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9
너의 초식이 보여 19화
또 다른 능력(2)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무림인들이었다.
체력에는 자신 있었고, 하운평뿐 아니라, 제갈소미, 구운룡까지 모두가 힘을 합해서 땅을 팠다.
구덩이는 점점 깊어졌고, 그만큼 넓어졌다. 작업은 밤이 되어도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무려 십여 장을 넘게 팠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운평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심이 팽배해졌을 무렵, 땅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여기.”
“살려주세요.”
이곳이 맞다.
사람들은 더 빨리 움직였고, 잠시 후, 권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쯤이면 될 것 같으니까, 모두 위에서 나와!”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강기를 뿌렸다.
흙과 바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위에서 떨어질 새도 없이 계속 없애 버렸다.
그런 식으로 위로 치고 올라갔고, 금방 지상으로 올라왔다.
정확히 하운평이 지적한 위치였다.
* * *
길이 열렸으니, 이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한 명씩 지상으로 끌어 올렸고, 응급치료를 하고 산 밑으로 내려보냈다.
각 파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근처 의원들도 천막으로 데려왔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이번 일로 각 파에서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특히 화산파가 제일 심각했다.
화산파의 정예, 이십사수 중 네 명이 죽었고, 검성도 큰 부상을 입었으니까.
또한 팔극진문과 장한상단도 큰일이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비잔신투의 장보도가 가짜로 판명되었으니, 이대로는 파산이었다.
장하진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권왕 바로 뒤에 있었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크흐흐흑.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말 마라. 그래도 살아 있어야지.”
“아닙니다. 숙부님. 이번 일로 저는 물론이고, 저희 가족까지 길거리로 내몰리게 생겼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다. 차라리 제가 죽었으면, 비난이 전부 저에게 몰릴 테니, 저희 가족들은…….”
가만히 듣다가 하운평이 그에게 물었다.
“표 국주님. 정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나요?”
“그래.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텅 비어 있었다. 만년한철과 진천뢰만 아니었다면, 한 번이라도 의심해 봤을 것을.”
“그건 무슨 뜻인가요?”
“둘 다 굉장히 귀중한 물건이니까. 진천뢰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지만, 만년한철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거든. 그런 걸로 문을 만들었으니, 누구라도 안에 보물이 있다고 의심…….”
그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운평이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요. 만년한철. 그거라도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장하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하운평을 끌어안았다.
“고맙다. 운평아. 덕분에 살았어.”
그리고 나가서 사람들을 모았다.
만년한철에 대해 알려주었고, 그들은 합심하여 땅을 파내고 만년한철을 깨기 시작했다.
어쩌면 최소한 본전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꼬마야. 우리 얘기 좀 하자.”
장하진이 나가고 파해천은 하운평을 불렀다. 땅속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또 권왕을 찾았다.
“권왕님. 여기 좀 도와주세요.”
“권왕님. 이 사람 목숨이 위험합니다. 도와주세요.”
“큰 돌이 있어서 깨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사이 하운평은 슬며시 빠져나갔다.
결국 파해천은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부상자는 전부 치료했고, 죽은 사람들도 꺼내어 제대로 묻어주었다. 만년한철까지 대부분 수거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운평이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머릿속으로 들린 목소리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데.’
권왕은 투덜거리면서 이 일대를 다 돌아다녔다. 하지만 끝내 하운평은 찾지 못했다.
사실 하운평은 그 순간, 건너편 봉우리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봉우리 정상이었다.
* * *
상황이 정리될수록 나는 뒤로 슬며시 빠졌다.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어 나서긴 했지만, 솔직히 바보짓이었다.
권왕에서 내 능력을 그대로 노출시켰으니까.
나중이라도 권왕이 따지고 들것 같았고, 결국 몰래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무당파로 갈까? 아니야. 권왕이 찾아올 수도 있잖아.
그럼 어디로……. 에이. 몰라. 일단 나가서 생각하자.
천막에서 짐을 챙겼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숲속으로 빠졌다.
이대로 산을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장하진이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 수풀 사이로 숨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오래된 그림 같아 보였는데, 그는 한 번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찢었다.
막 구기면서 침까지 뱉은 후에 숲속에 버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천막 쪽으로 돌아갔다.
장하진의 마음을 읽고,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저것, 비잔신투의 장보도잖아?
잘됐네. 그러잖아도 장보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나는 장하진이 서 있던 곳으로 가서 찢어진 조각들을 찾았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사람들이 다 속았을까?
그점이 궁금했었다.
하지만 보기도 전에 실망했다. 장보도는 너무 잘게 찢어져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에이. 적당히 좀 하지.”
나는 아쉬워하며 장보도 조각을 하나 집었다.
그때였다.
[크하하. 멍청한 놈들은 이걸 진짜라고 믿겠지?]머리를 산발한 누군가 장보도를 들고 소리치는 모습.
그것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장보도 조각을 놓았다. 그러자 머릿속의 모습들이 사라졌다.
어, 뭐지?
이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동시에 신기했다. 혹시나 싶어 장보도의 다른 조각도 손에 쥐었다.
[보물은 다 내 것이다.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이번에는 산발의 남자가 황금빛 산을 보면서 웃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조각도 계속 찾았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나오고, 나오지 않는 조각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 것이 결정적이었다.
산발의 남자는 해가 뜨는 아침에, 장보도를 들고 작은 동굴 앞에 서 있었다.
[이걸 찾은 바보들은 나, 비잔신투의 보물을 찾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놈들은 오만의 대가를 치를 거다. 설마 살아남는 놈이 있어도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겠지. 내 진짜 보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크크크.]그는 건너편 봉우리 정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에는 어떤 뿌듯함, 만족감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저곳이구나. 저곳에 진짜 보물이 숨어 있어.
나는 그것을 확신했다.
* * *
허억. 헉.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짓을 하는 중이다. 정상을 향해 열심히 산을 타고 있었고, 어젯밤과는 다르게 지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야.
비잔신투가 그냥 정상을 바라봤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미친놈처럼 정상까지 오르다니.
빨리 권왕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데.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진짜로 거기 있으면?
그런 생각에 억지로 손발을 움직였다.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해가 중천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올라가기 직전이었고, 마지막 지대는 정말로 힘들었다.
너무 기울어져서 거의 절벽이었고, 기어서 올라가야 했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웠다. 그리고 일각 후, 마침내 정상을 밟았다.
허억. 헉. 헉.
그런데…….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넓이는 오 장 정도였고, 그냥 전부 바위였다.
난 헛지랄을 한 셈이다.
털썩.
나는 바닥에 앉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휴우. 미치겠군. 여길 어떻게 내려가냐.
너무 실망스러워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숨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정말 여기가 아닌가? 나도 비잔신투에게 속은 걸까?
그때 내가 장보도를 잡고 느낀 건, 분명 장보도가 가진 기억이었는데.
비잔신투의 강렬한 생각이 사물에 묻은 것이고, 내가 그걸 읽은 것이 분명한데. 왜……,
가만, 사물?
만약에 이곳이 비잔신투의 보물창고라면, 여기 꼭대기에도 그의 사념이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일양신공을 운공했다. 그렇게 체력을 회복하고, 장보도를 만질 때를 떠올리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나와라.
여기가 진짜 비잔신투의 보물창고라면, 몇 번이고 여길 왔을 테잖아. 그리고 무슨 생각이라도 했을 것 아냐?
그러니 사념아. 어서 나와!!
제발……!!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끄응. 그냥 포기하자.
시원하게 비잔신투를 욕하면서 일어서려는데, 무언가 발견했다.
그건 바위틈 사이에 있었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바위 위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희미한 형태지만, 발자국 모양이라는 걸 깨달았다.
발자국?
비잔신투가 여기에 발을 얹은 건가? 그리고……. 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밟았다는 뜻?
나는 뛰어올라서 힘껏 바위를 밟았다.
파악.
하지만 조용했다. 으음. 너무 약한가?
그래. 돌바닥에 자국이 생길 정도인데, 더 세게 밟아야지.
나는 일양신공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소천포까지 더했다.
그리고 발을 힘껏 내리쳤다.
쿠우웅.
그때였다.
드르르르르.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서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변화가 있었다.
구석진 곳에 바위들이 움직였고, 공간이 생겨났다. 충분히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지, 진짜로 비밀 통로가……. 엇.”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바위는 금방 닫히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달렸다.
타다다다.
바위 사이의 공간은 생각보다 빨리 닫힌다. 하지만 그전에 내 작은 몸을 넣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 심하게 부딪쳤다.
우당탕탕.
하지만 나는 아픔도 잊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결국 내 예감이 맞았다.
이곳에 뭔가 있었다.
* * *
문이 닫히자, 굉장히 어두웠다.
더듬거리며 상자 같은 것을 찾았고, 손으로 만져보니 부싯돌과 횃불 같았다.
다행이란 생각에 횃불에 불을 붙였다.
둘러보니 높이는 이 장 정도의 인공 동굴이었다. 계단은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었고, 나는 심호흡하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각보다 계단은 길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한 시진은 내려간 것 같았다. 이제는 흥분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 거리를 다시 올라가기 걱정되었고, 이러다가 이곳에 갇히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때 큰 문이 나타났다.
딱딱해 보이는 철문이었고, 이것도 만년한철이 아닐까 잠깐 의심하였다.
문은 꼭 닫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열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철문 옆에 긴 줄이 있었고, 그걸 당기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당겨도 되나? 혹시 진천뢰를 어딘가 숨겨놓았고, 터지는 건 아닐까?
당길지 말지 고민했지만, 길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잖아.
나는 무턱대고 줄을 잡아당겼다.
덜컥.
다행이다. 전천뢰는 터지지 않았다.
대신 문이 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살짝 들여다보았고, 깜짝 놀랐다.
눈앞에 황금산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