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39
너의 초식이 보여 239화
도둑들(2)
빙백아는 기분이 상쾌했다.
천학관에서 졸업한 이후, 줄곧 이화궁 안에만 갇혀 있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훔칠 기회가 없었다. 굉장히 답답했었는데, 드디어 외출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천하제일 비무대회에 참석한다는 핑계로 이곳까지 왔었고, 사실 참석보다는 도둑질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암흑현무갑을 노리진 않았다.
그렇게 큰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고, 돈보다는 재미였다.
때문에 그녀의 목표는 이곳에 놀러 온 갑부들이다.
특히 이런 곳에 오면서 값비싼 장신구를 치렁치렁 달고 온 멍청이들.
그들의 주머니를 훔치는 걸로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렇게 사흘째, 서른 명이 넘는 바보들을 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던 놈들까지 따돌렸다.
빙백아는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이 맛에 도둑질을 한다니까.”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 무복을 벗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비단옷을 걸쳤다.
도둑인 천영신투에서 이화궁의 소궁주, 빙백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아쉽군. 아쉬워.”
방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빙백아는 크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누구냐!”
검을 뽑은 상태고, 암암리에 이화신공을 일으켰다.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침상과 벽 사이, 어두운 공간에 숨어 있던 놈이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는 친숙하게 굴었다.
“사제. 마무리가 허술하군. 사부님한테 못 들었어? 뛰어난 도둑은 마지막까지 안심하면 안 된다는 걸.”
빙백아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노려보았다.
누굴까?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거지? 그리고 후배라니?
여러 의문이 생겼고, 말없이 쳐다봤다. 그러자 흑지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귀여운 사제가 놀랐나 보군. 정식으로 인사하지. 나는 네 사형이다. 우린 같은 사부님을 두고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백영신투. 난 그분의 첫 번째 제자였다.”
“아아.”
빙백아는 눈치가 빨랐다.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여유를 되찾았다.
“흥. 들은 적은 있어요. 오래전에 제자가 한 명 있었는데, 겨우 이 년째 도망쳤다고요. 게다가 보물까지 훔쳐서 사라진 괘씸하고, 파렴치한이라고 들었습니다.”
“하하. 인정해. 내가 잘못은 했으니까. 사부님께 만나서 직접 사과하고 싶군.”
“도망갔을 때 파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자가 아닌 셈이죠. 물론 우리들도 사제 관계는 아니고요.”
“흐음. 그래도 오해를 푸고 싶은데, 지금 사부님은 어디 계시지? 가르쳐 주겠어?”
“싫은데요.”
빙백아는 간단히 대답하면서, 선제공격을 했다.
이화신장의 강맹한 기운이 흑지주의 가슴을 쳤다. 아니, 쳤다고 생각했는데, 흑지주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빙백아의 뒤에 나타났다.
“처음 만난 사제가 상당히 건방지군. 뭐, 그것도 좋아. 길들이는 맛이 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미인이면 금상첨화고 말이야.”
“헛소리!”
빙백아는 화를 내며, 이화신장으로 계속 공격했다.
하지만 흑지주는 너무나 쉽게 피해버렸다. 경공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흔적도 안 보이는데, 기척 또한 없었다.
심지어 누워서 나타난다고, 물구나무를 선다거나 놀리기까지 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굳이 사제가 아니라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잖아. 오히려 그게 더 좋은데.”
갑자기 말을 바꾸더니 행동이 거칠어졌다. 빙백아의 바로 뒤에서 나타나서 그녀의 몸을 만진 후에 사라졌다.
“호오. 옷 위에 만지는데, 탄력이 느껴지는데.”
“이익. 변태 새끼가…….”
빙백아는 이를 악물며 팔을 흔들었다.
쿠쿵. 쿵.
객잔의 방이 부서지고, 소리까지 울렸다. 하지만 어떤 짓을 해도 흑지주는 웃으며 피할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빙백아는 도주를 결심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흑지주에게 잡혀 버렸다.
흑지주가 어느새 마혈을 짚은 것이다.
“후후. 좋은 말로 물어볼 때, 대답했으면 좋았잖아. 뭐, 나로서는 이 방법이 더 좋지만…….”
흑지주는 간만에 음심이 생겼다.
이런 짓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상대는 빙백아였다. 천하미녀를 가까이서 보자 생각이 바뀐 것이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빙백아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방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흑지주. 쪽팔리게 무슨 짓이야?”
그 순간 흑지주는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당황했고, 자신의 이름이 탄로 난 것에 기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목소리가 익숙해서 놀랐다.
분명히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죽었어야 할 사람이고, 절대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바로 하운평의 목소리였다.
와장창.
그때 창문이 산산조각 깨지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흑지주는 놀라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떠나려 했다. 하지만 금세 생각이 바꾸었다.
‘이대로 도망치는 것보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하운평이더라도 그놈보다는 자신의 무공이 더 뛰어났다.
그걸 알기에 잠깐의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창문의 통해 들어온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여자였다.
‘역시 녹안주가 아니야. 그래. 그놈은 죽었잖아.’
흑지주는 안심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헛것이 들린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내가 쓸데없이 긴장했나 보군. 이봐. 붕대여자. 너는 누구…….”
콰직.
그때였다.
흑지주가 서 있는 뒤쪽의 벽이 살짝 갈라지면서 하얀 실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흑지주의 목을 감싸려 했다.
순간 흑지주는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바로 그 직전에 하운평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멈춰!”
그때부터였다.
흑지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은 물론, 머릿속도 하얗게 변했다. 모든 것이 멈춰 버린 순간이었다.
물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었고, 그사이 하얀 실이 흑지주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조였다.
“커억.”
다행인 점은 그 충격으로 흑지주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점이다. 그는 재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곳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스스슥.
그의 몸이 허름한 객잔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조금 전까지 흑지주가 머물던 최고급 객잔이었다.
“크윽.”
하지만 목이 계속 아팠다. 얇고 하얀 실은 여전히 목을 감고 있었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피까지 흘러내렸다.
“이, 이게 왜…….”
“그건 보통 실이 아니거든. 천잠사(天蠶絲)야.”
흑지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천잠사의 끝에는 하운평이 서 있었고, 그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
“오랜만이야. 흑지주. 잘 지냈지?”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동시에 흑지주는 능력을 다시 사용했다.
이번에는 꽤 멀리 달아났다.
강소성의 옥화산(玉化山).
흑지주가 한 번씩 놀러 오는 통나무집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비밀 장소였다.
“우와. 여긴 어디야? 아늑하고 좋은데?”
하지만 하운평은 여전히 같이 있었다.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악.”
흑지주는 괴성을 지르며,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능력을 사용하면서 복건성을 거쳐 섬서성까지 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하운평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왔다.
흑지주는 깨달았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그는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놀랐나 보네. 이런 건 실험을 안 해봤나 봐?”
하운평은 천잠사를 흔들며 말했다.
천잠사.
특수한 영기를 가진 천잠(天蠶)이라는 종의 누에에서 얻는 비단이다. 실 한 가닥만 있어도 인간의 힘으로는 끊거나 잘라낼 수 없으며, 불에도 매우 강했다. 무엇보다 기의 운용을 봉하는 특성도 있어 포박용이나 갑옷으로 쓰기도 했다.
물론 아주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하운평도 오 장 길이의 한 가닥만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사실 남만의 유적에 가기 전부터 고민을 했었다.
언젠가는 흑지주를 만날 테고, 그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제압할 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을 찾았고, 준비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만약 흑지주와 천잠사로 연결되어 있으면, 같이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천잠사를 구해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남만의 유적 안에서 흑지주가 하운평과 배소소를 자신의 능력으로 이동시켜줄 때.
하운평은 천잠사를 몰래 풀어서, 작은 돌에 묶어놓았었다. 그리고 천잠사와 연결된 돌이 같이 움직이는 걸 확인했었다.
약점을 찾은 것이다.
천잠사와 연결되어 있다면, 흑지주와 같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예상이 오늘 이 순간, 확신으로 변했다.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러냐고?”
반면 흑지주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여태껏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사라졌었고, 도망칠 수 있었다.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붙잡힌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그의 무공 실력이면,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당황했고, 기세가 꺾였다.
뒷걸음치면서 중얼거렸다.
“호, 혹시 그것 때문이야? 남만에서 너를 속여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알아. 우리 목적이 달랐고, 그걸 위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래. 너라면 이해하지? 이해할 줄 알았어.”
“그래. 이해해.”
반대로 하운평은 담담한 목소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서늘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그러니 너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것이 많거든. 그걸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야.”
그는 손을 뻗었고, 흑지주는 벌벌 떨다가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마지막 발악을 하듯, 내공을 끌어올렸다.
평소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무공이지만, 내공만큼은 진짜였다.
웬만한 절정고수도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운평은 꼼짝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미소만 짙어질 뿐이다.
* * *
그들이 사라진 직후, 빙백아는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변태 같은 놈이 나타나서 농락하더니 갑자기 창과 벽이 부서졌다. 그리고 변태 같은 놈은,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놀라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란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을 벗어나야만 해.’
혹여나 창을 깨고 나타나는 키 큰 여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빙백아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서둘러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그리고 부서진 창을 통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이곳을 벗어나서 이화궁 사람들이 있는 숙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용히 있어야겠어.’
혹여나 그 변태 녀석은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무기를 휴대했고, 긴장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이번 일을 잊어버릴 때쯤,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빙백아.”
“하, 하운평?”
천학관에서 만난 그 하운평이 분명했다. 아래위로 한 번 더 훑어보면서 물었다.
“남만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 있었네?”
“만나서 반갑다는 뜻이지?”
“뭐. 그런 셈이지.”
사실 하운평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었다.
천학관에서 무림맹 비동에 침입할 때 흥미로웠지만, 검노에게 죽을 뻔했었다. 또 도와준 대가로 이화궁의 보물, 이향선을 주기로 하고선, 일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받아냈기 때문이다.
대신 하운평은 그녀의 달래며, 물었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기분 풀지 그래? 그 변태 같은 놈에게서 너를 구해줬잖아.”
“설마 사흘 전에 창을 부순 사람이…….”
“그래. 나와 내 친구였어.”
그 말을 증명하듯, 그의 뒤에 붕대를 감싼 키 큰 여자가 나타났다.
하운평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빙백아도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고, 고맙다.”
“별말씀을. 아무튼 내가 도와줬으니까, 너도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뭐?”
빙백아는 찜찜한 표정으로 하운평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와 엮이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