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0
너의 초식이 보여 20화
또 다른 능력(3)
철문은 무척 두꺼웠지만, 쉽게 열렸다.
안쪽은 거대한 석실, 아니, 거대한 공동(空洞)에 가까웠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였고, 넓이는 오십여 장이 넘었다. 그리고 높이는 어둡고, 멀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동굴 벽에는 이 장마다 주먹만 한 구슬이 하나씩 박혀 있는데,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야명주라는 물건 같았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황금으로 만든 물건들과 금원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높이는 대략 십여 장이었고, 고개를 올려봐야 할 정도로 높았다. 비잔신투가 앞에서 잘난 척하던, 그 황금산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른 곳도 둘러보았다.
이 넓은 공간에 황금산이 이 할 정도 차지했고, 나머지는 다른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한쪽에는 삼 장 높이의 선반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고, 골동품이나 서책, 그림, 상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종 무기들이 진열된 곳도 있었다. 검이나 칼은 물론, 창이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무기들이 보기 좋게 걸려 있었다.
또 연무장처럼 바닥에 정리되어 있는 공간도 있었고, 벽을 조금 파서 식실로 만든 곳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작은 상자들로 채워져 있는데, 향기로운 영약들이었다.
푸흐흐.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거지?
나도 모르게 계속 히죽거리게 된다.
흐음. 이걸로 뭐 하지? 무공이고, 무당파고 상단이나 차릴까?
아냐. 그것도 귀찮으니, 우선은 대궐 같은 집을 사서 평생 놀고먹는 건 어떨까?
그래. 무얼 하든 괜찮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고, 오늘 산을 탔던 헛짓거리가 보상받는 순간을 즐겼다.
그런데 딱 하나, 이상한 장소가 있었다.
제일 구석진 곳에 있었고, 작은 석실처럼 돌을 깎아서 만들었다.
마치 방처럼 가운데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위에는 딱 두 권의 책이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큰 침상과 큰 항아리가 두 개 있는데, 벽곡단이었다.
또 그 옆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물웅덩이도 있었다. 마실 수도 있는 깨끗한 물이었고,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서 내보는 구조 같았다.
여기서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공부를 하거나 무공 수련하기에 아주 좋은 곳…….
잠깐만, 이 불길한 기분은 뭐지?
그때였다.
갑자기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철문이 닫히는 걸 보았다.
“뭐, 뭐야!”
나는 놀라서 달려갔다.
혹시나 싶어서 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철문이 스스로 닫히고 있었다.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고, 정말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뛰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 발은 느렸고, 문은 굳게 닫혔다.
쿠웅.
허억. 허억.
제길.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문과 주변을 살폈다. 안에서 열 수 있는 장치 같은 건 없었다.
심지어 문손잡이도 없었다.
꼼짝없이 여기에 갇히고 말았다.
“으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 * *
한동안 지랄발광을 했다.
죽어라 철문을 때리고, 고함도 치고, 황금 등을 부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 손만 아플 뿐이다.
결국 내력이 다 소진된 후에야 그만두었다.
배가 고파서 벽곡단을 먹고, 물을 마셨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잠깐만, 이렇게 음식과 물을 준비했잖아? 그럼 죽으란 뜻은 아니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다시 샅샅이 뒤졌고, 책상 위, 책 사이에서 비잔신투가 남긴 글을 찾았다.
[본인은 고금 최고의 도둑, 비잔신투라 한다. 이 글을 읽는 자라면, 본인의 시험을 당당히 통과하고 보물창고에 들어왔을 테지.연자(緣者)여. 축하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내 보물을 주기는 싫다.
그러니 최소의 요건을 갖추어라.
누가 들어오든, 만년한철 문은 일각 후에 닫히게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으니, 나갈 수 있으면 나가면 된다.
첫째, 제삼자가 도와줄 수 있으면, 문 밖의 줄을 당겨라. 단 문이 열린 후, 일각 후면 다시 닫힌다. 명심하라.
둘째, 만년한철로 된 문을 부수고 나가라. 그 정도 고수면 내 보물을 가져갈 자격이 충분하다.
셋째, 벽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나갈 수 있다. 쉽진 않겠지만, 내 경공 실력의 반만 되어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추신 : 만약, 힘도 없고, 경공이 얕은 자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기회를 주겠다.
그런 자이면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겠지. 내가 남긴 경공을 익히고, 여기서 당당히 나가라.]
뜨그럴.
결국 여기서 무공을 익히란 소리잖아.
이 많은 보물을 눈앞에 두고,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무공을 익히라고? 몇 달? 아니, 몇 년이 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잔신투를 생각하며 온갖 욕을 쏟아냈다.
그렇게 화를 풀은 후에, 찬찬히 벽을 살폈다.
미끄러워서 비잔신투의 말처럼 올라가기 힘들어 보였다. 발 디딜 곳도 거의 없었고, 결정적으로 너무 높았다.
높이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최소 백여 장은 넘어 보였다.
끄응. 그럼 어쩔 수 없이 경공을 배워야 하는데.
나는 비잔신투가 남긴 책상 위의 책들을 살폈다.
위에 있는 것은 무공 비급으로 비잔신투를 있게 한 대표적인 경공이 적혀 있었다.
[만잠경신보 – 네 몸을 깃털과 같이 만들어 만 리를 달릴 수 있고, 어떤 흔적이나 기척 없이 어디에나 잠입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어느 누구도 잡을 수 없다.]만보편, 잠보편, 경보편, 신보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만보편은 만 리를 달리는 경공술로 몸을 가볍게 만들어 만 리를 달릴 수 있는 무공이다. 지금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보편은 기척 없이 다가서는 잠행술의 일종이고, 경보편은 짧은 거리를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경공술, 그리고 신보편은 어떤 공격이든 피할 수 있는 보법을 뜻했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만보편만 익히면 될 것 같은데, 비급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다.
사실 지금까지 사람에게 직접 배웠지, 비급을 보고 익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 여기서 말하는 혈도나 대혈, 혈맥의 이름도 모른다.
흐음. 아무래도 비급만 가지고는 익히기 힘들 것 같다.
이건 또 뭐야.
다른 한 권은 여러 그림들을 엮어놓은 그림책이었다. 그리고 맨 첫 장에는 비잔신투의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 일호를 이곳에 남긴다.‘사방천수도’라 불리며 말년에 얻은 물건이라 나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연자(緣者)는 꼭 찾아라. 성공한다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호오.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을 펼쳐보았고, 검은 현무, 하얀 호랑이 같은 그림만 있었다. 그리고 맨 뒷장에 검붉은 뭔가 묻어 있었다.
피 같아 보였는데, 지울 수 있나 싶어 손가락으로 긁었다.
허어억.
순간 너무 놀라서 책을 놓쳤다.
검붉은 피를 만지는 순간 강렬한 사념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런데 이건 좋은 것이 아니라 끔찍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소름이 돋았고, 토하고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마치 살기와 공포, 원망 온갖 것들을 묵어놓은 집약체 같았다.
관두자. 천하고 뭐고, 이런 건 안 좋아.
나는 소스라치면서 사방천수도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났다.
그동안 비잔신투의 만잠경신보를 익혀보려 애썼지만,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능력도 써봤지만, 어떤 잔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제발 되기를…….
나는 간절하게 파해천을 불렀다.
* * *
어느새 밤이 되었다.
어젯밤부터 하운평을 본 사람이 없었고, 파해천도 이제 걱정이 되었다.
‘그 녀석 짐은 아직 천막에 있던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하운평 성격에 몰래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짐을 두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아직 이곳에 있다는 뜻인데, 어디 갔을까?
파해천은 천막 주변을 돌다가, 범위를 넓혀서 진천뢰가 터진 곳으로 갔다.
혹여나 발을 잘못 디뎌 구덩이 속에 빠진 걸까?
그런 걱정으로 갔지만, 역시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소천포를 가르쳐 준 장소였다. 혹시 그곳에서 무공수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칭찬할 일이지만, 그놈 성격을 생각하면 아닌 것 같은데…….’
본래 권을 사용하는 무인들은 보법과 경공에 밝은 법이다.
파해천 역시 절정 고수 시절부터 무림에서 손꼽히는 경공 고수였고, 절대 고수인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고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었고, 빠르게 이동했다.
[구…… 권왕…….]‘응?’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땅속에 있을 때, 하운평에게 들었던 소리였다.
파해천은 즉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뒤로 돌아갔고,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궈…… 권왕 파해…….’
권왕은 소리가 잘 들리는 지점을 찾아서 그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다가 꼭대기 부근에서 하운평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는 걸 알아냈다.
‘권왕 파해천 님, 도와주세요. 권왕 파해천 님, 도와주세요. 권왕 파해천…….’
그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야. 하운평. 너 어디에 있냐?’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인데, 하운평은 역시 반응했다.
‘오오. 권왕님. 권왕님. 맞으시죠? 천지신명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황금은 꼭 좋은 데 사용할게요. 그리고 권왕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헛소리 말고, 너 어디냐니까?’
‘산 안에 있는 동굴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화흠산 두 번째 봉우리 꼭대기로 올라가시면 바닥에 발자국 자국이 있는데, 그걸 힘껏 밟으시면…….’
파해천은 하운평의 설명을 듣고 그대로 따라갔다.
곧 비잔신투의 보물 창고 입구를 찾았고, 거대한 철문까지 도착했다.
덜컥.
줄을 잡아당기자 철문이 열렸고, 하운평이 뛰쳐나왔다.
얼마나 기쁜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엉엉. 권왕님. 너무 반갑네요. 제가 여기서 세 시진이나 권왕님을 불렀거든요. 산을 내려간 게 아닐까 정말 걱정했어요. 엉엉엉. 여기서 꼼짝없이 갇혀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알았다. 인마. 그만 울어라. 꼴사납다.”
아무리 잘났어도 하운평은 아직 열두 살 아이였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진짜 기뻐서 나오는 낙루(落淚)였다.
“그런데 여긴 어디냐?”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 문은 일각이 되면 자동으로 닫혀요.”
파해천은 철문을 힐끔 보더니, 손에 강기를 머금고 힘껏 쳤다.
콰아앙.
만년한철이라는 철문이 반으로 찌그러졌다.
“우와아아. 대단하십니다.”
“흥. 그 진천뢰만 아니었으면, 만년한철 문 따위는 언제든 열 수 있었어.”
파해천은 으스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긴……. 이곳이 바로 진짜 비잔신투의 창고구나.”
“맞습니다. 저기는 황금이 쌓여 있고, 저기 가면, 비급이나 영약, 무기 등도 있고요. 또 저기에는 비잔신투 비급이 있습니다. 아주 못된 놈이죠.”
하운평은 비잔신투가 남긴 글까지 읽어주면서, 그를 악담했다.
파해천은 하운평을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네가 이곳을 찾은 거냐?”
“당연하죠.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흐음. 기특하구나. 아마도 너의 특별한 능력으로 찾은 거겠지?”
“그럼요. 내가 아니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하운평은 말을 하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급히 입을 닫았지만, 이미 파해천은 눈치챈 후였다.
“솔직히 말해봐. 네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 정도는 알아도 되잖아.”
“저도 권왕님의 목숨을 구해줬는데요.”
“흥. 그때 내 목숨은 위험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같이 있던 놈들 때문에 힘을 못 썼던 것 뿐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하운평은 어떻게 둘러댈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눈알 굴리는 거 봐라. 왜? 거짓말로 모면하려고?”
“아닌데요.”
“사실대로 말해라. 아니면 나 혼자 가버린다.”
“죄 없는 아이를 죽일 셈인가요?”
“네 말대로라면,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십 년이 걸려도 경공만 익히면 되잖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제기랄.’
하운평은 마음이 급해졌다.
“할 말 없나 보네. 그럼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더니 권왕은 반쯤 구부려 놓은 철문을 다시 펴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몇 번 치더니, 정말로 철문이 쫙쫙 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