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7
너의 초식이 보여 17화
하나 더 가르쳐 볼까(3)
내가 계속 쳐다보자, 여자아이는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니? 예쁜 사람 처음 봐?”
“웃으니까 더 예쁘네.”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웃을 때, 큰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는데, 그 눈웃음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여자아이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지,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 말은 속으로 해야지. 듣는 사람 부담스럽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짜 부담스러운 건 따로 있어. 들어볼래?”
“……뭔데?”
“너는 내 이름을 알고 있고, 나는 네 이름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네 이름을 묻고 싶은데, 지금 내 상태가 너무 별로이거든. 그게 부담스러운 거야.”
“킥.”
여자아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내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니까.”
“잠깐만, 왠지 네 이름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너어……. 제갈 가문 사람이지?”
“흐흥. 내 복장을 보면, 당연히 알겠지.”
“그리고 네 이름은 소미, 제갈소미구나.”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좋아하는 색깔은…… 진홍색,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통구이? 과격한데.”
제갈소미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떻게 알았지?’
물론 제갈소미의 생각을 읽고 맞힌 거지만, 나는 둘러서 대답했다.
“제갈 세가에서 정말 예쁜 소녀가 있다는 걸 들은 적 있거든.”
“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이건 우리 가족들밖에 모르는 건데?”
“네 얼굴이 딱 돼지고기 좋아하는 관상이야.”
“뭐? 거짓말!”
제갈소미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기분은 좋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운평이 물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어제 회의 때, 하운평이란 아이가 화산파 사람들을 골려줬다는 얘길 들었거든. 그리고 여기서 어린아이는 너 밖에 못 봤어.”
“오해 있는 것 같은데, 난 골려준 거 아니야. 이치에 맞는 말만 했을 뿐이지.”
“어쨌든 그 일 때문에 구운룡이 심통 났고, 화산파의 명예를 살리겠다고 저런 비무를 하는 거야.”
제갈소미의 말에 듣고, 저 검성의 제자가 ‘구운룡’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속이 좁은 녀석인 것도.
제갈소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가만히 있을 거야? 저러다 저 사람, 크게 다칠지도 몰라.”
“글쎄. 다치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싸우고 있는 구운룡의 마음을 읽었다.
실력 차이가 크고, 팔극진문의 무사이기 때문에 좋게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배운 거라고는 일양신공과 소천포, 그리고 몇 가지 초식뿐이다.
저렇게 휙휙 날아다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어떻게…….
어. 그런데 왜 이렇게 잘 보이지?
혹시나 싶어서 일양신공을 일으켰다. 저들의 움직임이 더 자세히 보였다.
예전에는 그저 반짝이는 칼날만 보였는데, 지금은 팔극진문 무사가 휘두른 초식은 물론, 구운룡이 휘두르는 검까지 정확히 보였다.
게다가 재미있는 건, 그들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초식명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음속으로 초식명을 외치고 움직이고 있었다. 즉 초식만 알면, 다음에 어떤 공격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양극진화’
팔극진문의 무사는 속으로 크게 외치며 양팔을 크게 벌렸다.
한쪽 팔로 구운룡을 치려 했지만, 구운룡은 멋지게 아래쪽으로 피하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대가 검을 보지 못하게 한 뒤, 겨드랑이 사이로 검을 끼웠다.
‘매류통천(梅流通天).’
몸을 돌면서 검을 찌르는데, 기세가 굉장히 날카로웠다.
팔극진문 무사는 당황했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젖히며 물러섰다.
검이 왼쪽에서 찌르는 만큼 오른쪽으로밖에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구운룡의 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매류동천에서 이어나는 냉매섬락(冷梅閃落)이지.’
구운룡이 자신 있게 초식을 뻗었고, 상대방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잘 짜여진 초식의 연계였다.
크흑.
팔극진문 무사는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자세가 크게 무너졌고, 마지막 마무리만 남은 상황이었다.
솔직히 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구운룡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내가 누군지 파악했다. 그리고 찌르고 있는 검의 궤도를 바꾸었다.
본래 팔극진문 무사의 소매 부분만 찢는 걸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날아가는 검의 끝을 바꾸어 어깨를 꿰뚫었다.
아아악.
어디를 잘못 건드렸는지, 그는 비명을 질렀고, 구운룡은 즉시 검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하여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창상에 좋은 금창약을 가지고 있으니, 이걸로 치료하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정중히 사과했고 괜찮은지 재차 확인했다. 사람들은 구운룡이 실수는 했지만, 역시 명문정파의 제자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운룡의 속마음은 달랐다.
‘흥. 팔을 자르지 않은 걸 다행인 줄 알아라. 그나저나, 저 새끼가 하운평 같은데, 이걸로 겁을 먹었겠지?’
순전히 나를 겁주기 위해 저 사람의 어깨를 찔렀다.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함이 느껴졌다.
저놈도 싹수부터 틀렸네.
대문파 녀석들은 다 저런가?
곧 구운룡은 먹이를 만난 독사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포식자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반갑습니다. 그쪽이 분명 하씨 세가의 하운평 소협이지요?”
어찌나 정중하게 인사하는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주지.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하하하. 맞습니다. 제가 하 가입니다. 그쪽은 검성의 막내 제자이자 화산파의 자랑인 구운룡 소협 아닙니까?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어찌나 반갑게 인사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죽마고우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지.
나는 갑자기 달려들어, 구운룡을 힘껏 끌어안았다.
덥썩.
“하하하. 구 소협. 너무나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하하.”
구운룡은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예상 못했었다. 그래서 꼼짝없이 당했다.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내가 경공까지 사용해서 잡아버렸으니까.
게다가 나는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먼지와 땀에 젖은 옷으로 하얀 비단옷을 사정없이 더럽혔고, 구운룡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싫어하는 걸 마음속 깊이 느껴졌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싫은 티를 내진 않겠지.
“사,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그만하시지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합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요. 우리 간담상조(肝膽相照)하여 친우가 되어봅시다.”
그는 금방 정신을 차렸고, 방법을 바꾸었다.
“좋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우리 하 소협께서 권왕님께 무공을 배운다고 하던데요. 혹시 정식 제자이신가요?”
“아닙니다.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약속한 것이 있어 제 무공을 손봐주시는 것뿐입니다.”
“아아 그래요?”
구운룡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승부욕? 아니다.
죄 없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내는 악동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권왕의 제자가 아니라면, 반쯤 죽여도 상관없겠구나.’
“괜찮으시면, 저의 안계를 넓혀줄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평소 권왕님의 무공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비무로 친목을 도모하는 건 어떻습니까?”
좋아. 그렇게 싸우고 싶단 말이지?
구운룡은 본인이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어떤 방식으로 이길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멋있게 보일까?
이런 고민만 할 뿐이다.
아무래도 잘난 콧대를 한번 눌러줘야겠다.
“하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새벽부터 수련하고, 방금 전에 돌아와서요.”
“그러시겠죠. 하지만 저도 방금 전에 비무를 끝냈습니다. 그럼 서로 지친 상태이니, 짧게 할까요? 딱 십 초만 겨뤄보는 겁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바였다. 어차피 길게 싸워봤자, 밑천이 얕은 내가 불리했으니까.
나는 마지막 밑밥을 깔았다.
“아, 그리고 부끄럽지만……. 제가 무공을 배운 지 백 일도 안 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배운 초식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참고로 알아두시고, 살살 부탁드립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걱정 마십시오. 저도 부족한 제자라서 항상 꾸지람만 듣는답니다. 아, 그리고 선수를 양보할 테니, 언제든지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선수를 사양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첫 시작은 강력하게!
나는 권왕이 처음 보여줬던 소천포 정권 지르기를 준비했다.
시간이 걸리는 초식이라, 지금 순간에 딱 좋았다.
* * *
쿠쿠쿠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지금 내 안에서는 돌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공을 천천히 회전시키고 있는 중이다.
하단전에서 중단전 사이로 왕복하면서 힘을 더했고, 권왕이 보여주었던 그때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소천포, 중단 지르기 이단계.’
자세를 잡은 지 벌써 반 각이 지났다. 사람들이 하품을 하면서 지겨워했고, 구운룡 역시 한심하게 바라볼 때였다.
준비된 주먹을 뻗었다.
쏴아아악.
양강 계열에서 손꼽히는 일양신공에, 폭발적인 수법으로는 당금천하에서 제일이라는 소천포였다.
비록 오성 공력에 열두 살짜리 아이의 공격이지만, 놀래기엔 충분했다.
순간 공간의 한 부분이 비틀어졌고, 사방으로 충격파가 발생했다.
으헛.
꺄아악.
삼 장 이내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뒤로 물러났다. 그 뒤에 있는 사람들도 날아오는 바람과 먼지에 얼굴을 가려야 했다.
그리고 소천포에 노출된 구운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직면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손발이 얼었다.
그래도 검성이 아끼는 막내 제자다웠다.
그 와중에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발은 오행매화보를 밟고, 검으로는 오행매화검을 펼치면서 가까스로 소천포를 밀어냈다.
다섯 살에 입문하고, 육 년 이상 꾸준히 훈련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사이에 나는 능파미보를 사용해 가까이 다가갔고, 이어서 아까 봤던 초식을 펼쳤다.
팔극신문의 무인이 사용했던 양극진화였다.
양손을 쭉 뻗으며 밀었고, 구운룡은 자신도 모르게 아까와 비슷한 방법으로 피했다.
‘이건, 기회다.’
그는 속으로 웃으면서 조금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의 매류동천으로 피하고, 이어서 냉매섬락을 펼쳤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시킬 수 있는 연계초식이었다.
하지만 하운평은 이미 구운룡의 초식을 한 번 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유도한 거였고, 대비책도 세어 두었다.
매류동천의 초식에 오른쪽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파고들었다. 구운룡의 검이 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어깨와 등을 이용하여 힘껏 밀었다
퍼어억.
소천포를 가미한 철산고였다.
구운룡은 한 팔로 겨우 막았지만, 파괴력이 남다르다.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면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당탕.
구운룡은 자신이 쓰러진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입이 터지고, 코피를 줄줄 흘린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구운룡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비무를 하면, 항상 자신이 이겼고, 언제나 자신이 내려다보았었다.
지금 상황이 믿기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구운룡은 벌떡 일어났다.
“아, 아직 십 초가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그는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적잖은 충격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비무에 졌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하운평은 웃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때였다.
우르르르. 콰아앙.
쾅. 쾅. 쾅.
갑자기 굉음이 들리면서 땅이 흔들거렸다.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였고, 열 번 이상 연속으로 지축이 울렸다.
마치 땅 밑, 구음의 귀신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제갈소미가 소리쳤다.
“장보도. 장보도 동굴이 있는 방향이에요.”
“진천뢰다. 폭약이 터진 거야!”
누군가 소리쳤고, 그제야 사람들은 사태를 깨달았다. 지금은 비무가 문제가 아니었다.
만년한철의 주위에 매몰된 진천뢰가 터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