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51
너의 초식이 보여 51화
옥패의 잔념(6)
굴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매일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기꺼이 통행료를 내고 굴길을 건넜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이용했지만,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은 굴길의 편리함을 깨달았다. 빠르고 편해서 비싼 통행료도 아깝지 않았다.
다른 표국이나 상인들은 더 좋아했다. 산을 넘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통행료를 내고 굴길을 이용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적 표국의 일도 늘었다. 무려 열두 배나 증가했으며, 분국도 다섯 개로 늘려야 했다.
특히 굴길의 입구와 출구 쪽에 하나씩 세운 분국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해냄으로써 위명을 떨쳤다. 이제 하남성에서 무적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하운평은 누구보다 바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배소소를 자주 찾았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그녀와 약속한 것도 계속 보고했다.
“굴길 사업이 안정화되면서 선배님께서 부탁하신 일도 벌써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무적문 옆에 전각을 크게 짓고 있는데, 수련원을 통째로 옮길 생각이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시설도 그곳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배소소와 약속한 부분인데, 이번에는 과부나 미혼모들을 위한 시설을 신설하려 했다.
“우선 시범적으로 하나 만들고, 체계가 잡히면 다른 곳에도 몇 개 더 지을 겁니다. 또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는 여자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방법도 논의를…….”
하운평은 상세히 설명했고 배소소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다 들은 후에 한마디 했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참 음식은 입맛에 맞으신가요? 많이 안 드신다고 하던데요.”
“신경 쓰지 말거라.”
“아. 네에. 알겠습니다.”
배소소가 기분이 나쁘거나, 하운평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고맙고 잘해줘서 문제였다. 그녀는 하운평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하운평도 그걸 알기에 무리해서 다가가지 않았다. 처음보다 관계가 나아진 것에 만족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진경운이란 아이. 또 올려보내도 된다.”
“알겠습니다.”
하운평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섰다.
사실 그녀는 진경운의 병도 도와주고 있었다. 주환상 의원이 지난번 방문 때 절맥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러다가 진경운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배소소는 천음지체에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혔다. 음기와 냉기 쪽으로는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절맥의 음기를 흡수함으로, 진경운의 병은 크게 호전되었다. 이대로는 이 년 안에 완치될 수 있다는 판정까지 받았다.
소식을 들은 반모란은 배소소에게 절까지 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배소소도 과부인 반모란에게는 친절히 대해주었다.
여기까지는 하운평이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것도 생겼다.
하운평, 개인의 명성이 생겼다.
사실 그동안에는 하운평이란 이름보다 권왕의 제자, 무적문의 소문주란 별칭이 먼저 붙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혈교의 음적을 하운평이 직접 처단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고아들에 이어 미혼모와 과부를 위한 선행도 퍼졌다. 거기에 무적문의 굴길 또한 하운평의 추진력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까지 알려지면서 하운평에게도 드디어 별호가 생겼다.
선용(善勇)공자.
착하고 용감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별호라고 축하했지만, 하운평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겐 과한 별호라고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별호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이해관계 때문에 벌인 일들이지, 칭찬받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약 사 개월 만에 출관한 파해천 역시, 그의 별호를 듣자마자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선용공자?”
“…….”
“선용? 으하하하.”
“그만 웃으세요. 침 튑니다.”
“사람들 눈이 삐었나 보다. 용감한 건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착한 건 절대 아니지. 철두철미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놈이 무슨 선용이야.”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파해천만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운평도 그 앞에서는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고로 무림에서의 별호란, 남자답고 강해 보여야지. 착하고 용감하다니.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약하다는 뜻이잖아.”
“끄응. 안다니까요.”
파해천은 계속 낄낄거렸고, 하운평은 심술이 발동했다. 그래서 계획과는 다르게 배소소의 일을 가감 없이 말했다.
“참, 사부님께서 안 계신 동안 중요한 손님이 와 있습니다.”
“낄낄. 손님? 누군데?”
웃겨서 눈물까지 닦던 파해천은 ‘빙하신녀 배소소’란 말에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라서 그 작은 눈이 주먹만큼 커졌다.
“배소소?”
“네. 지금 뒷산 별장에 계십니다.”
“그 할망구가 왜 있는데.”
“그렇게 됐어요. 설명해 드릴까요?”
“됐다. 설명 들을 것도 없어. 안 돼. 그 할망구는 안 되니까,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해.”
“엄밀히 말하면, 사부님 집이 아니죠. 저한테 별장을 주셨잖아요.”
하운평의 말에 파해천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흥, 별장은 네 것이지만, 뒷산은 내 거다. 내 사유지니까 어서 나가라고 해.”
“전 못 합니다. 무서워서요. 사부님이 직접 하시든지요.”
“흥. 하라면 누가 못 할 줄 알고?”
파해천은 씩씩거리며 뒷산으로 올라갔다.
사실 그는 배소소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악행을 들었고, 그녀가 죽인 사람 중에는 파해천이 아는 사람도 있었다. 때문에 적대적이었고, 만약 할망구가 날뛴다면, 싸울 용의도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뒷산의 별장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파해천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뭐가 저렇게 작아.’
마침 배소소가 대청에 나와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소문과는 너무 달랐다. 악녀니 혈귀니 괴물로 묘사되었는데, 막상 보니 작은 소녀에 불과했다. 그리고 눈동자도 너무 맑았다.
파해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 속은 칠십 넘은 할망구야.’
파해천은 애써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한마디 하려 할 때였다. 대나무 숲을 바라보던 배소소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권왕, 좋은 제자를 두셨더군요.”
상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그리고 칭찬을 하는데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해천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뭐, 아직은 어린아이지요.”
“그 작은 아이한테 제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꿈꾸던 일까지 단숨에 해낼 수 있었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흠흠. 그, 그쪽도 우리 제자를 도와줬다고 들었소. 고맙소.”
“고맙다라……. 사실 몇십 년 동안, 고맙다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었죠. 그런데 근래에 자주 듣게 되는군요.”
그러면서 미소를 짓는데, 파해천은 그 미소가 슬퍼 보였다.
배소소는 북해빙궁의 일원이었다.
천음지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고, 궁의 호위무사로 키워졌다. 하지만 빙궁을 침입한 괴한에게 납치당하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다.
괴한은 무림의 이름 높은 음적이었다. 채음보양술로 모은 잡다한 내공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고,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북해빙궁까지 침범한 것이다.
그는 배소소의 천음지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내공을 치료하려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충격으로 그녀는 성장이 멈춰 버렸고, 마음 또한 얼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망가졌지만, 타고난 오성과 천음지체의 재능은 여전했다. 그녀는 상황을 역전시켰고, 음적의 채음보양술을 이용하여 오히려 음적의 내공을 흡수했다.
그렇게 탈출해서 무림에 나와보니, 세상은 너무나 더러웠다. 음적 같은 남자들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악인을 죽였다.
수십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악인을 죽였고, 하루라도 피를 묻히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 역시 채양보음술로 모은 내공이 독이 되었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녀는 하얀 설원 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고 싶었다. 그래서 북해로 돌아갔지만, 운명은 그녀의 마지막 소원마저 들어주지 않았다. 우연히 북해빙궁의 전설이었던 빙정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으로 배소소는 단번에 화경의 경지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렇게 다시 중원으로 돌아와서 악인들에게 철퇴를 내렸고, 문득 십 년 전에 깨달았다.
‘혼자 날뛰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녀는 이제 남자를 죽이는 일보다,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십 년 동안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러던 중 혈교의 음적을 발견한 거였다.
배소소는 본인의 일생 중, 지금이 제일 편안했다. 그리고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릴 들으면, 그녀가 평생 지은 죄도 씻겨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분위기 역시 달라지고 있었다.
마침 하운평이 파해천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알려주었다.
파해천은 순간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으음, 그래도 같이 사는 건……. 나도 불편할 것 같고…….’
그때 그녀가 말했다.
“과분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하 공자가 약속을 지킨 것을 확인했으니, 저는 이제 떠나겠습니다.”
실제로 배소소는 대청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파해천은 얼떨결에 물었다.
“어디로 갈 생각이오?”
“글쎄요. 발길 닿는 곳으로 가야죠. 본래 무림인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까?”
불과 몇 년 전에 파해천 본인이 했던 말이다.
그도 당시에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꼈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더 큰 외로움만 찾아올 뿐이었다.
파해천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가지 마시오.”
배소소는 놀라서 쳐다봤고, 파해천은 본인이 무슨 말이 했는지 얼떨떨했다.
하운평이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저희 사부님 뜻은 약속도 없으신데 급히 가지 말라는 겁니다. 어차피 이 별장은 비어 있는 곳이니 마음 편히 있다 가십시오.”
배소소는 일부러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나는 무림의 공적이나 다름없다. 내가 있는 것이 밝혀지면, 무적문의 평판은 크게 떨어질 텐데, 괜찮으냐?”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하운평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그러잖아도 저와 무적문의 평판이 너무 좋아서 걱정입니다.”
파해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우리가 착한 사람은 아닌데, 너무 좋게 포장되었어.”
“맞습니다. 사실 저희 편하려고 이런저런 일을 벌였는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내 제자가 가장 와전되었지. 선용공자? 허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야.”
“개라니요? 사부님. 그건 좀 심한 데요.”
배소소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두 사제지간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그녀도 더 있고 싶었다. 이런 편안함을 더 느끼고 싶었다.
하운평도 진심으로 그녀가 있어 주길 원했다. 다른 일은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괜찮다. 혹여나 자신과 권왕이 없어도 무적문은 안전할 테니까.
결국 배소소는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최소한 진경운의 병이 고쳐질 때까지만 있기로 하고, 지금 짓는 수련원의 후원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부분은 거절했다.
* * *
반면 파해천은 찜찜하게 산을 내려왔다. 그녀에게 홀린 게 분명하다며 투덜거렸고, 그런 와중에 방대일 총관이 다가왔다.
“문주님. 여기 계셨네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오. 방 총관. 무슨 일인가?”
“전에 부탁하신 것 있잖습니까? 신기수사를 찾아달라는…….”
“아아, 그렇지. 그래 찾았는가?”
“죄송합니다. 문주님. 어제 개방과 하오문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그들도 신기수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정보를 먹고 사는 놈들이 그것도 모른다고?”
뒤따라오던 하운평이 물었다.
“찾을 방법도 없답니까?”
“무영문에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무영문요? 이유는요?”
“신기수사가 사라지기 전에 무영문과 거래를 했었답니다. 개방의 말로는 어쩌면 신기수사가 사라진 이유도 그쪽도 연관이 있을 거라 하더군요.”
결국 신기수사를 찾으려면, 무영문과 연락이 닿아야만 한다.
무영문이라…….