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54
너의 초식이 보여 254화
대립(3)
아래는 거대한 동공(洞空)이었다.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아래로 쭉 이어져 있었다.
적혈주와 호위무사들이 아래로 떨어지자, 하운평을 비롯하여 수십 명이 그들을 쫓아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갑자기 먼저 떨어진 적혈주가 소리쳤다.
“꼬맹아. 꽤 많은 인원을 모았구나.”
하운평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운평도 대답했다.
“당신이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니까, 편해지더군. 혼자는 힘들다는 걸 깨달았거든.”
“그래. 혼자가 안 되면 쪽수로 밀어붙여야지. 그래도 수완이 좋아. 열두존자 중 다섯 명이나 데려오고, 신교의 교주를 꼬셔서 장로들까지 모으다니. 화경의 고수를 이렇게 많이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칭찬해 줘서 고맙군. 하지만 그것보다 힘든 건,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일이었어.”
적혈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이제 이해가 되네. 사대무구를 모으는 척, 집중하는 척하면서 나를 도발했고, 무림맹을 움직여 나를 여기까지 끌어들인 거였어. 게다가 이런 함정까지 만들다니? 굉장해. 인상적이야.”
“보기는 간단히 보여도, 이 함정이 준비만 일 년이 넘었거든. 게다가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 함정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호오. 그래?”
하운평이 무슨 말을 해도 적혈주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한 가지 실수를 했어.”
“뭔지 궁금하군.”
“안타깝게도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어. 이런 곳에서 나는, 무적이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혈주는 양손을 흔들었다.
쿠쿠쿠쿵.
우르르.
갑자기 모래와 흙이 양쪽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뒤따라 떨어지는 사람들을 덮쳤다.
단순히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난 양의 흙이 쏟아지더니, 마치 땅을 파내기 전과 같이 막아버렸다. 그리고 그 두께가 무려 십여 장이 넘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적혈주의 손짓에 따라 계속 흙으로 구멍을 막았다.
물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날 수 있었고, 요령껏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아래위로 나뉘어지면서 거의 반반으로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쪽수의 삼 할이 사라진 것이다.
하운평은 혀를 내둘렀다.
‘좌우 넓이가 이십 장이 넘는데도 저런 걸 해낸단 말이야?’
생각보다 적혈주의 능력이 대단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셈이냐?”
권왕 파해천이 소리치면서 적혈주에게 날아갔다. 그의 주먹에는 푸른 강기가 맺혀 있었고, 진천팔권을 연속으로 펼쳤다.
콰콰콰쾅.
하지만 적혈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의 호위무사가 막아선 것이다.
이어서 도황의 천궤도가 쏟아지고, 검성의 자하신공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차례대로 호위무사들에게 막혔고, 마지막으로 빙하선녀의 은성빙막까지 막아냈다.
하지만 덕분에 적혈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하운평과 배유찬은 그걸 놓치지 않고, 날아갔다.
“천지경화.”
배유찬의 손에서 불꽃이 넘실거리더니, 적혈주의 몸을 덮쳤다.
“하하. 너의 무공은 통하지 않는다. 신교의 무공을 하나부터 열까지 개정한 사람이, 바로 나니까.”
그 말을 증명하듯, 적혈주의 몸에도 똑같은 불꽃이 피어났다. 배유찬의 불꽃은 그것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배유찬도 쉽게 인정했다.
“당신 말이 맞소.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당신의 무공 또한 나에게 통하기 힘들단 뜻이지.”
그때 하운평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여의참이 서려 있었고, 날카롭게 적혈주에게 파고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공격에만 집중했고, 여기저기 허점이 보였다.
적혈주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배유찬의 불꽃이 하운평을 감쌌다.
분명 적혈주는 강하지만, 근본은 마교의 그것이었다. 그러니 배유찬이 하운평을 보호하자,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을 믿고 하운평은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서걱.
찌이익.
여의참은 적혈주의 옷을 찢어내고 어깨에 깊은 상처를 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적혈주의 피부는 다시 붙었고, 상처는 없어졌다. 적혈주는 얄밉게 웃었다.
“후후. 합동 계획은 훌륭했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그의 말대로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의미 없었다.
오직 사대무구만 믿고 있었고, 적혈주가 회복능력을 상실했을 때 이런 방법도 가능했다.
지금처럼 싸우면, 끝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의 패배다.’
적혈주는 지치지 않겠지만, 이쪽은 언젠가는 지칠 테니까.
배유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하운평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직접 싸워보니, 정말 대단한 능력이야. 하지만 적혈주, 혹시 이 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소?”
“뭐?”
그때 적혈주는 어떤 불길함을 느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하운평은 여유가 있었다. 억지가 아니라, 정말 뭐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준비한 것이 남은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때 발밑으로 반짝이는 뭔가 보였고, 그때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어 설마, 내 비밀을…….”
“밑에서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소?”
아니나 다를까 아래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어두운 토굴 안에서 하얀빛이 보였다.
적혈주는 아차 싶었다.
그제야 하운평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시, 실수다.’
적혈주는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를 꽉 깨물고, 계획을 바꾸었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반면 배유천도 적혈주의 표정을 봤다.
난생처음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 희망은 있어.
마침 하운평이 소리쳤다.
“적혈주를 무조건 저 안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비단 배유천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말이었고, 전부 말뜻을 알아들었다.
“으아아압.”
처음과는 너무 달랐다.
적혈주는 소리까지 지르며 이곳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자신의 능력을 전력으로 사용했고, 땅속의 흙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마치 산사태가 난 것처럼 휘몰아서 쳤고, 이곳을 완전히 덮어버리려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지금 이곳에 흙더미에 죽을 사람은 없었다.
각자 강기를 몸에 두르며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적혈주가 도망 못 나가게 막았다.
그 와중에 파해천의 심의권이 적혈주의 가슴에 꽂혔다.
콰직.
“커억.”
공간을 격하고, 적혈주의 가슴뼈를 부러뜨린 것이다.
물론 다시 회복했지만, 그사이 하운평이 적혈주를 껴안았다.
태세를 바꾸어 온몸에 여의구의 기운을 둘러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밑바닥으로 같이 떨어졌다.
하운평이 일 년간 땅을 파면서 준비했던 것.
그것은 직사각형 모양의 얼음덩어리였다.
단순한 얼음이 아니었다. 북해에서 가져온 만년한빙옥이었다.
그것도 최상급으로 완벽한 회색빛이고, 크기도 굉장하여 가로세로 이십여 장이 넘었다.
하운평이 직접 북해까지 가서, 공수해 온 물건이었다.
이런 큰 물건을 찾아서 가공했고, 아무도 모르게 이곳까지 가져왔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비잔신투 안에 있는 엄청난 양의 보물 덕분이었고, 그걸 전부 사용하고서 겨우 해낼 수 있었다.
독특하게도 한빙옥의 가운데, 일 장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운평은 적혈주를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는데, 적혈주가 손을 뻗어 입구의 모서리를 잡았다.
하운평이 소리쳤다.
“배 교주. 도와주시오.”
배유천도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적혈주가 싫어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테고, 무작정 안으로 집어 넣어야 한다.
때문에 배유천도 하운평을 도와서 적혈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시정잡배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얼음덩어리 안으로 들어갔다.
쿠당탕.
마침내 한빙옥 안으로 들어갔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묵직한 파열음이 들리더니, 위쪽에서 뭔가 떨어졌다.
쿠웅.
콰콰콱.
방금전까지 뚫려 있던, 만년한빙옥의 구멍이 막혀 버렸다.
즉, 이곳은 완벽한 밀실이 되었다.
배유천은 순간 놀라서 하운평에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휴우. 혹시 적혈석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진짜 이름?”
하운평은 대답 대신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고, 곧바로 답을 주었다.
“적혈석은 적혈주가 만들어낸 가짜이고, 진짜 이름은 적토석입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적토석은 흙을 다루는 보석입니다. 흙을 다룰 수 있고, 땅에 기운을 얻을 수 있죠.”
배유천은 한마디 하려다 뭔가 깨달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잠깐만. 그 말은 설마…….”
“네. 여태껏 적혈주가 속인 겁니다. 온갖 물질을 다루고, 만들 수 있는 보석이라고 거짓을 퍼뜨린 거죠. 실상은 적토석이며, 오직 흙만 자유롭게 다룰 수 있으며, 흙에서 기운을 얻어 몸을 회복시킨 겁니다.”
“아아.”
“그래서 이 한빙옥을 준비했습니다. 흙과 완전히 단절시키기 위해서요.”
처음에는 만년한철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제를 해도 철 속에 흙이 포함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어떤 흙도 포함되지 않고, 강기로도 쉽게 파괴할 수 없는 물질.
만년한빙옥을 생각해 낸 것이다.
“으아악. 이 미친놈아!”
적혈주는 소릴 지르며 하운평에게 달려들었다.
언제나처럼 여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설마 이럴 것을 준비했을 줄이야.
어떤 미친놈이 사막 한가운데 이런 얼음덩어리를 가져올 생각을 하겠는가?
물론 하운평은 그걸 노리고 만든 함정이지만, 실로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이 완벽히 먹혀들었다.
서걱.
하운평은 냉정하게 적혈주의 검을 피했고, 여의참으로 긁었다. 그리고 적혈주의 팔에 긴 상처를 내었다.
뚝뚝.
피가 흐른다.
그리고 그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이 한빙옥 안에서는 땅의 힘을 빌리지 못했고, 그의 치유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적혈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상처를 보다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푸하하하. 내가…… 이 내가, 겨우 이따위 함정에 걸리다니.”
하운평은 옆에서 멍하니 보고 있는 배유천에게 물었다.
“보다시피, 지금이라면 저 남자를 죽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양보한다는 뜻이오?”
“저보다는 쌓인 게 많으신 것 같아서요.”
“하하하. 그 제안. 사양하지 않겠소. 으드득.”
배유천은 이를 갈며, 적혈주에게 다가갔다.
그의 검은 요요한 빛을 발했고, 그걸 지켜보던 하운평의 눈빛은 여전히 냉정했다.
* * *
만년한빙옥의 구멍 뚫린 부분을 막은 사람은 칠호였다.
그는 하운평과 같이 이곳을 설계했는데, 위쪽에서 덮개를 떨어뜨리면 정확히 위쪽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계획한 것처럼 숨어서 기회를 엿봤고, 하운평이 들어간 뒤 덮개를 떨어뜨렸다.
물론 적혈주의 호위무사들이 방해하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막으면서 무사히 덮을 수 있었다.
권왕을 비롯한 사람들은 결국 호위무사들까지 제압했다. 그리고 칠호에게 다가왔다.
파해천이 대표로 물었다.
“이 덮개를 덮은 이유는 알겠는데, 언제 열면 되냐?”
칠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어렵게 대답했다.
“휴우. 안타깝게도 이 덮개는, 열리지 않습니다. 덮는 순간 열이 발생되고, 아래쪽과 일체형이 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뭐, 뭐라고?”
파해천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야아. 그럼 내 제자는? 여기서 어떻게 나와!”
“못 나옵니다.”
그의 말에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 칠호를 노려봤다. 그리고 한빙옥을 바라봤다.
실로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파해천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주먹을 휘둘러 한빙옥을 밖에서 부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겨우 그를 말렸다.
“진정하게. 겨우 적혈주를 가두었잖아.”
“하지만 내 제자 놈도 같이 갇혔어.”
“그가 선택한 일이네.”
그때 파해천은 오늘 새벽 하운평이 했던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최후의 수단, 운운하면서 표정이 어색했다. 그때 싸한 느낌이 들더니……,
“이 빌어먹을 제자 놈아!!”
파해천은 소릴 질렀다. 그리고 파해천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이 또 있었다.
마교의 교주, 배유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