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22
너의 초식이 보여 222화
사부님이 위독하다(3)
신기수사 봉진태.
그는 지금 우울한 표정으로 결계 밖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검노 지벽도를 보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결계를 충분히 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구나.’
더 이상 저들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최후의 수단을 생각해야한다.
사실 만약을 대비해 수십 근의 화약도 준비해 두었었다.
그걸 사방에 묻어놓았고, 터뜨린다면 이 지역을 전부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럼 검노는 몰라도 이세계로 통하는 분열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모험이었다. 이세계의 분열까지 막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죽을 수도……, 젠장.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오래 살았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그런데 술 한잔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때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신기수사 님.]허억.
신기수사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휘적거리며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았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하운평이고, 권왕이 제 사부님이시죠. 몇 년 전, 사부님을 모시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만, 기억하시나요?]“아, 그래. 기억난다. 마교의 녹안석을 가진 녀석.”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빙하선녀 배소소 선배님과 당문의 사람들과 같이 왔습니다. 왜냐면…….]하운평의 이쪽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신기수사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나갔고, 곧 괜찮은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 * *
검노는 뚱한 표정으로 결계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모용성이 그를 다독였다.
“선배님. 단순히 결계만 깨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
검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각이 넘도록 가만히 있다가, 마지못해 앞으로 움직였다.
그르릉. 그르릉.
무림비동을 나온 지 몇 해가 지났지만, 그는 달라진 곳이 없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은 깎지 않았고, 역시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또 허리춤에는 녹이 슨 낡은 철검이 여전히 달고 있었고, 바닥에 긁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결계 쪽으로 다가갔다.
신기수사가 어떻게 만들어놓았는지 모르지만, 이 결계는 물리력이 통하지 않았다.
여태껏 수십의 절정고수가 깨기 위해 노력했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검노를 부른 것이고, 모용성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지금 검노는 불만에 쌓인 것이 문제였다. 이해는 했다. 약속과는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적수를 찾아주지 못했으니.
‘검에 미친 자 같으니라고. 하긴 권왕과 한바탕하려 했는데, 놓쳐 버렸으니, 화도 날만 하겠지. 쳇. 계획대로만 되었어도…….’
우우우웅.
검노의 기가 폭발하듯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쌓인 분노를 표출하듯, 땅까지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강대한 기가 절정에 다다를 때, 검노가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엄청난 검강이 줄줄이 뻗어나기 직전이었다.
드드드, 후두두두.
조금 전과는 결이 다른 흔들거림이 생겨났다.
대지뿐 아니라 공기까지 흔들렸고, 무슨 일인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결계가 약해지는 것이 보였다. 노란색이 눈에 띄게 옅어진 것이다.
‘뭐지? 신기수사가 포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함정?
어찌 되던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모용성은 뒤에 있는 세 사람에게 소리쳤다.
“안으로 들어간다. 선두는 손월영, 이어서 강해도사가 청성파, 아미파 녀석들을 데리고 나선다. 흑천문은 후위를 맡는다.”
“알겠습니다.”
“네.”
손월영과 두 남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 한 사람은 백천문의 산하조직인 흑천문을 이끄는 흑천문주였다. 그는 과거 동교 일을 주관했었고, 하운평을 만난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부회주라는 직책을 가졌었지만, 최근 실수를 몇 번 했었고, 현재 흑천문주로 좌천된 상태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강해’라는 법명을 가진 도사로서 모산파 도사였다. 동교 일 때문에 모산파의 반운도사를 섭외할 때, 같이 데려왔었다.
그는 현재 고루잠을 다루는 역할이었다.
강해도사가 고루잠을 다루고, 고루잠은 고루투들을 조종한다. 청성파와 아미파 고수들의 머릿속에는 고루투가 하나씩 들어 있기 때문에 모두 움직일 수 있었다.
결국 강해도사가 그들을 조종하는 셈이다.
모용성은 마지막으로 따라오는 당문을 바라봤다.
“정말 이번에는 네가 직접 들어갈 생각이냐?”
“네. 지난번, 흑지주께서 백잔초를 가지고 오셨을 때,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식물의 구조상 열매보다 뿌리가 더 값진 것 같거든요. 또 다른 독초는 없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놀랍군. 그 열매로 그 열두존자조차 중독시켰는데, 그 뿌리가 더 강력하다고?”
“흐흐흐. 아마 그 정도면, 고금제일독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당문의 머저리 놈들은 제 발꿈치에도 못 쫓아오는 거죠.”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백선회 고수들이 천천히 결계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신기수사는 반대로 결계 밖으로 나갔다. 검노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또 그동안 하운평은 배소소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 * *
‘저 녀석만 제압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하운평은 하늘 높이 보이는 고루잠을 바라봤다.
역시 검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움직였고, 어느새 십 장 앞까지 다가갔다.
그는 과거 고루투에게 했듯, 녹안석의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언령을 사용했다.
“고루잠. 나에게 복종해라.”
그런데 놀랍게도 고루잠은 거절했다.
오히려 몸을 돌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초어가 바닷속에서 헤엄치듯, 열 개가 넘는 다리를 오므렸다가 동시에 쭉 뻗었다.
몸이 쭈욱 늘어났고, 생각보다 빨랐다. 놈은 단숨에 높이 달아났다.
배소소가 물었다.
“실패냐?”
“네. 생각만큼 안 되는군요. 게다가 검노에게도 들킨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단계로 가야겠구나.”
그녀는 아래로 휘익 내려갔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올라오는 검노를 맞이했다.
번쩍.
콰콰콰쾅.
검노의 검기가 아래에서 위로 쏟아지고, 배소소의 빙옥수가 하얀 결정체를 만들어내면서 막았다.
그렇게 두 절대 고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운평은 그전에 공중에서 뛰어내렸고, 키가 큰 나무를 타고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렸다. 동시에 당수협에게 전음을 보였다.
[이 단계다.]그러자 당수협은 옆에 있는 당조에게 속삭였고, 숨어 있던 당문의 고수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 * *
고루잠과 강해도사는 연결되어 있었다.
고루잠에 벌어진 일을 강해도사도 알고 있었고, 모용성에게 알려주었다.
모용성은 황급히 명령했다.
“신기수사가 결계를 푼 이유가 이것 때문이구나. 흑천문주. 흑천대를 이끌고 당문을 상대해라. 너희들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손월영, 네가 도와줘야겠다. 강해도사, 너는 나와 함께 이대로 전진한다.”
“알겠습니다.”
흑천대에는 절정고수 십여 명과 일류고수 마흔 명이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결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손월영이 더 빨랐다. 그녀 역시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였고, 제일 먼저 부딪친 사람은 당수협이었다.
쉬리릭.
당수협은 당문인으로서 보기 드물게 채찍을 익혔고, 그것으로 절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의 무재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손월영은 확실히 달랐다.
그녀는 남해검문의 검술을 모두 익혔고, 그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검술을 창조하는 경지였다.
이미 같은 수준의 절정고수가 아니었다.
콰아앙.
그녀는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대검을 온몸의 반동으로 휘둘렀다. 채찍이 끊어질 듯 휘어졌고, 당수협은 사정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는 손월영을 특히 조심하라는 하운평의 말이 떠올랐다.
‘제길. 하운평. 이건 조심한다고 될 수준이 아니잖아.’
불과 십 합 만에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때 당조가 끼어들었다. 그는 당수협을 구해주고, 크게 소리쳤다.
“계획은 실패다. 모두 후퇴한다.”
당문의 사람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싸우고 있던 배소소도 아래쪽 상황을 힐끔 보더니,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얼음 마녀. 어딜 도망가느냐?”
검노는 간만에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이 나서 쫓았다. 그 덕분에 백선회 무사들은 크게 반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신기수사는 그런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바닥에 진을 설치하고 주문을 외웠다.
드드드드.
다시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노란빛의 결계가 생겨났다.
조금 전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에는 신기수사가 밖에 있었고, 모용성을 비롯해 백여 명이 이 결계 안쪽에 있었다.
사실 모용성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을 반으로 나눈 전략은 좋았다. 하지만 신기수사의 목적은 결계를 쳐서 우리가 이세계 분열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 그런데 지금 상황에 결계를 쳤다? 무슨 의미지?’
그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친 결계는 목적이 달라. 너희들을 막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잡으려는 덫이지.”
모용성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용성은 곧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본 적이 있었다.
“하운평……. 여기에 나타났군.”
그리고 하늘 위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빙하선녀 배소소가 무적문에 있다고 들었다. 그녀가 나타났을 때 너도 나타날 거란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그럼 권왕도 같이 왔나?”
권왕도 왔다니?
그의 말에 듣고, 하운평은 의아했다.
‘무슨 말이지? 백선회 놈들이 사부님을 중독시킨 것 아니었나?’
모용성의 마음을 읽으니, 그는 진실을 얘기했다.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백여 명의 청성파, 아미파 고수들이 달려와서 검을 내밀었다. 모용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어찌 되었건 어리석구나, 하운평. 너 혼자 이렇게 나타나다니.”
“쯧쯧.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백선회를 따르면서 내 능력도 모르다니.”
모용성의 의아하게 바라봤고, 하운평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지금 노리는 상대는, 모용성이 아니었다.
강해도사였다.
번쩍.
강해도사도 정신계 술법을 알았고, 나름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운평의 능력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기에 충분했다.
아득히 높은 수준으로 단번에 사로잡았다.
하운평이 명을 내렸다.
“멈추어라.”
강해도사가 시키는 대로 소리쳤고, 고루잠은 그 말을 따랐다. 고루투에게 명령했고, 청성파, 아미파 고수 백여 명이 일제히 멈추었다.
모용성은 이런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분명 하운평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 알았다. 위험하다는 언질도 받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백여 명이 저쪽 편에 붙었고, 이쪽에는 모용성 옆에 있는 십여 명이 전부였다.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지금 강해도사 상태를 보면, 하운평에게 잡힌 것 같다. 그럼 강해도사를 죽이면 된다.
다만 강해도사를 죽이면, 고루잠과의 연결점이 없어진다. 고루잠을 다스릴 수 없었고, 자칫 고루잠을 놓칠 수도 있었다.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서걱.
모용성은 가차 없이 강해도사를 죽여버렸다.
그가 알기에 고루잠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흑지주, 그가 있으니 지금 고루잠이 날뛰어도 괜찮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하운평, 저자를 죽이는 거라 생각했다.
반면 하운평은 살짝 놀랐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모용성이 강해도사를 죽일 줄은 몰랐었다.
그만큼 모용성의 상황판단이 빨랐고, 냉정했다.
‘하긴, 그러니 모용세가를 배신했겠지.’
강해도사를 이용해서 상황을 역전시키려 했는데, 반만 성공한 셈이다.
으아아악.
꺄아악.
그런데 변수가 하나 더 생겨났다.
강해도사가 죽고 나니, 고루잠이 폭주한 것이다. 고루잠의 지시에 받는 무사 백여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