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17
너의 초식이 보여 217화
흑첩과 반성대도 오성(3)
철아진은 동굴까지 기어 올라갔다. 그 후, 하운평에게 물었다.
“선배님이 왜 이곳에 계신 겁니까?”
“쯧쯧. 너도 참 대단하다. 왜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 고생이냐?”
오히려 하운평이 되묻자, 철아진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우물거렸다.
“아. 그게 떨어지는 소리는 들렸는데……. 바닷물에 빠지는 소리가 없어서 혹시나 하고…….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그래. 너답다. 따라와.”
하운평은 손짓을 보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철아진은 그를 쫓아갔고, 동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오성 대협이 떨어지면서 바위를 떨어뜨렸었어. 그런데 절벽 중간에 부딪혔고, 잘게 부서졌지. 그래서 바다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거야.”
“그렇군요.”
입구는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커졌다. 그리고 일각 정도 걸어가니 좌우 삼 장이 넘는 큰 공간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 물건들도 있었다.
식수와 벽곡단, 육포 등 먹을 것이 가득했고, 심지어 옷가지도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한 사람이 최소 일 년은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들은 왜 준비를 하셨는지……. 엇.”
그때 동굴 안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그는 오성이었다.
“역시 살아계셨군요.”
철아진은 그를 반겼다. 하지만 오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걱정된다는 듯 하운평을 바라보았다.
하운평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것보다 안쪽에 있는 돈은 살펴보셨나요?”
“네.”
“그럼 제가 말했던 대로, 최소 육 개월은 이곳에 있는 겁니다. 가능하면 일 년까지 있으세요. 안전을 위해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나가시는 겁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서 새롭게 시작하세요.”
“넵. 명심하겠습니다.”
오성은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운평도 인사를 하면서 동굴을 벗어났고, 철아진도 따라갔다.
둘은 함께 절벽을 내려왔다. 철아진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오성 대협은……. 설마 일부러 절벽에서 떨어진 겁니까? 선배님이 저 안의 물건들을 준비해 두신 거고요?”
“그렇지.”
“왜 그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어린아이는 눈앞에서 아빠가 죽는 걸 봤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정도로요.”
“어쩔 수 없었어. 오성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는 모두를 속여야 했으니까.”
“누구를 속인단 말씀이신지?”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네?”
“오성이 절벽에서 뛰어내린 걸 본 사람들은 각자의 수장들에게 본 것을 말할 거야. 그럼 파사회 놈들은 물론, 다른 천포들, 그리고 오성의 가족들까지, 모두가 속겠지.”
“아아.”
생각해 보니, 파사회의 장로는 물론 문진부와 함께 온 천포들도 오성이 뛰어내리는 걸 목격했다.
두 단체는 오성이 죽었다고 생각할 테고, 더 이상은 그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왜 가족들까지 속여야 했을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이 진짜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다른 사람들도 믿을 테니까. 오성의 첫째 아들도 오성이 떨어지는 걸 보았으니, 가족들도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운평이 계속 말했다.
“들었겠지만, 파사회는 생각보다 크고, 무림 곳곳에 퍼져 있다. 회주를 잡으면 충격을 받겠지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야. 그들은 분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테고, 이번 일에 관련된 이들을 모두 조사하겠지.”
그럼 오성의 배신을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배신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아주 잔인하게 죽일 테고, 그들의 가족까지 건들 것이다. 물론 천관보에서 보호해 줘야 하지만, 한 손으로 열 명의 도둑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평생을 보호해 줄 수도 없다.
‘그래. 차라리 모두에게 죽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파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을지도. 그게 더 안전할 거야.’
그래도 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곧바로 새외로 달아나는 건 곤란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오성에게 최소 육 개월은 숨어 있으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후, 가족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도망친다면, 평생 안전할 수 있었다. 더구나 새롭게 정착할 수 있도록 큰돈도 마련해 주었으니…….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하운평이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잘한 것 같아?”
“네?”
“아니면 백우선 선배에게 모든 걸 말하는 것이 나을까?”
철아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의적으로 생각하면, 하운평의 행동이 백번 옳았다. 하지만 천포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면 백우선, 즉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맞았다.
“만약, 잘 설명한다면…… 백우선 선배님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그 선배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래도 내 말을 듣고 따라줄까?”
“진심으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추측만 가지고 움직일 수 없어. 오성과 그의 가족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그 말에 철아진은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지금은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철아진의 아버지도 천포였다.
하지만 말년이 좋지 않았다. 특정 문파의 위탁을 받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쫓겨났었다.
당시에 어린 나이지만, 그때부터 철아진은 다짐했었다. 꼭 천포가 되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로.
그리고 만약 천포가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규칙은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만약 오성과 가족들이 안전하다면, 규칙을 조금 어겨도 되지 않을까? 아미녀 그들의 희생이 확실해도, 천포의 규칙을 무조건 따라야 할까?
그런 고민들이 생겨났고, 철아진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천천히 생각해 봐.”
하운평은 그를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걸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을까지 내려왔고, 문진부를 만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되었어. 파사회의 장로, 강패수는 배를 타고 도망쳤고, 사공으로 위장한 천포를 만났다고 하더군. 아마도 다른 파사회의 지부로 갈 테고, 백우선 선배가 직접 쫓아가겠지.”
“잘됐네요. 우린 이만 빠져도 되겠죠?”
하운평은 강패수 장로를 쫓을 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는 반나절 전부터 이곳에 있었고, 파사회의 잔당들이 강패수와 만나는 것도 지켜보았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읽었었고, 이미 다른 단서를 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백우선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말해봤자 믿지 않을 테고, 차라리 혼자 단서를 쫓는 것이 나았다.
“두 사람은 남은 백첩 사건들을 해결해 주세요.”
“혼자 갈 생각인가?”
“네. 정보만 빼올 거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 그럼 닷새 후에 고령 마을에서 만나지.”
“그러죠.”
그렇게 하운평은 혼자 길을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하운평은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진우림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파사회의 모임이 있을 거란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 * *
그 남자는 젊었고,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금방 그의 정체가 떠올랐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
절대 잊을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
“흑지주…….”
내 말에 흑지주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녹안석의 주인. 오랜만이야.”
“항상 의외의 장소에서 보는군.”
“내가 그런 걸 좋아하거든.”
잘됐군.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마교의 다섯 개 보석의 정체, 그것들의 주인은 정해져 있는지? 그럼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지?
이럴 때 흑지주의 마음속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진정하자. 급할 건 없잖아.
능력은 쓰지 못하지만, 그동안 해온 것이 있었다.
차분하게, 먼저 물었다.
“술 한잔할까?”
“하하. 그거 좋지.”
우리는 서로에게 환히 웃었다.
마치 오랜 지기처럼 같이 걸었고,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제일 구석 자리로 가서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연거푸 두 잔을 마셨고, 그에게 물었다.
“궁금하군. 왜 갑자기…… 나타났지?”
“으음. 뭐라고 할까?”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나는 어차피 돌려 말하는 재주는 없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 지금 파사회를 쫓고 있지? 그만둬라.”
“뭐?”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아니, 그걸 떠나서 파사회를 쫓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한 것이 떠오르지만, 표정을 숨겼다. 대신 다시 물었다.
“내가 왜 당신 말을 따라야 할까?”
“아아. 오해는 하지 마. 난 너와 싸우자는 게 아니니까. 협박이나 명령 따위를 할 생각도 없어. 단지 중재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중재?”
“그래.”
중재란 분쟁 중인 쌍방에 끼어들어 화해를 시킨다는 의미다. 쌍방 중 한 사람은 나라면,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인가?
흑지주는 곧바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너와 적혈석의 주인. 둘 사이를 중재하고 싶은 거야.”
“적혈석의 주인?”
드디어 또 다른 보석의 주인이 나타나는 건가?
그런데 그 적혈석의 주인이 나와 대척점에 있다고?
잠깐만, 설마…….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설마 파사회의 회주가 적혈석의 주인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고 볼 수 있다라…….
미묘한 말투였다.
잠깐 생각한 후에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와 무슨 관계지?”
“나는 그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고, 나는 그가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관계?”
“동업자?”
“그런 셈이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유는?”
“난 원래 게으른 사람이야. 나서기 싫어하고, 오지랖도 넓지 않지. 하지만 돌의 주인끼리 싸우는 걸 또 보기는 싫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거야.”
또 보기는 싫다고?
그 말은 예전에 돌의 주인끼리 싸운 적이 있다는 의미 같았다.
으음. 나머지 돌이 뭐가 있었지?
황수석? 아니면 청파석인가?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그때였다.
모든 생각이 멎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강렬하다.
이렇게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은, 평생 두 번째였다.
아주 어릴 적, 사부인 파해천을 만나서 그가 무공을 사용했을 때.
아니, 솔직히 사람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건 단순한 강하다는 것, 그 이상이다.’
크고 분명한 눈빛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나타내는 듯, 그의 머리카락은 짙은 붉은색이었다. 또 그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사자처럼 풀어헤쳤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거칠 것이 없었다. 무척이나 당당했고, 그 누구든 자신을 막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이 남자가 적혈석의 주인이구나.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흑지주가 투덜거렸다.
“적혈주. 기다리라고 했잖아.”
“푸하하하.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말이야.”
털썩.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반갑다. 녹안주. 내가 적혈주다.”
목소리는 크고 시원했다.
그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파사회의 회주라면 남 뒤에 숨어서 다른 이를 조종하는 놈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음침하고 교활한 인상을 상상했는데, 지금 모습은 호인에 가까웠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르네.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방해를 놓기에 못된 놈을 상상했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잘생기고 귀엽잖아.”
뭐? 잘생기고 귀여워?
그 말이 거슬리긴 하지만, 다른 말이 더욱 신경 쓰였다.
사사건건이라니?
여러 사건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많이 만났었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얼마 전, 천학관에서 백천회를 상대했지?”
“설마 백천회의 회주? 너인가?”
“그래.”
베일에 싸여 있던 백천회의 회주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