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35
너의 초식이 보여 235화
유적(5)
창신 노광.
그가 청파석을 얻은 건 사부님 덕분이었다.
그의 사부는 창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평생을 이인자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게 한이 되었는지, 하나뿐인 수제자에게 많은 것을 해주려 했다. 그중 하나가 마교와의 싸움에서 얻은 보물, 청파석이었다.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귀중한 물건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조심히 숨겨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노광에게 청파석을 주었다.
쥐고만 있어도 느껴졌다.
본인의 시간과 주변인들의 시간이 달라졌으니까.
신이 난 노광은 불야청청(不夜淸淸) 노력했고, 오 년 후, 무림으로 출두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느리게 움직이니, 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는 사부님의 유언을 받들어, 협을 위해 노력했고, 천하제일을 목표로 애를 썼다. 그렇게 노광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청파석을 사용할수록, 대단함을 느껴졌다.
자신의 제외한 주변의 사물을 멈추게 할 수도 있었고, 그러 삼킴으로써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그는 시간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못된 짓을 저질러도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을 고치면 그만이다. 그리고 미래로 가서 좋은 보물이 있으면, 회귀해서 보물을 선점했다.
그의 도덕 기준치는 점점 낮아졌다.
무슨 짓을 하든 고치면 되니까.
또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무공은 확연히 강해졌다. 그렇게 화경을 눈앞에 두는 어느 날이었다.
노광은 적혈주를 만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패배했다.
잔인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과거로 도망갔다.
그날부터 노광은 달라졌다.
적혈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것이다.
의와 협, 사부님의 유언까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세는 것도 잊었다.
적혈주와 몇 번을 싸웠고, 몇 번이나 과거로 회귀했는지. 그리고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 미래에 갔다 왔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혈주를 꺾지 못했다.
적혈주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살아온 절대자였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그의 육체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다.
오색지석을 공부하고,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황수주를 죽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강대한 힘이 부러웠고, 그를 죽이고 황수석을 가지려 했다.
일단 삼켜보았다. 하지만 죽을 것 같은 고통만 느꼈다. 인간의 몸으로는 두 개의 오색지석을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광 본인의 몸으론 불가능했다.
그래서 가능한 사람을 찾았다.
손월영이란 아이를 찾았다.
실로 완벽한 신체였고, 소름이 끼치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어릴 때부터 만나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물심양면 도와주면서 그녀의 환심을 샀다. 심지어 환술, 미약까지 동원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황수석만 주었고, 나중에는 황수석과 녹안석을, 황수석과 흑지석을 먹인 것이다.
즉 흑지주와 녹안주를 여러 번이나 죽였다는 의미였다. 과거로 돌아가서 죽이고, 실패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죽이고.
그짓을 수십 번이나 반복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월영은 두 개의 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잔인할 정도로 손월영을 몰아붙였다.
심하게 괴롭히기도 하고, 영약이나 무공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끝에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야 황수석을 잘 흡수한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에게서 오색지석을 빼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빈사 상태에서 돌을 빼내야 쉽게 뺏을 수 있었다. 자칫 죽어버리면 보석이 같이 사라졌고, 멀쩡한 상태에서 빼내면 부서지기도 했으니까.
조금씩 정리가 되어갔다.
일단 손월영은 죽기 직전에 황수석을 잘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녹안주인 하운평은 권왕의 제자로 들어가서 무공을 잘 익히면, 녹안석을 먹지 않는다. 완벽한 상태로 빼낼 수 있었다.
손월영은 흑지석과 맞지 않는다.
황수석과 녹안석을 섞을 때, 그녀는 몇 배 더 강해진다. 아니, 강해진다는 걸로는 부족하고, 독특하고 강렬한 기운이 생겨났다.
기존의 없던 것이고, 이것은 다른 보석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다. 이거면 적혈주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손월영의 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겨우 한 시진.
그 이후에는 몸이 붕괴되었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이 더 붙었다.
황월영이 두 개의 보석을 삼키는 순간, 적혈주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
노광은 고민했고, 그러기 위해서 흑지주를 끌어들였다.
어렵지 않았다.
흑지주는 호기심이 많았고, 적혈주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이었다.
눈앞에는 손월영이 있다.
두 개의 보석을 삼켰으며, 완벽한 무기로 만들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아래층에는 적혈주가 있었다.
한 시진이면,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방법을 찾았으니,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된다. 그리고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고, 바꾼 후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래. 나야말로 진정한 무적(無敵)이다.’
이제 가야 할 때였다.
흑지주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청파주는 손월영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손월영은 멍한 표정으로 따라왔다.
두 개의 보석을 섭취했을 때부터 이미 정신은 망가진 상태였다. 오직 어릴 적부터 세뇌된, 청파주의 말만 들을 뿐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지하로 내려갔다.
* * *
적혈주는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사대무구를 바라보았고,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눈앞에 적혈주가 보이자, 노광은 벌써부터 흥분했다. 그리고 곧바로 손월영에게 명을 내렸다.
“저자를 죽여라. 무조건 죽여야 한다.”
손월영은 망설임 없이 적혈주에게 달려갔다.
청파주도 그 뒤를 따랐다. 그동안 적혈주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방심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황월영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본인도 도와서 같이 끝장낼 생각이었다. 만약 잘못되어도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것이 좋았다.
반면 흑지주는 뒤로 물러섰다.
그는 멀리서 보는 것을 좋아했지, 가까이서 모험을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쿠쿠쿠쿠.
황색과 녹색의 어우러진 검을 필두로, 막대한 기가 손월영을 감쌌다.
그녀는 그 기운은 강기와 비슷하게 압축했고, 그녀 자체가 하나의 날카로운 칼이 되었다.
그 상태로 적혈주를 찔렀다.
이어서 노광 역시 창을 뽑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따라갔다.
반면 적혈주는 그들을 느끼지 못했는지,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노광은 가까이 갈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실력이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가 움직이기 싫어서야.’
왜?
설마, 함정인가?
오히려 내가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면서, 노광은 잠시 주춤했다.
그때 적혈주가 움직였다.
쉬익.
콰아앙.
몸을 돌리며, 손월영의 공격을 막았다.
뒤로 밀렸다. 그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보였다.
‘아니야. 역시 내가 맞았어.’
노광은 다시 전력을 다해 달렸고, 적혈주를 같이 공격했다. 혹여나 도망가지 못하게 퇴로를 차단하려 애썼다.
아니나 다를까 적혈주는 계속 물러서면서 도망치려 했고, 그때마다 노광이 막아섰다.
그를 잡아두었고, 손월영이 적혈주를 공격하고 갈랐다.
효과가 있었다.
적혈주에게 상처가 생겼고, 그 상처는 재생되지 않았다.
노광은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성공했다.
기뻐서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노광은 적혈주의 눈과 마주쳤다.
‘어어, 웃어?’
분명 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확실히 웃고 있는 것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고, 싸워본 노광은 알 수 있었다.
‘하, 함정이다. 도망가야 해.’
그는 급히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려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푸하하하. 쥐새끼야. 드디어 걸렸구나.”
적혈주는 크게 웃었다.
“내가 왜 이곳에 계속 있었을까? 내가 왜 미친놈처럼 이세계를 열려고 노력했을까?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 이 멍청한 녀석아.”
노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이 그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듯, 적혈주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사실 적혈주가 사방천수도의 무구를 모은 건, 삼백 년 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지다 재미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네 개의 무구가 모이는 순간, 이세계의 통로가 열린다. 하지만 그만큼 큰 힘이 필요했고, 주위의 모든 힘을 끌어들인다.
죽은 이의 혼, 공기 중에 떠 있는 기(氣), 무림인들의 내력 등을 빼앗았다.
심지어 오색지석의 힘까지 앗아갔다.
한 마디로 네 개의 무구가 열리는 순간이면, 적혈주는 자신의 몸을 재생할 수 없었다.
이 순간에는 오색지석의 주인들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적혈주는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청파주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파주는 여우 같은 놈이고, 겁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과거로 도망쳤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속여야만 했다.
적혈주는 신중하게 고민했고, 오랜 시간동안 준비했다.
먼저 뇌신청룡검을 무림에 풀었다.
일부러 엉뚱한 소문을 내면서 분란을 일으켰고, 무림인을 유혹했다. 청파주를 속이기 위한 첫 번째 단추였다.
그 과정에 몇백 명이 죽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뇌신청룡검을 무림맹이 가져가도록 놔두었다.
그는 청파주의 반응만 살피며, 유적을 파면서 기회를 노렸다.
네 개의 무구를 모으는 척을 했고, 또 무구를 모으는 목적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이세계의 통로를 열었다.
세상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걸 알지만, 청파주를 속이기 위해 감수했다.
이세계의 통로를 여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작전은 착착 진행되었다.
사방천수도를 따라 사람들은 유적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을 보고 청파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혈주가 네 개의 무구를 모으는 이유가 이세계의 통로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적혈주는 흑지주의 배신도 알았었다.
오히려 좋아했고, 그를 이용하여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청파주를 여기까지 안내하도록 기다렸다.
그는 백 년이 넘도록, 오늘만 오길 기다린 것이다.
마침내 청파주가 나타났다. 하지만 적혈주는 끝까지 인내했다.
그들이 무구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중간에 청파주가 의심을 하는 것 같자, 그제야 움직였고, 일부러 손월영에게 밀리는 척 연기했다.
“긴 기다린 끝에 마침내 사냥에 성공했구나.”
적혈주는 자축했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손월영도 힘을 쓰지 못했다.
그녀는 오히려 몸을 부르르 떨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녹색 빛이 아른거리는 보석과 노랗고 영롱한 보석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푹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청파주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놈아. 이런 상황이면 너 역시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느냐?”
“그래. 바로 그것이다. 청파주. 무림인답게 싸워보자. 능력 따위는 버리고, 칼과 창으로 승부를 내는 거야! 크하하하.”
적혈주는 호탕하고 웃었고, 신이 나서 청파주에게 달려들었다.
청파주 역시 창을 꽉 쥐었다.
말을 하다보니, 그도 깨달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가 몇백 년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도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적혈주 역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적혈주는 몇 백년 전에 이미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반면 청파주는 화경의 경지에 오른 지, 백 년이 조금 넘었다.
그것도 대단한 시간이지만, 적혈주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랐다. 한마디로 배소소보다는 강했지만, 적혈주보다는 약하다는 의미였다.
둘의 실력 차이는 오래전, 처음 싸웠을 때보다 오히려 더 벌어진 것이다.
그때도 무참히 두들겨 맞았는데, 지금은 적혈주의 칼날에 오나전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사방천수도의 무구들이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상황에서는 두 사람의 기와 내공이 거의 전무했다.
절대고수로서 천지가 격변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일반 무사보다 못한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비참했다.
퍼어억. 퍼억.
까깡. 깡.
스걱. 피익. 핏.
그리고 마침내 적혈주의 검이 청파주의 심장에 꽂혔다.
푸우욱.
“허억. 마……, 말도 안 돼.”
청파주는 무릎을 끓었고, 너무 억울해서 눈에서 피가 흐르는 듯 보였다.
적혈주는 그런 그를 보면서 잔인하게 비웃었다.
“크흐흐. 드디어 잡았구나. 쥐새끼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마침내 끝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적혈주가 중얼거렸다.
“네놈 성격은 쥐새끼 같지만, 한 가지는 인정하마. 내가 살아온 천년의 세월 동안, 너만큼 지독한 새끼는 없었다. 너는 나의 유일한 호적수였다.”
그리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서걱.
털썩.
청파주의 목이 날아갔다.
몇백 년을 걸쳐 싸워온 청파주의 시체는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