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42
너의 초식이 보여 42화
녹색 구슬
다음날 아침, 나는 파해천과 오랜만에 수련 중이었다.
반모란과 진경운이 찾아왔고, 파해천과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권왕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다. 창을 잘 쓴다고?”
“네. 조금…….”
“확인해 보자.”
권왕이 다짜고짜 주먹으로 휘둘렀다. 권풍을 일으켜 반모란을 압박했고, 나는 이미 그의 생각을 읽은 후였다.
진경운을 데리고 멀찍이 물러났다. 반모란은 진경운이 내 품에서 안전한 걸 보자, 창을 붙잡고 흔들었다.
파파팡.
창이 권풍을 갈랐다. 그리고 유려하게 창을 돌리면서 권왕을 공격했다.
창은 장거리 무기였고, 일정한 거리가 필요했다. 반면 권법은 타격을 하기 위해서 최대한 거리를 좁혀야 한다.
즉 권법가는 어떻게든 다가가려 하고, 창술가는 다가오는 것을 막으면서 거리를 유지한다. 일반적인 싸움 방식이었다.
두 사람도 처음에는 다르지 않았다.
권왕은 빠르게 움직이며 다가갔고, 반모란은 창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생각보다 강했다.
창을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었고, 무엇보다 찌르기와 휘두르기의 연계가 훌륭했다. 특히 휘두르는 동작에서는 끊어짐이 없어서, 만약 나라면 파고들기 까다로울 것 같았다.
권왕은 달랐다.
아주 아슬아슬하면서도 손쉽게 창의 간격에서 파고들었다. 그리고 창끝만 살짝 치면서 창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동시에 반모란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에 반모란은 당황하지 않고, 창의 반대 부분을 세워 주먹을 막았다.
쿠웅.
타다닥.
여기서 차이가 벌어진다. 반모란은 크게 뒤로 물러섰고, 권왕은 오히려 앞으로 달려갔다.
권왕은 다시 있는 힘껏 때렸다.
콰콰쾅.
반모란은 어렵게 피했다. 빗나간 공격은 어찌나 강한지 개인 연무실의 벽을 부서뜨렸다.
그녀는 그 구멍 사이로 나갔고, 창으로 바닥을 찍으면서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리고 쫓아오는 권왕을 향해 창끝으로 찔러댔다.
수십 개의 날카로운 잔상이 생기는데, 권왕은 그 것조차 귀신같이 피하면서 다가갔다. 계속 그녀를 압박했고, 반모란의 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밖으로 따라갔다. 한동안 멍하니 보다가, 문득 구경꾼이 늘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 연무실 밖에는 연무장이었고,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대결을 구경하고 있었다.
권왕의 무공이야 다들 알지만, 그와 대련하는 반모란의 무공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녀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무림이다.
무엇보다 무공 실력이 우선시되는 곳이고, 모든 걸 결정한다.
잠시 후, 반모란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손을 들었다. 반면 권왕은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도 반모란을 칭찬했다.
“좋아. 총당주인 호병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어. 그런데 몇 년간 수련을 게을리 한 모양이지?”
“허억. 헉. 네. 아들 때문에.”
“그래.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나도 신경 써서 도울 테니까.”
“감사합니다. 권왕 대협. 아니, 문주님.”
“감사는 내 제자에게 하고, 앞으로는 무공수련도 열심히 해라. 무공 재능으로만 따지만, 우리 문에서 네가 두 번째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파해천은 진경운에게도 다가갔다.
“이놈아. 앞으로 잘해보자.”
“네에에.”
진경운은 겁을 먹은 듯, 몸을 빼면서 겨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게 정상이지. 십 세 이하의 꼬마는 원래 이래야 하는 거야.”
“그런가요? 제가 비정상이라 죄송합니다.”
“됐다. 웃으면서 대답하는 놈이 무슨 죄송……. 그리고 만약 네놈이 정상이었다면 재미없었을 거야.”
권왕은 어슬렁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반모란과 같이 표물원으로 갔다. 그리고 표두와 표사에게도 정식으로 알렸다. 그녀는 표물원의 원주로 익숙하게 행동했고, 잘 적응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인 진경운도 새집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어제 못한 상단 일을 정리하기 위해 방대일 총관을 찾았다.
* * *
방대일 총관은 집무실에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접객원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접객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역시 이번에도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왜 세금을 안 내는 건데?”
“안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늘어나서 저희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금을 기존대로 먼저 내고, 추가세금은 나중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큰 문파에서 그만한 돈이 없다고? 총관 이 개새끼가 나를 물로 보네. 곤장 몇 대 맞아볼래?”
역시 현령 공지신이었다.
나는 스멀스멀 화가 났고, 살짝 고민했다.
구치웅이 올 때까지 저놈을 계속 봐야 하나? 아니면 이번에 관리들과 친해졌잖아. 그들에게 부탁해서 곧바로 처리해 버릴까?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손보고 싶은데……. 끄응, 아니다. 만약 그러면 그 우익편하고 싸운 게 헛수고가 되는 셈이잖아.
아아, 그래. 우익편.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품속에서 녹색 구슬을 꺼내었고, 접객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단순히 타인의 몸을 움직이는 것, 그 이상을 것을 하려 한다.
우익편이 했던 것, 나도 그것을 할 수 있었다.
* * *
공지신 현령은 본래 무적문으로 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 살인이나 실종 같은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하남성 포정사에서 포쾌들을 새로 보내주었다.
무려 백 명이나 추가로 증원되었고, 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교육시키다가 포쾌들을 전부 이끌고 무적문으로 온 것이다.
옆에서는 변청관 현령이 이 정도면 됐다고 말리고 있지만, 공지신은 더더욱 큰소리쳤다.
무적문 같이 큰 문파의 총관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소년 무사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웃으면서 정중히 인사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현령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너는 누구냐.”
“제가 너무 바빠서, 송구스럽게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무적문의 소문주인 하운평이라고 합니다. 귀한 분이 오셨는데, 차나 술을 드려야 하는데, 어떤 것이 좋으신가요?”
“됐다. 아침인데, 무슨 술이냐? 그리고 차는 이미 마시고 있는데.”
“하하. 이런 차 말고 귀한 차를 드려야죠. 마침 철죽에서 들어온 용정차가 있습니다. 한 잔 드릴까요?”
찻잎 한 움큼이 같은 양의 은자보다 비싸다고 알려진 용정차였다. 그런 귀한 차를 준다니, 현령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그럼 한번 마셔봐야지. 무적문 소문주가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군.”
“칭찬, 감사합니다.”
그때 하운평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고, 이곳에서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공지신 현령 역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모르고 있었다.
‘소문에는 무적문의 소문주가 무서운 사람이라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별거 아니네.’
생각보다 어리고 예의도 발랐다. 이제는 총관 말고 직접 상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의 말투도 달라졌다.
“흠흠. 사실 내가 온 건 말이야. 나라에서 걷는 세금 때문인데.”
“네. 총관에게 들은 적 있습니다.”
“그래. 무적문 같은 대문파라면, 당연히 세금을……. 어?”
그때 공지신은 이상한 광경을 봤다.
눈앞에 있는 탁자가 갑자기 비틀어졌다. 그리고 찻잔의 물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또 찻물은 귀신의 형상을 갖추면서 입을 열었다.
“공지신 현령!!”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공지신은 이것이 꿈인가 싶어 얼굴을 꼬집어보고, 창밖에서 비추는 햇빛도 바라보았다.
분명 햇살은 눈부시게 밝았고, 지금은 대낮이었다.
그런데도 귀신의 형상은 너무나 또렷했다. 그리고 귀를 긁는 듯한 목소리도 분명했다.
“공지신. 네놈의 악독한 행각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찾아왔다. 구천의 명부로 같이 가자.”
“으으으, 으아악.”
공지신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현령님, 괜찮으십니까?”
변청관 현승이 놀라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악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지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승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 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 건가?’
하운평도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현령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으음. 총관님. 나중에 보약 한 채 지어서 현령님께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비, 빌어먹을, 누가 그따위 보약이 갖고 싶은 줄…….”
“공지신!!”
다시 악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나타났고, 발까지 붙잡았다. 잡힌 부분이 뜨거워서 타는 것 같았다. 생생한 고통이 느껴졌다.
“으아아악. 아아악.”
공지신 현령은 놀라서 양손과 양발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길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이상해. 이 집이 이상한 거야.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어.’
하지만 악귀는 사라지지 않았다. 뛰는 중에도 벽에서 튀어나오거나, 바닥에서 손을 내밀어 현령의 옷을 붙잡았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는 고함을 지르며 무적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현청으로 달려가는데, 밖에서 더욱 심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악귀로 변해서 현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령에게 손을 뻗고 잡으러 왔다.
“안 돼. 안 돼에!!”
현령은 눈을 감고 정신없이 뛰었고, 현승과 포쾌들은 놀라서 쫓아갔다.
현령의 행동은 너무나 이상했고, 모두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다.
물론 귀신의 수작은 하운평의 솜씨였다.
우익편이 했던 것과 똑같이 세 개의 질문을 했고, 대답을 하는 순간 공지신의 의식 속으로 침투했다. 일단 의식을 공유하자, 원하는 환영을 마음대로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너무 쉬워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저어,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그때 방대일 총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운평은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네? 저요? 당연히 괜찮죠.”
그런데 총관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경계하는 듯한 표정이었고, 그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하운평은 다시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게, 저어……. 갑자기 공자님 표정이 이상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이……. 눈 색깔도 조금 이상하고요.”
하운평은 깜짝 놀라 동경(거울)을 찾았다. 그리고 동경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의 색깔이 붉어졌고, 얼굴의 인상이 변했다. 마치 우익편의 광기 어린 표정과 비슷했다.
하운평은 놀라서 녹색 구슬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권왕이 혈교의 물건은 찜찜하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이 물건, 정말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구나.’
조금 더 조사하고,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하운평은 고민 끝에 녹색 구슬을 작은 상자에 넣어 집무실에 숨겼다. 그리고 확실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흘이 흘렀다.
새벽에는 사부님과 같이 수련하고, 낮에는 표물원의 분국을 준비했다. 또 사부님과 비잔신투의 창고에 가서 몇 가지 영약과 보물을 챙겨오기도 했다.
그렇게 바쁘게 보내는 중에 드디어 개방과 하오문에서 명단을 보냈다.
무적문이 요청한 조건은 간단했다.
명의(名醫)라 불릴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고, 환자의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의원을 찾았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하남성을 중심으로 의원들을 선정했다. 겨우 십여 명을 보냈는데, 생각보다 인원이 적었다.
대신 의원의 나이, 성명, 특징과 버릇, 성격, 재산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하운평은 그런 것들을 따지면서 두 명으로 추려냈다. 그들은 한 곳에 있었다.
“일단 이곳으로 가 보죠.”
봉신의가였다. 그런데 반모란이 반대했다.
“소문주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듯 저도 이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환자 수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고, 환자를 병이 아니라 재력에 따라 등급을 나눕니다.”
“알고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일단 저를 믿어주세요.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고, 또 우리는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의원을 데리러 가는 거예요.”
“으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봉신의가의 가주도 쉽지 않은 사람입니다. 의가의 의원들을 무척 아껴서 밖으로 빼내는 일이 없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네. 그것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아마 이것이면 될 거예요.”
하운평은 작은 상자를 흔들며 웃었다. 괜찮을 거라고 반모란을 설득했고, 파해천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픈 진경운을 위해서 작은 가마도 준비했다.
잠시 후, 파해천이 가마와 두 사람을 허공섭물로 들어 올렸고, 본인까지 합해서 네 명이 하늘로 날아갔다.
봉신의가는 호북성의 성도 무한(武漢)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