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38
너의 초식이 보여 38화
순검사를 도와서(6)
하운평은 백의문은 쉽게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백의문 무사들이 계속 쫓아왔다. 대부분은 경공이 약해 무시할 만하지만, 그중에는 절정 고수도 끼어 있었다.
그는 달려오면서 수리검을 한 번씩 날렸고, 무시무시한 위력 때문에 발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저기까지만 가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하운평의 목적지는 얼마 전에 흑점에 산 마차였다. 백의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를 내려라.”
구치웅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계세요.”
그리고 하운평은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면서 마차 쪽으로 소리쳤다.
“노 씨 아저씨. 마차 안으로 들어가세요. 빨리!”
마부인 노 씨는 마차에 관한 설명서를 읽으면서 하운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는 하운평이 달려오는 모습을 봤고, 그 뒤를 쫓는 무리들도 보았다.
노 씨는 먼저 마차 안에 들어가서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하운평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쿠웅.
그리고 재빠르게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끼릭. 끼릭. 끼릭.
터터턱. 터터턱.
곧 마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마차의 창이 닫히고, 이음새 부분이 더욱 단단해졌다. 요새화로 변한 것이다.
콰아앙. 쾅
퍼퍼퍽.
이어서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마차가 크게 흔들였다.
백의문 절정고수인 의태심이 마차를 공격하고 있었다. 가의충의 호언대로 마차는 절정고수의 공격을 버텨냈다.
우직. 쿠쿵.
하지만 마차가 벽이 휘어지는 걸 보니,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노 씨가 물었다.
“도련님 어떡할까요?”
“마차에 관한 설명서, 읽으셨죠?”
“네. 어제부터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상비약과 진천소뢰는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강노는 어떻게 발사하죠?”
노 씨는 급한 마음에 당황했지만, 비교적 차분히 움직였다. 의자 밑에서 상비약과 진천소뢰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왼쪽 모서리 부분을 치자, 긴 막대기가 세 개 나왔다.
“그러니까, 오른쪽이 강노를 발사 준비, 중간 것이 발사, 왼쪽 것이 재장전이라고 했습니다.”
하운평은 아주 가늘게 보이는 틈으로 마차 밖을 살폈다. 그리고 소리쳤다.
“지금 발사하세요.”
“네넵.”
노씨는 오른쪽 막대기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마차의 아래쪽에서 강노 수십 개가 튀어나와서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피잉. 핑 핑.
아악. 으윽.
마침 백의문 무사들이 달려올 때였고, 십여 명이 일제히 쓰러졌다. 노 씨는 재장전하고, 계속 주기적으로 강노를 쏘았다.
그사이 하운평은 상비약 중에서 내상약을 먹고, 붕대를 감은 뒤, 소주천을 짧게 했다.
구치웅 역시, 아까부터 소주천을 돌리고 있었다.
쿠웅. 쿵. 콰직.
더 이상 화살이 발사되지 않았다. 의태심이 마차 밑의 강노를 다 부서뜨린 탓이다.
하운평과 구치웅은 동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마차 밖을 보면서 짧게 의견을 교환했다.
“저기 멀리 초명기가 보입니다. 그만 잡으면 끝나요.”
“그럼 밖의 고수는 내가 상대하지.”
두 사람은 동시에 마차 문을 열었다.
구치웅은 의태심에게 달려들었고, 하운평은 마차 위로 올라갔다.
그는 조금 전에 우익편이 이곳에 도착한 것을 보았다. 비록 백의문의 무사들 칠십여 명이 가로막고 있지만, 이들을 전부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하운평은 마차 위에서 나무 위로 뛰었다. 높게 올라가서 나뭇가지를 밟으며 순식간에 백의문의 무사들을 넘어갔다.
그리고 절정의 경공을 뽐내며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우익편의 머리 위였다.
“우익편!!”
“이 날다람쥐 같은 놈이.”
채앵.
우익편의 무공은 약한 편이 아니지만, 아직은 초명기의 몸을 제 것처럼 사용할 수 없었다.
금세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향로가 있었고, 따르는 인형들이 있었다.
백의문 무사들이 하운평에게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무조건 우익편을 보호하려 했고, 잠시 후에는 일반인들까지 돌멩이를 들고 하운평을 막아섰다.
하운평은 진천소뢰를 손에 쥐고 잠깐 망설였다.
‘젠장. 한 방이면 없앨 수 있는데…….’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행동이 아니었고, 죽일 이유도 없었다. 그냥 초명기 한 명만 죽이면 된다.
‘초명기? 아니지. 우익편이지. 그럼 진짜 초명기는?’
분명 초명기의 몸은 우익편이 차지했다. 그럼 진짜 초명기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운평은 타심통으로 그를 살폈다.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그의 생각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갔다.
언젠가 권왕 파해천이 말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기(氣,) 신(神) 체(軆)가 고루 발달해야 한다. 내공을 바르게 익히고, 몸을 단련해야 하며, 정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사람의 몸은 자연스레 세 가지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구할 수 있는데, 우린 아직 네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공과 신체를 꾸준히 발달시킨다면 정신도 발전할 것이고, 정신과 연관 있는 네 능력도 발달하지 않을까?’
그의 말이 맞았다.
꾸준히 내공과 신체를 단련한 결과, 타심통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지고, 사람의 마음속을 더 빨리 파악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정신은 충분히 무르익었고, 하운평이 간절히 원하는 이 시점에,
타심통은 한 단계 진화했다.
우익편의 웃음은 진즉에 사라졌다.
백의문 놈들을 이용하면 손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졌다.
소년은 백의문 사람들을 죽이기 싫어서 피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쪽으로 올 수 있다. 또 비장의 수로 생각했던 의태심 역시 고작 순검사 한 명한테 가로막혔다. 이러다가 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도망쳐야겠어.’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이 젊은 몸만 있으면, 수십 년도 더 살 수 있었고, 향로만 있으면 수천 명의 인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 이대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응? 갑자기 왜 머리가 어지럽…… 허억.’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더니, 귀가 아닌 머리에서 초심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몸! 내 몸을 내놔라!’
저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초명기의 의식이었다. 그것이 다시 돌아왔다.
‘어, 어떻게 돌아왔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우익편은 말을 더듬거릴 정도로 놀랐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의식이 생겼다. 몸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었다. 초명기의 몸은 부서진 나무인형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가 들고 있던 향로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우익편이 조종하는 사람들 역시 행동을 멈추었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고, 하운평은 그 사이를 지나 손쉽게 우익편의 앞까지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진 초명기의 의식을 끄집어 올린 사람이 바로 하운평이었다.
그를 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향로를 주웠다. 백서른두 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든 물건, 굉장히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잡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전에 사방천수도처럼 끔찍하진 않았다.
향로의 힘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하운평은 향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발로 세게 걷어찼다.
퍼억.
향로는 완전히 깨졌다. 더 이상 붉은 연기는 나오지 않았고, 우익편의 주술도 효력을 상실했다. 거짓말처럼 백의문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때 하운평은 부서진 향로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녹색으로 빛나는 구슬이었다. 그것을 잡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별한 잔념은 없지만, 그 구슬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네, 네 이놈. 하운평!!”
그때 우익편이 검을 들고 달려왔다. 결국 초명기의 의식을 제압하고 몸을 되찾은 것이다. 그는 전력으로 다해 검을 찔렀다. 하지만 웬일인지 하운평은 꼼짝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반짝였다.
“허억.”
우익편은 꼼짝하지 않았다. 초명기의 머릿속으로 또 다른 의식이 들어간 것이다.
하운평의 의식이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것이군. 이 힘으로 벽여 명의 화전민들을 자살로 이끌었나?’
‘이, 이놈……. 어떻게 향로도 없이?’
‘나에게는 향로보다 더 강한 게 있거든.’
하운평은 초명기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손이 제멋대로…….”
초명기의 몸은 들고 있던 검을 거꾸로 붙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끓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고통을 충분히 느낄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찔러 넣었다. 정확히 화전민들이 당했던 방식이었다. 그렇게 우익편은 죽음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어리둥절했고, 구치웅은 서둘러 달려왔다.
하운평도 그제야 한숨을 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녹색 구슬을 슬그머니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 * *
백의문주 초상원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겨우 목숨을 건졌고, 백의문의 잘못을 인정했다. 직접적인 잘못은 없으나, 초명기를 잘못 키우고, 우익편을 받아들인 것도 본인의 책임이었다.
또 백의문은 봉문하기로 결심했다.
구치웅은 초명기와 우익편을 화전민의 살해범으로 공식 발표했다. 또한 우익편의 지하 동굴에는 그동안 실종되었던 수십 명의 시체도 발견되어서 사건은 굉장히 커졌다.
때문에 하운평도 바빠졌다.
그는 사건을 끝난 직후에 무적문으로 돌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구치웅에게 붙잡혔다.
구치웅은 이번 사건의 증인으로 나서주길 요청했고, 고민 끝에 따라갔다.
하남성의 포정사까지 가서 이번 사건에 대해 증언했으며, 관리들과 친분을 맺었다. 제형안찰사를 비롯하여 고위 관직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 * *
관에서 증언하는 일은 몹시 피곤하다.
일단 법을 집행하는 절차가 너무 길고 복잡했다. 또 고위직 관리들은 말이 너무 많았다. 입만 열면 일장연설이었고, 잘난 척이었다.
만약 앞으로의 무적문을 위해서, 관리들과 친분을 맺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반면 좋은 점이 있다면,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졌다.
무적문에는 이미 연락했고,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무공과 타심통 수련만 계속 하고 있었다.
타심통은 분명 한 단계 진화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있는 것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 가슴 속 깊이 숨겨놓은 상처라든지, 욕망, 혹은 충격적인 사건 같은, 과거에 있었던 일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집중한다면, 사람들의 신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은 ‘녹색 구슬’의 영향이 컸다.
향로에서 발견한 녹색 구슬.
그것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능력이 강해졌다.
똑똑.
그때 구치웅이 찾아왔다. 근래에 어찌나 많이 만났는지, 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수고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드디어 끝났나 보군요.”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생각해보니, 그날 이후 벌써 열흘이나 흘렀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뺏었구나. 미안하다.”
“아닙니다. 이제 순검사님도 한가해지시겠군요.”
“난 이제부터 밀린 사건들을 처리해야해서 바쁘다. 그리고 우익편의 지하실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이십 년 전에 혈교의 잔재를 발견한 모양이야.”
“혈교라…….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약 삼백 년 전, 마교에서 하나의 분파가 생겨났고, 중원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혈교’라 불렀고, 괴이하고 잔인하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무공을 선보였다.
다른 사람의 신체와 피를 이용하여 혈기와 악기를 형성했고, 그것으로 강해졌다. 그 위력은 굉장히 강하고, 파괴적이었다.
그들은 강해지기 위해 수천 명을 납치했고, 무림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 그렇게 무림맹과 혈교는 정면으로 부딪쳤고, 당시 무림맹은 거의 반이나 붕괴되면서 겨우 혈교를 무너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편지를 발견했어.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은……. 어쩌면 혈교의 잔재를 찾은 건 혼자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들을 찾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
“하하. 당연하지요. 저희 무적문은 정의를 수호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도와드릴 겁니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싸우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 무적문 단독으로 나설 생각도 없었다.
“그러고 말이야…….”
안 되겠다. 이대로 있으면 또 얽매이겠어.
나는 급히 일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시간이 없네요. 덕분에 일정이 많이 늦었거든요.”
“알고 있다. 새로운 표국주를 영입하기 위해 후보자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지?”
허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으시네.
처음 만났을 때 둘러댄 핑계였는데, 구치웅은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후보자가 하남성 남쪽의 도잔 고을에 있다고 했었는데. 맞나?”
“맞습니다.”
“그럼 잘됐다. 마침 그쪽으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걸 타고 가거라. 마차보다 두 배는 빨리 도착할 거야.”
“괜찮습니다.”
“이미 부탁해 놓았다. 부담가지지 말고 타거라. 아니면, 거짓말을 한 것이었나?”
“하하. 할 수 없군요. 감사합니다. 순검사님.”
정말로 쓸데없는 일을 하셨군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배를 탔다.
그래. 배를 탔다가 중간에 내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밀렸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