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44
너의 초식이 보여 244화
왕진범
한쪽은 강력한 우승 후보 구운룡, 그리고 다른 한쪽은 이번 대회에 떠오르는 신성 왕진범.
귀추가 주목되는 대결이었다.
왕진문 역시 감회가 새로웠다.
‘구운룡이라니…….’
천학관에서 몇 번 봤지만, 그때는 말도 붙이지 못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산이었고, 바라볼 수 없는 하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무대 위에 같이 서 있었다. 그와 나란한 위치에 선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을 응원하는 구경꾼들도 둘로 나뉘었다.
여전히 화산의 신룡이 이기길 바라는 사람들과 무명자가 우승하는 역전극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소릴 질렀고, 어서 싸우길 원했다.
“와아아아.”
“빨리 시작해라.”
왕진범은 흥분되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반면 구운룡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얼음같이 딱딱했고, 승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깔보는 것 같았다.
‘그래. 그 표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그 가식을 벗겨주마. 나에게 처참하게 당한 후, 비무대를 기어서 내려가게 될 거야.’
그렇게 추락하고, 자신은 우승한다.
그리고 암흑천무갑까지 가진다면, 단순한 유명세가 문제가 아니었다. 천하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구운룡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이길까?
역시 백 초식 정도 피하고, 한 방에 이겨 버릴까?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하잖아.
아, 그리고 이번에는 양손을 잘라 버려야겠어.
그래야 앞으로 구운룡이란 이름을 듣지 못하지. 저놈은 무림에서 사라지고, 나는 영원히 최고가 되는 거야.
왕진범은 악독한 다짐을 했고, 벌써부터 능력을 사용했다.
스르르륵.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구운룡의 움직임이 천천히 느려졌다.
“비~~무, 시~~작~이~~~~오.”
동시에 심사관의 목소리도 들렸고, 왕진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바로 직후였다.
구운룡이 보이지 않았다.
왕진문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구운룡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검은 더 빨랐다. 빛살보다 빠른 초식에 왕진문은 크게 당황했다.
‘마, 말도 안 돼.’
그가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인다는 건, 두 사람의 시간대를 계산했을 때, 최소 여덟 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구운룡의 검이 너무 빨라서, 시간대가 다른 왕진문조차 피할 수 없었다.
푸욱.
“크아악.”
몇 번 피하다가, 구운룡의 검이 심장 옆 오른쪽 가슴에 꽂았다. 정확히 청파석이 있는 자리였다.
파직.
청파석이 부서졌다.
털썩.
왕진문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았다.
아직 싸울 수 있음에도 일어나질 않았다. 가슴에 꽂힌 검날의 아픔보다 청파석의 파괴가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 돼. 내, 내 미래가…….”
부서져 버린 자신의 미래에 절망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운룡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처음부터 자신의 최고 초식을 쏟은 끝에 피로감이 극심했다. 하지만 그 덕에 이길 수 있었다.
‘하운평의 말대로군.”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며칠 전 하운평이 찾아왔을 때, 한 말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보석이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고, 하운평의 충고는 듣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왕진범의 비무대회를 지켜볼수록 알 것 같았다.
정말로 그는 이상한 방법으로 이겼고, 시간대를 다르게 쓰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악독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를 가지고 놀았다. 또 일부로 신체의 일부를 잘라서 무공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런 상대를 배려해 줄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하운평의 충고를 따랐고, 보석을 파괴한 것이다.
그 결과, 구운룡은 비무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왕진범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수백 명이 참가했던 비무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틀이 흘렀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무림맹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떠났고, 혹은 떠날 준비를 했다.
무림맹 주변의 거리도 다시 한산해졌다.
빙백아는 객잔의 창을 통해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끔씩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화궁 사람들은 그녀를 걱정했다.
“언니. 소궁주님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다. 비무대회에 참석하실 때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며칠 전부터 기분이 안 좋아지신 것 같았어요.”
“으음. 이번 비무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지만 상대가 나빴잖아요.”
“그러니까. 추첨운이 너무 없었지. 첫 상대가 우승자인 구운룡이었으니까.”
빙백아는 첫 비무부터 구운룡과 싸웠고, 패배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한숨은 그들의 걱정과는 달랐다.
빙백아가 우울한 이유는 하운평 때문이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이번에도 나를 물 먹인다 이거지? 발이 부르트도록, 정말 미친년처럼 뛰어다녔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하나 온종일 고민했고, 그래서 좋은 방법을 몇 가지나 생각해 두었다.
먼저 하운평이 살아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가 원해서 훔친 물건들을 다시 주인들에게 돌려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화궁주님이 빨리 돌아오라는 서신을 보냈고, 오늘 오후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또 언제 궁을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제기랄. 이제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데? 게다가 비무 성적도 안 좋아서 사부님이 수련만 시킬 테고……. 에휴우. 가기 싫어라.’
“휴우우.”
이화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다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땅이 꺼지겠어?]빙백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운평의 목소리였다.
“야아! 너어 어디야!”
흥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흠흠. 나 몸이 안 좋아서 위에서 잠시만 쉴게.”
“네. 소궁주님. 하지만 저희 한 시간 후에는 떠나야 하니까, 그때까지 내려오셔야 해요.”
“알았어.”
빙백아는 대충 대답하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벌써 하운평과 손월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익.”
화를 내려는데 하운평의 모습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며칠 만에 봤는데, 조금 더 성숙해 보였다.
‘뭐지, 이 느낌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야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그녀는 화를 내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운평이 손을 펼쳤고, 그 위에는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얼마나 영롱하게 반짝이는지, 빙백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나.”
어떤 때보다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그리고 목걸이를 손에 넣었다.
아아.
따스하면서 부드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전설 속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것 같은데, 색상이나 가공 방법이 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게 바로 강성취옥이구나.”
그녀는 곧장 착용하고, 동경 앞에 섰다. 몸을 여기저기 돌리면서 자신한테 어울리는지 살폈다. 그리고 내공을 일으켜 피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살폈다.
“으으음. 확실히 뭔가 달라. 좋아지는 게 느껴져.”
따뜻한 기운이 피부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빙백아는 한동안 그것에 도취되어 하운평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고, 하운평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뭘 그렇게 봐?”
“응? 그냥 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왜 보냐고? 볼일 끝났으면 가면 되잖아.”
“볼일이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렇지.”
그제야 하운평이 할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빙백아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흠흠. 뭔데? 말해봐.”
“아직 훔칠 것이 두 개 남았거든.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나 혼자는 힘들 것 같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호오. 꽤 진지하게 말하는 거 보니, 물건이 까다로운 데 있나 보네.”
“그런 셈이지.”
“어딘데?”
“서장의 소뇌음사.”
“뭐어? 이익. 개…….”
빙백아는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랑 장난하니? 내가 서장까지 어떻게 가? 그리고 만약 간다고 쳐. 그런데 소뇌음사라니? 말로만 듣던 그런 곳애소 뭘 어떻게 훔쳐?”
“그만큼 난이도가 있어야 짜릿하지.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안 물어볼 거야?”
“거긴 어딘데?”
“마교.”
빙백아는 더 이상 말하는 것도 피곤했다. 그대로 일어섰다.
“됐고. 잘 가라.”
“거절이야?”
“당연하지.”
“좋아.”
하운평은 순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봤어? 지금껏 어떤 도둑도 그곳에서 물건을 훔치지 못했잖아. 네가 최초의 도둑이 될 수도 있는 거야.”
“흥. 그런 말로 유혹해도 소용없어.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호오. 그럼 본인이 갈 수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다는 거네.”
“난 한 시진 후에 이화궁으로 떠난다. 들어가면 최소 몇 년은 못 나올 거야.”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아아. 혹시 이화궁주님 때문에 그래?”
빙백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화궁주는 매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이란 소문이 있었다.
하운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나는 이해가 안 되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취향은 존중해야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그 이화궁주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빙백아는 눈을 반짝였다.
하운평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잔머리는 물론이고, 가끔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낸 이력이 있었다.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서장으로 가는 건 생각해 볼게.”
“좋아. 마침 간단한 방법이 있거든.”
“뭔데?”
“이화궁의 규칙 중에 이런 조항이 이잖아. 혼인을 한 제자는 이화궁을 영원히 떠난다.”
그 말에 빙백아는 도끼눈을 하고 노려봤다.
“야아.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하운평은 양손을 들면서 빙백아를 진정시켰다.
“어휴. 농담 두 번 하면, 검으로 찌르겠네. 진짜 방법을 말해줄게. 만약 네가 무림맹으로부터 부탁을 받으면 어떨까?”
“갑자기 무림맹이라니?”
“예를 들어 무림맹의 도황님이 이화궁의 소궁주에게 비공식적인 임무를 맡긴다. 무림맹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일이니 꼭 해주면 좋겠다. 뭐, 이 정도면 너희 궁주님도 허락하시지 않을까?”
빙백아는 어이없이 하운평을 바라봤다.
무림맹의 도황?
그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는 있는 건가?
이번 비무대회에서도 도황 백수련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라성같은 고수들을 줄을 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비무대회 개회식에서도 현 무림 맹주님만 얼굴을 비췄을 뿐, 그녀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었다.
하운평이 말했다.
“예를 들어 말한 거지. 생각해 봐.”
빙백아는 그의 말대로 생각에 잠겼다.
궁주님은 무림맹을 좋아하진 않지만, 명예 욕심이 있는 분이다.
‘굳이 도황님이 아니라도 무림맹의 부탁이면, 승낙하실 것 같긴 한데.’
문제는 과연 하운평이 무림맹의 요청을 가져올 수 있을까?
아아, 혹시 저 녀석, 무림맹의 문서를 위조하겠다는 뜻 아니야?
“이봐. 하운평. 문서 위조 정도로는…… 허억.”
빙백아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의자 위에는 도황 백수련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옷을 보고 깨달았다. 하운평이 입었던 옷과 똑같았다.
그걸 증명하듯 백수련은 다시 하운평이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하. 역시 이 정도로는 못 속이겠지?”
“그, 그렇지.”
아니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것보다 이렇게 절묘한 역용술이라니?
하운평의 새로운 능력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물어보기도 전에 하운평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잠깐 기다려라. 무림맹 일을 해결하고 올 테니까.”
“야. 나 시간 없다니까. 한 시진 후에 여길 떠나야 돼.”
“알았어. 노력해 볼게.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으니까, 내가 안 오면 시간을 끌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리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떠나 버렸다. 역시 흔적도 남지 않는, 귀신같은 경공이었다.
“아우. 짜증 나는 녀석이라니까.”
다시 말도 없이 사라진 모습에 빙백아는 화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빙백아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떤 핑계를 대야 출발을 늦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