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41
너의 초식이 보여 241화
도둑들(4)
하운평은 부회주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없었다.
비무대회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빙백아를 찾아간 거였다.
“그러니까 뭐야? 나쁜 놈들이 문파끼리의 분쟁을 조장한다. 그놈들을 막기 위해서 그들이 보낸 편지나 물건들을 훔쳐달라?”
“그래. 여기에 명단을 작성해 놨어.”
빙백아는 하운평이 내민 명단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명단에는 서른네 곳의 문파가 적혀 있었다.
“야. 이건 너무 많잖아. 비무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시간이 있다지만, 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그래. 너 혼자는 힘들겠지. 그래서 이 친구가 도와줄 거야.”
하운평은 친구라 부르던 키가 크고, 얼굴에 붕대 감은 여자를 가리켰다.
“이 친구 이름은 ‘월아’야.”
누가 봐도 가명이지만, 빙백아는 묻지 않았다. 대신 하운평에게 따졌다.
“야. 한 명 붙여준다고 이게 해결될 양이야? 넌 뭐 하고 나한테 다 맡긴대?”
“난 따로 할 일이 있어. 나쁜 놈들이 더 있거든. 그리고 이 친구를 믿어봐. 얼마나 유능한데……. 뭣하면 문파 한두 개는 혼자 쓸어버릴 수도 있어.”
“네에. 네.”
빙백아는 대충 대답했다. 뚱한 표정을 보니,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운평은 역설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아, 그리고 굳이 명단에 있는 문파를 다 막을 필요는 없어. 하는 데까지 해야지. 우린 협을 행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잖아. 일개 도둑들이지.”
“끄응.”
그 말에 빙백아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의 부업은 도둑질이 맞다. 하지만 본업은 정파의 기둥 중 하나인 이화궁의 소궁주였다.
정의와 협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알았어. 하는 데까지는 할 거야. 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거고, 실패하면 바로 도망친다. 물론 명단에 있는 걸 다 해낼 자신도 없어.”
하긴 하겠지만, 열심히 하지는 않겠다. 그걸 대놓고 표현하고 있었다.
하운평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의 무기는 이것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그냥 하면 재미가 없잖아? 그래서 상품을 걸려고 하는데. 어때?”
“상품?”
“그래. 명단 속 물건을 열 개 훔치면, 주먹만 한 묘안석을 열 개 줄게.”
“그런 건 나도 많아.”
빙백아는 여전히 흥미 없어 보였다. 하운평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스무 개를 해결하면 강의신검을 줄게. 너는 검술을 사용하지?”
“호오. 강의신검?”
“그래.”
“설마 이번에도 일 년 후에 주는 거 아니야?”
이향선을 일 년이나 지난 후에 받았기에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열흘. 여기엔 없으니까, 열흘 이내로 줄 수 있어.”
“그럼 살짝 땡기는데.”
강의신검은 백 년 내 제일명장이라던 부반금이 만든 십대 무기 중 하나였다.
빙백아도 무인이다 보니, 좋은 무기에 대한 욕심은 있었다.
‘그래. 그냥 하는 것보단 상품이라도 있으면 좋지.’
간만에 의욕이 생겨났다. 거기에 하운평은 기름을 끼얹었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서른 개를 훔친다? 그럼 강성취옥을 주려고 하는데.”
“가, 강성취옥? 그걸 가지고 있어?”
빙백아는 깜짝 놀라서 소릴 질렀다.
이전에 무림비동에 들어갔을 때, 고대 은왕조의 악녀, 달기가 사용했다던 진선비취옥을 얻은 적이 있었다.
과연 효과가 있었고, 피부가 더 좋아지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강성취옥은 그 진선비취옥과 한 쌍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동시에 착용할 시, 피부에서 윤기가 흐르고, 늙지 않는다고 한다. 또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며, 몸매가 유지된다고 알려졌다.
노소를 가리지 않고, 여자들이 가장 원하는 보물이었다.
빙백아의 반응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사실 강의신검과 강성취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강의신검이 더욱 값어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남자인 경우이고, 빙백아는 여성이고, 여성 중에서도 미에 관심이 많은 축에 속했다.
게다가 진선비취옥의 효과를 봤기에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강성취옥이 가지고 싶었다.
“당장 가야겠어. 여기서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야?”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 * *
빙백아가 적극적으로 일을 해주니, 안심하고 맡겼다.
그리고 하운평은 제백기를 찾아 나섰다. 그는 지금 세 가지 일을 벌이고 있었다.
먼저 이번 비무대회에 눈에 띄는 인재들을 찾아낸다.
특히 재능은 있는데, 욕심이 많거나 소외당하고 있는 무인 위주로 뽑았다.
그들에게 몰래 다가간 뒤, 각종 영약과 지원을 약속하며 그들의 충성을 얻어내는 작업이었다.
각 문파에는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으며, 그들이 각 문파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를 때까지 지원했다. 그리고 그 문파까지 집어삼키려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이들의 처리였다. 특히 강직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이들은 나중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살수문파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을 죽이고 있었다.
세 번째는 오색지석의 후보자 색출이었다.
적혈주는 그에게 오색지석 중, 황수석을 맡겼다. 청파석과 녹안석은 이미 적혈주가 뽑은 이들에게 준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남은 황수석은 제백기에게 맡겼으니, 얼마나 그를 신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이번 비무대회에 새로운 청파주도 참석한다는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니, 하운평도 할 일이 많았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의외로 제백기가 아니었다. 그는 살수문파들을 먼저 찾아갔다.
* * *
“문주님, 아니, 형님. 이번 건은 포기해야 합니다.”
“휴우. 동생.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문파의 식구들이 벌써 백이 넘는다. 수련생만 오십 명이 넘고, 어떡하든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막사평이라뇨? 사흑련주의 막내제자입니다. 그놈을 죽인 걸 들키는 날에는, 자칫 우리 문파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깔끔하게 사고사로 위장해서 죽이면 돼. 벌써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이제 실행만 하면 돼.”
“하지만…….”
“그만해라. 동생. 네가 금 오십 냥을 벌어올 거 아니면, 그만둬.”
“형님. 저는 문파가 걱정되어…….”
두 사람은 문파의 문주와 부문주로서 이번 살수 의뢰에 대해 격렬히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하 한 명이 문 앞에서 어른거렸다.
들어가서 보고를 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계속되자, 문주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밖에 누구야? 보고할 것 있으면 빨리 들어와서 해!”
“네넵. 넵. 문주님.”
수하는 놀라서 들어왔다. 그리고 서둘러 보고했다.
“죄, 죄송합니다. 결코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됐고. 무슨 일이냐?”
“넵. 사실 문주님을 찾아온 자가 있습니다. 그냥 죽일까 하다가 문주님을 잘 아는 것 같이 말해서 혹시나 해서 보고드립니다.”
“날 잘 알아?”
“넵.”
문주와 부문주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기를 챙겼다.
그들은 살인을 업으로 삼는 살수들이다. 정말 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만일을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두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접견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낯선 남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오십 대 사내였다. 수염이 가득하고 눈가에는 찢어진 흉터 자국이 있었다.
그는 문주를 보자마자 반갑게 일어섰다.
“천류살수문의 문주님 되시죠? 반갑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어떻게 우리를 찾았지?”
“찾기 쉽던데요. 그리고 저는 부탁을 받고 찾아온 사람입니다.”
“누구 부탁?”
“그건 당장 알려드리기 곤란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분은 문주님께 의뢰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의뢰?”
“네. 이번에 사흑련의 막사평이 비무대회에 참석하는데, 그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으셨죠?”
채앵.
쉬익.
문주와 부문주는 동시에 검을 뽑아 남자를 위협했다.
“너는 누구냐?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지?”
“아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싸우고자 온 것이 아닙니다. 제안을 하러 왔지요. 그쪽 의뢰를 취소하세요. 그리고 저희 의뢰를 받아주세요.”
“뭐?”
너무나 황당한 의뢰에 두 사람은 실소를 터뜨렸다.
“미친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우리가 비록 살수지만, 약속은 지킨다. 의뢰인을 배신하진 않아.”
“배신이 아니죠. 정당한 거래를 하는 겁니다.”
“개소리하지 마라.”
“헛소리가 아닙니다. 일단 제 말대로 했을 때, 문주님께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드리죠. 첫째, 금전적 이익이 있습니다. 그들이 금 오십 냥을 제안했고, 선불로 금 열 냥을 줬을 겁니다.”
아주 정확했다.
“저희는 금 백 냥을 약속하고, 금 오십 냥을 선불로 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위약금을 주고도 많이 남는 장사죠.”
“흥. 돈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죠.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있지요. 표적을 죽인 후에 위험부담이 없습니다. 만약 사흑련주가 아끼는 막내제자를 죽인다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저희한테도 이렇게 들키셨는데요? 또 들킨 이후에 사흑련과 싸울 자신이 있으신가요?”
“…….”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데요. 세 번째, 문주님은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
“지금 제 제안을 거절하면, 여러분들을 죽일 생각이거든요. 여기 계신 분, 모두를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기도가 변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지만, 금빛 기운이 생기면서 그를 감쌌고,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얼마나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지, 문주와 부문주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문파 전체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절대 고수였다.
“자아. 이만하면 제 제안을 꼭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죠?”
문주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어, 대협…… 어,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조금 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비굴해졌다.
“간단합니다. 일단 위약금을 주고, 그 의뢰를 취소하시고요. 기다리세요. 제가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때는 제가 지정한 곳에 가서, 지정한 놈들을 없애주시면 됩니다. 쉽죠?”
문주와 부문주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감싸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자는 약속대로 계약금을 지급하고 떠났다.
이번의 경우에는 문주와 부문주 모두 공통적인 의견을 냈다. 그들은 위약금을 지불하고, 제백기와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그 남자는 하운평이 역용한 모습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백기가 의뢰한 문파들을 찾아다녔고, 엿새 만에 열세 개의 살수 문파를 찾아가 설득했다.
그들 중에는 간혹 무인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문파도 있었다. 그들은 죽어도 계약 해지를 못 한다고 우겼고, 그때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들의 정체가 마교라면요?”
중원과 마교와의 관계는 복잡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중원의 문파들은 마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었고, 정확한 이유도 없이 싫어했다.
특히 무인으로서 자존심이 센 사람일수록 이 방법이 잘 먹혔다. 그들은 마교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태도를 바꾸었다.
오히려 더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운평은 수중의 돈이 제법 나갔지만, 이제 살수들의 칼은 문파들이 아닌 마교를 향하게 되었다.
* * *
아직까지 제백기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황수석의 후보자를 찾는 일에 집중했고, 그중 한 명을 만나려 했다.
추나한.
녹림십팔채의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오성으로 총채주의 제자가 되었고, 삼 년도 안 되어 제자 중에서 가장 강해졌다.
차기 총파자 감이라고 칭찬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했다.
더 강한 무공을 찾아다녔고, 제백기가 그의 욕망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고, 드디어 마주 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추 소협.”
“흐음.”
추나한은 겉으로 보면 거칠어 보인다.
사납고, 무조건 주먹부터 휘두를 것 같지만, 사실 상당한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제백기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제백기도 그걸 알기에 약속장소를 아무도 없는 폐가로 선택했다.
이곳에서 황수석의 힘을 눈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 능력을 보면, 결코 거절하지 못하리라.
제백기는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