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18
너의 초식이 보여 218화
적혈주의 등장(1)
백천회.
천학관에 있을 당시, 무당파의 무당신검 조의찬이 백천회의 부회주로 드러났었다.
뿐만 아니라 검노는 청룡뇌신검을 가지고 사라졌고, 남해검문의 손월영과 모용세가의 백의대주 모용성이 백천회의 인물로 밝혀졌다.
때문에 백천회의 회주가 상당히 궁금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사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구하지 못했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없는 인물로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단지 명령만 받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백천회의 회주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렇게 간단히, 그리고 적혈석의 주인, 적혈주라…….
나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차분히 말했다.
“백천회의 회주와 파천회의 회주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동일 인물일 거라고는……. 몰랐었어.”
“사실 그것만이 아니야. 내가 의욕이 많은 편이라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았거든. 하하하. 물론 그러다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도 생기지만.”
적혈주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것 중에서도 네가 방해한 것들도 있었어.”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를 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봐준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내가 너의 일을 많이 망쳤나 보지?”
“그런 셈이지.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 극히 일부분이기도 하고, 같은 돌의 주인이니까.”
“그럼, 계속 넘어가 주지 그래?”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번에는 밑에 있는 녀석들이 반대를 하네. 그래서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어. 그놈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번에는 네가 물러서야겠어. 파사회에서 떨어져.”
이런 요구를 하는 적혈주는 당당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녹안석의 주인잖아.
밀릴 이유가 없다.
“이상하군.”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봐. 질문을 한다는 건 좋은 거니까.”
“내가 볼 때, 당신은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야.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이지.”
“오오. 능력도 없는데, 사람을 잘 보는데?”
“그런데 그런 네가 아랫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고? 그들이 반대하면 그냥 죽일 것 같은데?”
“…….”
“아닌가?”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솔직히 말해. 내가 너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고. 그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러자 적혈석의 웃음이 짙어졌다.
“크흐흐. 너, 마음에 들어.”
“안타깝군. 난 네가 싫어지는데.”
“푸하하하.”
그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아,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살아서인지, 자꾸 웃음이 헤퍼지는 것 같네.”
“나이가 많은가? 그렇게 보이진 않은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나는 네 생각보다 훨씬 늙었어. 아, 그렇지. 혹시 적혈석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어?”
예전에 청아가 오색 보석의 전설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적혈석의 주인은 생명 외에 모든 걸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자라고 했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강력한 힘은 죽지 않는다는 거야.”
“뭐?”
“늙어서 죽지 않고, 병에 걸려서 죽지 않지. 심지어 누가 나를 죽이려 해도 쉽지 않을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허리에 매고 있던 도를 휘둘렀다.
서걱.
어느새 그는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다.
푸아앗.
붉은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그리고 바닥을 붉은빛으로 가득 매웠다.
이게 무슨 짓이지?
놀랄 새도 없이 그는 잘려져 나간 팔을 바닥에서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붙이면서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자라나기도 하지만, 귀찮아서 말이야.”
그 말이 끝난 직후에 그는 자신의 왼팔을 들어 보였다.
방금 잘라냈는데도,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리고 잘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불사신(不死身)?’
죽지 않는 자. 죽일 수 없는 자.
전설에나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볼 줄이야.
그는 본인이 다치거나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금방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준 셈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물이군.’
이것 외에도 놀란 것이 있었다.
조금 전 도를 휘두를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만약 그가 내 목을 노렸으면 꼼짝없이 내어주어야 했었다.
하얀 궤적조차 나중에 나타났으니…….
적혈주는 나는 물론, 어쩌면 사부인 파해천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설마 화경의 경지에 넘어서서, 생사경까지 올랐을까?
그는 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 많이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하거든.”
“그럼 답을 해줄 수 있겠군. 생사경인가?”
“아직은 아니야.”
다행이었다.
생사경이면, 덤벼볼 생각도 못 할 것 같았다.
“당신, 얼마나 살아있는 거지?”
“칠백 년? 팔백 년? 솔직히 오백 년이 넘은 후부터는 나이를 세지 않았어.”
대략 팔백 년이나 살아온 괴물.
그래. 저 정도면 무공이 화경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다.
“그래. 당신 나이가 많다는 것은 잘 알겠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당신 한마디에 모든 걸 포기하고 물러설까?”
나는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적혈주는 지금 당장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 발짝 물러서면, 앞으로 평생 그의 눈치를 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무림에 있다 보면, 계속해서 적혈주를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돌아서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는 알겠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된다.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적혈주를 노려보았다.
재미있는 건, 적혈주의 반응이었다.
그는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명심해. 이 날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네 책임이야.”
“유치하군.”
“그런가?”
“하지만 대답은 해주지. 걱정 마라.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전부 내가 책임졌으니까.”
“후후후. 역시 젊은 사람들의 자신감은 보기 좋아.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야.”
“기대하지.”
그 말을 끝으로 적혈주는 일어섰다.
그리고 이곳에 나타났을 때처럼, 성큼성큼 걸어서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고, 이어서 흑지주도 일어섰다.
나는 흑지주를 바라봤다.
그는 적혈주가 나타난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제 입을 열었다.
“녹안주.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야. 저 남자는 네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그의 말투에서 묘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그래. 흑지주는 적혈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려움?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짜증에 가까웠다.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그에게 물었다.
“흑지주. 네가 볼 때는 나와 적혈주가…… 공평한가?”
“뭐?”
“당신이 말했었지. 중립에 서 있을 거라고. 그럼 서로에게 똑같은 자리를 설 수 있도록 마련해 줘야지? 그게 중립에 선 자의 도리인 것 같은데.”
적혈주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뜻이었다.
물론 궤변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흑지주를 자극하려는 의도였고, 이것이 먹혔다.
흑지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 말도 맞지. 내가 이대로 간다면, 너에게 굉장히 불리할 테니까.”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적혈주의 세력이 얼마나 있는지,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그런 것은 알려줄 수 없다.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그다음에는 전음으로 말했다.
[대신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과거를 알려주지.] [좋아.] [너도 봤겠지만, 적혈주의 능력이면 진즉에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어. 남 뒤에 숨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왜 적혈주는 뒤에 숨어서 여러 가지 일만 벌이고 있는 걸까?] [글쎄…….] [청파주 때문이지. 그와는 오랜 숙적 사이거든.] [숙적?]숙적이라면, 오래전부터 이어온 적수, 원수를 뜻한다.
언제부터 알아온 적수일까?
아니 그걸 떠나서 적의 적은 친구라 했다.
나중에 청파주를 찾아서 같이 협력한다면, 적혈주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흑지주는 내 표정을 보더니, 의외의 말을 꺼냈다.
[혹여나 청파석의 주인을 찾을 생각이면, 하지 마라. 그는 이상한 사람이야. 좋게 말하면 독특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미친놈이지. 차라리 적혈주가 말이라도 통한다고 생각하면 돼. 그는……. 어휴.]흑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청파주를 만난 적은 있나 보군.] [그래. 보긴 봤지. 하지만 후회했어. 참고로 그가 누군지 가르쳐 줄 생각이 없으니까 포기해라.]그래. 나도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청파석의 주인이라.
전설에 의하면, 오직 청파석의 주인만 시대를 역행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했다.
시대를 역행할 수 있는 힘이면…….
설마 ‘시간’인가?
그래.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팔백 년을 넘게 살아온 자의 숙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흑지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을 흔들더니, 곧장 객잔을 나섰다.
나도 일어섰다.
더 이상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적혈주가 파사회의 회주라고 했으니, 파사회의 모임을 볼 이유도 사라졌다.
그나저나 흑지주는 내가 청파석의 주인을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나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과거에 또 다른 오색지석의 주인과 만난 적이 있었다.
창신 노광.
분명 그에게서도 돌의 기운을 느꼈었다.
그가 청파석의 주인인지, 황수석의 주인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를 만나면 단서를 얻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만나보면 알겠지.
나 역시 객잔을 벗어나면서 그와 만날 방법을 생각했다.
* * *
하운평은 열심히 달렸다.
문진부와 고령 마을에서 만나기로 했고, 약속 시간까지 이틀 남았다.
그 이후에도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무영문, 개방, 무림맹의 정보망, 모든 것을 동원해서 청파석의 주인, 창신 노광의 행방을 찾아야겠어. 그리고 적혈주의 흔적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지. 뒤에 숨어 있지만, 팔백 년이란 세월이라면, 분명 흔적이 있을 거야.’
또 적혈주가 경고했었다.
이제 가만 있지 않을 거라고.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했으니, 하운평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방비를 해야 한다.
특히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 천포 짓도 할 만큼 했다. 파사회, 백선회의 회주도 누군지 알았으니, 이제 무적문으로 가야지.’
곧바로 지부로 돌아가면, 진초의 각주에게 말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창 달려가는 중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누군가 쫓아오는 느낌을 받았고, 하운평은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벌써 적혈주의 공격이 시작되는 건가?
하운평은 살짝 긴장한 채, 감각을 끌어올렸다.
“누구냐!”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 제법이구나.”
나타난 사람은 신풍목련 위지향이었다.
하운평은 그녀의 등장에 조금은 안심했다.
“선배님께서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요놈 보게. 이놈아. 네가 나에게 일을 시켰지 않았느냐?”
“일이라면……. 아아.”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거의 반병신이 된 것 같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그리고 생긴 것으로 보아, 하운평이 한 번 놓친 적이 있는 혈조수가 분명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천포 수십 명이 수십 일 동안 쫓고 있는 인물을 단 며칠 만에 잡아 온 것이다.
새삼 그녀의 능력, 그리고 절대고수의 힘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적혈주도 대단하겠지.
“뭐냐? 우리 거래를 까먹은 거냐?”
“설마요. 그럴 리 있겠습니까?”
하운평은 품속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꺼내었다.
언제 올지 몰라 미리 준비해 둔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