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06
너의 초식이 보여 206화
일 년 뒤, 천포(2)
하운평이 진초의에게 말했다.
“저희는 일이 있어서 오후에 ‘개안’에 갔다가 ‘진평’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고, 자세한 예정서는 역시 오후에 보고서로 올리겠습니다.”
사실 천포는 직업 특성상 장기 출타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진초의가 딴지를 걸었다.
“잠깐만. 진평으로 간다고?”
“네.”
“그럼…….”
진초의는 책상 밑을 찾아보더니, 붉은 매듭의 족자를 꺼냈다.
“그럼 이것도 너희들이 처리해라. 어제 진평에서 온 건데, 적첩이다.”
“아, 네엡.”
하운평은 군소리 없이 적첩을 받았다. 이렇게 갑자기 일이 생기는 경우는 숱하게 많았고, 늘상 있는 일이었다.
* * *
미시(未時),
천관보 내 마방이 제일 바쁜 시간이었다.
천포들은 오전 조례와 보고가 끝나면 대부분 이쪽으로 달려왔다.
좋은 말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신입천포 매궁도 헐레벌떡 마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선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입아! 만약 좋은 말 못 구하면, 우리가 너를 타고 다닐 거다. 명심해라.”
“그리고 늙은 말은 안 된다. 짐만 될 뿐이니까 명심해.”
매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뛰었지만, 솔직히 마방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몇 번이나 헤매었고, 겨우 도착했더니, 아뿔싸. 한발 늦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길. 어떡하지?”
매궁은 무서운 선배들을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대기 줄이 너무 길었다.
좋은 말은 물 건너간 것 같고,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궁은 여러 가지 정보를 구했다.
그중에 유용한 정보도 있었는데, 뒤쪽에도 작은 마방이 있다고 한다.
아픈 말이나 수리 중인 마차들이 있는 곳으로, 운이 좋으면 이제 막 수리가 끝났거나, 치료가 끝난 말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좋아. 도박 한번 해보자.”
매궁은 중얼거리면서 뒤쪽 마방으로 뛰어갔다.
뒤쪽 마방은 규모가 작았고, 굉장히 한산했다. 일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문이 열려 있었고, 매궁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역시 난 운 좋은 남자!”
마차 안에는 큰 마차 한 대와 네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서 있었다.
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딱 봐도 말의 상태는 훌륭했다. 털에 윤기가 흐르고, 눈빛도 반짝였다.
마차도 새것처럼 깨끗하고 굉장히 튼튼해 보였다. 두껍고 무거운 데다, 아래쪽에는 강노들도 보였다.
또 안쪽에는 여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고, 온갖 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아리와 호리병, 각종 식료품뿐 아니라, 옷이나 무기 같은 것들도 보였다.
매궁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천포가 타는 마차는 다 이렇게 생겼나?”
“당연히 아니지.”
누군가 등 뒤에서 대답했고, 매궁은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백색 비단옷의 하운평이 서 있었다. 그는 마차의 표면을 만지며 설명했다.
“마차 안도 훌륭하지만, 이 마차의 최대 장점은 표면에 있지. 자칫 투박해 보이지만, 속은 얇은 강판으로 덧대었거든.”
실제로 살짝 두드리자 퉁퉁거리는 소리가 났다.
“웬만한 화살은 그냥 튕겨 버리지. 바퀴도 일반 것보다 세 배 두껍고, 튼튼해서, 웬만하면 부서지지 않아. 한마디로 마차에만 은 서른 냥을 투자했다고 보면 돼.”
“허억.”
“천포들에게 이런 비싼 물건을 만들어줄 리 없잖아? 여기 있는 말과 마차는 다 내 개인 물품이야.”
“아, 그러시군요. 선배님. 실례했습니다.”
“매궁.”
그를 부르는 사람은 철아진이었다.
매궁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철아진과 같이 온 문진부가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네. 이번에 같이 들어온 동기입니다.”
“하긴 신입이니까, 하운평 마차를 들여다볼 수 있었겠지.”
그때 하운평이 소리쳤다.
“여어. 도 형님. 저희 왔습니다.”
한 남자가 뭔가 잔뜩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그가 이곳 책임자였다.
“여어. 운평이. 준비 거의 다 되었네. 마차와 연결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저 친구는 이번에 들어온 신입인데, 제 예비용 말들을 빌려주세요. 어지간히 급해 보이네요.”
“알겠네.”
매궁은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말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몇 마리 필요하다고?”
“세 마리입니다.”
매궁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둘러 가려는데, 하운평이 불렀다.
“어디 가니?”
“네에?”
“이것도 가져가야지.”
하운평은 마차 안에서 하얀 매듭의 족자를 세 개 꺼내었다.
임무가 적힌 백첩들이었다.
“말을 세 마리 빌렸으니까, 딱 세 개만 줄게. 공평하지?”
“네에? 아, 네에.”
매궁은 얼떨결에 백첩 세 개를 받았다.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하운평은 마차에 올라탔고, 문진부와 철아진은 마부석에 올랐다.
마차는 서서히 출발했고, 하운평은 마지막으로 매궁에게 말했다.
“야. 고민할 것 없어. 선배들에게 가서 내가 줬다고 말해. 그럼 네 선배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그리고 마차는 지부를 벗어났다.
매궁은 뭔가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예상대로 선배들로부터 욕설이 쏟아졌다.
“야이, 미친 자식아. 하운평한테 말을 빌려? 미쳤냐?”
“죄송합니다. 선배님.”
“어이구. 그것도 백첩을 세 개나 받아오셨네. 으이구. 이 자식이 정말……. 안 되겠다. 일단 몇 대 맞고 출발하자.”
하지만 다른 천포가 말렸다.
“야. 진정해라. 신입이 운평이에 대해 알았겠냐? 어설프게 둘러보다가 당한 거겠지.”
“끄응. 하운평…….”
그는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동료에게 물었다.
“어쩌지? 그냥 무시할까?”
“너야말로 미쳤나? 다른 놈도 아니고 운평이가 준 백첩이잖아. 작년에 변직 선배가 그 녀석 백첩을 무시하고 버렸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었어?”
“끄응. 선배가 숨겼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털렸지. 나중에는 윗선까지 올라가서 결국 천포에서 쫓겨났고.”
두 천포는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처리하자.”
“끄응.”
“야아. 난 가족 있잖아. 천포직에서 쫓겨나면 안 돼.”
“알았어. 알았다고.”
그리고 매궁에게 다시 말했다.
“야. 신입. 이제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운평한테 가지 마라. 그놈한테는 물 한 잔도 얻어먹으면 안 돼. 아니, 공짜로 준다고 해도 거절해. 무조건이야.”
“그래. 그놈은 공짜로 주는 경우가 없어. 절대로.”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매궁은 크게 대답했다.
* * *
하운평은 숙취가 덜 깼다는 이유로 마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계속 잠만 자는 것 같았다.
문진부도 안에서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마차를 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백첩과 적첩을 읽고 있었다.
백첩 열두 개에 적첩이 하나였다.
철아진이 나섰다.
“선배님. 편안하게 보십시오. 제가 마차를 몰겠습니다.”
“마차를 몰수 있나?”
“네. 예전에 표국 일을 조금 했었습니다.”
“그래? 잘됐군. 좀 부탁하지.”
문진부는 고삐를 넘겨주었고, 휴대용 세필을 들고 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고, 내가 아는 정보를 기입하고 있네. 그래야 운평이가 보기 좋으니까.”
철아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답답하기도 했다.
“마차는 언제나 선배님이 모시는 건가요?”
“그런 편이지.”
“그러시군요.”
묘한 말투를 들은 문진부는 철아진을 올려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하운평은 편하게 쉬는 것 같고, 내가 잡일을 하는 것 같아서 불공평해 보인다고.”
“아닙니까?”
“우리 나름대로 공정하게 일을 나누고 있어.”
“그런가요?”
철아진은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문진부만 일을 했지, 하운평이 하는 일은 없었다.
문진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백첩을 덮었다.
“앞으로 같이 일하려면,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군. 흐흠. 자네 내 다리 봤지? 절뚝거리는 거.”
“아, 네에.”
“반년 전에 사파의 거두와 싸우다가 다쳤어. 왼쪽 다리가 무릎부터 발목까지 아작 났지. 같이 있던 동료는 죽었고. 솔직히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도 기적이야.”
“그럼 무공을 못 하시는 건가요?”
“나도 명색이 천포인데, 싸울 수는 있지. 단거리는 뛰는 것도 가능해. 하지만 오래 뛰는 건 힘들어. 그러니 범인을 잡을 수 있겠나?”
철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천포는 범인을 잡아야 한다. 장거리로 뛰어야 할 경우가 많은데, 현장에서 못 뛴다는 건 결격사유였다.
“사실 이쯤 되면 천포를 그만둬야 해. 보직을 옮기든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 그런데 그때 하운평이 찾아왔네.”
문진부는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와 일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더군. 현장의 일은 본인이 다 할 테니까, 대신 서류작업만 도와달라고. 그래서 잡다한 일은 내가 하고, 현장에서 어려운 일은 그가 다 하기로 했네. 실전에서는 운평이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니까, 부디 자네 멋대로 우리 사이를 판단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절실한 사람은 문진부였다.
부인에게 지병이 있었고, 치료 중이라 돈이 계속 필요했다. 당장 천포를 그만두면 치료비가 걱정이었다.
하운평은 그런 사정을 알고,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대신 치료비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류작업을 싫어한다며, 제발 같이 일하자고 사정사정하면서 부탁했다. 문진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의도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죽었던 사인충의 집에 몰래 돈을 보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문진부는 그때 하운평의 진심을 알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일했다.
하운평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사건을 해결했고, 문진부는 풍부한 경험으로 서류작업을 빠르게 처리했다. 그렇게 서로를 보조해 주면서, 작년에 전국에서 사건을 가장 많이 해결한 조가 된 것이다.
다소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철아진은 만회해 보려 했다.
하지만 문진부가 먼저 말했다.
“마차를 멈추게.”
덜커덕.
철아진은 급히 마차를 세웠고, 문진부는 눈앞의 풀숲을 바라보았다. 철아진도 나중에서야 인기척을 느꼈고,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문진부가 그를 말렸다
“진정해. 아는 사람들이야.”
잠시 후,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젊은 사내들이었다.
그중 제일 앞에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다부진 체격에 짧은 머리카락, 눈가에 찍힌 칼자국이 아주 사납게 보였다. 그는 건들거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찍.
그리고 문진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문 형. 안녕하슈.”
“자네도 잘 지냈는가?”
“뭐, 별로. 그쪽에서 시키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해.”
“그만큼 돈을 벌지 않는가? 아무튼 어제 일은 수고 많았네. 이건 보수야.”
문진부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던졌다.
휘익. 탁.
남자는 주머니를 받았고, 히죽 웃으며 열었다.
그런데 돈을 세더니,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니미럴, X발. 돈이 왜 이것밖에 없어? 문 형. 미쳤소?”
문진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잘 알 텐데?”
“X발, 흑마단 애들이 몰래 칼 들고 온 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자네가 먼저 큰소리쳤었지. 그래서 우린 그 조건에 그 금액을 약속했던 거고.”
“니기미. 우리가 흑마단 단주 데려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부하 스무 명을 동행한다는 걸, 겨우 다섯 명으로 줄여서 데려왔단 말이야.”
“그래. 하지만 칼을 숨기고 왔었지.”
“X발. 계속 말장난이나 할 거야? 이게 천포라고 오냐 오냐 해주니까 누굴 바보로 아나. 멀쩡한 다리도 아작 내줄까?”
말이 점점 거칠어지자 철아진은 더 이상 듣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