니까 첫째 개새끼가 아니라, 둘째 개새끼인 것 같은데요.”
“큰놈은 똑똑한 놈이라고 했잖아. 반면에 둘째는 멍청해서 쉽게 걸려든 거지.”
‘끄응. 함정이었구나.’
저들의 대화를 듣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함정을 팠다는 뜻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저들은 황보세가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근처에서 있다는 걸?”
“푸하하하. 멍청한 놈들아. 주평산이든 인정산이든, 산에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알고 있어. 약초꾼, 나무꾼 전부 우리 편이니까.”
산적들은 이미 황보세가 사람들이 인정산에 숨어 있는 걸 알고,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다. 산적 중에는 머리를 쓸 줄 아는 책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바보같이 걸려들었어.’
황보자벽은 자책하면서 도망갈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산적들은 저급한 말투와는 달리 포위가 단단했다.
“낄낄. 이 새끼. 눈알 굴리는 것 좀 봐라. 도망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냥 깔끔하게 죽는 게 어때?”
“하지만 형님. 감 채주님이 가주의 아들이 나타나면 죽이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인질로 삼겠다고?”
“아아. 그랬지. 에이. 그럼 팔다리만 자르자. 목숨만 붙여놓으면 되니까.”
“네에. 몸뚱이가 커서 자르기는 좋겠네요. 흐흐흐흐.”
그들은 서로 험한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다가왔다. 말로 상대의 기를 죽이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런 싸움에 이골이 난 녹림의 고수들이었다.
‘힘들겠어.‘
탈출은커녕 살아남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이왕 죽을 거면, 절정고수 한두 명은 데리고 가리라.
황보자벽은 양 주먹을 쥐고, 기수식을 취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신기하게도 죽을 각오를 하자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저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의 귓가로 전음이 들렸다.
[황보세가의 둘째 공자, 황보자벽 맞죠? 듣기만 하세요. 싸우는 척하다가, 왼편. 그러니까 지금 코를 파고 있는 산적 쪽으로 도망가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저희?
누군지 모르지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황보자벽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