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4
너의 초식이 보여 24화
그냥 제 사부 하실래요(1)
어부의 집안에는 세 명이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장한표국의 표사들이었다. 화흠산에서 장한표국까지 같이 왔는데, 보물 때문에 배신한 이들이다.
그들은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갔던 보물 보따리는 방문 옆에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여자였는데, 방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파해천이 여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누가 이 두 사람을 죽였지?”
하지만 여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운평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한 짓이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은 보물 때문에 싸우다가 상잔했어요. 서로 죽인 겁니다.”
‘저 여자 마음을 읽은 거냐?’
‘네. 저 여자, 충격으로 말은 못 하지만, 정신은 멀쩡해요. 보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무서운 것뿐입니다.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요.’
하지만 파해천은 그냥 가진 않았다.
시체로 변한 두 사람을 들고, 보물과 하운평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다.
* * *
보물은 찾았고, 배신자들은 죽었다. 하지만 장하진은 충격을 털어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몇 년을 같이 한 표사들이, 보물 때문에 자신을 배신했다. 그것이 화가 나고 무서웠다.
이제 누굴 믿어야 하나? 또 누가 배신할까? 이러다간 가족까지 의심할 수도 있었다.
“휴우. 숙부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제가 바란 보물은 장한 표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자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너무 많은 돈이 생기니까…….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럼 어찌했으면 좋겠나?”
“보물을 다시 가져가 주십시오. 저는 반만, 아니, 반의반만 받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들과 같이 장한상단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표국은?”
장하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번 일로 장한표국의 표사들은 거의 다 죽었다. 다시 일으키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솔직히 파해천은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그의 몫이고,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알았다. 네 뜻대로 하거라.”
그때 하운평이 끼어들었다.
“그럼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응?”
“이 집요. 그리고 장한 표국이 거래했던 거래처도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하운평은 진지했고, 장하진은 헐값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정말 장한표국을 떠나 버렸다.
팔극진문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장한 표국보다는 강하지만, 그래도 중소문파였다. 이렇게 많은 황금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했고, 결국 장하진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팔극진문의 문주, 파일권도 황금을 반 이상 돌려주었다.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건 파해천이었다.
‘으음. 이 보물들을 어떡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운평이 물었다.
“권왕님, 우리 여기에 자리를 잡을까요?”
“무슨 뜻이냐?”
“우리가 장한표국에서 살자는 거죠. 집도 크고, 사람도 없으니까, 수련이 목적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만약 팔극진문에 문제가 생기면 도울 수도 있잖아요.”
“으음. 그건 그렇지.”
곰곰이 생각하던 권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따로 집 같은 것이 없었다. 또 무공수련을 하는 데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팔극진문이 안정될 때까지 옆에 머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돌려받은 보물들은 당분간 땅속에 묻어두었다.
나중이라도 장하진이나 팔극진문에서 필요하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물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하운평이 보물을 빌려 가도 되냐고 물었고, 알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야금야금, 일 년도 안 되어 전부 팔아버렸고, 그 많은 돈을 다 써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수백 명의 식솔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권왕은 지난 일 년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장하진이 떠나고, 장한표국에 머문 지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하운평에게 무공을 가르쳤는데, 정말 놀라운 아이였다.
본래 이론과 기초를 한 달, 경공과 보법을 반년, 그 사이 구배권법을 정립해서 삼 년간 가르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계획이 빗나갔다.
머리가 좋은 녀석인 줄 알았지만, 기억력도 비상했다.
혈도, 혈맥부터 운기, 비무, 대련하는 방법과 무림의 상식이나 예의, 법도까지.
내가 가르친 이론들을 단 삼 일 만에 모두 외웠다.
그리고 약속대로 비잔신투의 경공을 가르쳤는데, 만보 편을 익히는데 칠 일을 넘기지 않았다.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인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말하려는 의도와 가르쳐 주는 요점을 정확히 파악했고, 마치 내 머릿속의 생각을 그대로 빼가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가르치기 편한 놈이 있다니. 그놈의 성격만 고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니까, 그걸 위안으로 삼았다.
스무날이 지났다.
구배권법의 수정이 생각보다 어렵다.
삼 일이면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 길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비잔신투의 경공을 전부 가르쳤고, 내 무공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놀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놈이 어느 날, 말했다.
“권왕님, 그냥 제 사부 하실래요?”
“이놈아, 뭐라고?”
“그렇잖아요. 구배권법의 완성은 늦어지고, 권왕님의 무공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차라리 제가 권왕님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떳떳하게 전부 배울게요.”
“야. 인마. 사제지간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에이. 권왕님도 저밖에 없잖아요. 듣자 하니 다른 제자들은 권왕님의 설명을 이해 못 해 도망쳤다고 하던데.”
“누가 그래?”
“권왕님의 형님이요.”
끄응.
이놈, 팔극진문에 자주 방문하더니.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잖아요. 솔직히 가르치기 편하시죠?”
“됐어. 인마. 나가! 너 같은 제자 안 키워.”
“속으로는 좋으면서. 제 능력 아시잖아요. 저를 속일 수는 없는…….”
“안 나가?”
휘이익.
퍼억.
나는 옆에 보이는 찻잔을 던졌고, 하운평은 보법을 이용해서 슬쩍 피했다. 그리고 나가 버렸다.
저 녀석, 피하는 실력이 또 늘었네.
그나저나 어쩌지?
마음에 들긴 하는데, 버릇이 없어서……. 흐음. 진짜 내가 인간으로 만들어 봐?
열흘이 더 지났다.
나는 하운평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무적문의 문주라고 하니, 뜬금없이 묻는다.
“사부님. 우리 무적문이 일인전승, 뭐 그런 겁니까? 아니면 제자를 키울 수 없어서, 일인전승이 된 겁니까?”
“이 자식아. 알면서 왜 물어?”
“그렇죠? 그럼 조금만 키워도 되겠죠?”
그 녀석은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아무튼 내일부터는 내 독문무공도 가르쳐야겠다. 진천팔권하고, 천왕신공을……. 으음. 그건 일양신공하고 부딪칠 수도 있겠는데.
이것부터 고민해 봐야겠다.
그런데 사흘 후, 하운평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사부님. 아무래도 집을 수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멀쩡한 집을 왜?”
“솔직히 멀쩡하진 않죠. 그리고 연무장도 좁고, 개인 연무장도 있어야 하고요.”
이 녀석. 또 내 마음을 읽었구나. 솔직히 요즘 연무장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여간 귀신같은 놈이라니까.
“알아서 해라.”
“그래서 말인데, 땅속에 있는 황금 좀 사용할게요.”
“그래. 하지만 장하진이나 팔극진문에서 원한다면, 나중이라도 네 것이라도 줘야 한다.”
“네. 걱정 마세요.”
휴우. 그때까지만 해도 난 이 녀석을 잘 모르고 있었다.
꼬마 놈의 배포가 상상을 초월할 줄이야.
다시 사흘 후, 하운평이 집을 옮기자고 했다.
“수리한다면서?”
“그러니까요. 여기 있으면 시끄럽잖아요. 그리고 인부들도 우리가 있으면 일하기 불편할 겁니다.”
“그동안 어디에 있을 건데? 팔극진문?”
“아니오. 마침 좋은 장소가 있어서 별장으로 준비한 곳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별장?”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번복할 순 없는 노릇이다.
모른 척 그놈 뜻대로 움직였고, 별장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뒷산으로 한 시진 정도 올라가니, 산의 중턱에 작은 집이 있었다.
작은 방이 세 개 있었고, 부엌도 있고 앞마당도 넓었다. 주변에 대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는데, 바람이 불자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정취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용케 괜찮은 곳을 구했네.’
“마음에 드시죠?”
“그래. 그런데……. 벽에 걸려 있는 목탁은 뭐냐?”
“아, 이곳에 계셨던 스님이 두고 간 것 같은데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스님? 여기가 암자였냐?
“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기부를 넉넉하게 했거든요. 그리고 새로운 암자도 지어준다고 약속했고, 기쁜 마음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래도…….”
“아, 그리고 앞마당이 좁아서 수련에는 불편하시죠? 뒷길로 조금만 올라가시면 넓은 들판이 있습니다. 백여 장쯤 되니까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으음. 마음에 드는 곳이긴 한데, 암자로 사용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괜히 딴지를 걸었다.
“여기가 암자였다면, 찾아오는 불자나 신도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산속이니 사냥꾼도 돌아다닐 테고.”
“그렇죠.”
“그럼 우리가 수련하다가, 그들이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 걱정 마세요. 제가 해결할게요.”
며칠 후, 나는 기가 막힌 물건을 봤다.
산을 올라가는 입구 곳곳에 ‘사유지’란 푯말이 붙어 있었고, 출입을 금한다고 적혀 있었다.
“사유지라니?”
“네. 다른 사람이 올라오면 안 되니까요. 제가 이 산을 사버렸습니다.”
“사, 산을 사? 산도 사고팔 수는 거였어?”
“당연하죠. 관리들한테 돈을 주니까 알아서 해주던데요. 참, 여기 산 이름이 ‘봉운산’이라고 하던데요, 이름 좋죠?”
하운평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반년 후, 하운평이 말했다.
“사부님. 집이 완공되었답니다. 가보시죠.”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장한표국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단 정문의 크기가 두 배로 커졌고, ‘무적문’이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돌담도 두 배로 높아지고 몇 배로 길어졌다.
집의 규모가 열 배 이상 넓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히 주변에 다른 집들도 있었는데.
하운평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무장이 커야 할 것 같아서요. 옆집과 뒷집, 그 옆집까지 다 샀습니다.”
그렇게 여러 집들을 이어 붙이다 보니, 화산파의 부지보다 넓어진 것이다.
백여 장이 넘는 야외 연무장만 네 개 있었고, 개인 연무실은 스무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전각은 총 스무 채가 넘었고, 가장 높은 전각은 칠 층 높이였다.
“아직 손볼 곳이 있지만, 그런 건 살면서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이, 이놈아. 우리 둘이 지낼 건데, 뭘 이렇게 크게 지어?”
“살다 보면 객식구가 늘어날 겁니다. 그때 고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크게 지으면 좋잖아요. 돈도 절약되고요.”
“뭐, 돈? 절약? 그게 네가 할 소리…….”
잔소리를 하려는데, 집을 수리하던 인부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하운평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소공자님. 말씀드린 대로 내일부터는 세 명만 와서 마무리 작업을 할 겁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그 사람들한테 말씀하십시오. 저희들도 다른 하는 일 멈추고, 이쪽으로 달려오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비용은 약속대로 전부, 일시불로 지급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공손히 인사했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하운평이 말했다.
“역시 돈이 좋죠? 비용을 이 할 더 준다니까, 너무 잘해주네요.”
나는 한마디 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 자기 돈으로 자기가 쓴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변화는 계속되었다.
갑자기 아침 식사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