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48
너의 초식이 보여 48화
옥패의 잔념(3)
모란은 환히 웃으면서 단소를 반겼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언니. 지금부터 준비 할게요. 같이 가요.”
“그래. 고마워.”
단소는 가볍게 얘기하고 돌아섰다. 계획대로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지자, 모란의 표정이 급변했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입가에 살기가 맴돌았다.
“아아. 짜증 나네. 저년.”
모란, 아니, 그는 여장한 남자였고, 진짜 이름은 서중곤이었다.
혈교의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여자의 음기가 필요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녀로 위장하고 있었다.
‘소림의 중놈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이야.’
소림의 무승을 만난 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렸다. 사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당황했지만, 서중곤은 자신 있었다.
이십 년 동안 모은 내공만 이 갑자에 가까웠다. 아무리 소림이 대단해도 단숨에 이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전에서는 내공만으로 한 명의 무승조차 이길 수 없었다. 오히려 부상을 입었고, 겨우 머리를 써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역시 혼자서는 안 돼. 당주와 동료들이 있어야 나도 마음껏 활보할 수 있겠어.’
그때까지 이 고을에서 얌전히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단소라는 계집이 신경을 긁었다. 예전부터 죽이고 싶은데, 루주와 친해서 참고 있었는데.
‘끄응. 참자. 괜히 죽었다고 루주가 관청에 신고라도 하면 곤란해.’
귀찮지만 단소 년의 요구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일단은 그년 말대로 따르지만, 여기서 떠날 때는 제일 먼저 없애 버리겠어. 또 루주 년도 채음을 한 후에……. 응?’
그때 서중곤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이 크고 피부는 하얀 예쁜 아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중곤의 눈에는 그 아이가 지니고 있는 엄청난 음기가 보였다.
기녀의 닳고 닳은 음기 따위가 아니었다. 남자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순수한 음기, 그것보다도 백배는 진한 결정체 같은 음기였다.
서중곤은 놀라서 숨을 멈추었다.
‘허억. 천음지체다. 천 년에 한 번씩 태어난다는 그 천음지체가 분명해.’
그리고 자신이 익힌 혈교의 혈천채공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혈천채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만 명의 여자가 필요하다. 동정을 지닌 여자라면 천 명이면 충분하고, 만에 하나 운이 좋아 천음지체를 만난다면……, 하나면 족하리라.]그 천음지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서종곤은 기쁨을 참지 못해 부르르 떨었다. 자신을 불러줄 단소를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오늘 저 아이가 팔려간다는 점이다.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놈들은 다 죽이고 저 아이만 데리고 도망친다.’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마차에 탔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힘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언니.”
이름이 소소라고 했던가?
본인이 천음지체인지도 모르는 그 아이는 커다란 눈으로 떨고 있었다.
서중곤은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소소라고 했지? 걱정하지 마. 이 언니가 지켜줄게.”
“고맙습니다. 언니.”
“호호. 나만 믿으면 돼. 나만…….”
서중곤은 마치 아름다운 보석을 보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 * *
우린 해가 질 무렵, 고시에 도착했다.
먼저 현청으로 가서 현령을 만났고, 이도위 순검사가 보낸 전서구를 읽었다.
‘모란’이란 기녀가 있었고, 사흘 전에 고시로 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제일 유력한 용의자가 모란이란 기녀겠군요. 이제 그녀가 어떤 기루로 갔는지 알아야하는데.”
“이곳에 기루가 몇 개가 있죠?”
현령에게 물었고, 현령은 멍한 표정으로 오히려 되물었다.
“저어, 그러니까 모란을 찾는 건가요?”
“모란을 아십니까?”
“삼 년 전에 유명한 청기였습니다. 그런데 삼 년 전에 떠났고 지금은 없는데요.”
“그녀가 머물렀던 곳이 어느 기루였죠?”
“가음루죠.”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구치웅은 두 번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무헌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을 다 끌어모으고, 이곳의 지형을 파악하고, 포위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사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내공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내 무공으로 싸워봤자 도움되지 않았다.
그럼 그 기루에 먼저 가서 정찰이나 해볼까?
구치웅에게 말했지만, 그는 반대했다.
“준비가 되면 같이 가자.”
그래. 나도 굳이 영웅 행세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북적거리는 관청에 있기도 싫었다.
문득 배가 고팠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처음 온 고을이라, 객잔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이 고을에서 제일 부자인 문전 대인이라는 작자가 잔치를 벌인다는 소릴 들었다.
호오. 잘됐네.
사람들이 잔칫집으로 몰려갈 테니, 객잔은 조용하겠어.
혼자서 조용히 먹을 생각에 기뻤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나를 붙잡았다.
“기녀도 부른다면서?”
“그렇지. 청기 홍기 수십 명을 부른다네.”
제기랄. 만약에, 정말 만약에 혈교의 그놈도 저기에 갔으면 어떻게 되지?
이 고을에는 기루가 세 개나 있고, 기녀가 수십 명이 있었다. 혈교의 음적이 갈 확률은 낮았다.
그래도 만약 갔다면……?
결국 나는 잔칫집을 찾아갔다.
가서 기생들이 어느 기루에서 왔고, 그놈이 있는지만 확인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없기를 바랐다.
휴우. 그런데 누가 그랬더라?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내가 딱 그 짝이었다. 정말 없기를 바랐는데, 그놈이 내 눈앞에 버젓이 보였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눈에 띄게 예뻤고, 그의 속마음은 기분 나쁠 정도로 더러웠다.
‘다 죽이고 싶지만, 조금만 참자. 여기 있는 놈들이 술에 취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만 기다린다. 그 후 소소를 데리고 여기서 도망치면……. 흐흐. 천음지체는 내 것이다.’
소소는 누구지? 천음지체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또 다른 희생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그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 힘으로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았다.
“너희들, 혹시 용돈 벌고 싶지 않아?”
“??”
“너희들 관청이 어디 있는지 알지? 그곳에 가서 구치웅 순검사를 찾아라. 그리고 여기 잔칫집에 오라고 전해주면 돼. 그놈이 여기 있다고 말해주면 더 좋고.”
“싫은데요.”
“우린 여기서 밥 먹어야 한단 말이에요.”
“늦으면 고기가 하나도 없을 거야.”
아이들은 저마다의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나는 품속에서 은 한 냥을 꺼냈다.
허억.
아이들은 전부 입을 다물고 돈만 바라보았다. 어려도 돈에 대한 개념은 있었다.
나는 다른 손으로 동전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아. 이건 일단 심부름 값이다. 그리고 이 은 한 냥은 현청에 제일 먼저 갔다 오는 일등한테만 주겠다.”
“저, 제가 갈게요.”
“아니에요. 제가 제일 빨라요.”
아이들은 서로 빠르다고 소리쳤고, 그 와중에 먼저 뛰어가는 눈치 빠른 녀석이 있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뒤질세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구치웅 순검사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야겠군.
나는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혈교의 그놈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그놈은 집 안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집 안에 있는 누군가를 신경 쓰고 있었다.
누구지? 소소라는 아이인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보면서 정보를 보았다.
그래서 이 집의 주인이 첩을 얻으려 했고, 그 아이의 이름이 소소, 저 집안 어딘가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늙은 변태 새끼까지……. 쌍으로 패악을 부리는구나.
아무래도 기회가 생기면 그 아이부터 피신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회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이 집의 주인이 문전 대감이 도움을 주었다. 그는 술을 잔뜩 마신 상태였고, 악기를 연주하는 청기들에게 다가갔다. 정확히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모란을 찾아갔다.
“흐흐. 모란아.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호호호. 대인.”
서중곤은 토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억지로 상대했다. 몇 번이나 찢어 죽이고 싶은 살심을 누르면서 그를 따돌리려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가 길어졌다.
나는 바로 그때 움직였다.
뒤쪽으로 돌아서 소소가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몇 사람이 지키고 있지만, 그들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혼인할 때 입는 붉은 색 옷을 입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직접 만나고 조금 놀랐다. 키는 굉장히 작았고, 기껏해야 내 또래의 아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뭔지 모르지만 차가운 한기가 풍겼다.
그제야 천음지체가 뭔지 기억이 떠올랐다.
천성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음기가 강한 체질. 남자가 그러하면 문제가 되지만, 여자로 태어나면 혈맥을 강하게 만들어 오히려 무공을 익히기 좋게 변했다.
무슨 무공이든 금방 익힌다는 천무지체와 비견될 정도였다.
그 아이는 현재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생각도 않고 있었다.
쯧쯧. 아예 포기해 버린 건가?
나는 그 아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전음을 보냈다.
[소소? 소소 맞아?]“허억. 누, 누구세요?”
[쉿. 진정해. 소소야. 여기서 나가고 싶니? 도와줄까?]“네? 진짜요.”
[당연하지. 내가 나타날 테니까, 조용히 해야 한다.]“네에에.”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고, 나는 그녀 앞에 나타났다.
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때였다. 소소의 눈빛은 무서워하거나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눈빛을 보자니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 극심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이상해서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그냥 어린아이였군.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어.’
소소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당황했고, 나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어어, 그러니까…….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줄까?”
“정말요?”
아니다. 소소, 아니, 이 분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나처럼 혈교의 음적을 노리고 있었다. 자신을 미끼로 그를 잡아서 죽일 작정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을수록, 그녀가 누군지 확신하게 되었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에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오빠는 누구죠? 나를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여러 가지 계획이 떠올랐지만, 지금 상황에 맞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괜히 속이려다가 내가 화를 입을 수 있다.
“나, 나는 무적문의 소문주인 하운평이라고 한다. 지금 혈교의 음적을 쫓고 있는 중인데, 그놈이 너를 노리고 있어.”
“어머, 오빠 혼자서 잡으러 온 거예요?”
“나 혼자는 무리고. 조금 있으면 소림사의 무승들과 관청의 순검사 분들이 올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와 같이 잠깐만 피해 있자.”
‘소림 땡중들이 온다고? 그럼 조금 피곤한데.’
그녀가 고민하는 생각도 들렸다.
같이 가자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녀와 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그녀를 따라갔다가 큰일을 당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 역시 나를 따라가고 싶어 않아 했다.
같이 가기 싫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자고 말하고 있다.
이 무슨 불편한 상황인지…….
그녀 역시 고민하고 있었다.
‘흐음. 이 녀석을 어떡하지? 나를 구하러 온 아이를 죽일 수도 없고. 기절시켜야 하는데, 그러다가 자칫 다칠 수도 있는데…….’
위험했다.
내가 알기론 그녀는 자신의 무공을 조절 못 하기로 유명했다. 일단 무공이 발동되면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 버렸다.
그래. 자연스러운 헤어짐이 필요하다면, 우연을 만들면 되지.
나는 타심통을 이용하여 서중곤에게 소리쳤다.
‘네 이놈. 서중곤!! 거기 그대로 있거라. 소림사의 명예를 걸고, 나, 무헌 대사가 너를 잡으러 간다!’
효과가 있었다.
서중곤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너무 급해서 방금 들은 소리가 전음인지 머릿속에서 들린 건지 구분하지도 않았다.
일단 눈앞에서 귀찮게 구는 문전 대감부터 반으로 갈랐다.
쫘아악.
“으아아악.”
“꺄아악.”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중곤은 곧장 소소를 향해 뛰어들었다.
내 예상대로 자연스럽게 헤어질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내가 예상치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